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에 손에 들고 퇴근길 전철에서 먼저 화보들만 훑어본 책은 <히틀러의 아이들>(지식의풍경, 2008)이다(국내외적으로 참사가 있었던 엊그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다룰 예정이고, 일단은 밀린 책 얘기들을 적어놓아야겠다). 날짜로는 연말에 나온 것으로 돼 있다. '히틀러 청소년단'의 아이들에 대한 책으로 이들이 어떻게 열광적인 히틀러 찬양자로 키워졌는지(혹은 커나갔는지)를 보여준다. 최근 들어 히틀러와 나치 시대에 관한 책들이 여러 권 출간되고 있어서 덩달아 관심을 갖게 됐다. '부드러운 파시즘'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우리도 한번 일독해볼 만하지 않나 싶다. 우리 아이들의 장래도 생각해보면서 말이다...

경향신문(09. 01. 17) 시대의 광기가 만든 어린 나치들
“우리의 지도자를 상징하는 이 피의 깃발 앞에서 조국의 구세주 아돌프 히틀러에게 혼신을 바칠 것을 맹세합니다.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으니, 신이시여 굽어살피소서.”
1936년 4월20일 독일 전역에선 장엄한 횃불 의식이 진행됐다. 해마다 히틀러의 생일이기도 한 이날 10~14세의 소년소녀들이 히틀러청소년단(Hitlerjugend) 가입 선서를 했다. 수백만 소년소녀들은 자신의 열정을 히틀러에게 바치겠다고 맹세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나치의 선전원으로 열성적으로 활동했고 ‘후방의 군인’으로 활약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광신적인 전사’로 마지막까지 전투를 이어갔던 것도 이들이었다. 39년 히틀러청소년단의 갈색 유니폼을 입은 소년소녀들은 800만명에 육박했다.
1934년 나치 돌격대 제복을 입은 꼬마가 나치식 경례를 하고 있다.|프로이센 문화재단 시각자료 보관소 제공
책은 히틀러를 추종해 히틀러청소년단에 가입하고 이를 명예롭게 여긴 수백만 독일 소년소녀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들이 어떻게 히틀러에 열광해 ‘히틀러의 아이’가 되어갔는지를 당사자의 육성과 수많은 사진자료를 통해 전한다.
1차 세계대전의 패전과 대공황으로 인한 빈곤과 정치적 혼란 속에 성장한 독일의 소년소녀들에게 ‘위대한 독일의 위대한 미래’를 약속한 히틀러는 ‘영웅’이었다. 히틀러도 “이들과 함께라면 새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면서 소년소녀들의 열성과 충성심을 적극 활용했다.

나치는 아이들이 무엇에 매료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 26년 출범한 히틀러청소년단은 단원들에게 흥분과 모험을 안겨주고 숭배해야 할 새로운 영웅들을 제시했다. 제복·깃발·밴드·배지·무기·캠핑여행·캠프파이어·퍼레이드·스포츠 경기·모의전쟁 등을 제공했다. 일부 아이들에겐 부모·교사·목사 등 권위에 반항할 기회를 주었다. 어른이나 학교당국보다 ‘우월한 힘’을 느껴본 적이 없었던 아이들은 쉽게 매혹됐다. 부모들 대부분도 규율과 체력, 근면, 우월함의 추구, 국가의 전통에 대한 자부심 등 아이들에게 일어난 변화를 반겼다.
히틀러청소년단은 2차 대전이 본격화하면서 후방 지원은 물론 전투병으로도 투입됐다. 유대인 강제수용소를 감시하는 친위대 대원이 되거나 ‘늑대인간’으로 불린 특공대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이들은 가장 광신적인 전사들이었다. 자기가 희생된다고 해도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움을 그만두지 않았다.

저자는 이들이 청소년단 활동을 통해 이미 “전쟁에 대해 학습한 상태”였다고 지적한다. 청소년단은 군사훈련과 행진을 통해 획일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법을 배웠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도자에게 복종하는 법이었다. 패전 후 많은 단원들이 자신들이 살인마를 위해 일했고 수백만 명의 죽음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책은 평범한 아이들이 시대의 광기에 휩쓸리는 과정을 통해 교육의 의미를 곰곰이 되새기게 한다. 책에 따르면 히틀러에게 교육이란 한 가지 목표밖에 없었다. 아이들을 훌륭한 나치의 틀로 찍어내는 것이었다. 히틀러는 집권하자마자 나치가 승인한 사상만 가르치도록 교과과정을 완전히 뜯어고쳤다. 저자는 젊은이들에게 증오와 살인, 타인에 대한 우월감을 가르친 것은 어른이었음을 강조한다. 결국 히틀러청소년단은 “나치로 태어난 게 아니라 나치가 되어갔다”는 것이다.(김진우기자)
09. 01. 22.

P.S. "책은 평범한 아이들이 시대의 광기에 휩쓸리는 과정을 통해 교육의 의미를 곰곰이 되새기게 한다. 책에 따르면 히틀러에게 교육이란 한 가지 목표밖에 없었다. 아이들을 훌륭한 나치의 틀로 찍어내는 것이었다. 히틀러는 집권하자마자 나치가 승인한 사상만 가르치도록 교과과정을 완전히 뜯어고쳤다."란 대목은 한번 더 우리의 처지를 돌아보게 한다. 정부가 승인한 사상과 관점만을 가르치도록 교과서를 개정하고 경쟁의 논리만을 주입시키는 우리의 교육은 나치의 교육과 과연 얼마나 다른가. 훨씬 부드럽지 않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