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여름방학을 맞아 볼 만한 영화들이 늘어나고 있다. 프랑스의 문제적 여성감독 카트린 브레야의 이번주 개봉작 <미스트리스>(2007)도 그 볼 만한 영화에 포함시키고 싶다(미성년자 관람불가이므로 '방학'과는 무관하군!). 원제는 '늙은 정부'. 개괄적인 소개는 이렇다.

세계일보(08. 07. 25) 치명적인 사랑의 쾌감…팜프파탈, 21세기 페미니스트로 격상

전쟁터에서 화살에 맞은 말은 의외로 더 빨리 달린다고 한다. 고통이 쾌감으로 변해 아드레날린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빨리 달릴수록 화살은 더 깊게 박히고 결국 말은 죽게 된다. 죽음에 이르는 줄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이 치명적인 유혹. 비단 말뿐인가. 멈춰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만둘 수 없는 사랑은 지금 당신 곁에도 존재한다.

‘미스트리스’는 이처럼 치명적인 사랑을 이야기한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나 스테판 프리어스 감독의 ‘위험한 관계’처럼 근대 이전 유럽을 배경으로 여성 중심의 사랑을 그렸다. ‘로망스’ ‘팻걸’ 등에서 여성의 정체성을 성적 코드로 풀어내던 여성 감독 카트린 브레야가 메가폰을 잡았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다.

Une vieille ma?resse

1835년 파리, 프랑스 혁명 이후 사회적 혼돈을 반영하듯 상류사회에서도 온갖 스캔들이 난무한다. 사교계를 주름잡던 꽃미남 마리니(후아드 에이트 아투)는 귀족 가문의 규수 에르망갸드(록산 메스키다)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그는 스페인 출신 무희 벨리니(아시아 아르젠토)와 깊은 사이다. 둘은 10년 동안 만남과 이별을 반복해왔다. 마리니는 이 관계를 끝내기 위해 결혼을 결심했다. 결혼식을 올린 마리니와 에르망갸드는 파리를 떠나 조용한 해변으로 이사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어느날 벨리니가 이들 앞에 나타난다.

‘미스트리스’는 벨리니와 마리니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이들은 자석의 양극처럼 서로를 밀어내면서도 붙어있는 존재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애정없는 욕정만을 취하지만 운명처럼 질박한 인연을 끊을 수 없다. 전쟁터에 나간 말 엉덩이에 박힌 화살처럼 서로의 삶에 파고든다. 사랑의 치명적인 쾌감을 거부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측은하다.



정부(情婦)라는 의미의 제목에서 보듯 벨리니는 결혼 제도를 위협하는 인물, 남성의 삶을 파멸로 모는 위험한 존재다. 이런 여성을 두려워한 남성들은 이들에게 팜므파탈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따라서 남성적 시각에서 벨리니는 요부이자 마녀다. 하지만 영화는 벨리니를 옹호한다. 그녀는 남성에게 이용당하는 봉건사회의 피해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구현하는 현대적 인물이다. 결국 영화는 고전의 팜므파탈을 현대적 페미니스트로 격상시킨 여성주의 영화다.

‘미스트리스’는 전형적인 유럽 스타일 영화다. 서사는 절제되고 묘사는 튀지 않는다. 정적인 화면과 느린 드라마도 이야기를 곱씹게 만든다. 액션영화 ‘트리플X’로 얼굴이 알려진 아시아 아르젠토는 도발적인 시선과 청순한 눈빛을 동시에 선보이며 벨리니 역을 훌륭히 소화했다. 그는 이탈리아 웨스턴의 거장 다리오 아르젠토의 딸로도 유명하다.(이성대기자)

영화는 지난주에 국내 첫시사회가 있었던 듯한데, 씨네21에서 가져온 첫 반응은 이렇다.

이 영화

1835년 왕정복고기 파리. 잘난 신사와 귀부인들이 남몰래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를 읽고 있을 무렵이다. 바람둥이 귀족 리노 마리니(후아드 에이트 아투)는 10년 동안 관계를 이어온 애인 벨리니(아시아 아르젠토)를 인생에서 잘라내고, 어리고 부유하고 정숙한 귀족 처녀 에르망갸드(록산느 메스키다)와 결혼하려 한다. 그러나 벨리니는 중얼거린다. “날 떠날 순 없을걸.” <미스트리스>의 제2장은 아주 긴 플래시백이다. 손녀사위를 둘러싼 추문을 익히 들은 플레르 후작부인이 마리니를 불러 사랑의 역사를 낱낱이 말해달라고 청하기 때문이다. 10년 전 스페인 투우사와 이탈리아 공주의 사생아라는 소문의 여인 벨리니에게 도도한 마리니는 초면에 경멸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 밤 파티에서 악마로 분장한 벨리니에게 사로잡힌 마리니는 무모한 구애를 시작하고 급기야 벨리니의 남편과 결투해 중상을 입는다. 여자는 가련한 남편을 차버리고 귀족사회는 들끓는다. 그러나 이것은 노래의 1절일 따름이다. 둘은 한때 먼 나라로 떠났고 행복하였다. 아이를 가졌고 아이를 잃었다. 울부짖고 귀를 틀어막았다. 파리로 돌아온 그들의 일상에서 사랑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남은 나날을 그들은 본능적인 애무로 연명해왔다. 결국 마리니는 에르망갸드와 결혼식을 올리고 파리를 떠나 완벽해 보이는 신혼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어느날 산책을 나간 바닷가 길 위에서 마리니는 벨리니와 맞닥뜨린다.(김혜리기자)

Une vieille ma?resse

100자평

오호! 통재라. 왜 제목을 <미스트리스>라고 하여, 영화의 핵심적 미학을 깎아 먹는단 말인가? <미스트리스>는 19세기 탐미적인 당디(Dandy)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바르베 도르비이’의 소설 <Une Vielle Maitresse>를 원작으로 삼아, 과격하고 야하기로 소문난 여성감독 카트린느 브레야가 영화화한 19세기 시대극으로 2007년 칸 영화제에 출품된 작품이다. (이 영화는 DB등에 <늙은 정부> 혹은 <오래된 여인>등의 이름으로 중복 등재되어 있으며, 국내 개봉 제목은 <미스트리스>이다. 작품의 성격을 가장 잘 대변해 주는 제목은 단연 관능적이고 퇴폐적인 느낌이 살아있는 <늙은 정부>이다.) 영화는 19세기 귀족사회를 배경으로 충동적이고 격렬한 사랑과 결국 파멸을 향해 가는 순수정념을 그리고 있다. 영화는 19세기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지극히 현대적인 인물들에 의해 섹슈얼리티가 무엇인지 정면으로 발언한다. <미스트리스>는 자주 접하기 힘든 고도의 예술성을 지닌 영화이다. 장면 하나하나의 미장센이나 감정을 끌고가는 유려하고도 절제된 편집은 모두 감탄스럽다. (특히 마네의 <올랭피아>가! 연상되는 벨리니가 등장하는 첫장면이나, 거울과 창문을 이용한 미장센을 눈여겨 보라!) 또한 캐스팅이 완벽하다. 벨리니 역할을 한 '아시아 아르젠토'의 연기는 인물과 배우를 도저히 떼어서 생각할 수 없게 만들며, 마리니 역할의 ‘후아드 에이트아투’는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여자보다 더 아름다운 선을 지닌 얼굴과 몸만으로도 영화의 주제를 150% 전달한다. 또 <팻걸>등의 전작에서 함께 했던 ‘록산느 메스키다’ 역시 냉정하고 고혹스러운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미술도 훌륭하여 소품 하나에도 당시 귀족사회의 정서(혹은 원작자의 복고주의적 태도)가 담겨있는 듯 하다. 로맨틱코미디류의 말랑말랑한 사랑이야기 좋아하는 관객에겐 비추, <색, 계>가 좋았거나 혹은 불만족스러웠던 관객이라면 간만에 나온 ‘진하고 징하고 찡한 사랑영화’를 놓치지 마시라.(황진미/ 영화평론가)

08. 07. 28.

P.S. 환경을 바꾸다 보니 자고 일어나는 시간이 들쭉날쭉하게 되었다(엉뚱한 시간에 엉뚱한 페이퍼라니!). <지젝이 만난 레닌>에서 '그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믿는지 모른다'는 장을 읽다가 둘러본 몇몇 사이트에서 읽은 소개기사들이(그 중 하나는 지난 금요일에 지면에서 읽기도 했다) 영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카트린 브레야의 전작들은 예전에 다룬 바 있다('카트린느 브레이야'라고 주로 적었다). '100자평'에도 '마네의 <올랭피아>가 연상되는 벨리니가 등장하는 첫장면'에 대한 얘기가 나오지만 마네에 대한 오마주는 그녀의 영화에서 반복적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마네와 티치아노'(http://blog.aladin.co.kr/mramor/912039)를 참조할 수 있으며, 카트린 브레야의 영화들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로망스 대 포르노'(http://blog.aladin.co.kr/mramor/800293)에서 읽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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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8-07-28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씨네큐브에서 전단을 읽었더랬죠. 가봐야죠,^^

로쟈 2008-07-28 19:57   좋아요 0 | URL
저도 동네에 들어오기를 기다려봐야겠어요...

노이에자이트 2008-07-28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835년이면 7월 혁명으로 샤를르 10세가 쫓겨나고 온건한 루이 필립이 등극하면서 7월 왕정이라고 하는데...그 전인 루이 18세와 샤를르 10세가 재위한 때를 왕정복고기라고 합니다.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이 시가전하는 장면이 1830년 7월 혁명입니다.평론가가 착각했네요.

로쟈 2008-07-28 19:57   좋아요 0 | URL
ㅎㅎ 기자가 착각했거나 소개자료의 오류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