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읽다가 눈물이 난 기사를 옮겨놓는다. 쇠고기가 아니라 중국의 지진 참사에 관한 것이다. 사망자수가 5만명을 넘어섰다는 얘기도 들려오는 만큼 안타까운 사연들이 없을 수 없다. 기사는 그 중 세 사람이 남긴 유언을 전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국가적인 애도에 나섰다. 측은지심이 국적을 가릴 수는 없는 노릇이며, 삼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한겨레(08. 05. 23) ‘지진처럼 가슴 뒤흔든’ 유언들…중국이 울었다

“엄마 아빠 미안해요. 저 없이도 행복하게 사시길 바래요.” “사랑하는 아가야! 네가 살아난다면, 내가 널 사랑했다는 걸 꼭 기억해주렴.” “나는 꼭 살 거야. 나의 가장 큰 소원은 당신과 소근거리며 평생을 함께 하는 것이야.” 지진의 폐허 속에서 발견된 애절한 ‘유언’들이 13억 중국인들의 가슴을 뒤흔들고 있다.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 숨이 잦아드는 상황에서 마지막 생기를 모아 사랑하는 이들에게 남긴 희생자들의 글은 거대한 지진이 돼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다.

■ 엄마 아빠 미안해요 처음엔 아무런 글자도 보이지 않았다. 종이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것이었다. 뿌연 먼지가 낀 게 콘크리트 더미에서 방금 나온 듯했다. 20일 베이촨중학교에서 실종자를 찾던 구조대원들은 그런 종이조각을 든 채 고개를 떨군 교사가 의아할 뿐이었다. 의아함은 곧 전율로 바뀌었다. 교사가 종이조각을 햇빛에 비추는 순간, 나뭇가지 끝과 같은 날카로운 것으로 꾹꾹 눌러 새긴 글자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매몰됐던 학생이 연필이나 볼펜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남긴 유언이 분명했다. 이 글을 남긴 학생은 이 학교 1학년 1반 장둥화이였다. 붕괴된 건물에 갇혀 사투를 벌이던 그는 부모에게 짤막한 유언을 남겼다. 자신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는 아들의 마지막 편지를 본 부모는 억장이 무너져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 사랑하는 아가야 13일 베이촨의 한 무너진 가옥에서 구조대원들이 그를 발견했을 때, 그는 마치 절을 올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릎을 꿇고, 윗몸을 구부린 채, 두 손으로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위에서 쏟아져내린 건물 잔해에 짓눌린 탓인지, 허리가 많이 무너져 있었다. 그는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그가 결사적으로 품고 있던, 노란 꽃무늬가 그려진 빨간 포대기에선 3~4개월된 아기가 상처 하나 없이 새근새근 숨쉬고 있었다. 한 의사가 그의 품을 헤쳐 포대기를 들어올리자 아기는 곤한 듯 잠에 빠져들었다. 포대기에서 휴대전화가 삐져나왔다. 의사는 무심결에 휴대전화를 들어 화면을 봤다. 거기엔 “사랑하는 아가야!”로 시작하는, 젖먹이에게 남긴 엄마의 마지막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 당신과 평생을 함께 하고 싶어 천젠(26)은 15일 베이촨의 한 콘크리트 더미에서 발견됐다. 콘크리트 3개가 시루떡처럼 쌓여 내리누르는 비좁은 틈에서 그는 무려 73시간을 버텼다.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빗방울로 겨우 목을 축이는 상황에서도 삶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는 구조대원들이 다가오자 “나는 세계 최초로 세 덩어리의 콘크리트를 등에 진 사람”이라며, 오히려 구조대원들을 다독이기도 했다. “나는 꼭 살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게 할 순 없다”는 그의 말에는 비장함까지 어렸다. 당시 그의 아내는 아기를 가진 상태였다. 구조장면을 생중계하던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이 그에게 전화로 아내를 연결해줬다. 그는 숨가쁜 목소리로 “지금 나의 가장 큰 꿈은 당신과 평생을 소근거리며 함께 하는 것이야”라고 말했다. 이게 그의 유언이 됐다. 구조대원들이 10분 뒤 그를 꺼냈을 때, 그는 더는 말을 하지 못했다.(청두/유강문 특파원)

한겨레(08. 05. 23) [세상읽기] 슬퍼할 줄 아는 사회

독일 뮌헨 근교 다하우의 유대인 수용 시설을 보러 가던 길이었다. 열 명 남짓한 청소년들이 담소를 나누며 경쾌한 걸음으로 나를 앞질러 갔다. 열일곱, 열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남녀 학생들은 인솔 교사를 따르고 있었다. 내가 수용소 입구로 들어섰을 때 그들은 추모탑 앞에 반원 형태로 서서 묵념을 올리고 있었다. 내가 추모탑을 둘러본 뒤 안내소 건물로 들어가 기본적인 정보를 얻고 나왔을 때 그들은 추모비 주변에 무릎을 꿇은 자세로 둥글게 둘러앉아 있었다. 서로 손을 잡고 고개를 깊숙이 숙인 자세였는데 놀랍게도 다들 울고 있었다. 환한 대낮에 많은 관광객 앞에서, 뱃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오열을 숨기거나 과장됨 없이 표현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 뒤에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 현충일에는 묵념하고 광복절마다 순국선열을 기리는 의식에 참석했지만 그 과정에서 진심으로 울어본 적은 없었다. 빼앗겼던 조국이나 전쟁에서 잃은 삼촌을 위해 울음으로써 슬퍼해야 한다고 배운 적도 없었다. 나중에야 유대 문화에 특별한 애도 전통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애도란 슬픔의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그것을 충실히 표현하고, 잃은 대상을 잘 떠나보낸 뒤, 그것을 내면화시키며 성장하는 총체적 과정을 일컫는 말이다. 유대 문화의 애도 매뉴얼을 보면 혈육의 죽음을 맞았을 때 애도자는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장례까지 3일 동안 종교적·사회적 의무가 면제된다. 장례 뒤 7일 동안은 집에 머물면서 방문객의 조문을 받고, 떠난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장례 후 한 달 동안도 여전히 슬픔을 표현하는 기간으로 정해 머리를 자르지 않고 사회활동을 최소화하고 매일 교회당에 가서 기도한다. 1년이 지나면 떠난 자를 기리는 특별한 의식을 행하고 그 뒤 매년 반복한다고 되어 있다.

한 인간의 정신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특별한 대상과 맺는 애착 경험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마찬가지로 그 특별한 대상(사람뿐 아니라 조국·자유·이상·직위 등)을 잃었을 때 그것을 어떻게 애도하느냐에 따라서도 한 사람의 건강과 성장이 좌우된다. 개인뿐 아니라 사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공동체의 집단 무의식 속에 깃든 박탈의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건강과 성숙도가 결정된다.

현대로 접어들면서 거의 모든 공동체가 전통적인 애도 문화를 폐지하거나 외면했다. 부모를 잃어도 장례식장에서 간단하게 예식을 치른 뒤 슬퍼할 시간도 없이 차를 달려 일터로 돌아간다. 이성과 합리를 중시하는 사회는 슬픔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미성숙한 태도라 여긴다. 거부당한 개인적·사회적 슬픔들은 공동체 내부에 남아 현대 사회를 특징짓는 병리적 징후로 드러나고 있다. 슬퍼하지 못하는 사회는 폭력적으로 변한다.

내가 철들면서부터 들어온 친일파 문제를 아직도 듣는 이유는 잃은 조국에 대한 분노와 상실감이 제대로 애도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일본이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독도가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는 행위는 패전의 상실과 좌절감이 제대로 애도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사를 청산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 말의 가장 본질적인 의미는 애도하기가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공동체 구성원의 집단 무의식 속에 자리잡은 박탈의 감정을 충분히 경험하고 표현하고 떠나보낸 다음 성숙한 변화를 모색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중국 정부가 쓰촨성 지진 희생자들을 위해 3일간 애도 기간을 정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김형경 소설가)

08. 0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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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5-23 17:45   좋아요 0 | URL
우리 사회가 슬퍼해야 마땅한 때에 슬퍼할 줄을 모르는 감정장애를 겪고 있는 것 같아요.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로쟈 2008-05-24 14:27   좋아요 0 | URL
애도 기간에 게임을 할 수 없게 됐다고 PC방에서 욕설을 퍼부어대는 중국 여성도 있더군요...

마늘빵 2008-05-23 18:33   좋아요 0 | URL
마땅히 분노할 것에 대해 분노하고, 슬퍼할 것에 슬퍼할 줄 아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로쟈 2008-05-24 14:27   좋아요 0 | URL
대리 분노, 대리 슬픔에 익숙해져가고 있는 게 문제지요...

2008-05-24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5-24 14:26   좋아요 0 | URL
네, 생각할 때마다 눈물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L.SHIN 2008-05-26 23:51   좋아요 0 | URL
네, 슬퍼할 줄 아는 사회, 애도할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