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흑인 후보가 등장함으로써 올 미국 대선은 다른 때보다 '흥행'할 여지가 많지만 과연 오바마의 리더십이 '미국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장담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노골적인 미국식 '로비 정치'와 '국가적 경매'로 비유되는 미 대선판 자체가 '희망'의 걸림돌이다(차라리 '경매 민주주의'란 말을 붙이고 싶어진다). 이를 짚어주고 있는 칼럼을 옮겨놓는다(http://h21.hani.co.kr/section-021165000/2008/07/021165000200807020717068.html).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어서다.

한겨레21(08. 07. 02) 미 대통령 선거는 경매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철인 요즘, 필자는 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버락 오바마 쪽으로부터 일주일에 한 번꼴로 편지를 받고 있다. 나이만 동갑일 뿐 일면식도 없는 그가 미국식으로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면서 시작하는 전자우편을 보내온 지 벌써 석 달째다. 하지만 필자는 한 번도 그에게 답장을 하지 않았다. 선거 진행 상황에 관한 간략한 소식 뒤에 이어지는 편지의 요점인즉, ‘오늘 중으로 25달러를 기부해달라’는 것이다. 필자 역시 다른 후보들에 비해 그에게 상대적으로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 시민도 아닐 뿐더러 적은 액수일망정 그의 선거운동 비용에 보태려고 기꺼이 주머니를 털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우리 같은 외국인들까지 가세하지 않더라도 민주당과 오바마 진영에는 돈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고 25달러 타령
오늘 오바마 선거운동 관리자인 데이비드 플러프로부터 받은 편지에는 상대방인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 쪽이 지난 5월에만 무려 4500만달러(약 450억원)를 주로 워싱턴의 로비스트들과 특수 이익집단들로부터 모금했다는 폭로성 비난이 실려 있다. 매케인보다 당 차원의 후보 지명이 몇 달이나 늦어진 오바마로서는 빨리 따라잡아야 하니, ‘이번달 중 새로운 개인 기부자 2만 명 확보’라는 목표 달성에 협조해달라는 부탁이 이어진다. “오늘의 25달러 기부가 당신의 영향력을 2배로 만들 것”이라면서, 자기들의 ‘운동’에 동참할 것을 믿고 “미리 감사를 전한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오는 11월 본선까지는 150만 명의 개인 기부자들이 동참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바마는 미국의 정치 지형에 급진적인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지금까지 벌여온 선거운동이 전통적인 방식과 달리 각 지역의 자발적인 풀뿌리 운동을 광범위하게 동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선거비용도 대부분 전국의 소액기부자들로부터 모금한 것이다. 민주당도 당 차원에서 오바마의 선거자금 모금 정책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과연 오바마는 워싱턴의 악명 높은 ‘로비 정치’를 ‘풀뿌리 정치’로 바꾸는 데 성공할 것인가? 더 지켜봐야겠지만, 아직까지 그 대답은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오바마는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미국의 양당제 틀 속에서 나온 정치인이지, 기존 정치구조로부터 독립적인 ‘제3의 후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미국 정치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자본과 특수 이익단체, 기득권 집단들의 끈질기고도 효율적인 회유와 저항의 견고한 벽을 넘어야 한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그런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1968년과 같은 폭발적인 대중운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1960년대 초반의 존 F. 케네디, 그리고 1990년대 빌 클린턴의 경험을 보라. 새로운 정치세대의 등장이라는 축복을 받으며 대통령직을 시작한 그들이었지만, 워싱턴 정치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부여해준 온건한 이미지 탓에 민주당의 타락이 은폐되는 역설적인 결과를 가져오기까지 했다.

금융자본이 오바마에게 접근하는 이유는
회의적인 시각을 뒷받침해주는 기사들이 벌써 나오고 있다. 오바마가 민주당 후보로 선출되는 데 필요한 대의원을 확보한 직후, <로이터통신>은 미국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월스트리트에서 민주당과 오바마 진영으로 선거자금이 몰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오바마가 지금까지 발표한 경제·통상 정책이 매케인 쪽보다 자신들에게 불리함에도, 미국과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금융자본이 오바마를 ‘주요 투자처’로 간주해 접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유무역, 각종 규제, 법인세, 배당세 등 자신들의 이익과 직결되는 문제에 대한 오바마의 정책을 ‘수정’하고자 하는 그들의 목적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5월 말까지 오바마 쪽이 월가로부터 받은 선거자금은 모두 790만달러(약 8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케인 쪽보다 거의 2배가 많은 액수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대기업들은 후보 개인에게 기부하는 것 말고도 양당의 전당대회 행사비용을 충당해주는 방식으로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있다. AT&T, 엑셀에너지 등 대기업들이 오는 8월과 9월에 치러질 공화당과 민주당 전당대회 비용 1억1200만달러(약 1120억원)의 80%를 지원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록히드마틴 같은 방위산업체와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업체들로부터도 지원금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정치자금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임정치센터(www.opensecrets.org)에 따르면, 지난해에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서기로 선언한 이후 오바마는 지난 5월 말까지 총 2억6500만달러(약 2700억원)를 거둬들였다. 힐러리 클린턴은 2억1400만달러(약 2150억원), 그리고 매케인은 9600만달러(약 970억원)를 선거자금으로 모금했다. 이미 중도에서 탈락한 후보들은 제쳐두고라도 3명이 모금한 액수만 벌써 5억7500만달러(약 5800억원)가 넘었다. 이게 미다스의 손이 아니고 무엇인가? 누가 최종 승자인가를 가리는 대통령 선거 날짜가 11월에 있으니, 그때까지 버티기 위해서는 양당 후보가 각각 5천억원씩 필요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2명이 합쳐 1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액수다.

이처럼 엄청난 돈을 들이며 치러지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일러 혹자는 ‘국가적 경매’(national auction)라고 조롱한다. 지금 공화당 후보로 나서고 있는 매케인 상원의원도 공화당의 ‘이단아’ 노릇을 하며 개혁 성향을 보일 때는 미국의 선거자금 모금 체계를 가리켜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응찰자에게 국가를 팔아넘김으로써 공직을 유지하려는 양당 공모하의 정교한 직권남용 체제”라고 비난한 바 있다.



업자들에 사로잡힌 정치인들
19세기 후반 미국의 경제력이 한창 번성하고 제국주의 정책을 감행할 때 작가 마크 트웨인은, 겉은 번쩍거리나 속은 부패한 당대 미국 사회를 ‘도금시대’(The Gilded Age)라고 풍자했다. 1970년대 중반 이래 미국 정치는 돈잔치로 전락해 ‘제2의 도금시대’가 도래했다. 대통령과 의회는 거대기업과 이익단체의 매수 대상 일순위에 올랐다. 정부와 의회는 물론, 심지어 사법부까지 그들의 이익을 반영하고 있다. 미국 정치는, 그리고 아메리카제국은 거대기업과 군수산업체, 에너지업계에서부터 광우병 발생의 위험을 기꺼이 무릅쓰고 쇠고기 수출을 감행하는 축산업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방면에서 막대한 정치자금을 매개로 정치인들을 포섭하는 ‘업자들’에 사로잡혀 있다. 그 사이에 미국의 ‘국익’도, 전 국민을 위한 의료보험도, 공립학교의 재정도 질식돼가고 있는 것이다.(김창진 성공회대 교수·사회과학부)

08. 07.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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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호 2008-07-14 21:36   좋아요 0 | URL
퍼오신 글은 흥미롭긴 하지만 저는 약간 다른 생각이 있어요. 원래 민주당 자체가 월가의 이해를 대변해오지 않았나..하는거죠. 그니깐 노골적인 석유와 무기 깡패냐 아니면 금융깡패냐..이런 차이인거 같아요. 캘리니코스가 제3의 길을 까는 걸 보면(얼마전에 인간사랑에서 캘리니코스의 책을 보내줬는데..역시 초 보수주의자인 저에게는 좀 당황스러운 내용이 많더군요, 흠...) 복지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자본주의의 노예로 만드는 클린턴과 블레어의 입장을 비판하더군요. 그런 면에서는 월 스트리트가 오바마를 지지하는게 하등 놀라울게 없다는 거죠.

로쟈 2008-07-19 11:01   좋아요 0 | URL
그렇다고 공화당은 월가와 반목해왔다고 볼 수 있을까요? 당선가능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싶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