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로트만의 <기호계>(문학과지성사, 2008)의 출간 소식은 지난달에 다룬 바 있다(http://blog.aladin.co.kr/mramor/2036014). 최근 출간된 계간 <문학과사회>(2008년 여름호)에 그 서평을 실은 바 있는데, 혹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있을까 해서 여기에 옮겨놓는다.
이것이 로트만의 문화기호학이다!
‘세계는 물질이다’와 ‘세계는 말[馬]이다’란 두 문장의 차이는 무엇일까? 문장 구성상 유사한 이 두 문장을 언어학자라면 동일하게 다룰지 모르지만 문화기호학자는 둘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지적한다. 먼저, 논리적 의미에서 동일한 계사 ‘-이다’의 의미작용이 다르다. 첫번째 경우에는 부분과 전체라는 ‘상응’을 의미하지만(세계⊂물질) 두번째 경우에는 직접적인 동일시를 뜻하기 때문이다(세계=말). 그리고 빈사(賓辭)에도 차이가 있다. 첫번째 문장의 경우에 ‘물질’과 ‘말’은 논리적으로 다른 층위에 속한다. ‘물질’이 메타언어라면 ‘말’은 대상-언어이기 때문이다.
첫번째 경우가 메타언어를 지향하는 묘사적 기술(記述)이라면 두번째 경우는 메타텍스트를 지향하는 신화적 기술이다. 이 두 기술 유형은 각각 ‘비신화적 유형’과 ‘신화적 유형’으로 구분된다. 비신화적 유형이 어떤 식으로든 ‘번역’과 관계있다면, 신화적 유형은 ‘동일시’와 관련된다. 비신화적 텍스트가 제공하는 것은 번역을 통한 새로운 정보이지만, 신화적 텍스트가 다루는 것은 대상의 ‘변형’에 대한 이해이다. 궁극적으로 이 문제는 단일언어적 의식과 복수언어적 의식 사이의 대립으로 수렴된다. 물론 신화적 기술을 낳는 단일언어적 의식이 신화적 의식이다.
이상은 러시아의 세계적인 인문학 지성이자 문화기호학의 창시자 유리 로트만(1922~1993)이 동료 보리스 우스펜스키와 함께 쓴 「신화-이름-문화」(1973)의 서두를 간추린 것이다. 개인적으로 대학원 시절 가장 감명 깊게 읽은 그의 논문 가운데 하나인데 문화기호학 관련 논문들을 모은 『기호계』가 이번에 번역됨으로써 이제 한국어로도 읽을 수 있게 됐다. 의미를 부여하자면, 번역을 통해서 ‘러시아어 로트만’이라는 단일언어적, 신화적 의식 세계가 ‘한국어 로트만’이라는 복수언어적, 비신화적(탈신화적!) 의식 세계로 전환된 것이다. 이것을 로트만 텍스트의 ‘비신화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이러한 비신화화, 혹은 탈신화화가 처음은 아니다. 이젠 ‘전설’이 되었지만, 로트만의 초기 문학이론 저작인 『예술 텍스트의 구조』(1970)와 『시 텍스트의 분석』(1972)이 각각 『예술 텍스트의 구조』(고려원, 1991)과(와) 『시 텍스트의 분석: 시의 구조』(가나, 1987)로 일찌감치 소개된 바 있다. ‘최초’라는 의의는 갖지만 영역본에서 중역한 것이며 적지 않은 오류들이 걸러지지 않은 것이 흠이다. 이어서 로트만의 주요 논문 몇 편이 우스펜스키, 리하초프의 논문들과 함께 『러시아 기호학의 이해』(민음사, 1993)란 이름으로 소개되었다. 러시아어문학 전공자들의 공역이었고 마침 로트만이 세상을 떠난 해에 출간되었다. 이후에 추가된 것은 편역서 『시간과 공간의 기호학』(열린책들, 1996) 외에 『영화기호학』(민음사, 1994), 그리고 로트만의 영화기호학이 포함된 편역서 『영화, 형식과 기호』(열린책들, 1995)와 유리 치비얀과의 공저 『스크린과의 대화』(우물이있는집, 2005) 등이지만 로트만 이론의 ‘중심’이라고는 하기 어렵다.
예외적인 책이라면 로트만 문화기호학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문화기호학』(문예출판사, 1998)을 들 수 있는데, 이 책은 움베르토 에코가 서문을 쓴 영어본 로트만 선집 『정신의 우주 Universe of Mind』(1990)를 옮긴 것이다. 주요 이론적 저작으로 『기호계』는 이 책과 나란히 읽을 필요가 있다. 사실 3부로 이루어진 『문화기호학』의 2부의 제목이 ‘세미오스피어 semiosphere,’ 곧 ‘기호계’이기도 하다. 게다가 『기호계』의 대본이 된 러시아어판 『기호계』(2000)는 이미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던 『문화와 폭발』(1992), 『사유하는 세계들 속에서』(1996)와 함께 로트만의 이론적 작업들을 모아놓은 것인데, 로트만 사후에 편집 출간된 『사유하는 세계들 속에서』는 그보다 먼저 나온 영어본 『정신의 우주』의 대본이다. 즉 『문화기호학』과 『기호계』는 모두 704쪽의 방대한 분량으로 편집돼 있는 러시아어판 『기호계』에 같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이 러시아어판 『기호계』는 아직 영어로 완역돼 있지 않으며 불어본 또한 150쪽의 얇은 선집이다. 따라서 한국어본 『기호계』 번역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시도이며, 1968년부터 1992년까지 로트만이 발표한 논문 12편이 연대순으로 배열돼 있기 때문에 그의 이론적 사유가 어떻게 전개 혹은 진화되어가는가를 일별해볼 수 있는 유익한 자료이다(개인적인 바람을 덧붙이자면, 로트만의 유작 『문화와 폭발』도 소개되면 좋겠다).
『기호계』에 대한 서평의 자리에서 로트만 번역사 혹은 수용사에 대해 되짚어본 것은 이를 지켜본 개인적인 감회와 더불어 이제 비로소 그의 문화연구와 문화기호학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을 피력하기 위해서이고, 다른 한편으론 로트만의 문화이론이 ‘번역이론’이라고도 불릴 수 있을 만큼 번역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때의 번역은 물론 단순히 두 자연어 사이의 번역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신화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로트만이 보기에 텍스트로서의 신화는 특정한 의식 현상으로서의 신화, 곧 신화적 의식을 텍스트로 ‘번역’ 한 것이다.
단일언어적 세계로서의 신화적 의식은 모든 사물을 완전한 전체로 간주하기 때문에 신화적 의식의 세계에서 모든 기호는 고유명사화 된다. 예컨대, ‘이반은 헤라클레스이다’와 ‘이반-헤라클레스’란 두 문장에서 전자의 ‘헤라클레스’가 보통명사로서 이반이란 인물의 속성을 지시한다면, 후자의 경우에는 이반의 부분적 자질이 아닌 전체를 명명 과정을 통해서 특징짓는다. 그러한 것이 신화적 의식의 세계이며 이것은 유아적 의식의 세계에서 잘 나타난다. 아이들이 “나라고 부르지 마, 나만 나야. 너는 너고”라는 식으로 인칭대명사나 보통명사를 고유명사로 독점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 좋은 예이다.
이처럼 신화적 의식과 사유는 의식의 개체 발생적 차원에서 먼저 나타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신화적 의식이나 논리적 사고에 의해 대체되는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의 문제에도 상당한 관심을 가졌던 로트만은 신화적/비신화적 의식의 문제를 인간의 사고에서 ‘좌반구적 원칙’과 ‘우반구적 원칙’의 대립과 공존에 견준다. 이것은 ‘아이의 의식 ↔ 어른의 의식’ ‘신화적 의식 ↔ 역사적 의식’ ‘도상적 사유 ↔ 문자적 사유’ ‘행위 ↔ 서사’ ‘시 ↔ 산문’ 등의 다양한 대립체계로 변주될 수 있으며, 분절적-비연속적 언어와 비분절적-연속적 언어, 디지털적 사고와 아날로그적 사고의 대립은 로트만의 문화기호학을 가로지르는 기본항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본항들은 보편적인 문화모델을 제시하고 문화에 대한 모든 연구를 문화기호학이란 단일한 학문으로 수렴하려는 로트만의 학문적 기획에 디딤돌로 사용된다.
로트만의 학문적 야심은 가장 먼저 씌어진 「문화를 유형학적으로 기술하기 위한 메타언어에 관하여」에서부터 잘 드러나지만 문화를 역사주의적, 상대주의적 시각 대신에 보편주의적 관점에서 기술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 그는 문화 텍스트들의 다양성을 구조적으로 조직화된 하나의 단일한 체계로 이해하고자 한다. 그가 정의하는 문화 텍스트란 해당 문화의 입장에서 파악된 현실의 가장 추상화된 모델이며, 곧 해당 문화의 세계상(世界像)이다. 그런데 세계 질서의 구성 자체가 모종의 공간적 구조를 기초로 하여 인식되는 것처럼 이 세계상은 반드시 공간적 특징을 띠게 된다. 여기서 공간적 모델은 일종의 메타언어로 기능하며, 세계상의 공간적 구조는 언어로 된 텍스트처럼 기능하게 된다. 가장 단순하게 말해서, ‘여기 ↔ 저기’ ‘내부 ↔ 외부’ ‘우리 ↔ 그들’ 같은 대립쌍이 메타언어로 도출된다. 그리고 이러한 대립은 문화 대 비문화, 정보 대 무질서(엔트로피), 문화 대 자연, 조직화 대 비조직화 등의 대립으로 변주된다.
문화의 역동적 메커니즘은 문화 대 비문화 사이의 대립과 긴장에 그 토대를 두는데, 흥미로운 점은 문화가 자신의 경계를 확장하는 과정은 다른 한편으로 비문화의 영역 또한 확대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로트만에 따르면, 모든 지리적 공간을 문화화함으로써 문화의 공간적 확장을 다 써버린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문화가 한편으로는 무의식의 영역에, 다른 한편으로는 우주에 대립하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문화의 역동적 메커니즘에 대한 이론적 해명이 로트만 문화기호학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제 『기호계』를 통해서 우리는 생명계 속에서 인간만의 특권적 영역인 기호의 우주, 곧 기호계를 탐사할 수 있는 이론적 시각과 개념적 도구들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로트만의 작업은 그간에 주로 미시적이고 지엽적인 연구주제들로 채워졌던 국내의 문화연구의 시야를 보다 거시적이고 보편적인 차원으로, 더 나아가 ‘우주적인’ 차원으로 확장시켜줄 것이다.
08. 05.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