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은 문학기사를 옮겨놓는다. 조세희 선생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출간 30주년을 맞아 오늘 교보문고에서는 기념행사가 있었다 한다. 개인적으로 <난쏘공>은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베스트셀러이다. 70년대 후반 매주 베스트셀러 통계가 방송될 때 언제나 1위는 <난쏘공>이었다(때문에 당시엔 <난쏘공>이 대중문학 작품인 줄 알았다. 그게 어즈버 30년 전이다!). 이번에 30주년 기념 문집까지 출간됐지만, 정작 작가가 바라는 세상은 <난쏘공>이 더 이상 읽히지 않는 사회이다. 아직 요원해 보인다...

한겨레(08. 11. 14) ‘난쏘공’ 안읽히는 사회 오길 그토록 바라건만…

자기 작품이 널리, 세대를 거듭해 읽히기를 원치 않는 작가가 있을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을 쓴 조세희(65)씨는 이 점에서 확실히 예외적인 인물이다. 그는 난장이 가족의 절규가 호소력을 갖지 않는, 상식과 순리가 지배하는 평범한 세상을 기다려 왔다. 그러나 <난쏘공>을 찾는 독자는 해마다 늘었다. 2만에서 4만, 다시 6만으로. <난쏘공>의 판매량은 이 사회에 미만한 ‘고통의 총량’에 정확히 비례했다.


지난 11일 <난쏘공> 발간 30년을 기념해 그를 만났다. 30년이면 ‘팬지꽃 앞에서 줄이 끊어진 기타를 치던 영희’ 세대의 여자들이 <난쏘공>의 대학생 독자 두엇은 능히 길러냈을 세월이다. 이명박식 토건논리대로라면 “낙원구 행복동 난장이가 살던 집을 부수고 지어진 그 아파트가 이미 재개발되어, 하늘을 찌르는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로 탈바꿈하기에 충분한 시간”(한홍구)이기도 하다. 그사이 <난쏘공>은 100쇄(1996년 4월)와 200쇄(2005년 11월)를 넘기고 100만부(2007년 9월)를 찍었다.


“내가 ‘난장이’를 쓸 당시엔 30년 뒤에도 읽힐 거라곤 상상 못했지. 앞으로 또 얼마나 오래 읽힐지, 나로선 알 수 없어. 다만 확실한 건 세상이 지금 상태로 가면 깜깜하다는 거, 그래서 미래 아이들이 여전히 이 책을 읽으며 눈물지을지도 모른다는 거, 내 걱정은 그거야.”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파괴를 견디고’ 따뜻한 사랑과 고통받는 피의 이야기로 살아 독자들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칼’의 시간에 작은 ‘펜’으로” <난쏘공>을 썼다고 했다. 이런 <난쏘공>을 향한 평가가 마냥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계급’과 ‘전망’에 대한 신경증적 강박이 짓누르던 시절, <난쏘공>은 곧잘 황석영의 <객지>와 비교당했다. “<객지>와 <난쏘공>의 차이는 노동계급에 대한 근원적 신뢰인가 감상적 연민인가, 동일시인가 대상화인가에 있다”는 평은 점잖은 축에 속했다. 민중문학 진영의 저명한 평론가는 “노동운동을 감상적 온정주의의 대상으로 만들어 혁명적 전망을 차단한다”고까지 날을 세웠다.

“80년대에 내 작품에 대한 비판이 쏟아질 때, 난 그 사람들이 얘기하는 루카치의 리얼리즘 문학론이 뭔지 몰랐어. 따져보면 그 사람들 말이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런데 당시 내 책을 ‘노동자 팔아먹는 지식인 소설’이라고 앞장서 공격하던 사람들이 돌연 태도를 바꿔 보수진영으로 투항한 걸 보면 쓸쓸해.”

30년을 기념해 후배·제자들이 펴낸 헌정 문집의 제목은 <침묵과 사랑>이다. 사랑은 조씨가 <난쏘공>에서 꿈꾸던 새로운 세상의 작동원리다. 30년 전 그는 난장이 아들 영수의 입을 빌려 썼다. “아버지가 그린 세상에서는(…) 비도 사랑으로 내리게 하고, 사랑으로 평형을 이루고, 사랑으로 바람을 불러 작은 미나리아재비 꽃줄기에까지 머물게 한다.”

그러나 완강한 현실은 그의 바람에 증오로 응답할 뿐이었다. 침묵은 그래서 조씨가 택한 세계와의 대면 방식이 됐다. 이런 점에서 <침묵과 사랑>이란 제목은 <난쏘공> 이후 조세희의 삶을 응축시킨 단어들의 조합이자, 침묵을 깨고 사랑이 필요한 현실을 다시 이야기하라는, 이 시대 수많은 난장이들의 간구와 염원의 표현이다.

후배들은 애초 이 책을 ‘80년 광주’의 역사적 기원을 다룬 조씨의 첫 장편 <하얀 저고리>와 함께 출간하려 했다. 그런데 조씨의 건강이 발목을 잡았다. 그는 “젊었을 때 막 뛰쳐나와 써 달라던 단어들이 사라졌다”고 털어놓았다. “집중하기 어렵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얀 저고리>는 어떻게든 살아 있는 동안 쓸 거야. 인생 일흔까지 채우면서라도 끝을 내고, 내가 찍은 사진과 함께 후손들에게 편지 형식으로 글을 띄우려고 해. ‘난 300년 전 살았던 할애비인데, 이것 좀 확인해다오. 박정희는 아직도 위대한 인물로 추앙받는지, 독일의 히틀러는 또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 우리는 광화문 네거리에 절박하고 조급한 마음으로 뛰쳐나갔다가 허탈한 마음으로 헤어졌던 불행한 세대란다’라고.”

<난쏘공> 30돌을 기념하는 작품 낭독회는 14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린다. 조씨와 배우 조재현, 소설가 이혜경씨 등이 참석한다.(이세영 기자)

08. 11. 14.

P.S. 작년 가을 <난쏘공> 100만부 돌파 기념 페이퍼로는 '조세희가 쏘아올린 큰 공'(http://blog.aladin.co.kr/mramor/1543793) 참조. 한편 계간 <작가세계>는 조세희를 두 차례 특집으로 다룬 바 있다. 미완의 <하얀 저고리>도 잡지에 연재됐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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