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21을 어제서야 손에 들었다. 배송 시간이 평소보다 좀 더 걸린 셈인데, 덕분에 경제학자 우석훈의 신간 리뷰도 좀 뒤늦게 읽었다(<촌놈들의 대한민국>은 그 전에 이미 읽은 것이니 나로선 책을 리뷰보다도 먼저 읽은 드문 사례다). "진중권이 경제학을 전공했다면 우석훈이 되지 않았을까?"라고 시작하는 리뷰다(http://h21.hani.co.kr/section-021015000/2008/06/021015000200806260716040.html). 어느새 두 사람은 우리시대 젊은 지식인의 확실한 아이콘이 되어가고 있다(진중권은 물론 진작부터 베스트셀러 저자였지만, 촛불집회에서의 '활약'은 그의 상징성을 더욱 확고하게 해주었다). 신간소개라고 하기엔 너무 뒤늦은 기사이지만 '뒷북'으로 챙겨놓는다...

한겨레21(08. 06. 26) 불도저의 묵시록

진중권이 경제학을 전공했다면 우석훈이 되지 않았을까? 우리는 지금 교양과 재치로 무장하고 엄청나게 많은 글을 쏟아내는 경제학자를 보고 있다. 그의 펜끝은 늘 대중을 향해 있다. 주장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그를 보는 건 확실히 즐거운 일이다. ‘글 잘 쓰는 경제학자’는 멸종 위기의 희귀종에 가까우니까.

대중적 설득력을 갖춘 경제학자를 꼽아본다면(잘 안 꼽아지겠지만), 엄지손가락은 장하준 교수 차지일 것이다. 장하준의 글은 매우 우아하면서도 교양과 풍부한 논거들로 무장돼 있다. 장하준과 우석훈의 차이는 밀도와 면적에 있다. 장하준은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하지만, 성장과 국가의 역할에 대해 경제학 밖으로는 나가지 않는다. 그의 글은 매우 밀도가 높다. 우석훈은 틈만 나면 경제학을 벗어나서 세상만사에 끼어든다. 그의 글은 면적이 넓다.



청계천, 거대한 어항
우석훈, 이 놀라운 에너지를 가진 경제학자가 거의 동시에 두 권의 책을 냈다. 일종의 시평집인 <직선들의 대한민국>(웅진지식하우스 펴냄, 1만2천원)과 ‘한국 경제 대안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인 <촌놈들의 제국주의>(개마고원 펴냄, 1만2천원)다. <직선들의 대한민국>에서 ‘직선’은 불도저로 상징되는 건설공화국이다. 이는 청계천을 거대한 어항으로 만들어놓고 생태 복원이라 부르는 우리 마음의 구조와 맞닿아 있다. 전기로 모터를 돌려 끌어온 물을 다시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청계천은 비만 오면 오염물질이 한꺼번에 청계천으로 흐르기 때문에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한다. 그러면 죽은 물고기들을 걷어내고 또다시 물고기들을 방류한다. 청계천이 제대로 복원될 때까지 끝없이 반복될 숨바꼭질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외형적 아름다움을 찬양한다.

‘직선’의 단면을 더 살펴보자. 집 없는 사람들이 집값이 오르면 환호한다. 뉴타운은 현재까지의 경향으로 보면 그 동네에 살던 사람들의 10% 정도만 다시 입주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도심에서 더 먼 곳이나 주거환경이 더 나쁜 곳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뉴타운 계획이 알려지면 모두들 기뻐 날뛴다. 신도시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토호들의 놀이터’가 돼버린 지방을 보면 더 심각하다. 이장한테 도장을 맡겨놓고 사는 순박한 주민들은 토호들의 이익을 위해 토지를 팔아치우는 데 동의한다. 한국의 도시화율은 이미 선진국을 뛰어넘었고,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수도권에 모든 재화를 집중시키고 있다. 이런 ‘직선’적인 힘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운하 발상에서 정점을 이룬다.

왜 이런 부조리한 일들이 벌어지는 걸까? 이 땅에 살고 있는 개인들의 선택은 경제적 합리성으로 설명될 수 없다.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이 아니다. 이 지점에서 우석훈은 경제학자의 영토를 뛰쳐나간다. 그는 건설공화국이 유지·강화되는 원인을 시대 정신의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즉, ‘건설 미학’이 한국인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청계천을 찬양하거나 집 없는 사람들이 뉴타운 건설을 환영하는 이유는 경제적 합리성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아름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미학이 투기와 결합되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파천황’이 된다. 그러므로 ‘건설 미학’을 ‘생태 미학’으로 대체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대안이다. 그는 건설 미학이 한반도 대운하 발상에서 정점에 이르렀지만, 그 때문에 새로운 사유를 할 공간이 열릴 것이라고 믿는다. 생태도시로의 전환, 생협 네트워크 등은 진행 중인 움직임이다. 그는 “주제넘은 이야기를 하는 김에” 건축·문학·음악·영화의 ‘생태 미학’까지 참견한다.

<촌놈들의 제국주의>는 수출 지향, 에너지 소비 지향, 건설 지향의 한국 경제가 내적 불균형 때문에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국익’을 앞세운 이라크 파병에서 보듯, 이제 한국 경제는 해외 영토를 갈망하고 있다. 즉, 제국주의의 길로 나서고 있다. 이게 ‘촌놈들의 제국주의’인 이유는 식민지도 없고 식민지를 거느릴 능력도 없으면서 끊임없는 정복욕과 증오를 표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징후들의 집합이다. 우석훈은 우리 사회·경제 내부에서 제국주의의 징후들을 계속 끄집어낸다. 제국주의의 문화적 형태는 ‘수출주의’인데 한류 열풍을 지나 황우석 사건에서 절정을 맞는다. 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미 제국주의의 등에 올라타 영토를 확장하려는 사람들의 욕망도 읽는다. 또 촌스런 제국주의는 북한을 내부 식민화하려 한다. 한국 자본주의는 북한을 값싼 노동력의 공급처나 부동산 개발의 요람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경제 통합 과정에서 북방 진출을 향한 야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한·중·일의 증오는 더 커져가고 있다. 이들 국가의 소득 분포도는 중산층이 두터운 마름모꼴에서 중산층이 붕괴되는 8자형으로 바뀌고 있다. 에너지와 자원을 둘러싼 각축은 계속 치열해진다. 3국의 산업구조는 전쟁에서 이득을 볼 에너지산업과 건설산업의 비중이 크다. “결론적으로 한·중·일 세 나라가 30년이라는 시간 지평에서 전쟁을 피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우석훈은 이 끔찍한 미래를 막기 위해 평화라는 ‘공공재’의 가치를 되새기고 한·중·일 경제 통합의 밑그림을 그려본다. 무엇보다, 미래의 전쟁을 막는 일은 10대의 손에 있기 때문에 이들의 감성을 죽이는 ‘교육 파시즘’을 반드시 철폐해야 한다.

동아시아 3국의 전쟁이라고?
한국의 제국주의에서 시작해 3국의 전쟁 가능성까지 짚어보는 작업은 좀더 섬세하게 토론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매우 대담한 가설이다. 기본적으로 한국 자본주의가 성장 동력을 잃고 있으며 새로운 계기가 필요하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제국주의로의 전화에 대해 논의하려면 현재의 제국주의 개념에 대한 규정부터 시작해서 그것이 19세기 제국주의와 어떻게 다른지, 또 제국을 움직이는 메커니즘은 무엇인지 설명돼야 한다. 어쨌든 우석훈의 목표는 세밀한 개념 규정이 아니라 레모니 스니켓의 ‘불행 시리즈’ 같은 묵시록을 던져놓고 대중의 각성을 촉구하는 것이다. 인간의 의지로 미래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그는 또 경제학자의 영토를 벗어난다.

두 권의 책은 계속 어떤 이름 하나를 호출하고 있다. 이미 용서받은, 잊혀진, 심지어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이름, 노무현이다. <직선들의 대한민국>은 김대중 시대를 완화된 신자유주의로, 노무현 시대를 강화된 신자유주의로 규정한다. 두 시대를 거쳐오면서 건설 미학이 강화됐다. 거시적 차원에서 보면, 노무현과 이명박 정권은 정책적으로 거의 비슷하다. 진보세력으로 분류됐던 강금실은 서울시장 선거 때 한강 하구 개발을 얘기했고, 정동영은 새만금 개발을 떠들었으며, 손학규는 경기도의 전면적 개발 붐을 주도했다. 우석훈은 노무현 지지세력 중 최악의 인물로 미학적 고민을 해야 할 임무를 방기해버린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을 들었다. <촌놈들의 제국주의>는 아예 한국의 제국주의적 욕망을 정점으로 끌어올린 인물로 노무현을 꼽고, 노무현 정권의 기반이 극우민족주의와 맞닿아 있었다고 주장한다.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정치·경제의 새로운 국면들을 이명박 대통령의 개성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은 편할 것이다. 그러나 이건 이명박 정권에 대한 과소평가다. 우석훈의 두 책은 한국의 불도저 정신과 제국주의가 일련의 과정을 통해 현재의 정점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우리 사회를 묵시록으로 이끄는 힘의 봉인을 푸는 과정이었다. 이 힘의 해체를 위해선 이명박 개인의 독특한 인성만을 얘기해서는 안 된다.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유현산기자)

08. 06. 28.

P.S. <직선들의 대한민국>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두 권 모두 문제제기적이면서 시의성이 돋보이는 책이다. 단, 약간의 아쉬움을 적자면, 먼저 "장하준은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하지만, 성장과 국가의 역할에 대해 경제학 밖으로는 나가지 않는다. 그의 글은 매우 밀도가 높다. 우석훈은 틈만 나면 경제학을 벗어나서 세상만사에 끼어든다. 그의 글은 면적이 넓다."란 지적이 거꾸로 짚어주는 대로 우석훈의 글은 넓지만 밀도가 좀 약하다. '한중일을 위한 평화경제학'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촌놈들의 제국주의>에서도 '평화경제학'이 필요하다는 제안에서 많이 나가지 않는다('전쟁산업'과 '평화산업'이란 그의 이분법이 얼마나 확실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평화에만 쓰이고 전쟁에는 쓰일 수 없는 물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는지?).

역시나 기자의 지적대로 "우석훈의 목표는 세밀한 개념 규정이 아니라 레모니 스니켓의 ‘불행 시리즈’ 같은 묵시록을 던져놓고 대중의 각성을 촉구하는 것이다. 인간의 의지로 미래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그는 또 경제학자의 영토를 벗어난다." 어쩌면 그는 새로운 경제학을 발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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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06-28 14:51   좋아요 0 | URL
<직선들의 대한민국>만 먼저 샀는데 기대됩니다. 카피가... ^^ 불도저 어쩌구.

로쟈 2008-06-29 10:37   좋아요 0 | URL
단숨에 읽히는 책들입니다.^^

biosculp 2008-06-28 18:02   좋아요 0 | URL
저자가 고딩까지 읽을수 있게 대상을 잡고 쓰던데요.
고진의 책도 고딩이 읽어주길 바란다고 번역본에서본것같으데,
촛불에서도 고딩여학생들의 힘이 컸고, 이명박 자율화된 교육체계에서
더 건강한 학생들이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한겨레 21에서는 촛불에 참여한
학생들 인터뷰도 뜨던데요.

로쟈 2008-06-29 10:38   좋아요 0 | URL
네, 저자가 희망을 다음 세대에(나) 거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