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학자(미국문학자라고 해야 하나?) 김욱동 교수의 신간 <소설의 제국>(소나무, 2008)이 출간됐다. 짐작엔 예전에 나온 <미국소설의 이해>(소나무, 2001)와 짝이 되는 게 아닌가 싶은데(그밖에 <윌리엄 포크너>란 묵직한 연구서가 있다), 요즘 미국 경제가 전세계적인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탓에 미국소설을 다룬 교양서조차도 눈길을 끈다. '소설로 읽는 아메리카의 초상'이란 부제에 맞게 '미국'에 방점을 두고 읽을 수도 있겠다. 11편의 작품(작가)을 다루고 있는데, 대부분이 번역돼 있기에 작품 감상과 병행해도 좋겠고. 미국소설에 관한 교양강좌라고 해야 할까?..
경향신문(08. 10. 06) "미국문학의 고전을 통해 본 비틀어진 청교도 이상 그려”
김욱동 한국외국어대 통번역학과 교수(60·사진)가 신간 ‘소설의 제국’(소나무)을 선보였다. 부제를 ‘소설로 읽는 아메리카의 초상’이라 붙이고, ‘주홍글자’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위대한 개츠비’ ‘앵무새 죽이기’ 등 11편의 작품을 인종·계급·젠더·자연이라는 네 개의 코드로 바라본 책이다. 이 가운데 ‘주홍글자’ 등 4종은 김 교수 스스로 새 번역본을 선보였다.
2005년 서강대 교수직을 명예퇴직한 그는 미 듀크대와 노스캐롤라이나대에 3년간 머물렀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수사학·생태주의 등 새로운 문예사조와 이론을 국내에 활발히 들여와 주목받았는데, 지난 3년 동안은 한국계 미국작가 연구에 힘을 쏟는 한편 미국문학의 고전을 새로 번역하고 분석했다. ‘소설의 제국’도 그 작업의 성과다.
“텍스트의 무의식을 읽으려고 했어요. 미국은 자유와 평등의 이상을 추구했으나 표면적인 이상 밑에는 원주민 학살, 흑인노예제도, 물질주의 등의 어두운 측면이 있지요. 비틀어진 청교도들의 이상을 미국소설의 고전에서 분석하려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눈여겨볼 만한 소설은 어떤 것인가요.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는 남부를 배경으로 유복한 변호사 가문과 흑인, 농부를 대비시켜 인종문제를 생각해 보는데 유익합니다. 마여 앤젤루의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 역시 흑인·여성이라는 이중의 질곡을 잘 그려내고 있고요. ‘위대한 개츠비’는 행복의 추구라는 미국적인 꿈이 물질주의와 손잡으면서 변질, 타락하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미국소설이 그 뿌리인 영국소설이나 유럽소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유럽소설은 개인과 사회의 갈등에서 항상 사회의 손을 들어주는 편이지요. 그러나 미국소설은 개인의 손을 들어줍니다. ‘허클베리 핀…’이나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들은 사회의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대신 자신만의 길을 모색하지요.”
-한국독자들이 미국소설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세계에서 여섯번째의 다문화사회라고 합니다. 이제 배달민족의 신화는 사라졌어요. 계급·인종·젠더 때문에 억압받는 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필요합니다. 자연 역시 그동안의 인간중심주의에서 타자로 배척됐지요. 미국소설은 다문화주의, 타자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국계 미국작가 연구는 어떻게 진척되고 있습니까.
“지난 3년간 연구를 토대로 ‘강용흘 연구’와 ‘김은국 연구’를 냈고, 총론격인 ‘한국계 미국문학’도 완성 단계입니다. 요즘은 유일한의 ‘한국에서의 나의 소년시절’, 박인덕의 ‘9월 원숭이’ 등 한국계 미국작가의 자서전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대개 한국계 미국문학의 시초는 강용흘의 ‘초당’(1931년)으로 알려졌는데 미국 체류동안 독립운동가 서재필이 ‘한수의 여행’(1922년)이란 소설을 썼던 걸 알게 됐습니다.”
-미국문학과 문화 연구자로서 최근 미국 월가의 붕괴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자본주의 자체의 붕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대공황을 겪었던 것처럼 시행착오를 거쳐 발전하는 과정이겠지요. 미국 본토보다 오히려 아시아가 몸살을 앓을 가능성이 높잖아요.”(한윤정기자)
08. 10. 06.
P.S. 인터뷰기사에도 언급이 되고 있지만 김욱동 교수는 한국계 미국작가 연구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이제까지 나온 <김은국>, <강용흘> 외에도 더 나오는 듯하다. 포스트모더니즘(과 바흐친) 전도사, 포크너 전공자, 미국소설 번역자이자 연구자 등이 그간에 알려진 그의 면모인데, 거기에 한국계 작가 연구자란 또 하나의 마스크를 보태야겠다(하긴 <광장> 연구서를 쓰기도 했다). 부지런하기로는 영문학계에서 선두에 설 만하다. 포스트모더니즘 소개서 몇 권의 이미지도 올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