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에 이 서재의 '즐찾'이 2000명을 넘어섰다. 작년의 목표치이긴 했으나 대략 이달쯤에 도달할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다. '2000'이란 숫자는 1일 방문자 '1000'과 함께 이 서재(블로그)의 한계치라고 생각해오던 것이다(성장의 한계?). 현재의 여건에선 그 이상의 관심을 끌어모을 '동력'을 갖고 있지 않기에(내가 '전업 블로거'라면 사정은 다르겠지만). 다 아시겠지만 주로 언론 리뷰기사(스크랩)와 내가 쓴 잡문(주로 서평)이 이 서재의 단촐한 메뉴다. 특별히 재미있거나 심오한 '콘텐츠'를 제공하지 않음에도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찾아주었다. 감사한 일이면서 약간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책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면서 내가 지향하는 일이지만 그런 정보/지식을 내가 원하는 만큼 생산해낼 수 있는 형편이 못 되어 유감스러운 적도 많다. 스크랩으로 많은 페이퍼를 채우는 일이 멋쩍기도 하고(하지만 그 많은 책을 어찌 다 읽는단 말인가?!). 아무튼 이런 것이 현재 '스코어'이고 짧게 적어본 '서재 주인'의 감상이다. 경영학을 공부한 바 없어서 앞으로 어떻게 서재 운영의 쇄신을 도모해야 할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서재질'에 대해서는 고민을 좀 해볼 생각이다...   

'감상'은 그렇다 치고 '주업'으로 돌아오면, 새로 나온 관심도서들을 소개해온 처지에서 볼 때 이번주는 '최악'이다. 평소 기준에 따르면 다뤄야 할 책이 최소로 잡아도 10권은 되기 때문이다(평소의 2-3배다). 물론 한권만 고르라고 하면 개인적으론 지젝의 <시차적 관점>(마티, 2009)을 꼽을 수밖에 없다(아직 리뷰기사들이 뜨지 않고 있다). 어젯밤에 조금 읽어봤는데, 최소 두 달치의 '식량'은 확보한 듯싶어 부듯하다(가라타니 고진의 <트랜스크리틱>과 대결하는 대목이 일단 관심을 끈다. 이 책에 대한 고진의 서평 제목이 '시차적 관점'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책들은 그냥 넘어가도 좋으냐고 하면 또 그렇지가 않다. 해서 내주까지 틈나는 대로 스크랩도 하고 코멘트도 달아볼 생각이다(사실 이런 일은 '조수'가 해주면 좋겠는데 '1인 블로그'인지라 1인 2역을 해야 한다).   

 

닥치는 대로 집어보자면 먼저 '결혼제도를 통해본 서구문화사'<진화하는 결혼>(작가정신, 2009)이 있다. 원서의 부제 '사랑은 어떻게 결혼을 정복했나(How Love Conquered Marriage)'가 이미 많은 걸 얘기해주는 책이다. 역사적으로 '사랑'(감정)이 결혼의 중요한 변수는 아니었지만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차츰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기 시작했다는 것.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연애혼'이 '중매혼'의 전통을 넘어서기 시작한 것. 저자의 역사적 통찰은 이렇듯 감정(사랑)을 중요시한 결혼관이 필연적으로 결혼이란 제도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는 데 이른다(어제 연예가 뉴스에 '가수 박진영 결혼 10년만에 이혼'이 뜨던데, 그런 식인 것. '애정'이 결혼생활에 절대적인 변수라면 애정의 변덕을 누가 말릴 수 있으랴). 결혼의 단꿈을 꾸고 있을 청춘들에게는 도움이 안될 듯싶지만 차츰 무뎌지는 감정과 타엽해야할 처지에 놓인 기혼자들은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겠다(내친 김에 <오르가슴의 과학>(어드북스, 2009) 같은 책에 눈길을 줄 수도 있겠다. 2006년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교 출판부에서 발행한 책으로 성적 현상을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근래에 없던 인간 섹슈얼리티의 걸작”이라는 극찬을 받은 화제작이라 한다). 

 

문화일보(09. 03. 27) 결혼의 조건에 ‘사랑’은 없었다

오늘날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 또는 근거로 꼽히는 것은 ‘사랑’이다. 하지만 사랑이 언제부터 결혼의 전제조건이 됐을까. 과연 사랑이 결혼의 가장 중요한 근거이긴 한 걸까. 무엇보다도 결혼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이 모든 것에 답하는 책이다. (100여장이 넘는 주를 빼고서도) 500여장에 이르는 방대한 책은 인류의 여명기부터 고대, 중세, 근·현대에 이르는 긴 시기 동안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의 결혼과 관련된 각종 문헌과 통계자료, 연구결과를 취합, 분석하여 결혼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과 역사를 펼쳐보인다. 



그럼 언제부터 ‘사랑을 기반으로 하는 결혼’이라는, 오늘날 우리들이 너무나 당연시하는 관념이 자리잡게 됐을까. 서구의 경우 19세기에 들어와서부터였다. 저자는 “결혼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그저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 가정을 꾸리는 ‘낭만적인’ 일만은 결코 아니었다”며 “오랫동안 결혼은 정치적 거래이자 경제적 거래였는데 유력한 가문과의 사돈을 통한 동맹 맺기, 성별 분업, 재산 상속 등이 모두 결혼을 통해 이뤄졌다” 고 말한다.

이처럼 공적인 영역에 머물렀던 결혼이 사적인 영역으로 넘어오게 되는 전환점인 19세기는 결혼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시기는 결혼을 둘러싼 현재의 다양한 문제와 논의, 견해들이 이미 내포돼 있던 때이기도 하다. 미국의 독립전쟁과 1789년 프랑스혁명으로 인해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이 전파되자 결혼 역시 개인의 인권과 관계된 사적인 일로 정착됐다. 아울러 양성 평등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결혼은 남성과 여성이 좀 더 동등한 관계를 기반으로, 사랑 하에 이뤄져야 하는 일로 여겨졌다. 과거 결혼의 부산물 정도로 여겨졌던 사랑이 결혼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될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됐던 것이다. 그 이전, 그러니까 18세기 말까지 전 세계 대부분의 사회에서 결혼은 경제적인 면과 정치적인 면에서 너무나 중요한 제도였기 때문에 당사자 두 사람의 자유로운 선택에만 맡겨둘 수는 없는 문제였다. 특히 결혼 당사자들이 사랑이라는 ‘비이성적이고 덧없는 것’을 기반으로 결정 내리려 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저자에 따르면,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 동안 결혼의 1차적인 목표는 부부와 그 자식들의 욕구, 즉 개인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 아니었다. 결혼은 평생의 반려자를 구하고 사랑하는 자식을 기르기 위한 일인 동시에, 좋은 가문과 사돈을 맺고 가족의 노동력을 증가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결혼은 성별과 연령을 기준으로 노동을 분배하고 권력을 분할하는 역할을 해왔다. 저자는 “물론 과거 수천년 동안에도 사람들은 사랑에 빠졌다. 심지어 때로는 배우자와 사랑에 빠지는 사람도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결혼은 근본적으로 사랑과 관계가 없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18세기에 시장경제가 전파되고 계몽주의가 등장하면서 커다란 변화들이 급속히 이뤄졌다. 18세기 말에는 중매결혼 대신 개인이 직접 배우자를 선택하는 결혼이 사회적 이상으로 자리 잡았으며,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결혼이 장려됐다. 이 무렵부터 사람들은 사랑이 결혼의 근본적인 이유가 되어야 하며, 젊은이들이 사랑을 기초로 배우자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급진적인 새 사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9세기에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결혼에 감상적인 색채가 더해지고, 20세기엔 성(性)이 강조되기에 이르렀다. 사랑과 동반자 관계를 결혼의 기반으로 삼은 것은 수천년간 이어져 온 전통과의 단절을 의미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내포된 위험을 깨닫고, 사랑을 기반으로 한 결혼이라는 전대미문의 개념이 과격한 개인주의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랑의 결합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자유선택과 남녀 평등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쉽사리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혁명적인 결혼 시스템은 처음 잉태되던 순간부터 불안정한 징후들을 드러냈다. 결혼 생활에서 사랑, 즉 애정이 절대적인 요소라면 만약 애정이 식을 경우 결혼 생활 역시 더 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결국 이 시스템의 불안정성은 20세기 말에 이르러 사람들을 괴롭히게 됐다. 동성 결혼과 동거, ‘싱글 맘’ 등 다양한 형태의 결혼이 등장했고, 높은 이혼율과 낮은 출산율, 독신주의자의 급증 등은 결혼 제도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는 전인미답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다”며 “이 새로운 결혼 풍속도 속에서 우리를 이끌어줄 결정적인 안내인도 없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미래에도 결혼이라는 제도가 유지될 것이라고 저자는 내다본다. 단, 지금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결혼 제도가 될 가능성이 크지만 말이다.(김영번 기자) 

09. 0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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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더욱 흥미로운 책, &lt;진화하는 결혼&gt;
    from 자기치유 : I am NOT such a person. 2009-03-28 18:07 
    진화하는 결혼 - 스테파니 쿤츠 지음, 김승욱 옮김/작가정신 사실 오늘 발견한 책 중에서 더욱 관심가는 책은 이 책이다. 결혼에 대한 관념이 서구 문화에서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추적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우리들에게 결혼과 사랑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해줄듯하다. 일생의 화두이기도 하나 사랑을 다루고 있고, 최근 들어 보다 큰 관심을 갖게 된 결혼의 문제도 파고들고 있으며, 전공을 고려하고 있는 문화사라는 분야의 책이라는 점에서 이래저래..
 
 
stella.K 2009-03-29 14:05   좋아요 0 | URL
위의 책들 재밌을 것 같군요. 좋은 정보네요.
벌써 즐찾이 2000이라니, 놀랍습니다!
축하해요.^^

로쟈 2009-03-29 16:53   좋아요 0 | URL
네, 감사. 오래만에 댓글도 달아주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