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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과 정신분석 혁명
셰리 터클 지음 / 민음사 / 1995년 11월
평점 :
절판
국내에도 이미 프로이트 전집이 번역 출간되어 있고, 전문학회(라캉과 현대정신분석학회)도 구성되어 있는 만큼, 정신분석 '문화'를 위한 조건은 조금씩 갖춰져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정신과(정신의학)나 정신분석에 대한 일반인들의 편견과 의혹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20세기 중반까지의 프랑스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고 하니 섣불리 판단할 일은 아닌 듯싶다.
<라캉과 정신분석 혁명>은 프랑스에서의 1968년 혁명을 기점으로 정신분석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태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를 통시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일종의 지성사적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프로이트 이후의 대표적인 정신분석학자이자 이론가인 자크 라캉이다.
난해하기로 이름난 사상가이자 '지적 사기' 한 우두머리로 지목되기도 하는 라캉은 정신분석학계에서는 이단자에 속한다. 저자인 셰리 터클은 파리정신분석학회에서 프랑스정신분석학회가 분리되어 나가고, 또 프랑스정신분석학회에서 라캉 일파가 떨어져 나가 프로이트 학교를 세우게 되는 과정, 거기에 이 프로이트 학교 내에서까지 내분이 생겨나는 과정을 많은 자료와 인터뷰들을 통해 재구성해 보이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이론뿐만 아니라 라캉이란 인물 자체의 모순이 이러한 분열과 분파에 한몫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정신분석이론을 시(적 수사학)이면서 동시에 과학으로 밀고 나가려는 기획에 어찌 모순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캉은 매력적인데, 이에 대한 저자의 해명에 공감이 간다. 터클은 이렇게 적고 있다.
'정신분석의 비전에서 가장 급진적인 것은 우리 내부의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며 라캉은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과 자신 안에서 대면하도록 끊임없이 촉구한다고 많은 분석가들은 믿는다. 이것이 라캉 세미나의 위력이다.'(304쪽)
이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일차적으로 인간이 자신의 중심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에 라캉의 안티-휴머니즘이 놓인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 껄끄러운 진실이다. 따라서 정신분석의 수용은 동시에 그에 대한 저항을 함축한다. 프로이트도 지적한 바 있지만, 정신분석에 대한 저항 없는 수용이란 미심쩍은 것이다. 라캉에 대한 유혹은 분명 그에 대한 반감과 교차한다. 그의 이론에 대한 끌림은 그에 대한 거부감과 한몸이다. 인간의 자신에 대한 앎은 항상 이러한 모순 속에 놓인다고 라캉은 우리에게 가르치는 듯하다.
이미 여러 권의 라캉 입문서들이 나와 있지만, 그 이론의 테두리를 알지 못한다면, 이론의 '이해'라기보다는 '암기'에 그칠 확률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라캉에 관심있는 독자들에게는 <라캉, 어느 지적 영웅의 죽음>과 더불어 추천할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