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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ㅣ 창비시선 203
허수경 지음 / 창비 / 200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허수경의 두번째 시집을 읽은 지 햇수로 10년이 돼 간다. 그 사이에 그녀는 꽤나 '오래된' 시를 쓰고 있었던 걸 알았다. 시집 얘기가 아니다. 독일 유학을 떠나 선사고고학을 공부하고 현재는 동방문헌학 박사과정에 있으면서 여기저기 발굴답사도 다니고 하는 것이 그녀의 지난 10년 세월이었던 듯한데, 그게 시적이라는 거다.
그런 '시적 행적'에 비하면 시집에 실린 시들은 마치 말더듬이의 시들처럼 빈약하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흩날리는 풍경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기대 이하다. 시인의 말대로, '시를 쓰고 싶어하는 간절한 마음'은 읽히지만, 마음과 시는 안타깝게도 종류가 다른 걸 어쩌겠나.
가장 좋은 시는 역시나 <바닷가>이다. 리뷰들을 통해 눈에 익혀 두었던 시였지만, 더 좋은 걸 찾을 수 없었다. 사랑하는 손과 눈, 혀, 그리고 아마도 마음까지 '아는 사람' 집에 다 두고 왔음을 노래하는 이 시는 어지간한 마음까지 눈물 글썽이게 만든다.
글썽이고 싶네 검게 반짝이고 싶었네
그러나 아는 사람 집에 다, 다,
두고 왔네
해서 서두의 불만은 다소 누그러진다. 그대의 시는 더 오래 되었나니, 마음까지 다 두고 간 시인에게 '반짝이는' 시들을 요구하는 건 잔인한 일이지 싶어서이다. 게다가 '나의 고아들은 따스한 물이불을 덮고 잠이 들 것이다'(57쪽)는 걸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그래서 발문을 쓴 신경숙의 말대로, 우리는 시인이 여전히 '시로 가는 길'에 서성이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선에서 이번 시집의 의의를 찾아야 할 듯하다. 이 시집을 '현실의 시간을 넘어서는 오래된 시간 혹은 그 모국어의 공간을 향해 띄우는 간절한 편지'(이광호)로 읽고자 하는 한 평론가의 말에도 고개를 끄덕여주면서. 간절한 편지의 문체를 탓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시집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따로 있는데, 그건 신경숙이 쓴 발문이다. 신씨와 허씨의 대면기와 봉별기가 거기엔 간곡하게 들어가 있다. 둘이 한바탕 싸우고 시래깃국을 먹으며 화해한 얘기를 읽다가 괜히 눈물이 핑돌기도 했다(아, 시래깃국이여!). 바라건대, '토끼 고기' 같은 거 말고, 손맛 좋다는 시인의 시래깃국 같은 시들을, 다음에는 꼭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