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시사IN에 실은 출판기사를 옮겨놓는다. 자크 랑시에르의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길, 2008)를 다루고 있는데, 분량도 줄어든 탓에 정말로 '가장자리'만 언급하고 말았다. 본론은 따로 써야 할 모양이다...

시사IN(08. 10. 27) 랑시에르를 읽는 ‘호사’ 누려보니…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제목이 그렇다. ‘정치’도 아니고 ‘정치적인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가장자리’는 또 무언가? 올해부터 본격 소개되기 시작한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의 ‘대표작’을 손에 들고 가장 먼저 던질 법한 질문이다. 초판이 아닌 수정증보판을 옮겼기 때문에 국역본에는 한국어판 서문까지 포함해서 저자의 서문만 세 편이 실려 있다. “한국의 독자들 손에 도달함으로써, 이 책은 1986년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시작한 시공간 속의 여행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한국어판 서문은 예외적일 만큼 긴 분량이며 그 자체로 자세한 해제를 겸한다. 거기에 ‘옮긴이의 덧말’까지 말 그대로 덧붙어 있으니 독자로서는 예상치 못한 호사다.

미테랑, 현자의 ‘권위’로 시라크 압도


‘정치의 종언’을 주제로 한 첫 장에서 랑시에르가 검토하는 것은 1988년 당시 프랑스 대통령 미테랑과 총리 시라크가 맞붙었던 대통령 선거이다. 1981년 사회당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미테랑은 공약을 110개 내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재선에 임하면서 그는 공약을 단 하나도 제시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반(反)공약’을 공약으로 내세운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시라크를 압도하며 여유 있게 재선에 성공했다. 비결은 무엇일까?

‘젊은 총리’ 시라크가 ‘늙은 대통령’ 미테랑을 겨냥해 내세운 건 약속과 역량, 말과 현실, ‘지키지 못할 약속이나 하는 인간’과 ‘언제나 진보하는 역동적 인간’이라는 이분법이었다. 그러한 이분법이 ‘미테랑이냐 시라크냐’ 하는 양자택일 구도라고 선전한 것이다. 반면에 미테랑이 유일하게 내세운 건, 예외적인 공약 단 하나였다. 만약 그러한 이분법에 빠지게 된다면 프랑스에서는 내분과 내전이 일어날 것이라는 ‘최악의 약속’, 그것 하나였다. 그는 약속 대신에 현자의 ‘권위(potestas)’를 내세운 것이고, 그로써 시라크의 ‘역량(potentia)’을 압도할 수 있었다.

랑시에르가 보기에 이것은 ‘약속의 종언’ 곧 ‘정치의 종언’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는 그것이 갖는 의미를 해명하기 위해서 철학자답게 플라톤의 <국가>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같은 그리스 철학 경전을 재검토한다. 그러고는 마지막 장에서 ‘정치에 대한 열 가지 테제’까지 도출해낸다. 하지만 그러한 호사에도 불구하고 그의 여정을 한국어 번역본으로 따라가는 건 손쉽지 않다. 문장들이 내내 머리의 가장자리에서만 맴돌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소개되는 책이지만 아직 갈 길이 먼 듯하다.

08.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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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10-31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국역본 출간 소식을 가장 먼저 챙겨두고ㅡ이전에 보고 꽂아두었던 원서도 옆에 딱 꺼내놓고서ㅡ비교독해/번역점검을 할 준비를 마쳤는데요, 과연 이번에는 어떨지 사뭇 기대감을 갖고 있습니다. 독자들에겐 호사(豪奢)이자 동시에 호사(好事)이기도 하지만, 그 호사에 다마(多魔)가 끼지 않을까 언제나 걱정입니다(그리고 이 걱정이 언제나 기우(杞憂)에 그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12월에는 랑시에르가 서울을 방문해 몇 개의 강연을 연다고 하니, 몇몇 흥미로운 장면들이 펼쳐지지 않을까 역시나 기대하고 있습니다.

로쟈 2008-11-01 08:41   좋아요 0 | URL
네, 독후감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