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소개하진 않았지만 최근 하워드 진의 교육론을 담은 책 <하워드 진, 교육을 말하다>(궁리, 2008)가 출간됐다(원저는 2004년에 나왔다). 마땅한 리뷰가 없던 차에 이번주 시사인의 출판면에서 다루고 있기에 옮겨놓는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19). 최소한 요지 정도는 파악해놓는 게 좋겠다.

시사IN(08. 10. 22) 교육이 학생을 갓난아이로 만들어버리니…

“우리 모두가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법에 대해 경외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법이 정한 대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발상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발상은 한 개인으로서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할 권리를 박탈하여, 자기들끼리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결정해온 소수의 법률 제정자 집단한테 모든 권한을 이양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하워드 진의 말이다. ‘소수의 법률 제정자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다수당의 밀어붙이기식 전횡이 걱정되는 현실, 법질서 확립을 유달리 강조하지만 그 법질서가 정권을 비판하는 이들에게만 유달리 엄격하게, 때로는 초법적으로 적용되기도 하는 현실. 지금 여기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볼 때 하워드 진의 말이 주는 울림은 더욱 크다. 시시비비를 토론하는 자유로운 공론의 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하워드 진은 이렇게 말한다.

“교사들은 종종 자신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옳고 그름은 주관적인 문제이며, 그런 문제는 학생과 교사들의 의견이 일치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불일치의 영역이 가장 중요합니다. 옳고 그름과 정의의 문제는 언제나 제기되어야만 하는 문제입니다.”

미국 교육은 ‘대량 기만’이다
미국의 비판·실천적 지성의 대표자이자 역사학자·극작가·사회운동가·대학교수로 활동하는 하워드 진, 그리고 보스턴 대학 교수이자 교육비평가인 도날도 마세도. 이 공동 저자가 말하는 오늘날 교육의 문제점과 앞으로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비단 교육 분야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예컨대 마세도는 오늘날 미국이 당면한 교육의 문제를 ‘대량 기만’(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침공의 명분으로 내세운 ‘대량’ 살상무기를 빗댄 표현)이라고 정의한다. 그 대량 기만은 성공적이었고, 그래서 치명적이다.

“아직까지 이라크가 9·11과 모종의 연관이 있다고 믿는 대학생이 60퍼센트가 넘는다는 사실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는 정치 선동을 견제할 비판적 사고에 대한 교육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정말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우리가 열망하는 민주주의 이념에 비춰볼 때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닙니다. 학생들이 교조주의 체제의 진군 명령에 기꺼이 복종하는 자동인형이 될 정도로 길들여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워드 진과 마세도에 따르면 미국의 교육체계는 학생에게 이상과 대안을 꿈꿀 것을 권하는 대신 ‘사회 내 모순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그리고 그것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으로 여기도록’ 가르친다. 부조리와 모순에 분노하고 저항할 수단과 방법을 전수하는 대신 변화의 원동력인 창의적 사고와 ‘마음 깊이 진정으로 느끼는 본질적인 앎’에 도달하는 길을 가로막는다. 이상과 대안을 꿈꿀 것을 권하는 데 역사 교육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여러분이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모른다면, 여러분은 마치 어제 갓 태어난 것과 같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제 갓 태어났다면, 확성기와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우리는 이라크를 폭격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대통령에게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어느 정도 역사를 알고 있다면 ‘잠깐만요, 이 문제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보죠’라고 말할 것입니다… 비록 역사가 어떤 특수한 상황에 담긴 진실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려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여러분에게 경계하고 의심해봐야 한다는 것은 가르쳐줍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큰일이다. 이제는 역사 교과서 내용마저도 정부의 입맛에 맞도록 고치려 드는 형편이니, 우리 교육이 학생들을 미성숙에서 성숙으로가 아니라, 미성숙한 갓난아이로 되돌려 놓으려는 것인가.(표정훈_출판평론가)

08.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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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10-22 22:33   좋아요 0 | URL
한국교육은 세계 최악 수준이 아닐까 합니다. 거기서 살아 남아서 '총체적인 앎'에 대해 기웃거릴 수 있다는 것도 제가 상당히 혜택받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가장 필요로하지만 그런 기회를 얻지 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거의 다수라고 보입니다. (아이보느라 책 못보는 제 와이프도 그 중에 하나지요.) 결국 '비제도적 교육' 이라는 것도,또한 '전인적 교육'이란 것도 어느 정도 교육수준과 경제적 안정이 보장된 사람들이 독점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 이것은 또 다른 순환적인 고리를 만듭니다.

가끔 이런 것이 상징자본을 하나 더 획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특히 경제적 자본 획득이 요원한 경우에 말이지요. 정작 '앎'이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이들에겐 그 기본적 접근자체가 막혀있다는게 아닐까 싶어요.

표정훈은 말을 돌려서 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자란 학생들이 이미 미성숙한 갓난아이인 어른이 되어 리바이어던의 사회 속에서 무간도를 만들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들 모두가 미성숙한 존재들입니다. 무간도를 만든 것도 우리들이구요. 그 안에 아이들을 집어 넣고 또 그걸 걱정하며 비판하는 것도 우리들이지요. 이명박이 아니구 말이지요. 전 특히 뭐 쫌 안다는 저같은 '꼴랑 진보' 들이 '뭐 쫌 안다'는 이유로 사실 가장 큰 책임이 있어 보여요.

어른이요...푸훗...어른 몇 명 안보이던데요.ㅋㅋ

로쟈 2008-10-22 23:00   좋아요 0 | URL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한다니까 세계 최악의 수준은 아니겠지요(아님 그 교육열 때문에 최악이려나).^^; 그럼에도 '대량 기만'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현실이고 보면 얼추 교육의 '미국화'에는 성공한 듯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0-23 16:22   좋아요 0 | URL
그래도 미국은 밤 늦게까지 강제학습을 시키진 않잖아요.하워드 진이 우리나라에 와서, 아침에 밥도 못먹고 학교가서 심야에 귀가하는 학생들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저는 다 필요 없고 고등학교는 아침 9시에 시작해서 오후 5시에 끝냈으면 좋겠어요.

로쟈 2008-10-23 20:43   좋아요 0 | URL
요즘은 학교가 아니라 학원에서 늦게 오는 건데요.^^; 광주는 다른가요?..

노이에자이트 2008-10-25 15:24   좋아요 0 | URL
고 1도 9시까지 잡아두고 고3은 10시까지.그러니 평일은 학원은 못 다니는거 같아요.

로쟈 2008-10-25 17:08   좋아요 0 | URL
지방이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식이면 학원들이 망하죠.^^;

우로소 2008-10-26 14:05   좋아요 0 | URL
뭐 9시까지 학교공부 쫌 한다고 학원들이 망할정도면야 뭐 애초에 우리나라의 입시 전쟁은 있지도 않았죠^^; 일부 서울 쪽만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저녁 9시까지 심하면 10시까지 야자를 합니다 그리고 그 중 한 70퍼센트 정도는 다시 학원차에 타서 학원으로 가던가 혹은 과외를 합니다 그래서 한 모든게 총체적으로 끝나는 시간은 한 새벽 1~2시 정도죠 방학의 한 1/2정도는 또 보충등으로 5시까지 학교에 의무적으로 가야되구요

그나마 1.2학년들은 이정도죠 고3쯤되면 공휴일도 토요일도 없습니다 그저 무조건 학교가서 죽어라고 암기하는 수밖에 없는거죠 그나마 우리나라의 교육보다 몇배나 더 숨통이 더 트이는 미국을 저정도로 비난하는데 하워드 진이라는 저분은 우리나라왔으면 그 기막히고 황당한 교육열에 뭐 그저 할말을 잃을것 같네요 ...


로쟈 2008-10-26 19:26   좋아요 0 | URL
'야자'의 효율성이 거의 없는 걸로 아는데, 여전히 그런가 보군요. 학원들 사정을 더 봐주려면 야자를 없애야 할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