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장기하와 얼굴들'에 대해서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지난달 언젠가 이름을 듣고서 음악을 찾아 들었는데, 멜로디는 처음 듣는 게 아니었지만 적어도 '가사'는 처음 들었고 흥미로웠다. 내가 제일 처음 떠올린 건 핀란드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들이었고(그의 영화 속에 나오는 노래들), 그 다음은 김지하였다(얼마전 그의 <오적>이 <자음과 모음>(2009년 봄호)에 재수록되었다). 그래서 '카우리스마키와 장기하' 혹은 '김지하와 장기하'란 페이퍼를 올려둘 수도 있었지만, 그럴 만한 시간이 없던 차에(대신에 어제 한 원고를 쓰면서 그의 가사를 일부 인용했다) 지난주 시사IN에서 장기하를 커버스토리로 다루었다. 생각난 김에 관련기사들을 모아놓기로 한다.   

국제신문(09. 04. 04) [박무성의 한 뼘 더 보기] 루저(Loser)들을 위한 변명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이제는 아무렇지 않어/바퀴벌레 한마리쯤 쓱 지나가도/무거운 내일 아침엔 다만 그저 약간의 기침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축축한 이불을 갠다…" 푸석푸석 새집 지은 머리에 잠이 덜 깬 듯 나른한 목소리, 비루한 인생의 찌질하기 짝이 없는 푸념 같은 노랫말.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 가사 일부다. 500장 팔리면 대만족이라던 음반이 한 달 만에 2만 장 넘게 팔렸다. 20대의 열광은 물론 30, 40대 팬클럽 가입도 빠르게 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다. 지난달 12일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노래상'까지 받았다. 가히 '장기하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싸구려 커피'를 놓고 루저(loser·패자)문화 담론이 한창이다.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공포와 불안의 징후를 읽는 사람도 있고, 복고와 퇴행도 모자라 '막장'으로 치닫는 요즘 문화 풍토에서 장기하류의 등장은 당연한 현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진단과 정의가 어떠하든 루저 정서가 문화 전반에 스며들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문학 분야에선 '백수소설'이라는 장르까지 탄생했다. 제2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인 한재호의 '부코스키가 간다'(창비)가 단행본으로 나왔다. 청년백수 100만 명 시대의 우울한 풍경 속에 지극히 현실적인 세태소설로 간주된다. 소설 속 주인공은 대학 졸업 3년차의 백수. 여느 구직자처럼 인터넷뉴스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취업 사이트를 뒤지고, 간혹 원서를 내고 면접도 보는 일상을 반복하던 주인공이 어느 날 비만 오면 가게 문을 닫고 어디론가 외출하는 '부코스키'라는 남자의 기이한 행적을 미행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았다. 주인공은 결코 치열하지 않다. 작가 역시 딱히 클라이맥스라고 할 만한 부분을 구성하지도 않았고 소설의 흐름이 빠르지도 않다. 해설을 쓴 평론가 조연정은 '성장이 불가능한 시대의 성장통소설'이라고 칭한다. '만성적 상실감과 박탈감 속에서 세계와 화해하지 못하고 주변만을 맴돌 수밖에 없는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이전과 같은 모범적인 성장의 서사(narrative)는 더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진단이다

사실 루저문화의 뿌리는 깊다. 1980년대 최고의 인기만화였던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은 프로야구판에서 낙오한 선수들의 초현실적 부활을 그렸다. 이 만화가 TV 드라마 '2009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리메이크된다는 것도 요즘 문화적 시류와 무관하지 않다. 박중훈 안성기가 열연했던 이준익 감독의 영화 '라디오 스타'나 박민규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도 루저문화의 낭만적인 변주다. 루저문화를 이해하는 분석적 토대는 2007년 발행된 우석훈·박권일의 '88만 원 세대'가 제공했다.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이라는 부제가 말하듯 세대 간 갈등과 착취 문제를 사회·경제적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현대의 고전으로 꼽기에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사회구도로'승자와 패자'의 이분법적 개념을 제시한 사람은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다. 그는 기존의 '보수와 진보'의 개념으로는 세계화 시대를 읽어낼 수 없다고 했다. 본디 이분법은 극단적 단순화와 양자대결구도라는 불가피한 한계를 안고 있지만 '승자와 패자'만큼 세상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개념도 없다. 이렇게 볼 때 루저문화는 '20 대 80의 법칙'에서 80%를 차지하는 패자들의 향유물이 되는 셈이다.

루저문화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 존재한다. 비주류나 아웃사이더, 낙오자가 존재하는 한. 한국 사회에 루저문화가 있다 없다, 서구의 것과 같다 다르다, 장기하가 서울대 출신이어서 '루저'가 될 수 있다 없다 식의 논란은 중요하지도 않거니와 핵심에서 벗어나 있다. 문화는 삶의 표현양식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건 정체성과 건강성이다. 루저문화는 기성문화가 갖는 엘리트주의와 권위에 도전함으로써 문화적 다양성을 담보한다. 그리고 그 다양성이 변화를 모색하고 추동한다. 머리 속에서 당면한 문제를 거세하는 현실 도피가 아니라 현실적 토대가 어딘지 냉정하게 인식해야 루저문화에서 연상되는 사회적 일탈이나 허무의 그림자를 지울 수 있다.(문화부장)   

사IN(09. 03. 27) “싸구려 커피 마셔도 별일 없이 산다”

‘500장만 팔리면 많이 팔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음반이 발매한 지 한 달 만에 2만 장 넘게 팔려버렸다.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을 앞두고 벌어진 온라인 투표에서는 인기 절정의 아이돌 태양(그룹 ‘빅뱅’의 멤버)을 제쳤다. 서태지·심수봉과 같은 무대에도 섰다.

‘인디계의 서태지’라 불리는 장기하(27).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 리더인 그가 거둔 “기이한 성공” “기이한 팬덤”(음악 평론가 차우진)에 사회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애초에 출발은 여느 인디밴드와 같았다. ‘알바’ 뛰어 먹고사는 틈틈이 홍대앞 클럽에 서고, 데모 테이프 만들고, 녹음하고. 그러다 소문 좀 나고. 지난해 9월 EBS <스페이스 공감>에 출연한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급기야 ‘장교주’라는 별칭까지 얻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20대 누리꾼들의 엽기 또는 키치 취향이 발굴한 ‘4차원 스타’에 지나지 않았다. 진지한 노래 가사와 따로 노는 ‘촉수춤’ ‘문방구 선글라스’를 낀 채 막춤에 가까운 동작을 선보이면서도 결코 웃는 법이 없는 코러스 걸(미미 시스터즈) 등 무대에서 보인 우습고도 독특한 퍼포먼스가 그의 인기 급상승 비결이었다.

‘장기하 전도사’ 자처하는 중년 남성

그런데 해가 바뀌면서 장기하에 대한 관심은 모든 세대로 확장되는 추세다. ‘장기하 현상’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특히 흥미로운 것이 30~40대의 합류다. 장기하 음반을 낸 붕가붕가레코드 고건혁 대표(29)는 “YES24 등에서 판매된 음반 통계를 보면 20대가 가장 많이 구입했으나 팬클럽 가입률로 따지면 30대가 꾸준히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음악평론가 김작가는 최근 방송국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한눈에 봐도 ‘사회부 기자스러워’ 보이는 보도국 ‘아저씨’들이 방송사 복도에 나타난 장기하를 둘러싸고 “저, 장기하씨 팬이에요”를 연발하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 지난 3월11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 마을극장에서 열린 장기하와 얼굴들 팬미팅에 참석한 45세 남성은 그날 블로그에 이렇게 썼다. “내 인생에서 (참가한 팬 사인회는) 장사익씨 팬 사인회에 이어 두 번째다. 장사익씨 CD는 100여 장을 사서 지인에게 선물했는데 장기하씨 음반은 200장을 넘기겠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늙은 사람까지 ‘장기하 전도사’로 만드는 내공”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일단 30~40대도 ‘알아먹을 만한’ 복고적 음악풍의 영향이 크다. 1970~1980년대를 풍미한 신중현·산울림·송골매 등의 영향을 받았음을 장기하는 굳이 감추려 들지 않는다. 대학원생 강혜원씨(26) 말마따나 386세대가 ‘트렌디한 척’하느라 장기하를 소비할 수도 있다. 요즘 386 ‘먹물’들의 술자리에서 장기하는 <워낭소리>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안줏거리가 됐다. 

그러나 이들이 장기하에 끌린 데는 무엇보다 노랫말의 영향이 컸다는 것이 중론이다. 자유기고가 유선주씨는 “‘싸구려 커피’의 가사를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이 기억에 선명하다”라고 말했다. 누추한 자취방에 누워 ‘이제는 장판이 난지 내가 장판인지도 몰라’라고 노래하는 비루한 청춘의 독백이 가슴에 와 박혔다는 것이다. 실제로 장기하는 그의 의도와 무관하게 ‘20대 루저(loser·패배자)들의 정서를 정제된 우리말로 표현해낼 줄 아는 뮤지션’이라는 평을 듣는다(지난해 11월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장기하는 “노래 가사를 만든 배경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 않다”라면서도 일각의 ‘과잉 해석’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이는 드문 능력이다. ‘청춘의 종언’이라는 주제로 열린 계간 <문학동네> 2008년 겨울호 좌담에서 김홍중씨(대구대 사회학과 전임강사)는 20대를 ‘언어를 상실한 세대’로 규정했다. 블로그나 사적 담화를 통해 ‘토킹’ 방식으로 말할 줄은 알아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스피킹’은 하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20대라는 얘기다. 이 자리에 참석한 <88만원 세대> 저자 우석훈씨는, 유럽 20대와 달리 자기들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한국·일본 20대의 특성이라고 말했다.

20대가 이너서클에서만 소통되는 ‘옹알이’와 ‘푸념’으로 일관하는 동안 이들에 대한 몰이해는 더 깊어갔다. 자유기고가 김현진씨 말마따나 모두에게 욕을 얻어먹는 세대가 이들 20대다. 이 와중에 20대는 문화 영역에서도 잊혀갔다. 김홍중 교수는 “과거에는 20대의 감수성이 문화를 이끌어간다는 전위의 느낌이 강했던 반면 요즘은 그런 게 약해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소비층으로 매력도 사라졌다. 소수 마니아만이 열광하던 <메리대구 공방전>(2007) <얼렁뚱땅 흥신소>(2007) 이후, 더 직접적으로는 청춘 배우 송혜교·현빈을 내세운 <그들이 사는 세상>(2008)의 참담한 실패 이후 20대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는 더 이상 전파를 타지 않는다. 20대가 ‘닥본사(닥치고 본방 사수)’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드라마를 만들 유인이 떨어져 그렇다는 분석만으로는 부족하다. 문화평론가 이영미씨 지적대로, 작심하고 기획하면 인터넷에 빠져 있는 10대라도 얼마든지 다시 텔레비전 앞으로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꽃보다 남자>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장기하라는 존재는 그래서 더 돋보인다. 연극 <누가 대한민국 20대를 구원할 것인가>를 쓰고 연출한 김재엽씨(36 ·세종대 교수)는 “문화라는 건 결국 솔직함이다. 자기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 다른 이들도 공감하는 순간, 그게 세대 의식이 된다”라고 말했다. 물론 문단이나 영화·인디 음악계에 자기 목소리를 내온 20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오른쪽 상자 기사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06 참조). 그렇지만 장기하는 이를 대중적으로, 다른 세대와 소통케 하는 데 그 누구보다 성공했다.

소통 방식뿐 아니라 콘텐츠 또한 주목할 만하다. 김현진씨는 <문학동네> 좌담에서 지금 20대를 관통하는 코드는 딱 하나 ‘겁에 질려 있다’는 점이라고 지목했다. 대한민국의 1%를 뺀 나머지 99% 20대’는 가방 끈이나 계급에 상관없이, 좌파·우파에 상관없이 ‘이러다 영원히 낙오하는 것은 아닐까’ 겁에 질려 있다. 그런가 하면 상위 1%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는 그들대로 ‘나보다 잘난 놈이 있겠지’ 하는 두려움에 떤다.

조한혜정 교수(연세대·사회학)는 “겁에 질려 있으면 문화적 상상력을 꽃 피울 수 없다”라고 말했다. 겁에 질린 문화는 양극단으로 치닫는다. 어머니 자궁으로 퇴행하거나,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거나. <엄마를 부탁해>(신경숙)로 상징되는 최근의 ‘어머니 열풍’이 전자를 대표한다면 ‘막장 드라마’는 후자 경향을 대표한다. <꽃보다 남자> <아내의 유혹>은 리얼리티를 완벽하게 제거한 채 욕망의 판타지를 극단까지 밀어붙인다.

장기하는 달랐다. 현실을 얘기하되 겁먹지 않았다. “요즘 젊은이들은 냉난방 잘되는 사무실에서만 일하려 한다”라고 대통령이 질책하든 말든 그는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지는’ 방바닥에 누워 ‘고여 있는 물마냥 그냥 완전히 썩어가’는 무기력한 상태임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싸구려 커피’). 그래도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단다. ‘니가 절대로 믿고 싶지가 않’겠지만, ‘사실이 아니길 엄청 바랄 거’겠지만(‘별일 없이 산다’). 관조와 풍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 도발적으로 읽히는 정치적 알레고리도 구사한다. 만화 평론가 김낙호씨가 ‘우리 시대의 송가’로 꼽은 ‘아무것도 없잖어’ 같은 곡이 그렇다. ‘선지자가 나타나서 지팡이를 들어//풀이 가득 덮인 기름진 땅이 나온다길래/죽을똥 살똥 왔는데/여긴 아무것도 없잖어//푸석한 모래밖에는 없잖어 (중략) 이건 뭐 완전히 속았잖어/되돌아갈 수도 없잖어.’

한쪽에서는 장기하의 담담함이 ‘관념적 루저’라는 그의 실체에서 비롯되었다는 비판도 있다. 루저의 정서를 노래하지만 장기하가 가난한 비정규직 노동자로 대변되는 진짜 루저는 아니라는 것이다. <88만원 세대> 공저자인 박권일씨는 그런 의미에서 “서울대생이라는 게 장기하를 어정쩡한 존재로 만들었다”라고 말한다. 차라리 2류 대학에 다니는 스테레오 타입 대학생이 ‘싸구려 커피’를 불렀다면 더 강력한 대표성을 획득할 수 있었으리라는 것이다. 블로거 ‘캐즘’은 “루저의 감수성을 소비할 수는 있지만 실제 루저가 되기는 싫다”는 욕망 내지 탈락에 대한 공포를 장기하 현상에서 읽어낸다.

주류 판갈이는 쉽지 않을 듯
장기하가 결코 주류가 될 수는 없으리라는 전망이, 장기하 현상이 갖는 파괴력에 대한 가치판단을 망설이게 한다는 지적도 있다. 주류 문화가 장기하를 수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공중파에 진출한 인디밴드가 생방송 중 화면에 침을 뱉는 따위 ‘사고’를 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야성을 잃고 주류 질서에 동화하면 동화하는 대로 생명력이 끝나는 것이 장기하가 처한 딜레마이다. “주류에 올라서지 못하는 한 ‘판’을 바꿀 힘이 생기지는 않는다. 서태지는 의식적으로 주류를 선택해 판갈이를 한 경우지만, 장기하는 다르다. 정치사회적 격변으로 한국 사회에 큰 동요가 생긴다면 모를까, 지금처럼 지지부진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장기하의 힘이 오래가기는 어렵지 않겠나.” 이영미씨는 말한다.

그럼에도 장기하에 쏠린 관심은 그 자체로 한국 사회의 흐름을 읽게 한다. 박권일씨 지적대로 ‘문화 권력을 지닌 386’이 장기하 현상을 증폭시켰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진짜 생활에 찌들어 사는 애들은 소녀시대 ‘Gee’를 듣지 장기하를 듣지는 않는다”라고 대학원생 강혜원씨는 말했다. 그러나 장기하가 노래하는 루저의 감성을 특정 세대·계층만이 누린다고 보기도 어렵다. 30대인 유선주씨는 “장기하 노래를 듣다 보면 ‘딱 내 얘기’라는 생각이 든다. 괴리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한때 루저 정서는 20대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청년 실업이 만성화하면서 20대는 반항·도발·상상력·순수·열정 따위 과거 청춘의 특권을 반납하는 대신 무기력함·희망 없음·만성 불안 따위 루저의 정서를 내면화했다. 문제는 이것이 더 이상 20대만의 정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달의 바다>를 쓴 소설가 정한아씨(27)는 ‘희망이 사라진 현재 루저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라며, ‘20대=루저 내지 백수’라는 등식을 들이대는 것이야말로 폭력이라고 말했다.

전세대·전계층으로 확산된 박탈감

청년실업을 넘어 바야흐로 전방위적인 대량실업·만성 실업의 시대가 열린 판이다. 문학평론가 정준영씨는 격월간지 <플랫폼> 1~2월호에 실린 글에서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고 진단했다. 그나마 10년 전 외환 위기 때는 ‘이 고비만 넘기면 나아질 날이 오겠지’라는 낙관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미국발 금융 위기가 촉발한 충격과 공포는 이 알량한 자위의 행위조차 한순간 헛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정씨의 말마따나, 반토막이 나버린 펀드 잔고는 우리가 믿었던 밧줄이 그저 지푸라기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김작가는 장기하를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의 히어로’라고 부른다. 현실을 직시하되 겁먹지 않고 담담한 그의 노래가, 아무런 희망도 안전망도 없이 ‘완벽히 무장해제된 채’ 위기에 내던져진 우리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문득, 위로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장기하가 20대를 대변하는 ‘세대적 아이콘’인 동시에 위기의 2009년을 되비추는 ‘시대적 아이콘’인 이유가 여기 있다.   

시사IN(09. 03. 30) “엄혹한 세상에서 어쩌면 우리 모두 패배자가 아닐까”  

‘장기하 현상’은 문화비평가와 생산자 모두에게 흥미롭다. 음악 평론가 김작가, 자유 기고가 유선주, 20대 소설가 김사과가 좌담을 했다(오른쪽). 20~30대를 아우르는 문화꾼이 모여 장기하가 촉발한 우리 세대의 화두를 뜨겁게 끌어안았다.

사회:20대 문제를 사회·경제적으로 다룬 ‘88만원 세대’ 담론이 등장한 지 2년 가까이 되었다. 지금은 ‘장기하와 얼굴들’이 20대 문화를 설명하는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먼저 각 영역에서 20대와 관련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야기해보자.

유선주(선주):지난해부터 20대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사라졌다. 광고가 중요한 TV 현실로 보면 지금 20대, 즉 88만원 세대의 구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20대를 다룬 작품 중에도 핵심을 짚은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

김작가(작가):음악에서도 10대 후반~20대가 로열 소비층을 형성하던 흐름이 사라진 건 세계적 추세다. 1980년대 LA 메탈이나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처럼 동세대를 관통하는 음악도 없다. 장르의 진정성을 담은 음악은 영국·미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인디 쪽에 머물고 있다. 예전에는 <별이 빛나는 밤에> 공개방송에 누가 나왔다 하면 다음 날 그 일이 화제로 떠올랐다. 지금은 웹진도 많고 개인적으로 음악을 다운받을 수 있다. 자기가 음악을 선별할 수 있다. 음악과 소비자 사이의 중간 단계가 사라져 그런 대세가 기운 게 아닐까 싶다.

김사과(사과):소설을 쓰는 20대치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다. 음악이나 영화는 자기가 말하고 싶어서 만드는 게 많은 반면, 글은 백일장 등에서 자기를 평가하는 ‘선생님’에게 맞추는 경향이 짙다. 소설 써오라고 과제를 내면 100개 중 99개가 할머니를 소재로 삶거나 치매를 다루는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삶은 평범한 20대처럼 산다. 삶과 문학이 떨어져 있다.

사회:사과씨의 작품을 읽는 주 연령층은 누구인가?

사과
:친구들한테 읽히는 것이 좋은데, 막상 가장 큰 독자층은 문학잡지 편집위원이다.(웃음) 아이러니다. 그분들이 좋다고 하면 속으로 좋긴 하지만, 사실 ‘뭐가 좋을까’ 하는 느낌이다.

선주:‘내 딸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는 궁금증 때문 아닐까?(웃음)

유머, 노랫말 그리고 음악의 삼위일체

사회:장기하 이야기를 해보자. 장기하 신드롬을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어떤 까닭에서일까?

선주:장기하는 신기하다. 음악적으로 1970, 1980년대 음악과 맞닿은 느낌이다. 송골매+김창완 창법이다. 386이 친근함을 느낀다면 자기가 옛날에 들었던 것과 비슷하고, 또 재미있어서다. 1집 앨범 <별일 없이 산다>를 들어보면 출구가 막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이런 정서가 젊은 세대를 대변하는 게 아닐까.

사과
:장기하 현상에 낭만적인 루저 정서가 있는 건 맞다. 그런데 장기하는 백수 생활을 해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비난받는 면도 있다. 경험주의에 매몰된 비난이라는 생각이다. 요즘 신인 가수들 음반을 들어보니 굉장히 좋더라. 몽구스 같은 가수의 노래를 들어보면 루저 정서를 넘어서 아예 현실을 망각하고 우주로 갔다는 생각이 든다. 해탈한 느낌이랄까. 20대 정서가 그런 인디 정서인 것 같다. 장기하가 인기를 끌 수밖에 없다.

작가:실제 인디 뮤지션을 만나보면 가난한 사람의 어두움이나 우울함 같은 게 없다. 삶의 태도가 일반 회사원보다 더 긍정적이고 유쾌하다. 현실적 문제를 머릿속에서 거세해버렸기 때문이다. 기존 대중음악이 사랑 타령만 하면서 현실에서 도피했다면, 인디 음악은 자기 내면으로 도피했다고 할까. 그런데 장기하에게는 ‘서사’의 힘이 있다. 2000년 이후 이야기가 있는 음악이 실종되었는데, 장기하노래에는 상징과 은유를 포함한 기승전결이 있다. 그런 현실적 서사의 구체성 덕에 그의 노래가 힘을 얻는다. 그래서 <별일 없이 산다>도 5만 장까지는 팔릴 것 같다.  

선주:그런데 20대가 장기하 음반을 얼마나 살지 궁금하다. 

작가:장기하를 4 대 4 대 2로 나누면 유머와 가사가 각각 4, 그리고 나머지 2가 음악의 힘이다. 8(유머+가사)만으로 장기하 신드롬이 형성되진 않았을 것이다. 음악이 후졌다면 그저 엽기 가수로 끝나고 말지, 이렇게까지 회자되지 못했을 것이다.

선주:‘싸구려 커피’라는 노래 제목이 너무 무시무시했다. 스타벅스처럼 비싼 커피가 있는 것은 알았지만 싸구려 커피가 있는 줄은 몰랐다. 상상력이 충격적이다. 싸구려 커피를 마실 수밖에 없는, 구매력이 떨어져 희망을 상실한 젊은이가 떠올라서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사회
:장기하는 과연 1990년대 서태지처럼 시대의 아이콘이 될 수 있을까?

작가:스타덤을 받아들이는 데 차이가 있다. 서태지는 스스로 영웅이 되고자 해서 신비주의로 갔다. 장기하는 주체로서 자기를 놓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방송에 출연하지만, 라이브클럽 공연도 계속하고, 자기 토대가 어디인지 늘 생각한다. 시대의 아이콘이 되려면 버려야 할 것이 있는데, 장기하는 자기 식대로 가고 있다. 서태지가 X세대 히어로라면 장기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히어로다.

선주
:장기하는 민감한 문제도 담담하게 칠 줄 아는 세련됨이 있다. 이야기하는 방식이 노골적이지 않다. 이를테면 ‘싸구려 커피’에 대한 답이 ‘별일 없이 산다’가 아닐까? 영리하고 세련돼서 중요한 가수가 될 것 같다. 

20대가 무기력한 까닭

사회:20대를 이해하는 데 장기하가 도움이 될까?

선주:오히려 20대보다 나와 연관되더라. 어느 세대에 갖다대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있다. 꼭 가난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루저 정서에 한 번쯤 기대보고 살았던,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노래가 이제야 나왔다.

사과
:어쩌면 지금 평범한 사람들이 루저 정서를 갖고 있어서 그런지 모른다. 모든 사람이 지금 패배하고 있거나 뭔가 뺏기고 있다는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닐까. 

작가:그런데 정작 시궁창 같은 현실 속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음악을 듣지 않는다. 그들은 빅뱅이나 소녀시대의 노래를 듣는다. 어차피 자기 인생이 시궁창인데 음악까지도 그런 걸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난 지금 20대가 과거와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20대가 무한경쟁에 내몰린다고 하지만 1990년대 대학생이 취업 걱정 없이 살았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그때도 분명 루저 정서가 존재했고, 누군가 루저가 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강요됐다. 어쩌면 20대라면 누구나 겪는 성장통일 수도 있다. 왜 지금 20대를 유독 대상화하려는지 모르겠다.

사회:20대가 사회에서 동네북이 되어 있다.

선주:난 1990년대 중반에 20대를 보냈는데, 그것이 너무 좋았다. 우리는 선대에 대한 부채감이 없고, 부모가 돈을 벌어놓았기 때문에 나만 죽지 않고 밥 먹으면 된다는 생각이 있다. 음악이든 영화든, 당시에는 우리 세대가 소비의 중심에 섰는데 지금 20대는 소비자로서 매력이 없다. 다른 세대가 지금 20대를 무기력하다고 보는 건 그런 부분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사과:(20대 시절이 좋았다는 말이) 놀랍다. 우리는 2000년대가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한 시대는 1968년 프랑스 파리다. 1990년대에 어린 시절을 풍족하게 산 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아마 지금 20대가 욕먹는 이유 중 하나는 20대의 목소리가 작아서일 것이다. 20대를 욕하는 다른 세대의 목소리가 워낙 크다 보니 20대는 거기에 반박할 의지가 없다. 또 지금 뭔가 사회가 나빠지고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데 그 원인을 찾지 못하다 보니 20대를 희생양으로 삼은 건 아닐까 싶다. 앞으로도 20대 말고 또 다른 희생양을 찾지 않을까. 이를테면 외국인 노동자들 말이다. 

작가:1990년대에 비해 지금 20대는 소비해야할 대상이 너무나 많다. 통신비나 학비가 얼마나 올랐나. 그걸 벌기 위해 알바를 뛰어야 하고,  정보와 문화를 소비할 시간은 없다. 그러다 보니 문화적 사고를 할 수 있는 토대가 사라진다.

사과:난 요즘 불치병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보면 집중이 안 된다. 주인공이 병원 치료 비용 따위를 어떻게 대나 하는 생각 때문에. 간혹 그냥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20대 문화꾼이 나와야


사회:아마도 루저 정서를 즐긴 첫 세대라면 외환 위기 때 20대를 보낸 이들 아닐까. 그때는 국민 공통의 환란을 겪어서인지 지금보다 부담감이 덜했던 것 같다. 개별 생존 게임으로 치닫는 지금은 루저 정서를 즐기는 게 어렵지 않을까?  

사과:IMF 환란 때보다 지금이 심각하다는데, 그때는 금모으기도 열심히 벌였고, 위기가 명확하게 이미지로 나타났다. 지금은 애매하다. 위기인지도 잘 모르겠고…. 이런 모호한 상황이 이 시대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선주
:우리 때는 알바를 해서 돈을 벌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지금은 불가능하다. 글 쓰는 노동자들의 원고료만 해도 10년 전과 비슷하지 않나. 그러니 뭔가 제대로 된 구매 행위를 할 수 없고,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까지 살기 어려워진다.

사회:결국 20대가 현실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 아래 다른 세대도 루저 정서를 공유하게 된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전망을 부탁한다.

작가:20대가 활발히 활동하는 영역은 음악밖에 없는 것 같다. 분위기가 굉장히 좋다. 아이돌 음악도 좋아졌고 괜찮은 프로덕션도 늘어나고, 인디도 이렇게 분위기가 좋았던 게 10년 만에 처음이다. 불황 속에서 모두 어렵다 보니 오히려  독기가 서려 음악적으로 굉장히 진지하다. 영국 록 그룹 오아시스가 “맨체스터 노동자 자녀 중 고교 중퇴자가 인간답게 살 방법은 록스타가 되는 길밖에 없다”라고 했는데, 곰곰이 되새겨보면 맞는 말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음악 말고는 나아갈 방향이 없기 때문에 상황이 호전되는 면이 있다.   



사과
:(20대 문학은) 팔리지 않는다. 요즘에는 1990년대 식으로 이혼이나 불륜을 다룬 작품은 답답해서 거의 읽지 않는다. 지금 한국에서 20대 작가는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다. 반면 일본의 경우 내 나이 또래 작가들이 자기 문제를 다룬 작품을 써서 몇 백만 부씩 판다. 가장 부러운 건 한국에서라면 아무도 사주지 않을 황당무계한 작품이 팔리는 것이다. 우리도 젊은 작가가 이상하고 독특한 작품을 쓰는 걸 막지 않으면 뭔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차라리 친구끼리 모여서 20대 작가의 글을 싣는 잡지를 하나 내는 게 낫겠다 싶기도 하다. 그렇게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앞으로는 우리도 일본처럼 20대 작가가 계급적 문제를 다루는 시대가 올 것 같다. 에세이든, 르포든.

선주:그런 작가가 나오면 좋겠다. 계급이든 조직이든 힘의 관계나 욕망에 대해 파헤치는 게 중요하다. 요즘 칙릿 소설에는 브랜드 이름이 한 페이지에만도 열 가지 이상씩 나오는데, 실제 독자의 삶과는 다르다. 작품에서 보는 브랜드와 실제 내가 입고 먹고 쓰는 게 다르다. 내가 쓰는 게 우아하지 못하다는 인식도 있다. 이런 간극을 좁히고, 계급 욕망을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이 나왔으면 싶다. 이를테면 쇼핑을 무척 하고 싶은데 실제로 하지 못하는 젊은이의 욕망을 다룬 이야기 같은.

09. 04. 05.  

P.S. 장기하와 관련한 가장 유익한 인터뷰는 지난 2월에 방영된 '시사매거진2580'이다(http://www.youtube.com/watch?v=6zXGmFatgaM). 패자(루저)의 정서를 표현했다는 의견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장기하는 이렇게 답한다. "아무래도 승자의 느낌은 아니죠, 노래가. 그런데 그렇다고 패자도 아닌 것 같아요.뭐랄까, 그것보다는 승패가 결정되지 않은 사람의 불안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한 힘 없는 그런..." 요컨대, 그의 노래가 '승패가 결정되지 않은 사람의 불안과 허무'를 표현/대변하고 있다는 것. 그는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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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까까의 생각
    from krucef's me2DAY 2009-04-06 12:41 
    " 승패가 결정되지 않은 사람의 불안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한 힘 없는 그런 " 아하.
 
 
마늘빵 2009-04-05 13:05   좋아요 0 | URL
로쟈님 연결해주신 시사매거진에도 미미시스터즈의 정체는 안밝혀지는군요. 크크. ^^

로쟈 2009-04-06 23:45   좋아요 0 | URL
그게 밑천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