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에 한번 서점에 들렀을 때 좀 특이하다 싶었던 책은 로렌 포프의 <내 인생을 바꾸는 대학 - 작고 강한 미국대학 40>(한겨레출판, 2008)이다. 미국 대학 가이드북이 나온 거야 특이하지 않지만 책을 낸 곳이 한겨레출판인 것은 의외였다. 책은 자세히 훑어보지 않았고 주말 리뷰에서 내막을 읽을 수 있겠거니 했다. 그 '내막'을 알려주는 기사를 옮겨놓는다(대학교육의 목표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수능이 얼마남지 않았고 진로와 대학 선택 문제로 고민하는 고3 가족들이 적지 않겠다. 우리에게도 좀더 많은 '작고 강한' 대학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한겨레(08. 10. 18) 미국 지식인들은 어떤 대학에 자녀를 맡길까

‘이 책을 기어코 번역하고, 또 서평까지 써서 한국에 알려야 하는가.’ <내 인생을 바꾸는 대학>이 번역된 뒤 리뷰를 쓰기 위해 그것을 손에 쥐었을 때 맨 먼저 스친 생각이다. 이 책이 전하는 소중한 교육현장들이 한국의 흉물스런 입시교육과 명문대 진학 욕구 때문에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토플과 에스에이티(SAT·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 준비를 시키며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 등 이른바 명문대 입학전형도 맞춤형으로 돌파해 내는 한국의 학원들과 극성 학부모들에게 이 책이 소개하는 학교들은 좋은 먹잇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학교들이 정말 원하는, 또 이런 학교들을 정말로 필요로 하는 학생들이 누려야 할 기회를 빼앗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지 않을까. <뉴욕 타임스> 교육담당 에디터를 지낸 로렌 포프가 쓴 이 책은 충실하고 인간적인 대학교육을 원하는 미국 사회의 학부모와 지식인들에게는 가장 유명한 대학입학 가이드이다.

이 책이 전하는 미국의 ‘작고 강한’ 40개의 대학 상당수는 명문 대학원 진학, 인명사전 <마퀴스 후즈 후 인 더 월드>에 이름이 오른 사회저명인사 배출, 교수 등의 학자 배출 등에서 아이비리그 대학을 능가한다. 동문 4명 중 1명이 박사이고 과학자 배출이 미국 전체 대학 중 1위인 리드대학(오리건주 포틀랜드), 졸업생의 70%가 명문대 대학원에 진학하는 말보로대학(버몬트주 말보로), 99%가 넘는 취업률의 가우처대학(메릴랜드주 타우슨), 최고경영자 배출에서 미국 전체 대학 중 4% 안에 드는 앨러게니대학(펜실베이니아주 미드빌), 여성지도자 배출 1위에다 과학자·학자 배출이 미국 대학 중 전체 10위권인 아그네스스콧대학(조지아주 디케이터) 등이 대표적이다.

학제 운영이 독특하고 다양해, 학생 스스로 전공을 설계해야 하는 대학이 있는가 하면 4년 동안 모든 학생이 똑같은 필수과목만 수강하는 대학도 있다. 대부분 대학은 해외 학기와 인턴십을 과감하게 운영하고 있다. 100권의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것으로 4년 과정을 마치는 세인트존스대학(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 뉴멕시코주 산타페), 학년·학과·학점이 없고 각자 맞춤형 전공을 설계하는 햄프셔대학(매사추세츠주 애머스트), 교수-학생 공동 연구 기회를 미국에서 가장 많이 제공하는 호프대학(미시건주 홀랜드), 인턴십과 해외 수업에 3학기를 할애하는 칼라마주대학(미시건주 칼라마주) 등을 꼽을 수 있다. 지은이는 이 책에 소개된 세인트존스, 리드, 뉴, 말보로 네 곳을 미국에서 가장 지성적인 대학으로 꼽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모든 학교는 캠퍼스 구성원들이 가족처럼 친밀하게 지내고, 소수민족과 외국 학생을 포함해 출신 배경이 다양한 학생들을 보듬어 안는 공동체다. 무엇보다 자신의 연구가 아니라 학생을 가르치고 돌보는 일에 전념하는 교수의 역할이 강조된다.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 대학들의 핵심가치이다. “이곳에서 가르침은 사랑의 행위다. 교수들은 학생들의 멘토이고, 하이킹 동료이자 스포츠 동아리의 팀원이며, 저녁 식사의 동반자이고 친구다. 배움은 경쟁이 아닌 협력의 작업이다.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더 커지도록 만드는 강력한 시너지 공간이다.”

그럼, 입시교육에 포로가 된 한국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사항을 말해보자. “그 학교 들어가기 힘들어? 입시성적이 얼마나 돼야 해?” 이 학교들은 아이비리그 등 명문대 입학에 필요한 그런 높은 시험점수를 꼭 요구하지 않는다. 공부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중위권의 에스에이티 점수로도 입학할 수 있다. “다양성의 혼합은 반드시 필요하다. A학점 학생들이 있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B학점 C학점 학생들이 모여 있을 때 보다 생산적인 토론이 이뤄진다.”

이 책은 단순한 대학입학 가이드가 아니다. 점수와 간판에 찌든 한국의 교육을 반성케 하는 생생한 현장사례를 담고 있다.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입시교육에서 좌절한 것이 결코 인생에서 좌절하는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이 책이 한국에 소개된 이유이다. 1996년 이 책의 초판이 출간된 직후에는 비영리기관 `내 인생을 바꾸는 대학’(www.ctcl.org)을 설립했다. 아흔여덟 살의 지은이는 최근까지도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통해 학생을 보듬어 능력을 키우는’ 교육철학을 전파하다가 지난달 노환으로 별세했다.(정의길 기자)

08. 10. 19.

P.S. 봄에 나온 책 존 터먼의 <미국이 세계를 망친 100가지 방법>(재인, 2008)에는 100가지 리스트 외에 '미국이 그나마 제대로 하는 일 10가지(Ten Things America Does Right)'가 더 붙어 있다. 아니 붙어 있어야 했다. 원서에는 있지만 국역본에는 빠졌는데, 좀 유감스럽다(전체 목차는 http://www.johntirman.com/The%20List.html 참조). 그 '제대로 하는 일' 리스트의 첫번째가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이었다. 미국에 대한 냉정하면서도 신랄한 비판자인 저자가 그래도 미국인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내세운 항목이어서 인상적이었다. 물론 등록금은 독일이나 프랑스 대학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게 흠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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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부 2008-10-20 10:52   좋아요 0 | URL
음..요즘 그런 생각이 들어요...우리사회에 대안초등, 중고등과정은 있는데 왜 대안 대학은 없을까? 정말 필요할꺼 같은데..특히 인문사회과학 분야는....쩝

로쟈 2008-10-20 18:51   좋아요 0 | URL
경제난 덕분에 혹 생길 수도 있겠죠. 어차피 먹고 살기 힘들다면 대안적인 공부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