제국러시아의 코레야 견문록
이번주에 내가 관심도서로 분류한 인문서는 대담집 두 권이나 아직 언론리뷰가 뜨지 않는다. 내주로 넘어간 모양이다. 덕분에 일이 헐거워졌는데, 가뜩이나 일이 많은 터라 다행이긴 하다. 대담집 대신에 잠시 눈길이 간 책은 프랑스인 고고학자가 쓴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글항아리, 2009). 기사에서 언급된 대로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 한국 관련서가 유럽에서 다수 쏟아져나왔는데, 이 책은 내용이 충실해서 당시 베스트셀러가 됐다고도 한다. 그게 어떤 수준인지 호기심을 가져봄 직하다.

경향신문(09. 05. 02) 프랑스인 눈에 비친 몰락앞둔 제국의 흔적
“흥미로운 일이다. 이 정부에서는 항상 큰 개혁은 옷으로 하려니 말이다. 과거에는 주민에게 담뱃대 길이를 줄이라고 강요한 적이 있었다. 그 다음에는 옷소매를, 모자챙을 줄이라고 했다.”
프랑스의 고고학자이자 철도와 광산개발에 관련된 기술자문을 했던 에밀 부르다레는 대한제국을 이렇게 비판한다. 그런가 하면 오래된 왕조의 완숙한 예술과 장인들의 숨결, 직물·도자·그림·조각 등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에 탄복한다. 1904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이 책(원제 ‘En Core’e’)은 1900년대 초반 몇해의 한국을 세심하고도 애정 어린 눈길로 그려냈다.
1882년 미국인 윌리엄 엘리어트 그리피스가 <은자의 나라 조선>을 펴낸 이후 1910년까지 영어·프랑스어·독일어·러시아어·이탈리아어 등으로 된 한국 관련 서적은 50종에 이른다. 그러나 한국에 관한 인상기나 견문기 수준에 머무는 게 대부분이다. 그에 비해 4년여의 체류에서 나온 부르다레의 책은 충실성 덕분에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필자는 고종이 이끈 대한제국이 변화하려는 노력에도, 스스로의 명백한 한계와 일본의 간교한 식민지 포섭활동으로 인해 무너질 수 없었던 슬픈 현실을 증언한다. 그는 앞선 인용문처럼 조선 정부나 관료들의 형식적인 개혁을 비판하는가 하면, 위조화폐로 조선의 쌀을 사들여 일본으로 가져간 뒤 비싼 값에 되파는 제국주의의 만행을 고발한다. ‘불결’하고 ‘악취’나는 조선의 근대화 필요성을 역설하는 한편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조선의 문화에 대한 세밀한 관찰도 돋보인다. 시내를 활보하고 극장에서 배우에게 추파를 던지는 양반의 거들먹거리는 모습, 강한 식탐으로 먹고 마시고 취하는 장면, 손님이 가격을 물어봐도 대꾸 않는 행상, 아무데나 쓰러져 자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묘사했다. 건축에 대해서는 “건물은 풍경을 강조하는 기분을 자아내며 풍경은 건물의 개성을 의도적으로 부추긴다”면서 후한 점수를 준다.
특히 양반의 모습, 문화유적, 축제 등을 찍은 흑백사진 30장과 극장 ‘협률사’ 내부구조 및 공연장면, 궁중연회 식순, 전차를 타고 교외로 놀러가는 젊은이들의 유람문화 등은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한윤정기자)
09. 05. 02.



P.S. 외국인들이 견문록은 집문당에서 '한말 외국인 기록'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완간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사에서 언급된 그리피스의 <은자의 나라 한국>(집문당, 1999)도 그 시리즈의 책이다(번역 수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러시아인의 견문록으로는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의 <코레야 1903년 가을>(개마고원, 2006)과 곤차로프의 <러시아인, 조선을 거닐다>(한국학술정보, 2006) 등이 있다.



이 주제에 대한 연구서도 나옴 직한데, '한말 외국인 기록' 시리즈를 기획한 신복룡 교수의 <이방인이 본 조선 다시 읽기>(풀빛, 2002) 외 다른 책이 있었던가 싶다. 비숍의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을 비롯해서 당시의 대표적인 한국 관련서들의 내용과 영향 등은 짚어볼 만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