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예고된 대로(http://blog.aladin.co.kr/mramor/2234968) '체호프의 가을'이 시작되었다. 이번 가을에 찾아온 모든 공연을 보지는 못하지만 한두 편 정도는 관람할 수 있을 듯하다. 참고가 될 만한 소개 기사들을 한번 더 스크랩해놓는다.

뉴시스(08. 09. 15) 가을 한국연극을 감싸는 체호프 향기

러시아의 소설가 겸 극작가 안톤 체호프(1860~1904)가 가을의 한국에서 부활하고 있다. 일상의 소소한 해프닝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나약하고 추악한 본성을 가차없이 까발리는 것으로 유명한 체호프다. 인간의 보편적 감정인 희로애락을 담은 작품들로 시대와 배경을 초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문호다. 러시아 공연팀의 ‘바냐 아저씨’와 ‘세 자매’, ‘바냐 아저씨’를 아르헨티나 식으로 해석한 ‘비련의 여인을 바라보는 스파이’, 체호프의 작품은 아니지만 부인인 배우 올가 크니페르의 이야기를 담은 칠레 연극 ‘체호프의 네바’, 그리고 한국의 ‘벚꽃 동산’ 등이 일제히 무대에 오른다.

‘바냐 아저씨’의 바냐는 러시아 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 중 하나다. 주인공 바냐는 죽은 여동생을 위해 그녀의 남편과 딸을 돌보다 매부가 속물임을 알고는 실망과 허탈에 빠진다. 이 고뇌는 매부의 후처인 엘레나를 향한 사모의 정이 싹트면서 한층 심각해진다. 저택을 배경으로 우둔한 인간을 풍자한다. 10월 3~5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02-760-4877



‘비련의 여인을 바라보는 스파이’ 는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채 무기력한 일상을 살아가는 ‘바냐 아저씨’의 인물들을 아르헨티나의 조상으로 해석했다. 유럽을 견디지 못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왔다는 것이다. 이들의 의문, 즉 ‘과연 아무런 희망도 없는 오늘을 견뎌내면 내일 우리의 후손들은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는 ‘바냐 아저씨’의 고민과 일맥상통한다. 26~28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오른다. 02-760-4877



‘체호프의 네바’는 러시아 배우 겸 체호프의 부인인 올가 크니페르의 이야기다. 러시아 최고의 여배우로 인기를 누렸지만 남편의 죽음을 옆에서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있는 올가다. 그녀의 친구 마샤, 알레코 등이 러시아 네바강이 흐르는 도시를 바라보며 연극의 아름다움을 논한다. 18~20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볼 수 있다. 02-760-4877

◇거창한 배경이 아닌 일상에서의 인간 본질을 논한다. 그러면서도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놓지 않는 연극이 ‘벚꽃동산’ 이다. 희극적인 캐릭터들을 통해 부조리한 삶의 비극성을 보여준다. 남편과 자식을 잃고 프랑스 파리로 돌아온 라네프스카야 부인에게 남은 것은 곧 경매에 넘어갈 벚꽃동산 뿐이다. 주위에서는 동산의 벚나무들을 잘라 별장지로 조성하라고 설득하지만 여인은 부유한 시절의 습관에 젖어 살 궁리 따위는 하지 않는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돈을 흥청망청 쓴다. 결국 삶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18일부터 10월12일까지 서울남산 드라마센터 무대에 오른다. 02-889-3561



‘세자매’는 ‘갈매기’, ‘바냐 아저씨’, ‘벚꽃 동산’과 함께 체호프의 4대 희곡 가운데 하나다. 작은 마을의 세 자매와 남자 형제들은 늘 대도시인 모스크바를 동경한다. 그러나 꿈은 실현되지 않는다. 언제나 바람으로만 그칠 뿐이다. 현실을 벗어나고 싶지만 선뜻 행동으로 옮기는 못하는 지극히 나약한 지식인의 모습이다. 꿈과 현실의 충돌을 담담한 필체, 서정적인 러시아 언어와 노래, 속담 등으로 그려냈다. 25~27일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에서 공연된다. 02-2280-4297 (이민정기자)

뉴스컬쳐(08. 09. 12) 올 가을, 체호프 제대로 알고보자

‘미묘하다’ , ‘모호하다’, ‘비밀스럽다’, ‘수수께끼 같다’

이들의 공통점은? 다름아닌 러시아의 대문호 체호프의 희곡 앞에 따라오는 수식어들이다. 미묘하고 모호한, 그래서 비밀스런 수수께끼 같은 체호프의 작품들이 올 가을, 극장마다 풍년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후대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작인 만큼, 체호프의 희곡은 늘 공연되어 왔다. 그러나 올 가을 확실히 남다르다. 체홉의 4대 장막전이라 일컫는 ‘바냐아저씨’, ‘벚꽃동산’, ‘갈매기’, ‘세자매’가 모두 공연된다. 그런가 하면 좀처럼 만나보기 힘든 국외 유명 단체의 공연, 원작의 완벽 재현 또는 전혀 다른 해석으로 만나보는 다채로운 체호프의 공연들이 줄줄이 준비되어 있다. 체호프, 우린 왜 그의 작품에 매료 될 수 밖에 없는가. 올 가을, 체호프를 제대로 알고 만나자.

체호프 없이 현대 희곡을 논하지 말라

올 가을, 체호프의 작품을 앞다투어 선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희비극이 공존하는 쓸쓸한 러시아의 정서가 가을과 잘 어울려서도 그러하지만, 올해는 체호프의 탄생 150주년을 2년 앞두고 있는 해이기도 하다. 1860년 1월 17일 러시아 남부 작은 도시 따간로그에서 오늘의 대문호 체호프가 탄생했다. 그는 이후 45년의 짧은 생애 동안 10편의 단막극과 7편의 장막극 등 모두 17편의 희곡을 남긴, 20세기를 대표하는 극작가가 되었다.

이 뛰어난 극작가는 본래 모스크바 의과 대학을 졸업한 의사였다. 대학 진학 후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단편 소설을 오락 잡지에 기고하면서 문학과 연을 맺은 그의 전기에는 풍자와 애수가 가득한 단편들이 가득하다. 작가로서의 자각을 새로이 하며 탄생된 첫 희곡은 ‘이바노프’로 그 이후 1895년을 기점으로 그를 대표하는 장막극 갈매기, 바냐아저씨 등이 집필되었다. 객관적인 문학론을 중심으로 한 그의 작품은 입센과 더불어 사실주의 연극의 문을 열었다.



뿐만 아니라 모스끄바 예술극장을 대표하는 간판 작품으로 선구적인 근대 연극의 무대화에 성공하였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연출가이자 배우인 스타니슬랍스키는 그의 저서 ‘예술에서 나의 삶’을 통해 체호프를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갈매기]와 [바냐아저씨]의 성공 이후에 극단(모스끄바 예술극장)은 이제 체호프의 새 희곡 없이는 불가능하였다. 이렇게 우리 운명은 그때부터 안톤 빠블로비치 체호프의 손에 놓여 있었다. 희곡이 있으면 공연 시즌이 있고, 희곡이 없으면 극단은 고유의 향기를 잃게 되었다.”라고.

자연스런 일상, 그 속의 숨은 그림 찾기

체호프의 희곡에는 희망과 고통으로 얼룩진 일상이 다양하게 변주되어 있다. 등장인물들은 행복을 열망하며 보람 있고 충만한 삶을 원하지만 현실에 부딪히며 좌절하고 타협하는 것이 체홉 등장 인물의 운명이다. 10대부터 60대까지 각 세대를 대표하는 등장인물들이 그 세대만의 희망과 고통을 토로한다. 저 마다의 이유로 하나같이 가슴 시리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이 사람들은 내면적이다. 보통의 연극에서처럼 등장인물들이 드러내놓고 다투거나 충돌하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각자의 ‘눈’으로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부대끼며, 그를 극복하려는 심리적인 내면의 갈등이 작품을 꽉 채운다.

그러다 보니 극은 눈에 보이는 갈등이나 클라이맥스 없이 잔잔히 흘러간다. 체호프의 작품을 보다 보면 일상에서 숨은 그림을 찾고 있다라는 느낌을 받는다. 마음을 열지 않으면 한 귀로 흘리기 쉽상이다. 상세한 일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체호프의 희곡에는 명쾌한 주제도, 플롯도, 행동도 없다. 그렇지만 체호프의 희곡에는 우리 일상의 숨은 면면이 디테일하면서도 복합적으로 제시된다.

나와 비슷한, 내 주변의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거북스럽지 않다. 편안하다. 수면 아래에서 요동치는 삶의 ‘조용한 꺼리’들을 무대 위로 직접 끌어올려 눈으로 확인하는 쾌감이 남다르다. 시∙공간을 초월해도 통용되는 삶의 본질에 대한 주제와, 작가 특유의 객관적이고 담담한 시각은 자유로운 감상을 허락한다. 이러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올 가을 체호프에게 제대로 빠져들게 한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를 통해 만나보는 체호프스페셜

체호프의 다양한 작품들이 공연되는 올 가을, 이 축제에 가면 체호프를 제대로 만날 수 있다. 뛰어난 국내외 현대예술작품을 소개하는 제 8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가 바로 그다. 올해 축제에는 연극 14작품 중 4작품이 체호프의 작품으로, 체호프 스페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시아에서 온 전통의 체호프의 작품을 만나고 싶다면 러시아 타바코프 극단의 '바냐 아저씨'(10.3-5,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를 추천한다. 이 작품은 리투아니아 출신의 젊은 연출가 민다우가스 카르바우스키스와 만든 작품으로 2005년 러시아 황금마스크 페스티벌에서 최우수 여배우상을 받았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러시아 격동기를 배경으로 도시인의 세속적인 욕망과 시골사람들의 순박함을 대비시키며 원작과 밀착된 공연을 선보인다.

러시아 연출가인 에프로스는 “저마다 자신만의 체호프가 있다”고 했다. 여기 아르헨티나의 시선이 담긴 새로운 체호프의 ‘바냐아저씨’가 온다. ‘비련의 여인을 바라보는 스파이’ (9.26~28,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가 바로 그것이다. 최소한의 무대에서 연출가 다니엘 베로네세는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채 무기력한 일상을 살아가는 원작의 인물들을 유럽을 견디지 못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아르헨티나 조상의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한국 연출, 한국배우의 체호프가 만나고 싶다면 극단 수의 ‘벚꽃동산’ (9.12~10.12, 남산드라마센터)을 보자. 연출가 구태환이 ‘비계덩어리’ ‘나생문’에 이어 선보이는 ‘2008 고전시리즈’로 가감 없이 원전에 충실한 있는 그대로의 체호프를 선보인다. 인상 깊은 마리아에서 귀부인 라네프스까야로 변신하는 강효성과 가수에서 연기자로 변신한 데니안의 변신도 주목할만하다.

그런가 하면 체호프가 직접 집필한 작품은 아니지만, 체호프의 부인 여배우 올가 크니페르의 삶을 다룬 작품도 무대에 오른다. 칠레 블랑꼬극단이 선보일 '체홉의 네바'(9.19-9.20,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가 그것이다. 연출가 기예르모 깔데런이 실제 인물인 올가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허구를 가미해 쓴 이 작품은, 올가와 그의 친구들이 논하는 연극과 삶에 대한 이야기가 1905년 네바 강을 피로 물들인 학살 사건 '피의 일요일'과 맞물려 전개된다.

바야흐로 가을이 오면 조금은 고독해지고, 조금은 허무해지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2008년 상반기 일상의 비극과 희극 사이를 오가며 그저 바쁘게만 지냈다면, 올 가을 체홉을 만나보자. 지극히 평범한 나와 같은 인물들이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숨은 그림들을 제시한다. 조금은 느긋하게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조금은 진지하게 그들의 고민과 어깨를 나란히 해보자. 그렇게 숨은그림에 동그라미가 늘어갈 때 쯤이면, 올 가을 현대 희곡의 진수도 맛보면서 일상의 발견으로 내면이 그득해지는 풍성한 가을이 될 수 있다.(김미소기자)

08. 09. 22.

P.S. 체호프와 그의 드라마에 관한 페이퍼로는 '안톤 체호프를 찾아서'(http://blog.aladin.co.kr/mramor/914178), '레프 도진과 체호프'(http://blog.aladin.co.kr/mramor/834340) 등을 참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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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9-22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체호프의 6호실을 연극이나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생각한 적이 있어요.희곡은 아니지만 내용이 좋더라구요.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도 이 소설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나구요.

로쟈 2008-09-23 00:10   좋아요 0 | URL
러시아에서는 TV용으로라도 만들어졌을 법한데요...

람혼 2008-09-22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굉장히 관극을 고대하고 있는 연극들인데, 과연 정말로 갈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행운이 따른다면 극장에서 로쟈님을 우연히 만날 기회를 얻을 수도 있겠는데요? ^^

로쟈 2008-09-23 00:10   좋아요 0 | URL
네, 어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