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가 영화 개봉과 맞물려 뒤늦게 화제다(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3931.html). 하지만 개인적으로 12월 화제의 작가로 꼽고 싶은 이는 존 치버다. 별다른 입소문도 없이 한꺼번에 6권이나 최근에 출간됐기 때문이다. 레이먼드 카버와 함께 미국 단편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되는 이 작가도 진작에 소개된 바 있지만(내가 기억하는 건 90년대 초반이다) 이토록 출판계의 환대를 받는 건 처음이 아닌가 싶다(작년에 예고탄으로 <블릿파크>가 출간되긴 했다). 아무튼 '교외(郊外)의 체호프’라고도 불리는 그의 단편들을 누구 말대로 '월동(越冬) 식량'으로 마련해둠 직하다(12월엔 월동용 책들이 나오나 보다!). 물론 카버도 아직 안 읽으신 분이라면 카버 먼저, 아니 체호프 먼저 읽으시고. 순서가 그렇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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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08. 12. 13) 속이고 감추고 비밀로 얼룩진 삶
"아이린은 다이얼을 계속 돌려 서너 집의 아침식사 테이블을 침범했다. 그리고 소화불량과 육체적 사랑, 병적인 허영, 신앙심, 그리고 절망이 표현되는 이야기를 엿들었다… 그녀는 가정부가 들어올 때까지 계속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재빨리 라디오를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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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작가 존 치버(1912~1982)의 단편 '기괴한 라디오'. 결혼생활 10년차에 접어든 부부인 짐과 아이린은 뉴욕 맨해튼의 아파트에 산다. 1년에 10번 이상 연극 혹은 영화를 보러다니고, 두 자녀를 둔 전형적인 미국의 중산층 부부. 슈베르트와 모차르트를 즐겨듣지만 고장이 잦은 라디오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는 아이린을 위해 짐은 새 라디오를 선물한다. 새로 산 라디오에서 우연히 이상한 잡음을 듣게 되는 아이린은 그것이 옆집 이웃들의 소리임을 알게되자 심란한 심정이 되는데.
겉으로 보기에 평화롭고 안정적인 이웃들이었지만 그들은 퇴근 후 피아노 연습을 하는 문제로, 혹은 은행에서 초과인출한 금액 문제로 말다툼을 하고 있었고, 아내를 구타하거나, 건물의 잡역부와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아이린은 "다른 사람들 모두가 하루종일 싸우고 있어요. 모두들 싸우고 있었어요"라고 울부짖으며 중산층의 일상에 숨겨진 황폐한 내면세계를 고통스럽게 들여다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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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외(郊外)의 작가'로 불리는 존 치버의 작품이 최근 잇달아 국내 번역되고 있다. 그는 평생 150편이 넘는 단편소설을 발표, 너대니얼 호손-오 헨리-스콧 피츠제럴드 등으로 이어져온 미국의 단편소설 전통을 계승한 작가로 꼽힌다. 그의 문학세계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기괴한 라디오>와 <돼지가 우물에 빠졌던 날> 등 단편 61편을 실은 선집 4권(문학동네 발행)이 얼마 전 번역돼 나왔고, 1950년대 후반 장편작가로 변신한 그의 무르익은 솜씨를 엿볼 수 있는 <왑샷 가문 연대기>와 <왑샷 가문 몰락기>(민음사 발행)도 번역됐다. 모두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그의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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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버 작품의 주된 시대적 배경은 1950~60년대의 미국이다. 2차대전 승전에 따른 경제적 번영으로 두텁게 형성된 중산층이 대도시 교외의 주택단지로 몰려가 드라이브와 영화관으로 상징되는 소비문화를 만끽하고 있었던 시대다. 그러나 존 치버는, 라디오를 엿듣는 아이린처럼, 물질주의의 세례를 받지만 내면적으로 무력감과 공허감에 시달리고 있었던 중산층의 분열적 행태에 바짝 귀를 대고 있다.
그의 단편소설에 서식하는 인물들은 서로에 대한 진짜 감정은 감추거나 억누르지만 내심 신경을 곤두세우고 강박적 행동을 일삼는 이들이다. 꽉 끼는 옷을 입고 파티에 나갔다는 이유만으로 젊은 아내를 의심하는 남편('그게 누구였는지만 말해봐'), 몇 년 만에 만난 동생이 염세적 태도를 보이자 살의를 표출하는 형('참담한 작별'), 아내가 알코올중독에 빠졌다는 이유로 혹은 중년에 이르러 자신이 가족 밖의 존재로 전락하자 젊은 여인에게 성적 욕망을 느끼거나 그들이 자신을 사랑할 것이라는 망상에 빠지는 남편('교외의 남편' '망상') 같은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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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버는 왑샷 가문 연작 장편을 통해서는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의 '세인트 보톨프스'라는 가상의 도시에서 펼쳐지는 가문의 흥망성쇠사(史)를 통해 미국의 물질주의적 성공 신화에 대한 회의를 드러낸다. 그것은 현대인들의 정신적 공허감의 실체는 어디에 기인하는가를 묻는 작업이기도 하다. 치버는 <왑샷 가문 연대기>로 전미도서상(1958), <왑샷 가문 몰락기>(1965)로 미국 예술원이 수여하는 하우얼스 메달을 받았다.
김욱동 서강대 명예교수는 "치버는 때로는 조금 지나치다 싶을 만큼, 사물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부적으로 묘사하고, 대리석을 정교하게 조탁하여 조각품으로 만들 듯 어휘 하나하나에 신경을 쓴다"며 "이를 통해 겉으로 화려한 미국적 생활의 가려진 어두운 면을 잘 포착하고 있는 작가"라고 말했다.(이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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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08. 12. 09) '카버’를 다 읽으셨습니까 그럼 ‘치버’를 보십시오
무슨 횡재한 기분이라고 할까. 레이먼드 카버와 나란히 거론되곤 하는 현대 미국 단편소설의 거장 존 치버(1912∼1982)의 단편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그는 레이먼드 카버와는 달리 장편도 여러 권 썼고 그 중 <팔코너(Falconer)>(1977) 같은 책은 ‘미국의 가장 위대한 소설’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뉴스위크>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으니 그를 단편 작가라고 부르는 건 부당한 일이겠지만, ‘교외(郊外)의 체호프’라는 별칭 그대로 그의 매력은 단편에서 또렷하다. 그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준 책도 그가 말년에 엮은 단편 선집 <The Stories of John Chee ver>(1978)였다. 이번에 나온 국역본은 이 책을 완역하고 네 권으로 분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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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선집으로 퓰리처상 받아
자신이 존 치버와 궁합이 맞는지 확인하려면 우선 국역본 선집 제1권 <기괴한 라디오>의 첫 작품 ‘참담한 이별(원제: 굿바이, 나의 형제여)’을 읽어보면 된다. 초기작이지만 대표작 중 하나이니까. 떨어져 살던 형제들이 여름휴가를 함께 보내기 위해 어느 바닷가 절벽 위의 집에 모인다. 그 중 막내인 로런스는 모든 게 못마땅하다. 그는 이를테면 ‘아, 행복해’라고 말하기보다는 ‘왜 사람들은 행복한 척하는 것일까’를 묻는 시니컬한 인물이다. 로런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가족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마침내 파국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 메시지 따위에는 시큰둥해 보이던 작가가 날린 결정적인 한 방.
“아아, 그런 사람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의 눈길이 사람들 속에서 여드름 난 뺨과 허약한 팔을 찾지 않도록 그를 설득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에게 인류의 헤아릴 수 없는 위대함, 삶의 거친 외면적 아름다움에 반응하도록 가르칠 수 있을까? 어떻게 그의 손가락이 엄연한 진실, 그 앞에서는 두려움과 공포가 힘을 잃는 진실을 가리키게 할 수 있을까?”
나는 가끔 한국의 소설가들이 단편을 너무 ‘열심히’ 쓴다는 생각을 한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뛰어난 단편은 어쩐지 아주 경쾌하게 ‘대충’ 쓴 듯한 인상을 줄 때가 있는 것이다. 나는 우리네 단편소설이 더 사소하고 더 건조하고 더 사악해졌으면 좋겠다. 좀 거창하고 좀 눅눅하고 좀 착하다는 얘기다. 모름지기 단편이라면, 크고 둔한 톱으로 슬근슬근 톱질할 것이 아니라 잘 갈아진 작은 칼로 날카롭게 한 번 긋고 가야 한다. 치버를 읽으면서 한 생각들이다.
이미 레이먼드 카버 전집을 다 읽어버려 속이 허한 분에게 월동(越冬) 식량으로 권한다.(신형철_문학평론가)
08.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