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 독자라면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모색, 1999)를 떠올릴 수 있을 텐데, 원제는 'Profit over People'이고 부제는 '촘스키의 신자유주의 비판'. 이미 10년 전에 나온 '고전적인' 신자유주의 비판서다. 요점은 이 제목들에서도 확인된다. '비즈니스-프렌들리'한 정부와 기업의 이익(profit)이 국민(people)보다 우선하는 게 신자유주의라는 얘기. 간략한 소개는 이렇다.   

  

노암 촘스키의 새로운 평론 모음집.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글들은 인터넷 진보잡지 <Z>에 기고된 글들이다. 이 책에서 촘스키는 전세계에서 일종의 계급 전쟁을 촉발하고 있는 친기업적 정치·경제정책인 신자유주의를 비판한다. 민주주의를 위한 역사적 투쟁을 통하여 신자유주의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소수의 부자가 다수의 시민권과 정치권을 제한하려는 책략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비판하고 있다. 또한 자유시장, 기업에 의한 여론의 지배를 통해 민간 기업의 이익만을 증대시키는 정책을 강요하여, 결국 사회보장과 환경을 철저히 무시하는 결과를 낳은 소수의 폭력을 비판한다.   

10년 전 책에 대해서 뒷북성 멘트를 붙이는 것은 내가 아직 안 읽은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구속됐다는 뉴스를 접하고 이 책의 제목을 다시금 상기하게 됐기 때문이다(내일 동네 도서관에서 대출해봐야겠다). 사실 촘스키의 또 다른 책 <미국의 제3세계 침략정책>(일월서각, 1999; 원래는 <미국대외정책론>(일월서각, 1985)이라고 출간됐던 책으로 원제는 '워싱턴 커넥션과 제3세계 파시즘')에 관해 찾아보던 차여서(유감스럽게도 절판됐다) 쉽게 연상됐을 수도 있다. 아무려나 경제상황 못지 않게 정치상황도 10년, 혹은 20년전으로 퇴행한 것처럼 보이는지라 읽어야 할 책도 덩달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듯싶다.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를 '오늘의 멘트'로 정하고 엠파스에서 검색해보니 뉴스쪽으론 이런 칼럼들이 뜬다. 조선일보의 시론은 오늘자이고, 한겨레의 프리즘은 작년 봄의 것이다. 이 대조적인 칼럼을 읽자니 '국민'에 대해서, 그리고 국민을 빙자하는 '저들'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새삼스럽지 않더라도 한번 읽어보시길. 엠파스 검색시 나타나는 형광펜 표시는 일부러 놔두었고, 굵은 글씨의 강조는 나의 것이다. 만평은 경향신문 '김용민의 그림마당'에서 가져왔다.

조선일보(09. 01. 10) [시론] 난동을 망각하는 죄(罪) 

1969년 일어난 도쿄대 야스다(安田) 강당 사건은 일본 학생운동의 전환점을 마련한 사건이었다. 도쿄대는 전해부터 좌파 학생조직인 전공투(全共鬪)가 점령하고 있었다. 이들의 목적은 더러운 제국대학 엘리트의 재생산을 막자는 것이었고, 그 뜻대로 도쿄대는 1969년도 신입생 선발을 포기했다. 1월 18일 경시청 기동대 8500명은 야스다 강당에 집결한 7000여 명 투쟁대에 대한 진압을 개시했다. 작전은 다음 날 강당이 불타면서 종료됐다. 이 치열한 공방전은 이틀간 TV를 통해 일본 전역에 생중계됐다.  

1960년대 일본의 학생운동은 풍속이나 패션으로 여겨질 만큼 막강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전공투는 야스다 강당 극렬투쟁으로 학생과 시민의 혐오를 사고 사회로부터 외면됐다. 결국 이들은 소수 과격화 집단이 되어 요도호를 납치하고 해외에서 테러를 자행하는 등 자멸의 길을 가게 된다. 도쿄대는 야스다 강당이 불에 탔던 흔적을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폭력집단의 극단적 일탈행위를 후대에 길이 기억시키기 위해서다.  

1989년의 부산 동의대사건은 한국판 야스다사건이라 할 만하다. 동의대 총학생회는 원래 입시부정행위 때문에 교내투쟁을 시작했으나 노동절 날 느닷없이 파출소를 습격했고, 사태가 확대되자 전경 다섯 명을 납치했다. 끝내 경찰이 투입되자 시너와 석유를 바닥에 붓고 불을 질러 경찰관 7명을 사망하게 했다. 일본의 야스다 강당 사건과는 달리 이 엽기적 난동행위는 뒤틀린 역사적 판정만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김대중 정부 때인 2002년 민주화운동 보상심의위원회는 동의대 사건 주역 46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격상시켜 명예회복과 보상을 받게 해준 것이다. 또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헌법재판소는 동의대사건으로 희생당한 경찰 유족들이 이 같은 조치의 부당성을 호소하며 낸 헌법소원마저 각하했다.    

따라서 한국사회에서는 극렬투쟁이 되풀이되고 오히려 고무를 받아 확대 재생산된다. 광우병사태의 경우 우리 국민 다수는 소수집단의 조작에 놀아난 자신을 치욕스러워하고 그 음모자가 다시 준동 못하도록 사회적 압력을 가해야 한다. 그러나 MBC의 왜곡방송 행태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고 사직당국은 이들을 소환조사조차 안 하고 있다. 광우병사태가 진정된 지 반년도 안 돼 작금의 국회의사당 난행사태가 발생했지만 이것도 곧 잊힐 것이다. 현 정치행태로 보면, 민노당 대표를 포함해 시정의 폭력배처럼 난동한 국회의원들, 그 보좌관들은 아무 처벌 없이 넘겨질 것이다. 결국 한국에서는 넘지 못할 선이 없다. 한국사회는 파괴적 소수 정치집단의 광분(狂奔)에서 해방될 면역력이 없는 것이다.  

한 사회는 물적 토대로만 형성되지 않는다. 국가사회에는 누구나 지켜야 할 사회적 가치가 있고 이를 수호하려는 국민적 의지가 있어야 한다. 곧, 지식과 이성 수준, 법률, 도덕과 질서를 건전하게 유지하려는 국민정신이 존재해야 함을 말한다. 국민이 동의대사건, 광우병사태, 국회난동 등 되풀이당하는 유린(蹂躪)에 무감각한 것은 그만큼 국민정신이 마비됐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런 국민 새로운 사회발전을 수용할 수 없다. 비열한 소수 야만집단에 앉아서 당하는 국민 국제사회에서도 제 대접을 받을 수 없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현 정권이 우선 정신적으로 강력해져야 한다. 광우병과 국회의 무정부 난장판은 모두 이명박 정권 아래서 일어난 일이다. 이 정권은 상황을 피하고 타협했을 뿐이지 과거정권의 적폐를 청산하고 법질서를 세움에 치열하게 나서지 못했다. 국가경영자의 결단력이 훼손됨을 보면 국민 정권에 대한 신뢰와 기대치를 상실하고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국민의 압도적 지지로 탄생한 정권이 국가 운영방향을 단호히 세우고 명백한 범법자를 처벌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향후 국정파괴의 책임자를 유권자가 심판해야 한다는 말은 옳지만 그들은 기억력이 짧고 단기적 인기영합 약속에 쏠리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언론과 사회단체들이 국민을 대신해 정치가들의 언행을 모두 기록, 보존해서 때가 되면 적극적으로 투표자에게 알려야 한다. 국회는 이미 18대 의원의 역사적 난동현장을 모두 청소해 버렸다. 그러나 지난 20일간의 국회파괴사건은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아 있다. 우리 국민 이 기록물을 국회 로텐더 홀에 365일 24시간 전시하도록 강력히 꾸준하게 요구해야 한다. 과거 잘못에서 배우지 못하는 국민이 어떻게 선진국을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김영봉 중앙대 교수·경제학)    

한겨레(08. 04. 25) [한겨레프리즘] 철탑에서 본 대한민국 주식회사

인천지하철 부평구청역 3번 출구 옆 지상 25m 0.6평짜리 공간. 잠깐 올려다봐도 아찔한 철탑에선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는 지엠대우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규가 터져 나온다. 한 사람은 그곳에서 시린 겨울을 보냈고, 또 한 사람은 잔인한 봄을 견디고 있다. 회사 서문 앞에선 또다른 노동자가 해고자 전원 복직을 요구하며 단식농성 중이다. 오늘로 120일을 넘긴 고공농성과 18일째 이어온 단식. 원청업체인 지엠대우차는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고, 정부도 이렇다 할 중재 노력이 없다. 대화를 기다리는 이곳엔 철거 위협과 벌금 고지서가 날아든다.   

지엠대우차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찾아가 노사 화합의 상징으로 치켜세운 곳이다. 비정규직의 철탑 농성장엔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비즈니스 프렌들리’. 그는 이번 미·일 방문에서 “나는 대한민국 주식회사의 시이오(최고경영자)다”라고 말했다. 이쯤 되면 ‘친기업’을 넘은 ‘국가의 기업화’ 선언이라 할 만하다. 외국인 투자자들한테 박수를 받은 발언 뒤편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300일을 넘긴 이랜드 노동자들의 복직 요구에 대해 노동부 장관은 ‘노사 자율로 해결해야 한다’며 팔짱만 끼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학교도 자율화하겠다’며 0교시-우열반을 허용해 아이들을 입시경쟁으로 내몬다. 기획재정부 장관은 건강보험을 민간의보로 바꿔 가겠다고 말한다. 고공철탑 위 비좁은 공간에서 새우잠을 자는 노동자, 등수 공개 압박감에 모의고사를 잘못 봤다며 몸을 던지는 아이, ‘손가락이 잘려도 돈이 없으면 병원에 가서 봉합수술을 받지 못하는’ 영화 <식코> 장면처럼 의료비 부담에 가슴을 졸이는 환자들.  

대한민국 주식회사의 풍경이다. 경쟁과 시장화라는 구호 아래 사회 공공성은 뿌리째 흔들린다. 정부는 국민 섬기기보다 기업에 대한 봉사를 우선시한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경쟁력 없는 건 희생돼도 어쩔 수 없다는 섬뜩한 맹신이 퍼져간다. 사회적 약자는 ‘다수의 이익이 먼저’라는 이데올로기 앞에 침묵을 강요당한다. 이런 모습은 국민과 소통 없는 통상정책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을 위해 광우병 위험까지 수입하는가’라는 물음에 돌아오는 것은 “(미국산 쇠고기가) 마음에 안 들면 적게 사면 된다”라는 대한민국 최고경영자의 소신이다. 정부는 국회에 비준동의를 조속히 해 달라고 압박할 뿐 보완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에는 대답이 없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의 정책위의장마저 “정부는 대책을 내놓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최대 피해가 예상되는 농민들의 절박한 호소는 ‘희생 불가피론’에 묻힌다. 함께 대책을 고민해 주길 바라는 최소한의 희망조차 번번이 배신당한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공공성을 지키는 건 정부가 할 일이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무책임을 자율로 포장하는 이명박 정부. “(국가의) 기업화는 대중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지 못하도록 하고, 여론을 조종하며, 세상의 운영방법에 대한 기본적 결정권을 소수 권력자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촘스키의 저서 <그들에게 국민 없다>에 실린 경고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민에서 졸지에 대한민국 종업원으로 바뀌어 버린 듯한 지금, 대한민국 주식회사에 묻는다. 국민이 낸 세금을 쓰면서 정부를 기업처럼 운영해도 되는가?(정태우) 

09. 01. 10.   

P.S. 김영봉 교수의 칼럼에서 배울 점이 많다. 조선일보를 요즘 거의 보지 않아서 이렇게 노골적인 '선동'도 오랜만에 읽어본다. "향후 국정파괴의 책임자를 유권자가 심판해야 한다는 말은 옳지만 그들은 기억력이 짧고 단기적 인기영합 약속에 쏠리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언론과 사회단체들이 국민을 대신해 정치가들의 언행을 모두 기록, 보존해서 때가 되면 적극적으로 투표자에게 알려야 한다." 유권자들의 기억력이 짧기 때문에 언론과 사회단체에서 정치가들의 언행을 모두 기록, 보존해서 때가 되면 적극적으로 투표자에게 알려야 한다는 말. 백번 맞는 말이다. 다음 총선과 대선을 위해서도 그 말 그대로 해주었으면 좋겠다. 왜 있잖은가. '747'이니 '3000포인트'니 '뉴타운'이니 하던 말들. 제발 현 정권과 정치인들의 언행을 모두 기록, 보존해두었다가 알려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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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기의 생각
    from bbb's me2DAY 2009-01-11 11:09 
    로쟈님 알라딘 블로그 (제대로된 읽을꺼리들을 이야기해주시다니 느무 좋음)
 
 
노이에자이트 2009-01-11 00:08   좋아요 0 | URL
조선일보 칼럼 정말 과격하고 섬뜩하네요.무서워요.야스다 강당 사건을 왜 저런 식으로만 볼까요? 전형적인 강경우익의 시각으로 그 사건을 보았군요.굉장히 익숙한 논리예요.5공 때도 야스다 강당 사건 그리고 적군파...비판하는 다큐멘타리를 텔리비전에서 방영했지요.

로쟈 2009-01-11 20:50   좋아요 0 | URL
5공때와 뭐가 다른지 슬슬 의문을 갖게 됩니다. 똑같이 반민주적 정권인데, 사실 경제는 더 안 좋죠...

cretois 2009-01-11 00:28   좋아요 0 | URL
조선의 어제 사설도 막상막하죠. 국민 혹은 유권자의 상당수가 이런 신문에 동조(!)하는 현실 역시 괴기스럽습니다. 미네르바와 아고라들에 찬성하진 않지만 이런건 정말 옛날의 '토끼몰이'를 연상케하는군요.

로쟈 2009-01-11 20:50   좋아요 0 | URL
당장은 이렇게 망해가는구나, 내지는 말아먹는구나란 생각밖에는...

2009-01-11 0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9-01-11 20:51   좋아요 0 | URL
네, 재미있고 다이나믹하죠. 외신란에도 자주 오른다잖아요...^^;

jouissance 2009-01-11 19:50   좋아요 0 | URL
정말이지 괴기스러운 풍경입니다. 70%의 이 나라 신문독자들이 저런 어처구니 없는 선전선동으로 도배된 기사를 매일 읽고 있다니 말입니다.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퍼센티지입니다. 저 70%가 이 나라 저질 민족주의와 결합해 유사시 어떤 형태로든 파시즘 태동의 토양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미래입니다. 어떻게 보면 파시즘에 가장 취약한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지금 쥐박이 정권은 유사 파시즘이라 봐야겠지요. 로쟈님도 조심하세요^^ 쥐박이 친위대원들이 로쟈님 글까지 호시탐탐 감시하고 있을 줄 모릅니다. 아다시피 저들이 들이대는 죄목이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잖아요. 정말 쥐박이 무리들이 벌리고 있는 짓거리들을 보고 있자면 화염병 던지는 사람들의 심리를 알겠어요. 대체 무슨 이런 회괴망측한 놈들이 있습니까..ㅠㅠ

로쟈 2009-01-11 20:52   좋아요 0 | URL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여럿 계시네요...^^;

jouissance 2009-01-11 22:02   좋아요 0 | URL
저는 훗날 무지 쪽팔릴 것 같아서 기회가 주어지면 최소한 '구류'라도 살고 나오려구 준비하고 있습니다. 10년 뒤에 '그래도 이 아빠는 쥐박이 정권에 저항했단다' 한마디는 날릴 수 있는 명분은 쌓아야지 않겠어요...^^ 어제 미네르바 동영상을 보면서 조금 아쉽더라구요. 쥐박이 정권을 향하여 '의연하게' 한마디 던지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했는데..ㅠㅠ

로쟈 2009-01-11 22:21   좋아요 0 | URL
아고라에는 문체를 분석한 글들도 올라오던데, 아무래도 제 생각엔 '미네르바들'이 있는 거 같습니다...

고티 2009-01-11 23:59   좋아요 0 | URL
ㅋㅋㅋ '국민'은 '없'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