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몇몇 사전과 책에서 1991년에 사망한 것으로 나오는 프랑스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이달에 100번째 생일을 맞는다고 한다(잘못된 정보에 대한 지적은 http://blog.aladin.co.kr/mramor/1807030 참조). '장수' 학자로서 (103세에 세상을 떠난) 가다머(1900-2002)의 뒤를 바짝 좇고 있는 것인데, 국내에서는 이를 기념하여 대규모 학술대회가 개최된다고 한다. 이 참에 <구조인류학>이라도 완역돼 나왔으면 좋겠다.

한겨레(08. 11. 20) 레비스트로스 탄생 100돌 ‘구조주의 학술 파티’

대표작 <슬픈 열대>와 <야생의 사고>로 친숙한 프랑스 구조주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1908~·사진)가 28일 100번째 생일을 맞는다. 신화·결혼규칙·요리체계 같은 사회문화적 현상의 심층에는 ‘형제와 자매’ ‘구운 것과 끓인 것’ ‘손님과 친족’ 같은 이원적 대립의 구조가 자리잡고 있음을 밝혀낸 레비스트로스는 언어학의 로만 야콥슨, 정신분석학의 자크 라캉과 함께 구조주의 시대를 열어 젖힌 20세기 지성계의 거목으로 꼽힌다. 인간의 의식이나 사회 제도가 생물학이나 개인 심리 차원으로 환원될 수 없는 ‘차이의 관계망’ 속에서 구성된다는 구조주의의 발견에 대해 20세기 지성사는 “데카르트 이래 인류가 자부해 온 주체의 존엄성을 영원히 사라지게 만든”(푸코) 혁명적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1993년 <보기 듣기 읽기>라는 비평집을 낸 뒤 모든 대외 활동을 접었던 까닭에 레비스트로스의 존재는 15년 가까이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져 있었다. 그사이 프랑스에서는 지난 5월 그의 저술 7편이 갈리마르출판사의 ‘플레이아드 총서’로 묶여 나온 것을 계기로 <누벨 옵세르바퇴르> 등의 매체가 ‘레비스트로스 특집’을 대대적으로 다루기도 했다. 하지만 100번째 생일을 일주일 남짓 앞둔 19일 현재까지도 프랑스를 제외한 서방 언론의 반응은 조용하기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 ‘구조주의의 변방’ 한국에서 그의 탄생 100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학술대회가 열린다는 것은 하나의 ‘사건’에 가깝다. 한국의 인문사회과학계에서 레비스트로스는 헤겔·하이데거로 상징되는 독일 철학과, 미드·래드클리프브라운 등의 영미 인류학에 밀려 변변한 학맥조차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기호학회가 22일 서울 덕성여대에서 ‘레비스트로스 탄생 100주년-구조·탈구조와 우리’라는 주제로 개최하는 학술대회에선 원로 학자인 김형효·임봉길 교수의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10편의 논문이 발표된다. 최용호(한국외대)·박여성(제주대)·김기국(경희대)·윤성노(숭실대) 교수 등 인류학·철학·불문학·국문학계에서 구조주의 방법론을 통해 레비스트로스와 관계를 맺은 학자들이 총출동한다.

» 1981년 10월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초청으로 방한한 레비스트로스(오른쪽에서 두번째) 부부가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해 전통 한옥구조를 둘러보고 있다. 한길사 제공

사실 레비스트로스와 한국의 인연이라면, 그가 1981년 10월 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초청으로 방한해 20일 가까이 머물며 경주와 통도사 등을 방문한 뒤 돌아갔다는 것 정도다. 그의 존재가 알려진 것도 1968년 방한한 프랑스 문학비평가 질베르 뒤랑이 강연을 통해 그의 이름을 언급한 뒤, 같은해 잡지 <사상계>에 3회에 걸쳐 ‘레비스트로스 기획’이 연재되면서부터다.

개인적 친분을 유지하는 학자도 그의 대표작 <신화학> 1·2권을 번역한 임봉길 강원대 교수가 유일하다. 임 교수는 프랑스 인류학의 대가 마르셀 모스 밑에서 레비스트로스와 함께 수학한 조르주 콩도미나스 교수에게서 인류학을 배웠다. 임 교수는 “3년 전 번역한 <신화학> 1권을 레비스트로스 교수에게 보냈더니 ‘표지 디자인이 좋다. 한글도 아름답다’는 내용의 친필 답장을 보내왔다”며 “지난해부터 기력이 쇠해져 파리의 집에서 칩거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1989년 <구조주의의 사유체계와 사상>이라는 책을 통해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사상을 국내에 본격 소개한 김형효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한국에서 구조주의의 ‘학문적 시민권’ 획득이 지연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프랑스어를 모르고, 또 구조주의 이론 자체가 워낙 난해하니까 철학이나 인류학 쪽에서는 제대로 소화를 못했다. 게다가 감정으로 모든 것을 결단내는 한국 같은 나라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초월·선험적 구조’를 중시하는 구조주의가 설 자리가 있었겠는가.”

송효섭 기호학회장은 “포스트모던과 탈구조가 논의되는 21세기의 시점에서 그의 이론과 방법론은 아직도 달성해야 할 목표이자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며 “구조주의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국내의 석학과 중진, 신진기예를 망라해 그의 탄생 100년이 던지는 의미와 공과를 짚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이세영 기자)

08. 11. 19.

P.S. 레비스트로스 혹은 구조주의와 관련한 신간은 뜻밖에도 수학사에 관한 책이다. 아미르 악젤의 <수학이 사랑한 예술>(알마, 2008)이 그것. "구조주의 운동이 실은 한 사람의 천재 수학자와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는 책"이라고 소개돼 있는데, 진중권 교수의 평은 이렇다.

이 책은 현대 수학의 역사에 관한 보고이자 구조주의 운동 역사에 대한 충실한 기술이다. 그동안 구조주의에 대한 연구는 언어학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거기에 수학이라는 또 하나의 기둥이 있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레비-스트로스의 예가 보여주듯이 구조주의 운동은 언어학이 발견한 구조의 개념을 수학으로 형식화하여 다른 분과 학문에 적용시킨 하이브리드 전략의 선물이었다. 나아가 그 전략은 학문의 영역을 넘어 현대의 예술과 문학에까지 확장되었다. 그렇게 풍부한 결과를 낳은 위대한 정신적 창조의 바탕에 수학이 깔려 있었음을, 저자는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댓글(4) 먼댓글(1)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중국에서 출간되고 있는 레비스트로스 문집
    from 순간과 영원 2008-11-20 22:32 
    레비 스트로스가 이달 28일에 100번째 생일을 맞는다고 한다.(관련소식: 한겨레 보러가기) 로쟈님의 서재에서 소식을 접한 김에 진작부터 생각하고 있던 정리를 한번 해 볼까 한다. 즉, 중국에서는 이들 사상가들, 혹은 인문사회과학 도서들이 얼마나, 어떤 게 번역되었을까? (서점을 훓어보다가,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검색하다가 이런 건 대충이라도 정리를 해 둬야지 마음만 먹었다가 계속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완전하지는 않겠지만 지금이라도 보일때마..
 
 
놀이네트 2008-11-19 21:32   좋아요 0 | URL
저는 레비스트로스보다는 프로프(이종진 교수는 블라지미르 쁘로쁘가 맞다고 하시는 듯)가 훨씬 좋던데요. 머리가 딸려서 그런지... 로쟈님 전공이 러시아 문학이신데 프로프 좀 더 번역하시면 어떨까요. ^^;;

로쟈 2008-11-19 21:48   좋아요 0 | URL
프로프는 신화학자라기보다는 민담학자이니까 전문분야는 좀 다르죠.^^ 아실 듯한데 <민담의 형태론>은 중역이긴 하나 2종의 번역본이 있고, <민담의 역사적 기원> 등도 번역돼 있습니다. 웃음에 대한 책은 번역중인 걸로 알고요. 주저들은 다 나오는 셈인데요...

노이에자이트 2008-11-20 13:19   좋아요 0 | URL
마르셀 모스의 제자의 제자가 한국에도 있군요.모스가 뒤르켕 제자이니 뒤르켕 학맥이기도 하겠구요.

로쟈 2008-11-20 20:45   좋아요 0 | URL
제자가 곧바로 '햑맥'을 뜻한다면, 국내에도 어지간한 학맥은 다 있을 듯싶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