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나오는 길에 읽은 경향신문이 기획기사를 옮겨놓는다. '정부수립 60주년' 기획기사로 이번주에는 '미국'을 주제로 하고 있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8211903085&code=210000). 안 그래도 어제 하워드 진의 <권력을 이긴 사람들>(난장, 2008)을 읽느라 내내 '미국' 속에 빠져 있었는데(벤야민의 구분을 따르면, 하워드 진은 패자의 역사를 장엄하게 기록하고 있는 뛰어난 '역사적 유물론자'이다), 아침부터 또 '미국'이어서 좀 신물이 나려고 했다. "미국(아메리카)에 간다"는 말이 '자살'을 암시하던 19세기 러시아소설들이 문득 그립다...  

경향신문(08. 08. 22) 전쟁·가난 구원 ‘藥주고’ 학살·독재 후원 ‘病주고’

한국을 일제에서 해방시킨 미국
한국에는 너무나도 중요한, 그래서 특수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두 나라가 있다. 하나는 북한이요, 다른 하나는 미국이다. 남북한이 따로 유엔에 가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관계를 외교관계로 설정하기 어렵다는 논란을 감안한다면, 한국의 대외관계에서 가장 특수한 국가는 미국이다.

1882년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한국의 근·현대사는 미국을 빼놓고는 서술하기 어렵다. 식민지로 전락할 위기에 빠진 조선을 구하기 위해 고종이 선택한 것은 ‘우호적 중재(good office)’ 조항을 협약에 넣었던 미국이었지만, 일본과의 밀약을 통해 한국과 필리핀에 대한 상호 지배를 인정한 것도 미국이었다. 일제강점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3·1 독립운동에 전 민족이 일어나도록 했던 것은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였지만, 승전국의 식민지였던 조선에는 해당되지 않는 선언이었다.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을 결정적으로 이끈 것은 미국이었지만, 해방된 한반도의 남쪽에 미군정이 들어섰고, 미군정은 1948년 38선 이남에서 대한민국이 수립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한민국 수립 직후 미군정이 해체되고 주한미군이 철수했지만, 곧이어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인해 미군은 다시 한반도에 들어왔다. 미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더 이상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미군에 의해 자행된 노근리 사건은 지금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 표상이자 독재 후원자로서의 이중성
주한미군은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철수하지 않았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통해 한반도에 군사기지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주한미군이 대한민국의 안보에 절대적인 역할을 했지만,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갖고 있음으로 인해 미국은 5·16 쿠데타와 12·12 쿠데타, 그리고 광주민주항쟁 등 역사의 고비에서 민주주의를 말살한 군부를 묵인 또는 방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전쟁의 피해로부터 복구하는 데 있어서 미국의 역할 역시 결정적이었다. 1950년대 미국의 원조는 국내 자본 축적과 기업의 성장, 그리고 식량 공급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60년대 이후 급격한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미국은 한국 경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장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한국 경제에 가장 취약한 구조적 문제가 되고 있다.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는 한국인들의 ‘신화’를 깨고 외국에 전투부대를 파견한 것도 미국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전쟁 특수는 한국의 경제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명분 없는 파병으로 인해 한국 근·현대사에 큰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민주주의 실현과정에서도 미국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4·19 혁명이나 6·10 민주항쟁에서 미국의 개입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민들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사실과 함께 미국식 민주주의를 모토로 한 교육은 시민들의 민주적인 의식을 확산시켰다. 그러나 4·3 항쟁과 광주민주항쟁에서의 미국의 역할은 반미의식의 확산에 중요한 계기가 됐다.

미국은 단순 외세 아닌 현대사의 주체
이렇게 한국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미국은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약도 주고 병도 주었다. 어떻게 보면 미국은 단순한 ‘외세’가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에서 주체의 하나로서 작동했다. 정치세력들의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잣대도 미국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구분되고,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집회에 성조기가 태극기와 함께 휘날리는 것도 한국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왜 미국은 수많은 국가들 중에서 한국을 선택했을까? 역사·사회·지리 교과서에 수도 없이 반복되고 있듯이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한국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고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것은 한반도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지만, 한국만큼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터키나 파키스탄, 이란, 쿠바, 그리고 베트남 같은 경우 한국에서의 경우와 같이 미국이 6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특수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독재→민주화 불구 한·미관계 유지
또한 지정학적 위치만을 따진다면 냉전이 해체됨과 동시에 한반도의 가치는 바닥에 떨어져야 했다. 그러나 냉전 해체 이후에도 한국은 미국과의 특수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주한미군이 감축될 것이라고 하지만, 미군 기지는 계속 유지될 것이며, 한·미 FTA는 한국의 대통령 선거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도 하나의 쟁점이 되고 있다. 독재시대와 마찬가지로 대통령 당선자는 가장 먼저 미국을 방문한다. 그러나 평범한 미국인들은 한국에 대해 관심이 없다.

한국과 미국의 특수한 관계에 대한 비밀은 이제 다른 곳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 바로 한국인들 스스로가 미국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의 문제이다. 미국의 지원을 받았던 대부분의 독재정권들이 시민혁명이나 반대세력들의 쿠데타에 의해 무너졌다. 미국의 깊숙한 개입은 내부의 반대를 불러왔고, 결국 미국의 정책에 반대하는 정부가 수립됐다. 이란과 쿠바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 독재정부가 무너져도, 민주주의 체제가 도입돼도 미국은 계속해서 특수한 존재였다. 결국 한국 스스로가 미국과의 특수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에 대한 뿌리깊은 우호적 인식
바로 여기에 한·미관계의 특수성이 존재하고 있다. 미국의 정책이 독재정부를 지원하고 때로 한국보다는 미국 자체의 국가이익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경우도 있지만, 미국에 대한 우호적인 인식이 한국 사회 내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 경향신문의 광복절 특집 설문조사는 미국이 한국에 너무나도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전체 설문대상자 중 두번째로 많은 23.8%가 한국에 가장 위협적인 국가로 미국을 뽑았지만, 동시에 45.4%라는 압도적인 다수가 가장 호감이 가는 국가로 미국을 선택했다.

이 결과는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있는 모순되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측면을 잘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미국의 한국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에 반감을 갖지만, 다른 한편으로 한국인들 스스로가 갖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이 미국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만들어낸 것이다. 즉, 한국 사회 내부에는 미국적인 것이 좋은 것, 또는 근대적인 것이라는 관념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물론 한국인들의 미국에 대한 호감이 한국전쟁과 전쟁구호, 그리고 남북대결이라는 냉전적 구조 등 역사적 경험에 기인하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왜 이러한 인식을 갖게 됐을까? 여기에는 미국의 대외정책의 특수성이 중요하게 작동하고 있다. 미국은 다른 열강 제국과는 달리 ‘민주주의’와 ‘근대화’에 기반을 둔 ‘연성권력(soft power)’을 대외정책의 중요한 수단으로 삼았다. 일본의 동화주의나 내선일체 정책이 또 다른 연성권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일본 중심적인 사고였기 때문에 식민지에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미국의 ‘민주주의’와 ‘근대화’ 이념은 다원적이고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갖고 있는 개념이었다.

구한말 외교관으로 파견된 선교사들은 의료와 교육에서 ‘근대’를 도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근대 한국의 주요한 인물들은 대체로 선교사들이 설립한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1945년 이후 미국 원조의 중요한 부분은 교육원조였다. 1950년대 경영대학과 행정대학원 설립, 그리고 서울대학교에 대한 미네소타대학의 원조나 한국 교육자들을 미국에서 교육받도록 했던 피바디 계획 등은 모두 교육 원조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한국의 경제성장 과정에서도 로스토의 근대화론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65년 한국을 방문한 로스토가 했던 ‘근대화’의 한 마디를 통해 한국 정부는 한국 사회 전체를 경제성장의 길로 동원할 수 있었다. 미국의 연성권력은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 ‘인디펜던스 데이’, 드라마 ‘뿌리’나 ‘남과 북’을 통해 제3세계 사람들로 하여금 미국의 역사와 사회를 다른 나라의 일로 생각하지 않도록 하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미국에 대한 객관적 인식 증대
결국 이러한 과정은 현재까지도 미국이 한국에서 특수한 국가로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특수한 한·미관계가 앞으로도 계속돼야 하는가? 겉으로 볼 때 한·미관계는 큰 변화 없이 계속돼 온 것 같지만, 모든 사물이 진화하고 발전하듯이, 한·미관계 역시 진화하고 발전해 왔다. 한국 사회는 미국을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제 한·미관계는 한 단계 더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세계의 변화는 한·미관계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주한미군 기지의 재편도 그 과정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세계의 변화에 걸맞은 변화가 오지 않는다면 우호적인 관계가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과거와 같은 약소국이 아닌 한국이 오로지 미국만 바라보는 외교를 한다면, 이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며, 한·미관계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박태균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현대사)



“하나의 외국일뿐” 주체적 인식 확산 불구 이상국가 열망도 공존
지난 60년동안 우리의 대미인식은 가난과 전쟁에서 벗어나게 해준 ‘구세주’에서 우리와 대등한 하나의 외국 등으로 다양하게 변화해왔다. 해방 후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된 후엔 미군정이 들어서 친미·반공체제가 구축됐다. 이후 한국전쟁 시기 ‘인천상륙작전’으로 상징되는 미국·유엔의 지원과 구호품, 필수품 원조는 ‘미국=세계평화의 수호자, 자유민주주의의 보루’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이렇게 형성된 미국에 대한 호감은 4·19 혁명 이후 박정희 정권의 베트남전 파병 등으로도 이어졌다. 당시 베트남 파병에 대해선 한·일 협정과 대조적으로 학생운동권 일부를 제외하고는 별 반대가 없었다.

대미인식의 변화가 감지되는 것은 80년대부터다. 80년 5월 광주항쟁에 대한 전두환 군부의 무력진압을 미국이 방조하면서 ‘반미’ 감정이 폭발했다. 특히 82년 광주사태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요구하며 일어난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은 최초의 공개적 반미 투쟁이었다. 90년대에는 ‘윤금이씨 살해사건’ 등 미군 범죄를 계기로 반미 운동이 일어났다. ‘노근리 사건’은 미국이 한국전쟁에서 구원자일 뿐 아니라 학살자이기도 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2002년 ‘미선이·효순이 장갑차 사망 사건’과 ‘SOFA 개정운동’은 균형 있는 관계에 대한 욕구에 불을 붙였다.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로 인해 촉발된 ‘촛불 집회’ 역시 과거와 달라진 주체적 대미 인식을 드러낸다. 그러나 ‘아메리칸 스탠더드’로 대변되는 이상적 국가로서의 미국에 대한 열망 역시 크게 공존한다. 한국은 미국에 최대 규모의 유학생을 내보내고 있으며 미국시민권을 얻기 위한 원정출산, 조기유학·영어몰입교육 열풍 등도 여전히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이로사기자)

08. 08. 22.

P.S. 기획기사의 다른 꼭지로 '자유주의와 미국'을 다룬 기사도 참고해볼 만하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8211908045&code=210000). 자유주의의 한국적 '굴절'에 대해서 잘 짚어주고 있다(한국에서는 사회주의자인 박노자에서 자유지상주의자인 복거일까지가 모두 자유주의의 스펙트럼에 포함된다. 대단한 오지랖이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evol 2008-08-22 15:10   좋아요 0 | URL
최근 출간된 책 중에 다음 두권이 관련되는 주제에 관한 것이네요. 둘다 가볍게 읽어볼만한 책들입니다.

왜 다시 친미냐 반미냐 - 전후 일본의 정치적 무의식
요시미 순야 지음, 산처럼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062241

아메리카나이제이션
김덕호, 원용진 엮음, 푸른역사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510671

로쟈 2008-08-22 19:48   좋아요 0 | URL
네, <아메리카나이제이션>이 있었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08-23 16:44   좋아요 0 | URL
해방이후 한미 관계사에선 미군정 통치기간과 역대 주한 미국대사들을 반드시 연구해야 합니다.특히 막후괴물 제임스 하우스만! 그의 증언록의 제목이 의미심장합니다.<한국대통령을 움직인 미국대위>.미군정기 부터 박정희 시대까지 한미관계의 막후에서 미묘한 흥정을 하던 그의 증언에서 우리는 공식적 역사 뒤편의 역사의 진짜 속살을 볼 수 있습니다.

로쟈 2008-08-23 20:55   좋아요 0 | URL
그런 증언록도 다 소개가 된 모양이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08-23 21:55   좋아요 0 | URL
네...사망 몇년 전에 나왔어요.박노자가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강추한 책이죠.(저는 하우스먼 증언록을 읽은 한참 뒤인 올해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었는데 하우스먼을 상당히 길게 언급한 것을 보고 역시 박노자의 독서범위가 대단하구나...하고 느꼈죠).절판되었는데 저는 당연히 헌 책방에서 샀어요.

로쟈 2008-08-23 23:21   좋아요 0 | URL
저는 주목하지 않고 읽었나 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24 00:00   좋아요 0 | URL
저는 아무래도 한국 현대사 쪽 독서가 많다 보니 시야에 잡히네요.

로쟈 2008-08-25 00:10   좋아요 0 | URL
사실 최근 정세만 아니면 현대사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을 텐데요.^^;

노이에자이트 2008-08-26 17:19   좋아요 0 | URL
경향신문엔 사진 설명에 이상훈과 강영훈만 명기했는데 기자가 다른 사람은 몰라서 그랬을까요? 제일 오른쪽은 채명신(전 주월 한국군 사령관)제일 왼쪽 이철승(호남 강경우익의 원로).80이 넘었는데 엄청나게 건강하신 분들이죠.좌익들에게 이 나라를 맡길 수 없다고 앞장서시느라 지금도 바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