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기사를 옮기는 일이 드물지 않아졌다. 다 아는 소식이지만 오늘 새벽에 소설가 이청준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는 뉴스는 이미 접했기 때문에 의외의 소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데뷔작 제목처럼 가뿐하게 '퇴원'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고인과 인연이 있는 후배 소설가는 문상을 다녀왔다고 문자를 보내왔는데, 나는 개인적인 인연을 따로 갖고 있지는 않아서 다만 한 세대 한국문학을 대표했던 작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명복을 빌 따름이다. 지금쯤 태평양 항로 어디메쯤 가고 계실까?.. 고인과 막역했던 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의 추모의 글도 같이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8. 07. 31) '한국 현대소설’ 개척한 4·19세대 대표작가

작가 이청준은 삶을 캄캄한 밤에 산길을 더듬어가는 것에 비유하곤 했다. 그런 도정에서 문학은 ‘방금 누가 지나갔으니 빨리 가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는 거짓말이란다. 그가 평생을 바친 ‘소설이란 거짓말’은 그 말의 가치를 믿음으로써 일말의 희망을 안고 남은 삶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위무, 인생의 부끄러운 상처와 아픔을 풀어내는 씻김질이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지적인 작가, 서구 장르인 소설을 한국화시킨 작가 이청준의 타계 소식은 문단과 독자들을 안타깝게 했다. 요즘 기준으로는 다소 이른 나이인 데다 투병 중에도 쓰던 소설을 마무리한 그의 창작혼이 더욱 애틋함을 자아냈다. 지난해 폐암 말기 소식이 전해진 뒤 1년여 투병해오던 그는 항암치료를 중단한 뒤 급속히 병세가 악화됐다.

최인훈, 김승옥과 더불어 4·19세대 작가로 출발한 이청준은 군사독재와 산업화의 억압된 시대를 살아오면서 비인간적인 권력과 사회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한국적 모더니즘의 언어로 수행했다. 100쇄를 돌파해 현대문학의 금자탑을 쌓은 ‘당신들의 천국’을 비롯해 ‘낮은 데로 임하소서’ ‘매잡이’ ‘이어도’ ‘소문의 벽’ ‘비화밀교’ ‘서편제’ 등 주옥 같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현실비판은 대상과 동일한 차원에 서는 법 없이 그 이면을 살펴봄으로써 삶의 원형질에 대한 탐구로 승화됐다. 그런 관심은 만년에 신화의 세계로 확대됐다. 그는 등단 초기 서너 군데 잡지에 관여하고 한양대 국문과 교수로 잠시 적을 둔 것을 제외하고는 글쓰기에만 골몰했다.

2003년 장편소설 12권, 중·단편 10권 등 25권짜리 전집(열림원)이 나온 뒤로도 장편 ‘신화를 삼킨 섬’, 소설집 ‘꽃 지고 강물 흘러’ 등 여러 권의 책을 발표했다. “벼랑에 서있다는 각오로 쓴다. 그렇기 때문에 벼랑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장인정신이 빚어낸 한국어와 한국문화의 집이다.

그의 대표작은 역시 ‘당신들의 천국’이다. 1976년 발표돼 2003년 100쇄를 돌파한 이 책은 소록도 나환자촌을 배경으로 권력의 문제를 추적한다. 주인공 조백헌 원장은 유토피아의 실현을 위해 매립공사를 강행하지만 환자들의 불신과 그로 인한 내적 방황을 겪는다. 권력은 그것을 쥔 자를 끝없이 시험한다는 문제의식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이 작품이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염두에 두었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그의 소설은 현실을 곧바로 인용하지 않으면서도 결코 현실과 떨어져 있지 않다. 영화 ‘서편제’로 유명해진 ‘선학동 나그네’, 역시 영화 ‘밀양’의 원작인 ‘벌레 이야기’에서 아무리 억압해도 무너지지 않는 존엄성, 가해자가 용서를 이야기하는 상황을 그린 데는 제5공화국과 광주항쟁에 대한 작가의 통찰이 담겨있다.

우찬제 서강대 교수는 “현실에 패배한 사람들이 억압하는 현실과 상처받는 개인이라는 이항대립을 초월해 새로운 억압으로 추락하지 않는 이념의 질서를 창조하는 모색 과정”을 이청준 소설의 특징으로 든다. 실패하고 갈구하는 개인, 탐색과 추리 기법, 액자구조, 다원적 시점, 열린 결말 등은 그런 문학적 목표에 도달하는 문학적 장치다. 권오룡 한국교원대 교수 역시 “인정이냐, 부정이냐의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현실에 저항하는 이청준 문학의 애매성은 손쉬운 선택을 거부하고 모순의 긴장을 끝까지 견뎌내는 힘에서 나온다”고 지적한다.

세계에 대한 비극적 상황인식, 실패자에 대한 공감은 그의 가족사와 분리되지 않는다. 좌익활동을 했던 아버지는 작가가 여덟살 되던 해 세상을 떠났고 장남이던 형님도 일찍 유명을 달리했다. 어렸을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듣던 그는 자연스레 어머니와 가족, 일가친척의 기대를 한 몸에 모았다. 그것이 부담스러워 오히려 모두가 바라던 법대가 아닌 문리대를 택하고 작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런 그의 삶의 원형이자 스스로 가장 특별하게 여긴 작품이 단편 ‘눈길’이다. 이미 남의 손에 넘어간 고향집에서 대처로 공부하러 간 아들을 기다리다가 마지막 잠을 재우고 다음날 새벽, 떠나보낸 뒤 눈위에 찍힌 자식의 발자국을 되밟아 돌아가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이 세상 정처없는 것들의 가엾음을 드러낸다. 광주 서중에 입학하면서 외사촌 누이집에 더부살이하게 됐을 때 어머니가 손수 갯벌에서 잡아온 게를 망태기에 넣어 들려보냈는데 그것이 썩어 아무렇게나 버려질 때의 심정 역시 작가가 즐겨 들려주던 유년기의 한 자락이다.

남도의 정서는 이청준의 삶과 문학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다. 남도 판소리와 문인화의 현묘한 경지는 ‘이어도’나 ‘서편제’의 신비로우면서 승화된 한의 정서로 고즈넉하게 되살아났다. 음악과 회화에 조예가 깊었던 작가는 임권택 감독, 김선두 화백 등 여러 예술가들과 친분을 나누면서 삶의 호사와 여유를 누렸다.

이청준을 만나본 사람들은 그의 겸손함과 자상한 배려를 잊지 못한다. 책이 나오면 막내 편집자까지 꼭 밥상에 초대했고 자신의 문학작품을 좋아하는 독자 앞에서 늘 겸손했다. 그의 손에는 담배가 꼭 들려있었고 여행을 떠날 때면 배낭에 술병을 반드시 챙겼다. 철저하면서 조용하고 익살스러웠으며, 평생 동지로 지낸 문학과지성사 동인들을 만날 때 빼고는 문단 나들이가 잦지 않았다. 자신의 병을 알았을 때 “석양녘 장 보따리 싸는 심정”이라고 했던 그가 먼 길을 떠났다. 이청준 없는 한국문학, 예정된 일이었지만 슬프다.(한윤정기자)

경향신문(08. 07. 31) 그대, 이제 그대의 천국으로 가시는가

쉬엄쉬엄 왔는데도 숨차고 다리 후들거려 ㅅ의료원 영안실 빈 의자에 잠시 앉아있자니 뒤에서 들리는 소리.

-김 선생님, 여기 웬일이세요.

돌아보니 그대가 아니겠는가.

-웬일이라니, 그대 장례식에 오지 않았겠소. 그런데 그대야말로 웬일이오? 이렇게 나와도 괜찮겠소?

-잠시 나왔을 뿐이외다. 뭐 별일 있겠어요?



그렇다. 무슨 별일이 따로 있겠는가. 우리는 평소처럼 낮은 소리로 또 눈짓으로 이런저런 말을 나눴소. 요즘 날씨란 장마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둥, 황소도 병에 걸려 자빠지기 일쑤라는 둥, 그야 대마도는 일본 땅이라는 둥, 기름 값이 천정부지라는 둥, 이승엽이 국가대표팀에 합류했다는 둥.

이 평소처럼 낮은 소리, 낯익은 눈짓 속에 있자니 어느새 숨결도 제대로 돌아오지 않겠는가. 후들거리던 다리도 거짓말처럼 멀쩡해지지 않겠는가. 대체 이 편안함이란 무엇인가. 이젠 일어설 수조차 있었소. 뿐이랴. 능히 걸을 수조차 있었소.

그대의 손에 이끌려 영안실 안으로 들어서자 놀라워라. 그대는 어느덧, 거짓말처럼 순백의 꽃밭 속 검은 사진 속으로 가물가물 사라지고 있었소. 또 놀라워라. 내가 향을 피워도 아무 말 없었소. 다시 또 놀라워라. 절을 두 번씩이나 해도 모른 척 하지 않겠는가. 그대 이래도 되는 일인가.

하릴 없이 쫓기듯 물러날 수밖에.

밖에는 그대를 보내는 친지들 꿀벌처럼 모여 웅웅거리고 있었소. 생수에, 깡통 맥주에 취해 무성히 그대 흉보기에 정신들이 없어 보였소. 옆에서 누가 듣는 줄도 모를 만큼 신바람이 났소.

이 무구한 자기기만, 이 천진한 인간다움.

나도 신바람이 날 수밖에.

대서양 해안까지 흘러간 제주도 문주란 씨앗을 소재로 소설 한 편 쓰기 위해 멕시코까지 찾아간 이 잘난 소설쟁이가 귀국할 때의 일. 금연의 비행기 속에서 위스키 한 병을 몽땅 비웠다 하오. 이 굉장한 애연가에겐 그 길이 상책이었으니까. 인천공항에 내려도 끄떡없었다고 그는 큰소리쳤다 라고. 주석에서 본인에게 직접 들은 이 얘기를 신바람 나게 했소.

그러자 누군가 대번에 항의했소. 왈, 반만 맞고 반은 틀렸소 라고. 이 목격자의 증언은 이러했소. 인천공항에 내린 이 잘난 소설쟁이는 가방 찾을 생각도 까맣게 잊고 호기롭게 리무진에 올랐다 라고.

나도 어찌 쉽사리 질까 보냐. 재빨리 이렇게 대들었소. 그래도 그는 귀국 직후 ‘태평양 항로의 문주란 설화’(2005)를 썼다 라고. 또 덧붙였소. 이 소설쟁이는 소주에 취하기만 하면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저기 엉터리 평론가가 있다!”라고 외치기 일쑤였다고. 그래도, 아니, 그렇기에 그는, 키 큰 평론가 김현의 표현으로 하면 제 어미를 팔아 ‘눈길’(1977)을 썼고, ‘자생적 운명’을 다룬 천금 무게의 ‘당신들의 천국’(1976)을 썼소. 조국을 세 번씩이나 부인한 ‘다시 그곳을 잊어야 했다’(2007)를 그만이 쓸 수 있었소.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4·3 사건의 합동위령제를 다룬 대작 ‘신화를 삼킨 섬’(2003)을 썼소. 그것은 다름 아닌 이상욱(‘당신들의 천국’)이 정요섭으로 변장하여 제주도로 간 얘기에 다름 아닌 것.

민족적 악업에 대한 자기 정화력이란 무엇이며 치유의 가능성은 있는가 라고 스스로에 묻고, 있다 라고 스스로 우기는 이 야생 당나귀 모양 고집스러운 키 큰 소설쟁이 이청준이여, 우리의 국민작가 이청준 사백이여.(김윤식 | 문학평론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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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08-01 0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김윤식 선생다운 글쓰기에 그만 슬며시 얼굴 위로 미소가 찾아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장례식장에서 있을 법한, 그런 미소였습니다.

로쟈 2008-08-01 12:20   좋아요 0 | URL
이청준의 '축제'도 떠올리게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