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의 대표적인 완소작가 김연수의 신작 장편소설이 출간됐다. <밤은 노래한다>(문학과지성사, 2008). 잡지 연재시에 읽은 적이 없기 때문에 줄거리도 모르고 있었는데, 리뷰기사들을 보니 1930년대 북간도의 민생단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일종의 역사소설인 것이다. 책을 언제 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기사는 챙겨놓는다(약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다). 작가의 사진은 한겨레의 리뷰(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13917.html)에서 가져왔다.
한국일보(08. 10. 04) 촛불시위의 낙천적 젊은이들 보고 주인공이 복수하는 결말 수정했죠
"그 시절의 진실에 대해서 나는 아는 바가 하나도 없다. 지금은 이 세계에 객관주의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도 든다" (212쪽)
소설가 김연수(38)씨의 여섯번째 장편소설 <밤은 노래한다>는 가슴 뜨거웠던 어떤 젊은이들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다. 그 운명은 민족해방과 사회적 평등이라는 숭고한 꿈을 품은 채 일신의 안위를 포기하고 혁명에 투신했던 젊은이들이 종국에는 서로를 의심하고 배신하고 죽이게 되는 가혹한 운명이다. 작품의 배경은 일본제국주의와 동북아의 공산주의 혁명가들이 격렬하게 대치했던 1930년대초의 동만주. 개별 혁명가들의 견결한 이념과 달리 조선, 중국 그리고 국제공산주의운동가 등이 뒤엉킨 혁명조직에는 비극의 씨앗이 자라나고 있었다.
남만주철도의 측량기수로 용정에 파견된 김해연이 혁명조직의 일원이던 신여성 이정희와 사랑에 빠지면서 비극은 시작된다. 일본군 장교에 접근해 토벌대 정보를 조직에 보고하던 그녀는 정체가 발각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독립이라든지 해방이라든지 하는 말이 좀 시큰둥했던" 착한 식민지인이었던 김해연은 이정희의 자살로 우연찮게 항일혁명조직과 연계된다. 그리고 그는 이후 만주항일운동사의 귀퉁이에서 서로를 일제의 밀정으로 의심하며 자신들의 동지 500여명을 학살한 혁명가들의 정치투쟁으로 기록돼 있는 '반(反) 민생단 투쟁'의 세계를 몸으로 통과한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친구를 죽일 수 없는 아이의 세계에서, 친구라도 죽일 수 있는 논리를 받아들이게 되는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는 과정"이다. 이 소설은 따라서 잘 짜인 역사소설이자 애틋한 연애소설, 그리고 인상적인 성장소설로도 읽힌다.
소설의 화자가 경험하는 두 개의 세계는 낮과 밤이라는 상징으로 대비된다. 연인의 자살 소식에 충격을 받은 김해연은 황해와 중국해가 마주치는 다롄 앞바다에서 "나는 그 두 바다를 동시에 바라보면서 두 개의 세계에 대해 생각했다. 낮의 세계와 밤의 세계.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 그렇게 앉아 있다가 돌아오면 시내의 화려한 불빛들이 또 견딜 수 없이 공허했다"고 고백한다.
이 소설은 작가 김씨가 대학졸업 직후 잡지사 기자로 일하던 1995년 일본 학자 와다 하루키의 연구서에서 접한 '유격대원 출신이다. 민생단이라는 진술이 대단히 많다'라는 김일성에 관한 짧은 프로필 한 줄에서 잉태됐다. 그 한 줄의 섬광은 간도를 다룬 안수길 염상섭 등의 소설, 북한의 항일혁명사 소설 '불멸의 역사 시리즈' 에 대한 취재 등을 거쳐 그를 2004년 중국 옌지로 끌어들였다고 한다. 그의 9개월 간의 옌볜 체류는 시대의 광풍에 희생됐던 젊은이들의 사연을 다룬 이 소설로 결실을 맺었다.
김연수씨는 지난 봄 촛불집회 현장에 있었다고 했다. 그 경험은 이 소설에서 화자 김해연이 연인 이정희를 자살로 이끈 변절한 혁명가 최도식을 살해한다는 최초의 결말 대신, 최도식을 살려주는 것으로 바꾸도록 했다고 그는 말했다. 효자동의 전경들 앞에서 대중가요를 부르며 춤추던 젊은이들의 모습은 그에게 "반드시 복수할 필요는 없다. 당장 내 눈 앞에서 정의가 이뤄지지 않아도 좋다"는 낙천적 세계관을 긍정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발표작마다 역사적 문제의식과 신선한 소재, 탄탄한 취재, 그리고 빼어난 소설적 형상화로 주목받는 그의 역량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 장군의 포로로 잡혀간 두 조선인 형제의 곡절많은 귀향기를 소재로 한 새 장편을 이미 준비중이라는 그는 "<밤은 노래한다>를 쓰면서 나를 억압하던 내 안의 상처가 많이 치유됐음을 느낀다"고 말했다.(이왕구기자)
08. 10. 04.
P.S. 기사에서 개인적인 흥미를 끄는 건 두 가지이다. 첫째는 이 소설이 와다 하루키의 연구서에서 읽은 김일성에 관한 짧은 프로필에서 시작됐다는 것. 짐작에 그 연구서는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창비, 1992)일 것이다. 환생 모티브와 연쇄 살인범, 그리고 만주에서의 항일투쟁 등을 엮은 노희준의 소설 <킬러리스트>(랜덤하우스코리아, 2006)에 대한 해제를 쓰느라 나도 재작년 가을에 뒤적거렸던 책이다(이 해제의 파일은 잃어버렸다). 이 시기 역사에 대해서라면 두 작가가 정담을 나누어도 들을 만하겠다.
그리고 둘째는 "<밤은 노래한다>를 쓰면서 나를 억압하던 내 안의 상처가 많이 치유됐음을 느낀다"는 작가의 고백. 이런 건 쉽게 내비치는 게 아닌데, 여하튼 이번 작품이 작가의 '자기 치유적 소설'이라는 얘기이다. 이런 경우는 보통 작가의 데뷔작과 관련되는 경우가 많다. 작가세계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했던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세계사, 1994)와 같이 읽어볼 필요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밤은 노래한다>의 구상도 1995년의 일이었다고 하니까 이 두 작품은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는 어떤 소설이었나? 출간 당시에 챙겨읽지 않아서 확언할 수는 없지만 눈대중으로는 짐작해볼 수 있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고(故) 이문구 선생은 이렇게 평했다. "이 작품은 정보기관의 공작정치가 일시적으로 환상을 실현했던 어두운 과거사의 풍자적인 재구성을 통해서 냉전체제 붕괴 이후 그에 대신할 이념의 부재로 인하여 새롭게 꿈꿀 가능성이 있는 또다른 지배구조에 대한 예상문제의 제시로 읽을 수 있다." 젊은 작가이기 이전에 89학번 세대의 감각과 문제의식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작가는 당선소감에서 이렇게 적어놓았다.
이제까지 멋모르고 쓴 글로써 이 소설의 사회적 정치적 입지는 여지없이 드러났다고 믿는다. 나는 궁극적으로 소통불가능한 문학을 지양한다. 이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어쨌든 이 소설은 그러한 생각의 결과로 형성되었다. 뽑아주신 분들과 나를 키워준 모든 스승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이 소설을 나와 함께 뉴트롤즈의 아다지오를 들으며 87년 대선을 투표권이 없는 눈으로 지켜보았고 '영웅본색', '개 같은 내 인생', '천국보다 낯설은'의 순으로 영화를 보았던 나의 세대에게 바친다.
이런 고백이 작가 김연수의 '기원'이자 김연수 문학의 중핵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지금의 작가라면 이렇게 '대놓고' 쓰지 않을 것이다). 키워드는 '사회적 정치적 입지'(사회정치적 상상력) 그리고 '나의 세대'이다. 그리고 거기에 '대중문화' 체험이 덧붙여진다. 이 세 가지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문학은 '개인'에 함몰되거나 '대중성'에 투항한 문학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덧붙여 말하자면, 자기 세대, 혹은 자기 학번을 표나게 내세우는 작가로 내가 꼽을 수 있는 대표적인 두 사람이 김연수와 김종광이다. 김종광의 소설엔 <71년생 다인이> 같은 작품도 있다. 김연수의 <사랑이라니, 선영아>가 같은 시리즈의 작품으로서 그에 대응한다). 그러고 보면, 이 '의리형' 작가는 자신의 초심으로부터 몇 걸음 떼지 않았다, 라고 나는 눈감고도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