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잔인한 달

이번달 <고교 독서평설>에 실은 글을 옮겨놓는다.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 대한 갑론을박을 다루었는데, 아주 오랜만에 시와 함께 관련논문을 10편쯤 읽고서 작성한 것이다. 몇 가지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어 흥미로웠고 이해의 가닥을 나름대로 잡을 수 있었다. 제목엔 '깊이 읽기'란 말이 들어갔지만, 실제로는 '깊이 읽기'를 위한 심호흡이자 워밍업 정도이다. 여유가 되면 나중에 본격적으로 다뤄보고 싶다(물론 더 편하고 더 좋은 건, 그렇게 본격적으로 다룬 글을 찾아 읽는 것이지만).   

고교 독서평설(09년 4월호) 유명한 시? 난해한 시! - T. S. 엘리엇의 『황무지』 깊이 읽기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추억과 욕정을 뒤섞고/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아마도 20세기 영시 가운데 가장 유명한 구절이 아닌가 싶은 T. S. 엘리엇(1888~1965)의 『황무지』(1922) 서두다. 그런데 이 시의 모순은 현대시의 대명사라 불릴 정도로 유명하지만, 동시에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는 너무도 난해하다는 데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시면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시, 과연 우리는 『황무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 『황무지』를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잔인한 달’을 맞이하여 『황무지』의 세계로 잠시 들어가 보자. 



문학 소년, 엘리엇
먼저, 시인 엘리엇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필요할 것 같다. 엘리엇은 1888년 미국 미주리 주(州)의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유니테리언의 저명한 목사였고, 아버지는 성공한 사업가였다. 근엄한 분위기에 종교적·도덕적 책임을 중요시하는 가풍은 어린 시절 엘리엇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엘리엇은 선천성 탈장증을 앓는 약골에다 내성적이어서, 자연스레 어릴 때부터 야외 활동보다는 독서에 열중했다. 아마추어 시인이었던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문학의 세계로 이끌었다. 엘리엇은 10대 때부터 시작(詩作)에 재능을 보였는데, 특히 저명한 시인들의 시를 모방하고 패러디하는 데 장기가 있었다. 나중에 그가 쓴 『황무지』에 수많은 인용과 인유가 사용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뒤 하버드 대학에 진학한 엘리엇은 고대와 중세 철학, 그리스 문학, 영문학, 불문학, 비교 문학 등을 두루 공부하고, 영국으로 건너가 철학자 브래들리(1846~1924)에 대한 박사 학위 논문을 썼다. 그는 ‘개개인의 무질서한 파편적 경험이 어떻게 질서 정연한 세계로 인식될 수 있는가’에 관심을 가졌고, 자신의 시작 활동도 절대적 질서를 추구하는 여정으로 간주했다. 그런 배경 아래 1927년에는 영국으로 귀화하고, 종교도 영국 성공회로 개종했다. 자주 인용되는 그의 말을 빌리면, 엘리엇은 “정치에서는 왕당파, 문학에서는 고전주의자, 그리고 종교에서는 영국 국교회 신자”였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 배경과 경력이 『황무지』를 읽는 데 참고는 될지언정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엘리엇의 독특한 성격과 관련이 있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황무지』의 방대한 초고를 1/3로 줄여서 지금의 분량으로 만들어 준 선배 시인 에즈라 파운드(1885~1972)는 그에게 ‘늙은 주머니쥐(Old Possum)’란 별명을 붙여 주었다(엘리엇은 『황무지』를 파운드에게 바치며 그를 ‘더 나은 예술가’라고 불렀다.). 엘리엇 스스로도 그 별명을 기꺼이 받아들였는데, 주머니쥐는 공격을 받으면 죽은 체하고 있다가 위험이 없어지면 다시 움직인다고 한다. 이런 ‘주머니쥐’ 성격은 엘리엇의 시와 시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른바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도 그런 경우 아닌가.  



『황무지』 깊이 읽기
엘리엇은 셰익스피어(1564~1616)의 『햄릿』을 비판하면서, 이 작품에서는 상황들이 구체적인 이미지로 형상화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햄릿의 주관적 감정을 표현해 주는 객관적 상관물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객관적 상관물은 비물질적인 의식이나 감정을 시각화하고 공간화하는 작업의 산물이다. 엘리엇의 초기 시인 「프루프록의 사랑 노래」의 한 대목을 대표적 예로 들 수 있다.

수술대 위에서 에테르로 마취된 환자처럼
저녁이 하늘을 배경으로 널브러져 있을 때.
When the evening is spread out against the sky
Like a patient etherized upon a table.


무기력한 ‘저녁’이라는 시간이 “수술대 위에서 에테르로 마취된 환자”에 비유되고 있는데, 이렇게 구체적인 이미지로 시각화한 대응물이 바로 객관적 상관물이다. 엘리엇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거(전통)를 환기하는 방법을 통해서 유동적인 현재의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고정시키려 했다. 가령 『황무지』의 한 가지 에피소드를 보자. 

거기서 나는 낯익은 자를 만나 소리쳐서 그를 세웠다 :  스텟슨!
자네 밀라이 해전 때 나와 같은 배에 탔었지!
There I saw one I knew, and stopped him, crying : ‘Stetson!
‘You who were with me in the ships at Mylae! 



화자는 20세기 런던의 한 중심가에서 우연히 만난 한 사람(스텟슨)에게 말을 붙이면서 ‘밀라이 해전’ 때의 인연을 상기시킨다. 기원전 260년에 벌어진 이 해전은 제1차 포에니 전쟁 초기에 로마군이 카르타고 해군에 대승한 전투를 가리킨다.  

다른 상징적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시적 진술은 기본적으로 현재와 과거를 동시에 병렬적으로 제시하려는 시적 전략에서 비롯된다. 이 같은 전략은 과거의 사건을 통해 현재를 제시함으로써, 지금의 상황을 보다 잘 해명해 주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현재 사건의 충격을 완화하거나 은폐하는 역할도 한다. 『황무지』의 많은 서술과 비유, 인용 들이 독자에게 모호하거나 무질서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런 은폐 때문이기도 하다. 예컨대, 3장 「불의 설교」 끄트머리의 병치를 보라.

카르타고로 그때 나는 왔다

불이 탄다 탄다 탄다 탄다.
오 주여 당신이 저를 건지시나이다.
오 주여 당신이 건지시나이다

탄다.
To Carthage then I came

Burning burning burning burning
O Lord Thou pluckest me out
O Lord Thou pluckest

burning

엘리엇이 직접 붙인 주석에 따르면, “카르타고로 그때 나는 왔다”라는 구절은 성 아우구스티누스(354~430)의 『고백록』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리고 “불이 탄다 탄다 탄다 탄다”는 부처의 ‘불의 설교’에서 가져온 것이다. 엘리엇은 동서양을 대표하는 금욕주의자의 말을 이 대목에서 고의적으로 병치시켜 놓는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시적 의미가 창출되거나 강화되리라고 본 듯하다(곧 기독교와 불교의 교리를 통합하고자 한다!).  

하지만 『황무지』 전체에 걸쳐 가장 두드러지게 사용된 이 병치 기법이, 의미를 수렴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발산시킨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 시의 무질서에서는 어떤 의미 있는 질서를 도출해 낼 수 없으며, 그 무질서 자체가 이 시의 질서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두 5부로 구성된 『황무지』는 각 부의 인과성이나 연결성이 미약하기 때문에 아예 시작과 끝을 바꾸어도 상관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렇다면 이때 우리 앞에 놓인 『황무지』는 ‘이야기’가 없는 시다. 이야기의 파편들만 있을 뿐, 전체를 통합해 주는 ‘이야기’가 부재한다는 뜻이다. 흔히 이 작품을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세계의 황폐함과 정신적 불모 상태를 묘사하면서 소생과 구원에 대한 갈망을 노래하고 있는 시’로 이해하는 것과는 정반대되는 시각이다.  

이 두 가지 입장이 각각 모더니즘적 이해와 포스트모더니즘적 이해이다. 전자는 『황무지』의 파편성과 다양성, 무질서가 어떤 통합적 질서로 수렴된다고 보는 반면, 후자는 우리가 『황무지』에서 읽는 것은 ‘통합되지 않는 다양성’뿐이라고 말한다. 또 『황무지』를 모더니즘 시로 이해하는 입장에서는 창작의 기원으로서 시인의 우월한 권위를 인정하는 반면, 포스트모더니즘 시로 이해하는 입장에서는 작품을 창조하고 의미를 주재하는 시인의 존재를 부정한다. 곧 작품 해석에서 모더니즘은 시인에게, 포스트모더니즘은 독자에게 보다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황무지』의 등장인물 티레시아스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와도 결부된다.

비록 눈이 멀고 남녀 양성 사이에서 털털대는
시든 여자 젖을 지닌 늙은 남자인 나 티레시아스는 볼 수 있노라
I Tiresias, though blind, throbbing between two lives,
Old man with wrinkled female breasts, can see


티레시아스(테이레시아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남녀 양성의 인물로 테베(테바이)의 눈먼 예언자다. 엘리엇은 그에 대해서 이렇게 주석을 달았다. “티레시아스는 단순한 방관자이고 등장인물은 아니지만,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다른 모든 등장인물을 통합하고 있다. …(중략)… 티레시아스가 ‘관찰하는’ 것이 사실상 이 시의 내용이다.” 말하자면, 티레시아스는 이 시에서 ‘행위의 주체’는 아니지만, ‘시선의 주체’로서 전체를 총괄한다는 이야기다. 적어도 엘리엇은 그런 역할을 티레시아스에게 부여했다고 말한다. 문제는 우리가 이 ‘늙은 주머니쥐’의 이야기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으며, 또 엘리엇이 진실을 말했다 해도 그의 의도가 과연 텍스트 속에 얼마만큼 투영되었나 하는 것이다.

엘리엇, 창작 의도를 밝히다
만약 엘리엇의 말을 존중하기로 한다면, 다음과 같은 그의 고백은 독자에게 당혹스러움을 안겨줄 것이다. “많은 비평가들이 『황무지』를 현대 사회를 비판하는 것으로 해석했으며, 따라서 이 시를 중요한 사회 비평이라고 생각해 온 것이 사실이다. 나로선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내게 이 시는 단지 인생에 대해 갖고 있던 개인적인 불만, 그것도 하찮은 불만의 토로였을 뿐이다. 이 시는 단지 그런 불만을 운율을 맞춘 시로 써 본 것뿐이다.”  

이보다 더 분명하게 자신의 창작 의도를 고백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황무지』의 창작 동기가 된 엘리엇의 ‘하찮은 불만’이란 무엇이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그의 개인사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아야 한다. 1915년, 엘리엇은 영국 중산층 출신의 여성 비비언 헤이우드와 결혼한다. 병약한 데다가 신경 쇠약을 앓던 비비언과의 결혼 생활은 무척이나 힘들었고, 이 때문에 그는 생계를 위해 1917년 로이드 은행에 취직한다. 『황무지』를 쓰던 1921년에는 과로와 긴장으로 엘리엇 자신이 신경 쇠약에 걸릴 정도여서, 스위스의 한 요양소에 입원하기까지 한다. 이때는 제1차 세계 대전 직후라 유럽의 정치적·경제적 상황이 최악이었던 시절이기도 하다.   

여기까지는 비교적 잘 알려진 전기적 사실이며, 거기에 덧붙일 수 있는 내용은 엘리엇의 ‘하찮은 개인사’다. 엘리엇 부부와 철학자 러셀(1872~1970)의 인연이 그것이다. 엘리엇은 마치 『황무지』의 화자가 런던에서 스텟슨을 만났던 것처럼, 우연히 하버드 대학 시절 그의 스승이었던 러셀과 만난다. 곤궁한 처지에 있던 엘리엇은 곧 러셀의 아파트로 이사를 갈 만큼 그와 친해지고, 러셀 또한 그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었다. 문제는 자유 연애주의자인 러셀과 아내 비비언의 관계가 불륜으로까지 발전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과묵하고 내성적이었던 엘리엇은 이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황무지』는 그의 ‘하찮은 불만’의 객관적 상관물이 아니었을까? 『황무지』의 1부 「죽은 자의 매장」은 이렇게 끝난다.

오오 개를 멀리하게, 비록 놈이 인간의 친구이긴 해도  
그렇잖으면 놈이 발톱으로 시체를 다시 파헤칠 걸세!
그대! 위선적인 독자여! 나와 같은 자 나의 형제여!
‘O keep the Dog far hence, that’s friend to men,
‘Or with his nails he’ll dig it up again!
‘You! Hypocrite lecteur! - mon semblable, - mon frère!’


마지막 행의 프랑스 어 시구는 엘리엇이 보들레르(1821~1867)의 시집 『악의 꽃』에서 인용한 것이다. 거기서 ‘독자’를 뜻하는 프랑스 어 단어 ‘lecteur’는 ‘강사’를 뜻하기도 한다! 요컨대, 엘리엇은 아내 비비언조차 알아채지 못할 방식으로 자신의 불만을 토로했던 것은 아닐까? 다양한 갑론을박의 해석을 낳고 있는 『황무지』는 이래저래 난해할 수밖에 없는 시다.   

09. 04. 03.  

P.S. 뒷부분에서 "하버드 대학 시절 그의 스승이었던 러셀"이란 구절은 원래 "하버드 대학 시절의 강사였던 러셀"이라고 적어보낸 것이다(편집과정에 교졍되었다). 일부러 '강사'라고 지칭한 것은 "위선적인 독자여!"란 구절의 이중적인 의미와 호응하게 하려는 뜻에서였다. 표면적인 인용 너머에서 엘리엇은 러셀을 상대로 "위선적인 강사여!"라고 비난하고 있는 것인데(러셀은 이 시의 숨겨진 수신자이다), 중요한 것은 이 '비난'이 아내 헤이우드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은밀한 것이어야 했다는 점(엘리엇은 시의 초고를 아내에게 자주 보여주었다). <황무지>는 그러한 맥락에서 재구성될 수 있다(이미 이러한 읽기를 시도한 논문들도 나와 있다).  

덧붙여, 오랜만에 황동규 시인의 <황무지> 번역을 다시 들여다보았는데, 4부의 제목 'Death by Water'를 '수사(水死)'라고 한 것이 눈길을 끌었다. 아주 단순하게 '물에 빠져 죽는 것'을 가리키는 더 익숙한 표현은 물론 '익사'다. 이창배 교수의 번역은 '물 죽음'으로 옮겼는데, 이 또한 특이한 선택이다(3부의 제목 '불의 설교'와는 호응시키려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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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비의 생각
    from seoulrain's me2DAY 2009-04-03 10:32 
    '황무지'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 로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