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귀가해서 한숨 돌리고 잠시 뉴스기사들을 훑어보다가 눈에 띄는 신간 리뷰가 있어서 옮겨놓는다. '경제학계를 뒤흔든 차세대 블록버스터!'라는 광고문구를 띠지에 달고 있는 책 <맬서스, 산업혁명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신세계>(한즈미디어, 2009)가 눈길을 끄는 책이다. 제목이 다소 긴데, 표지대로 하면 초점은 '왜 부국의 원조가 빈국의 가난을 해결하지 못하는가?'이고 기사의 제목대로라면, '국가간 빈부격차 왜 해결되지 않을까'이다. 한마디로, "'부의 탄생'과 '빈부격차'라는 인류역사와 경제의 가장 핵심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책"이라고 소개된다(저자 자신은 '가설'이라고 얘기하지만). 2007년에 출간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하는데, 자세한 서평이 기대되는 책이다. 경제서이긴 하나 보관함에 집어넣는다.


엽합뉴스(09. 04. 20) 국가간 빈부격차 왜 해결되지 않을까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인류는 '맬서스의 덫'(Malthusian Trap)에 갇혀 있었다. 인류의 소득 증가는 인구 증가에 가로막혀 번영을 지속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인류의 생활 역시 부자와 귀족 등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구석기나 중세, 심지어 산업혁명 초기까지 별 차이가 없었다. 영국에서 발생한 산업혁명은 인류의 생활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면서 수렵시대 이후 오랜 세월 지속해온 맬서스의 덫을 단번에 풀어버렸지만, 부의 증가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지 못하고 일부 국가에만 집중됐다. 이에 따라 20세기 초부터 미국과 영국으로 대표되는 서구사회만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이른바 '대분기(大分岐. Great Divergence)가 발생하면서 국가 간 소득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그레고리 클라크 캘리포니아대 경제학 교수가 지은 '맬서스, 산업혁명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신세계'(한스미디어 펴냄)는 산업혁명에 따른 부의 탄생과 확대, 그리고 국가 간 빈부격차의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우선 '맬서스의 덫'을 풀어버린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발생한 이유는 고도의 제도적 정체성과 인구통계학적 특성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영국은 적어도 1200년 이후 사회적 변화가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강한 고정성 혹은 정체성을 보였으며, 1300년부터 1760년까지 인구 증가 속도는 더뎠다. 반면 경제적으로 성공한 부유층의 출산율이 높았고, 중산층의 가치가 문화나 유전자에 반영돼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산업혁명이 촉발된 것은 기존의 경제학이 설명하는 것처럼 정치, 법률, 경제 등의 제도가 급작스럽게 발전했기 때문이라거나 식민지 개척, 지리학, 자원 등의 요인이라기보다는 문화적 요소에서 비롯됐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다시 말해 폭력, 성급함 등으로 대표되는 수렵채집인의 속성을 버리고 근면, 합리성, 교육 등 좀 더 경제적인 속성을 채택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인류의 문화가 심층적으로 변화하면서 산업혁명은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오랜 정착생활의 경험과 안정성의 역사를 지닌 사회만이 사람들의 문화적 특성을 변화시켜 경제성장에 적합한 효율적인 속성을 지닌 인류로 탈바꿈시킨다"고 강조한다.
산업혁명을 설명하는 데는 인구통계학적 특성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저자는 "중국과 일본은 1600-1800년 당시 영국처럼 근면, 인내, 정직, 합리성, 호기심, 학습 등 중산층의 가치가 사회 전반으로 퍼져 나갔지만 상류층의 출산력이 일반 계층의 출산력을 약간 상회하는 선에 그쳐 영국처럼 빠른 속도의 성장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상류층의 출산율이 높았던 영국은 모든 자녀가 부모의 부를 세습 받지 못했지만, 교육수준이 높은 나머지 자녀가 직업을 찾아 사회계층 구조상의 아래 단계로 내려가면서 중산층을 급속히 확산시켰고, 이는 자본주의 경제를 성장시키는 발판이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안정성의 역사를 지니지 못한 사회는 산업화라는 축복을 받지 못했다"면서 "현대의학과 항공기, 휘발유, 컴퓨터 등은 과거 200여 년간 이뤄진 기술적 풍요로움을 상징하지만 아직도 '맬서스의 덫'에 걸려 있는 아프리카 사회에서 기술적 진보는 인구를 증가시키는 데 일조할 뿐이어서 빈곤층을 양산하는 데 '큰 공'을 세울 뿐"이라고 말한다. 이어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경제 대국들은 저개발 국가의 경제발전이란 명목으로 '식민지 정책'을 합리화했고, 지금은 빈국을 돕는다는 취지로 부국의 지원과 원조가 물밀듯이 이뤄지지만, 이는 세계적 빈부격차를 심화시킬 뿐"이라고 덧붙인다.
저자는 "오늘날 부국들이 허울 좋은 원조를 통해 겉으로는 인심을 쓰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통합이 아닌 배척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난한 나라에 제시할 만한 경제발전 모형이 적어도 서구사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그 결과 지금 인류는 엄청난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부자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의 행복지수는 전혀 증가하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신세계'에 살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의 이러한 지적들은 세계적 빈부격차를 줄일 근본 방안이 어디에 있는지, 나아가 물질적 풍요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인류의 진정한 경제적 행복과 번영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한다.(정천기 기자)
09. 04.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