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와중에 서재 이벤트를 한다고 해서 좀 어수선한데, 그래도 평소 하던 일은 해놓아야겠다. 어제 보선 결과가 그래도 약간은 기운나게도 하고. 프랑스 경제학자 미셸 아글리에타의 세계 자본주의 분석서로 <세계 자본주의의 무질서>(길, 2009)란 책이 출간됐다(아글리에타의 책은 <자본주의 조절이론>(한길사, 1994)이 오래 전에 출간됐다). 책을 자세히 읽고 평가할 만한 경제학 지식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리뷰 정도는 읽고 '판세'를 가늠해볼 수는 있다.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여러 책들, 혹은 이론가들과의 변별점은 따로 눈 밝은 서평도 기대해봐야겠다.   

한겨레(09. 04. 30) '신자유주의 파산’ 예언자 내수중심 경제 주문하다   

프랑스 조절이론(조절학파) 창시자 미셸 아글리에타 파리10대학 교수는 앞으로 20년 안에, 추격 불가능할 정도로 나머지 세계를 뒤처지게 만들었던 서방(구미)의 산업혁명 효과는 거의 소멸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글리에타는 로랑 베레비와 함께 쓴 <세계 자본주의의 무질서>(도서출판 길 펴냄)에서 1997~8년 한국 등 아시아 신흥국들을 덮친 외환위기 이후 ‘워싱턴 컨센서스’로 대표되는 미국 주도 신자유주의체제에 “사망선고”가 내려졌다면서, 세계경제 장기전망을 그렇게 그렸다. 이에 따라 지금 서구의 지위를 신흥국들이 차지하는 등 국제 ‘거버넌스’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국제 제도들도 바뀌는 조정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아글리에타는 21세기 초 신흥국의 평균성장률은 6%, ‘선진국’은 2.5%였는데 이런 성장격차는 향후 20년 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추세를 장기 경제사 연구분야의 선구자 앵거스 매디슨 방식에 따라 구매력지수로 측정하면 1913년에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0%였고 1950년에 38%, 그리고 2005년에는 50%였던 비구미 신흥국들의 비중은 2030년에는 66%가 돼, 70%를 차지했던 아편전쟁 전 1820년 수준에 도달한다고 아글리에타는 계산했다. 이런 세력관계 변화는 아시아 통합의 주축이 될 중국을 국제 거버넌스의 정점에 올려놓고, 달러가 헤게모니를 쥔 지금의 국제통화체제를 다극체제로 바꿀 것이라고 그는 전망했다. 

미국발 금융공황과 세계경제 위기가 본격화하기 전인 2007년에 출간된 이 책에서 아글리에타는 이번 위기 발생의 시기와 경로까지 예측할 순 없었으나 세계경제의 작동방식과 내부모순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통해 ‘위기’와 새 출발을 위한 ‘조절’이 불가피한 이유를 실증적으로 제시했다. 세계경제 위기가 현재화한 지금 그의 20년 뒤 세계 예측에도 무게가 실리지 않을까. 경제학마저도 영미권 저작에 대한 편식이 심한 우리 풍토에서 서익진 경남대 교수 등 프랑스에서 공부한 이 분야 전문가들이 옮긴 유럽적 시각의 세계 자본주의 분석은 지적 다양성 추구라는 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아글리에타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후 금융적 탈진상태와 내수 감소로 질식상태에 빠진 아시아 신흥국들은 환율폭락 등을 무기로 공격적인 수출확대전략에서 활로를 찾았다. 그 결과 방대한 무역과 자본수지 흑자를 쌓은 신흥국들은 주권을 옥죄던 달러 채무에서 벗어나 미국에 대한 채권자가 됐으며, 서구 금융의 이익을 대변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족쇄에서도 풀려났다. 아시아 신흥국들의 저가 수출은 아시아 위기가 야기한 디플레이션 충격을 대부분 흡수했던 미국 기업들을 더욱 거센 경쟁에 내몰았고 그들을 제품 판매가격 인하(가격파괴)와 노동시장의 임금인상 압박, 그리고 수익율 저하라는 곤경 속에 밀어넣었다. 수익성이 나빠진 미국 기업들은 차입금을 지렛대 삼아 자기자본이익률을 높이는 ‘레버리지 효과’를 더 많이 활용하기 시작했다. 곧 자사주 환수, 배당금 증가, 적대적 주식공개매수 등을 통한 외형성장방식을 위해 빚을 늘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미국기업의 자금사정이 급속히 악화되기 시작했으며, 헤지펀드 등 파생금융상품이 상징하듯 은행 등 금융기관들도 거기에 맞춰 변했다. 이것이 대규모 금융위기로 귀결되는 건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아글리에타는 예측했다. 이로 인한 금융거품은 한편으로 가계들의 금융자산을 증가시킴으로써 가계소비를 촉진하고 기업들의 자금조달 비용을 줄여 기업투자를 촉진했다. 독일과 일본 기업들의 부진, 중국과 인도의 세계무대 본격 등장도 재화와 서비스의 구조적인 과잉생산체제 완성에 기여했다.

과도한 주가 상승을 조장한 주주가치 경영규범도 아글리에타는 파국 요인으로 꼽았다. 미래 배당에 대한 기대치의 극대화, 곧 주가의 극대화를 통한 주주들의 이익 극대화 추구는 임금과 노동조합, 투자, 소비를 망가뜨리고 양극화를 심화시켰으며, 이는 다시 차입금융에 의존하는 기업들의 ‘리스크 지향성’을 더욱 강화시켰다.

과소 저축, 과다 소비, 팽대한 재정·무역적자가 상징하는 미국경제 취약성은 그렇게 해서 체질화했다. 신흥국들의 광대한 무역흑자가 국채투자 등으로 미국에 환류해 미국의 천문학적 재정·무역적자를 메워주는 이른바 ‘글로벌 불균형’이 취약한 미국경제와 거기에 의존한 세계경제를 지탱해왔으나 경상적자가 국내총생산의 7%에 이르는 상황에서 그건 지속 불가능하다고 아글리에타는 지적했다. 결국 지금의 위기는 워싱턴 컨센서스가 아시아 위기를 불렀고, 아시아 위기가 다시 워싱턴 컨센서스를 끝장낸 악순환의 귀결인 셈이다.

신흥국들이 내수 주도 성장 정책을 펴서 나머지 세계의 내수 증가 속도가 미국보다 더 높아지도록 만들고 또 그런 상태가 지속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아글리에타의 새로운 성장체제로의 이행을 위한 해법이다. 이명박 정권의 수출주도 성장정책은 이것과도 충돌한다.(한승동 선임기자) 

09. 04. 30. 

P.S. 1월초에 한겨레에 연재된 세계 석학과의 대담에서 아글리에타 편은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31978.html 참조(그는 이매뉴얼 월러스틴에 이어서 두번째로 다루어진 '석학'이었다). 대담은 그의 '조절이론'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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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9-04-30 09:28   좋아요 0 | URL
1월 아글리에타와의 인터뷰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책이 나왔군요...아..로쟈님의 책도 기대하겠습니다.

로쟈 2009-04-30 23:29   좋아요 0 | URL
주말까지 또 교정을 봐야 하는데, 자꾸 보니까 보기 싫어지네요.^^;

[해이] 2009-04-30 23:44   좋아요 0 | URL
현재 구할 수 있는 아글리에타 글은 이게 유일하군요... 다른 주저들이 다시 번역됐으면 좋겠네요;;; 여튼 서익진씨는 요즘 정말 열심히 활동하시는듯.

로쟈 2009-05-05 09:04   좋아요 0 | URL
저에겐 생소한 분인데, 정말 그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