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은 '놈놈놈'도 볼 형편이 안되지만 여건만 된다면 챙겨보고 싶은 영화 두 편은 두 대중가수에 관한 것이다. 존 레넌과 밥 딜런. 더 잊어먹기 전에 일단 기사라도 챙겨놓는다. 시사인에서 읽은 리뷰기사들이다(한겨레의 기사는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00962.html 참조).    

시사인(08. 07. 22) 누구나 아는, 아무도 몰랐던 존 레넌

누군가를 아주 잘 안다고 착각할 때가 있다. 그 ‘누군가’는 절친한 지인일 수도, 유명한 공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그는 어떤 사람인가’, 대답이라도 내놓을라치면 그만 말문이 막히고 더러는 숨까지 턱, 막혀버리기 일쑤다. 잘.안.다. 고작 세 음절로 확언하기에는 인간이라는 회로가 그리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흔해빠진 질문 앞에서 머뭇거리며 일평생 제 존재의 이유 하나 제대로 간파해내기도 버거운 인간이다. 그러니 하물며 남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으려면 몇 곱절은 더 치밀하고 광범위한 근거 자료가 필요할 터이다. 가령 존 레넌 같은 인간에 대해 아는 척할 때는 말이다.



<존 레논 컨피덴셜>은 우리가 아주 잘 안다고 착각해온 어느 팝 스타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그런데 영화가 담아낸 존 레넌은 누구나 잘 아는 존 레넌이 아니다. 아무도 모르는 존 레넌이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언젠가 어렴풋이 듣긴 했는데 그 누구도 제대로 알아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그의 인생 후반전을 다룬다. 특히 비틀스 이후 존 레넌, 오노 요코를 만난 이후 존 레넌의 삶에 집중한다. 당대 최고 팝스타 존 레넌이 왜 별안간 혁명을 노래하게 되었는지, 달콤한 사랑 노래를 부르다 말고 왜 갑자기 민중에게 권력을 돌려주라며 시비걸게 되었는지 밝혀내는 것이다.

제작진은 “존 레넌 일생의 진심이 담긴 사회활동이 사람들에게 잊혀가는 게 안타까워서”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되었노라고 말한다.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었던 이가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평화를 알리려 했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들려주려고 감독 두 명이 달라붙어 찾아낸 당시 자료 중에는, 들끓는 베트남 전쟁 반대여론에 맞서 누구처럼 공안정국을 조성하려 애쓴 닉슨 대통령의 ‘특별 담화’도 있다. “정치 활동에 참여하는 연예인은 감당하기 힘든 희생을 치르게 될 것이다”라고 엄포를 놓는 그의 모습은 뇌 용량 2MB짜리 대통령을 우리만 가진 게 아니었구나, 안도(?)하게 만드는 뜻밖의 효과도 있다. 그때 존 레넌은 물러서지 않았다. 사회 불안을 선동하는 ‘배후 세력’으로, 워싱턴에 모인 순수한 촛불 시민(세상에! 그들도 촛불을 들었더라)을 반미·반정부 투쟁으로 이끈 ‘전문 시위꾼’으로 남아 끝까지 저항하는 모습이 이 97분짜리 다큐멘터리에 소상히 담겨 있다.



존 레넌과 닉슨 정부의 ‘역사적 대결’
<존 레논 컨피덴셜>의 원제는 <The U.S vs. John Lennon>, 즉 ‘미국 대 존 레넌’이다. 미국에 맞서, 부당한 권력에 맞서, 노래와 행동으로 저항한 아티스트와 그를 두려워하고 미행하며 도청하는 걸로 성이 안 차 결국 제거할 계획까지 세운 닉슨 정부. 이 역사적인 대결의 거대한 실체를 가볍게 종주해내는 이 늠름한 다큐멘터리는, 존 레넌이 대체 어떤 인간인지 자신 있게 말하기 위해 남보다 몇 곱절은 더 치밀하고 광범위한 근거 자료를 확보했다. 존 레넌의 연인 오노 요코의 회상에서 미국의 대표 진보 지식인 노엄 촘스키의 증언, 존 레넌을 미행한 당시 FBI 요원의 자백까지. 물경 수십명에 달하는 관련자 육성 인터뷰와 흥미진진한 미공개 동영상 자료가 뒷받침된 덕에, 단순한 인물 다큐의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어 그가 살다 간 한 시대를 통째로 증언하는 생생한 목격담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세상에는 세 가지 영화가 있다. ‘감탄’하는 영화, ‘감동’받는 영화, 그리고 ‘감사’하게 만드는 영화. <존 레논 컨피덴셜>은 존 레넌의 멋진 인생에 ‘감탄’하고 그의 용감한 노래에 ‘감동’받다가 결국 이 소중한 다큐멘터리를 완성한 감독에게 ‘감사’까지 하게 만드는 영화다. 충격과 감격을 동시에 선사하는 근사한 다큐멘터리다. 물론, 존 레넌이 워낙 근사한 삶을 살다 간 덕분이다.(김세윤_영화 에세이스트)

시사인(08. 06. 03) 밥 딜런 그 인간, 참 복잡한 인물이네

he는 her가 되고 her는 here가 되었다가 다시 there로 변한다. <아임 낫 데어>의 제목 ‘I’m not there’가 스크린에 등장하는 방식이다. 알파벳을 하나씩 늘려가면서 there라는 단어에 도달하는 첫 시작은 앞으로 영화가 어떻게 전개될지 미리 짐작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그’의 인생을 그려내기 위해 ‘그녀’의 연기에 기대는 영화이면서, 지금 ‘이곳’에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영화인 동시에 그때 ‘그곳’의 혼돈을 증언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알파벳을 하나씩 늘려가면서 there에 도달하는 시작처럼, 캐릭터를 하나씩 늘려가면서 결국 밥 딜런이라는 인간의 핵심에 이르는 마지막. 엔드 크레딧이 다 올라간 뒤에도 텅 빈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쉽게 자리를 뜰 수 없게 만든다.

미국 포크 가수 밥 딜런의 인생을 재구성한 영화 <아임 낫 데어>는 배우 6명이 캐릭터 7개를 연기한다. 각각 다른 인물로 설정된 그들이 사실 모두 같은 인물 밥 딜런의 어느 한 시기를 대변하는데, 예를 들어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배우 케이트 블란쳇은 1965년 뉴 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어쿠스틱 기타 대신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무대에 올라 논란을 일으킨 밥 딜런을 ‘주드’라는 이름으로 연기하는 식이다. 크리스천 베일은 그때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무대에 오르기 전, 시대의 대변자로 사랑받던 전성기의 밥 딜런을 ‘잭’이라는 인물로 연기하다가 훗날 종교에 귀의해 가스펠 음악을 부르던 밥 딜런을 ‘존’이라는 이름으로 재현한다. 여기에 벤 위쇼·리처드 기어·히스 레저 같은 유명 배우가 합세해 저마다 자기 몫으로 주어진 밥 딜런의 인생, 밥 딜런의 사상, 밥 딜런의 방황과 밥 딜런의 욕망을 감당한다.



<벨벳 골드마인>(1997년)이라는 음악 영화로 여러 사람을 흥분시킨 감독 토드 헤인스는 왜 이리도 복잡한 방식으로 밥 딜런을 그려냈을까. 매우 싱거운 대답이 되겠지만, 밥 딜런이 그만큼 복잡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밥 딜런이 직접 쓴 자서전을 포함해 4년 동안 그에 관한 거의 모든 책을 읽었다고 말한다. 지루한 독서 끝에 얻은 결론. “‘실제 딜런’ 혹은 ‘진짜 딜런’을 찾으려던 전기 작가들이 모두 실패했으며 픽션의 형식을 통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진실을 전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라는 거다.



‘시대의 이면’까지 들추어낸 역작

결국 직접 밥 딜런 한번도 만나보지 않고 만든 밥 딜런 영화가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밥 딜런 영화로 칭송받는 역설. <아임 낫 데어>는 ‘사실’에 충실한다고 해서 반드시 ‘진실’에 도달하는 건 아니라는, 이 바닥의 얄궂은 아이러니를 새삼 일깨운다. 때로 진실은 이렇게 완벽한 허구에서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좋은 전기 영화는 인간의 이면을 드러낸다. 하지만 ‘더 좋은’ 전기 영화는 그 인간이 살다간 시대의 이면까지 함께 들추어낸다. 11년 전 글램 록에 열광하던 1970년대를 느끼게(‘생각하게’가 아니라!) 만든 <벨벳 골드마인>이 그랬듯 토드 헤인스 감독은 이번에도 ‘더 좋은’ 전기 영화를 만들었다. <아임 낫 데어>를 보고 있으면 말로만 듣던 1960년대의 혼돈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글로만 읽던 ‘반문화’의 위력을 느끼게 된다. 늘 새로운 아티스트를 갈망하면서 정작 그 아티스트가 새로워지는 것에는 야박한 대중과, 가차없이 세상을 공격하면서 정작 세상이 자신을 공격하는 건 참지 못하는 아티스트 사이. 그때도 지금처럼 쉽게 좁혀지지 않는 틈이 존재함을 깨닫게 만든다.(김세윤_영화 에세이스트)

08. 0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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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07-25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임 낫 데어>는 기대가 너무 컸었는지, 보는 내내 어떤 '과도함'이 느껴져서 고개를 몇 번 갸우뚱거렸습니다. Todd Haynes의 전작들을 떠올려보면 이는 사실 그리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요.^^ 사실에 충실하다고 해서 반드시 진실에 도달하는 것은 분명 아니겠지만, 여러 면모들의 나열과 알레고리화 작업 그 자체가 어떤 '진실'을 전해주는 것이 아님 역시 분명한 것 같습니다. 존 레논에 대한 영화가 기대되네요.

로쟈 2008-07-26 00:35   좋아요 0 | URL
이런 쪽 영화들은 꼭 챙겨보시겠군요.^^

클리오 2008-07-25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 레논의 영화는 아주 많이 보고 싶은데, 다큐멘터리라 어떻게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지 모르겠네요.. 더운 여름 잘 지내시죠? ^^

로쟈 2008-07-26 00:36   좋아요 0 | URL
오늘도 비가 와서 더운 건 모르겠습니다. 별로 잘 지내지는 못하구요.^^;

2008-07-26 15: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7-26 15:3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