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브레이크에 아침에 읽은 칼럼을 옮겨놓는다(스크랩은 한번 더 읽는 효과가 있다).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한 김우창칼럼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에서부터 터진 이번 위기 국면이 과연 미국식 자본주의의 붕괴, 더 나아가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종말을 가져올 것인지는 두고볼 일이지만 개연성도 없지는 않아 보인다. 개인적으로 금융쪽에 대해서 아는 바도, 관심도 별로 없는지라(하긴 예금잔액이 별로 없기도 하다. 나는 '모기지'란 말의 뜻도 이번에 알았다, 아니 찾아봤다) 사태의 추이에 대해서는 기사나 칼럼에 의지하여 판단할 따름이다. 오늘 읽은 칼럼은 그래도 내가 다 이해할 수 있고 납득할 수 있었다. '사회적 독서'로 분류해놓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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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08. 09. 25) 금융위기 - 제도와 인간 가치
세계 굴지의 금융기관들이 줄지어 도산한다는 뉴스가 신문에 연일 보도되고 있다. 미국에서 시작한 도산과 파산의 폭풍이 영국과 기타 유럽 여러 나라의 경제를 흔들고 아시아에 밀려오고 있다. 무언가 대사변이 일어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물론 경제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에게 그 원인이나 연계관계 그리고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이 일이 범상스러운 일이 아님을 몸으로 느낄 수는 있다.
소위 서브프라임 주택 융자 위기가 이야기되더니, 금융관계회사라는 프레디맥과 패니메이, 리먼브라더스에 이어 AIG 보험회사 등이 파산하거나 도산 직전에 이르게 되었다는 보도가 연이어 세상을 어지럽게 했다. 다만 지금 말한 회사 중에 셋은 미국정부의 긴급조처로 파산을 면하게 되었고, 이어 미국정부는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위기로부터 금융회사들을 구출하기 위하여 의회에 7000억달러의 긴급예산 배정을 요구하였다. 이 액수는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 투입한 경비에 비교된다고 하니까, 그 규모의 크기가 얼마나 막대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조처로 일단은 사태가 수습될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의 위기는 몇 개의 큰 사고가 아니라 오늘의 국제 금융시장 체제 전체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드러내는 일이고 더 나아가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종말의 시작을 가리킨다는 관점도 대두하고 있다.
- 공익을 망각한 美금융기관들 -
시장원리주의에 대하여 비판적인 입장을 지켜왔던, 미국의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는 금융회사 도산을 방지하기 위한 미국정부의 조치를 하나의 거대한 위선에 해당한다고 비판하였다. 지금까지 금융회사들이 위험도를 적당히 호도했던 것은 사기이며, 정부가 그것에 대하여 눈감아 왔던 것은 무능 무책임한 일이었다. 그 결과가 이번의 사건인데, 평소에 금융시장 규제를 반대해온 회사들이 이제 와서 정부의 도움을 청하는 것은 위선적인 일이다. 이렇게 말하는 스티글리츠 교수는, 그러니까, 오늘의 사태에 대한 책임은 해당 기업체가 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오늘의 경제 체제 전체가 그러한 기업들의 파산으로 붕괴할 것으로는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선이라는 말의 진의(眞意)는, 적절한 규제 없이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시장인데, 그것을 감추려 했다는 것이다. 그는 상품의 안전성 보장을 적극화하는 몇 가지 안을 내놓았다. 거기에는 “붕괴를 허용하기에는 너무 비대한 회사”가 출현하는 것을 방지하고 그것을 분할하는 것과 같은, 공정 경쟁 확보를 위한 법을 강화하는 안도 있고, 금융회사의 보수 규정을 엄격화하는 일도 포함된다. 후자는 기업 간부들의 보수가 단기적 수익률에 연결되어 그것이 부정직하고 위선적인 기업 운영의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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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글리츠 교수가 오늘의 금융시장을 대체할 전적으로 새로운 방안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가 비판하듯이, 금융업의 경영형태가 사기와 위선을 포함한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면, 금융업의 문제는 단순히 경제나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과 윤리의 문제이고 문화의 문제이기도 하다. 근본과제는 기업으로 하여금 윤리적 기준을 준수하게 하는 것이다. 거꾸로 보면, 그것은 사회의 도덕적 윤리적 요구를 경제 질서로 풀어내는 일이다. 물론 스티글리츠의 관점에도 윤리적 도덕적 고려가 들어 있다. 결국 그의 비판이 기초하고 있는 것도 정직성, 공정성, 공익성 등의 기준이다. 그리고 기업에도 그러한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윤리 도덕의 경제제도화를 보장할 수 있는 간단한 해결책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금융위기에서 처음 주목을 많이 받았던 것은 주택 금융회사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회사이다. 패니메이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세워진 것으로 저금리 주택자금을 일반 서민에게 대여하여 서민의 주택 소유를 용이하게 하고, 그로 인하여 자극된 주택 건설로써 30년대 공황기의 고용 확대를 기하자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회사의 소유주는 주주들이면서도, 정부로부터 여러 혜택을 받았다. 프레디맥은 앞의 회사와 비슷한 목적을 가졌으면서, 그 독점 방지를 위하여 60년대에 추가로 설립된 회사이다. 그러니까 두 회사는 사익보다는 공익을 위하여 세워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는 사이에 이 회사들은 본래의 목적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로 변하게 되었다. 이것은 정부 정책의 변화로 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 회사들이 공익 회사로서 감독기관의 감독을 벗어나기가 쉬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금융재난 원인의 하나인 소위 ‘서브프라임 모기지’-상환 능력이 불확실한 서민에게 주는 주택 담보 융자-도 정부의 보호 아래 회사가 쉽게 들여 올 수 있었던 외국 자본과의 연결로 인하여 확대된 것이다.)
AIG가 위의 회사들과 같은 성격의 회사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AIG의 명분상의 주업은 보험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보험은 원래 사회적 성격이 강한 사업이다. 그것은, 노동의 부담을 공동체가 나누어 지는 두레나 품앗이처럼, 사람이 겪게 되는 여러 위험을 협동적으로 분담하는 일을 기업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 때 그것은 자본주의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자본주의의 위험을 줄이는, 사회복지 기업으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물론 이러한 당초의 기능은 근래에 와서 많이 약화되고, 사실 AIG 같은 경우, 보험이 그 주업인지도 확실치 않다. 이러한 변화는 금융자본의 비대화, 공권력의 태만과 변질, 그리고 기업 활동을 공동체적 기반으로부터 분리해 낸 세계화와 더불어 가속화되었다.
- ‘인간성 실현’ 없는 제도는 몰락 -
이미 비친 바와 같이, 이번의 미국발(發) 세계 금융위기는 자본주의의 종말을 고하는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자본주의를 대체하려고 하였던 것이 공산주의 실험이었는데 그것이 결딴난 지금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대안을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대안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일거에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 것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나의 커다란 기획을 세운다면, 인간적 삶의 신장(伸張)을 위한 쉼 없는 조정과 균형의 노력이 필요 없어진다고 착각하는 제도가 실패하는 제도이다. 물론 사회에는 인간성 실현의 이상에 대한 기본적 합의가 존재하여야 한다. 인간의 존엄을 잊지 않는 한, 이 이상은 간단하다면 간단한 것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은 언제나 새로운 물음에 열려 있는 것이라야 한다.
물어야 할 물음의 하나는 무한한 경제발전 또는 부의 축적이 인간됨의 모든 것이라는 강박적 느낌을 향한 것이다. 이것은 사회 전체에도, 개인의 삶에 대하여서도 물어야 한다. 파산한 리먼브라더스 CEO의 작년 보수는 4500만달러였다. 미국의 최고 경영자와 일반근로자의 봉급 차이는 30년 전에 30배, 작년에는 344배였다. 작년에 하버드대학 4학년생의 47%가, 금년에는 37%가 금융업계로 진출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돈의 폭풍이 오늘의 세계를 휘몰아간다. 규모는 다를망정, 그 폭풍의 위력이 우리 사회에서 덜 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 폭풍이 어찌 마음에만 불고 제도를 휩쓰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무엇이 인간의 인간됨을 드높이는가를 묻는 마음은 제도에 균형을 주는 중요한 기제이다.(김우창 | 고려대 명예교수)
08. 0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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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가장 단순하게는 "미국의 최고 경영자와 일반근로자의 봉급 차이는 30년 전에 30배, 작년에는 344배였다"는 사실 자체의 문제성을 인지하는 것이 요점이다. 그것을 '승자 독식사회'의 자연스러운 룰로 용인할 때(사회적 빈곤을 개인적인 나태의 자연스런 귀결로 치부할 때), 그리하여 '20:80사회'를 넘어서 '1:99사회' 곧 '상위1%를 위한 사회'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때, 사회는 파국으로부터 멀지 않다. '1%의 대한민국'으로 질주하는/내몰리는 정부의 행태와 사회적 분위기가 염려를 넘어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는 현상황에서 자연스레 예견되는 '총체적 몰락'으로부터 과연 벗어날 수 있을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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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2. 미국 금융위기('월가의 침몰')에 대한 이번주 시사IN의 특집기사는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901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