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출간된 책들 가운데 아서 단토와 반룬의 미술 관련서와 함께 눈에 띄는 건 자본주의 분석/비판서이다(이 정도면 리뷰를 읽어야 하는 부담도 줄어든다). 로버트 라이시의 <슈퍼자본주의>(김영사, 2008)와 앤드루 그린의 <고삐 풀린 자본주의>(필맥, 2008)가 후자에 해당하는 두 권의 책이다. 며칠전에 읽은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슈퍼자본주의의 태동에 대한 라이시의 설명은 음미해볼 만하다).

한겨레(08. 05. 08) '대량해고 가해자’ 당신, 시민으로 돌아가라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에게 익숙한 ‘신자유주의’ 체제를 미국 빌 클린턴 정부 때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버클리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슈퍼 자본주의’라는 말로 설명한다. 그의 책 <슈퍼 자본주의>(슈퍼캐피털리즘)(형선호 옮김, 김영사 펴냄)에서 말하는 슈퍼 자본주의를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급속히 미국화한 한국 경제에 적용해 보더라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라이시가 꼽은 슈퍼 자본주의의 특징은 권력이 ‘시민’의 손에서 ‘소비자’와 ‘투자자’ 쪽으로 이동하면서 민주주의가 쪼그라들었다는 점이다. 그는 이를 “민주주의적인 자본주의를 슈퍼 자본주의가 대체했다”고 했다.

2차대전 이후 1970년대 중반까지 미국은 독점적인 소수 거대기업들과 거대노조, 정부간 협상을 토대로 적절한 통제 속에 높은 생산성과 수익을 달성했다. 그리고 그 성과를 비교적 골고루 분배함으로써 두터운 중산층이 형성되고 예측 가능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대기업 독점 탓에 신참들의 진입장벽은 높았고 여성들과 소수민들은 여전히 2등 시민 대우를 받았으며 매카시 의원의 공산주의 마녀사냥도 상처를 남겼으나 ‘황금기에 가까운 시대’였다. 슈퍼 자본주의는 이를 승리한 자본주의, 패배한 민주주의로 해체해 버렸다.

이 슈퍼 자본주의로의 전화를 설명하는 라이시의 시각이 독특하다. 그는 영국의 마거릿 대처나 미국 로널드 레이건 정권이 주도한 신보수주의나 신자유주의, 또는 워싱턴 컨센서스, 신고전파 경제학 등이 슈퍼 자본주의를 낳았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미 시대상황이 그렇게 변했기 때문”이며, 따라서 “그들은 변화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그것을 합법화시켰을 뿐”이라는 것이다. 탈규제는 레이건이 1981년 백악관에 입성하기 10년 전부터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라이시는 슈퍼 자본주의의 시초를 냉전시기 미 국방부가 주도한 전쟁기술 개발에서 파생된 신기술의 민간전용에서 찾았다. 인터넷, 반도체, 컴퓨터, 광섬유, 인공위성, 자동변환장치 등이 대표적인데, 컨테이너의 사용도 베트남전 때 본격화했고 보잉 707여객기나 747점보제트기는 각각 폭격기와 군수송기 기술을 토대로 만든 것이다.

이들 신기술이 탈규제, 세계화를 촉진하고 동시에 서로 결합되면서 생산과 운송비용을 급격히 낮췄고, 전지구를 커버하는 통신망이 그 효과를 증폭시켰다. 비용절감을 통한 경쟁력 높이기 무한경쟁이 시작돼 싼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는 부품·서비스의 전지구적 공급체계가 등장했다. 오로지 최저가주의로 성공한 월마트가 말단을 이루는 이 전지구적 공급체계가 신참들이 틈입할 수 있는 구멍들을 만들어 주면서 난공불락의 거대기업 독과점체제가 축을 이룬 ‘민주주의적 자본주의’를 근저에서 무너뜨렸다. 이것은 유럽·일본의 재건과 함께 미국 경제의 절대우위가 무너진 데 따른 결과라는 따위의 시각과는 다르다.

어쨌든 승자 독식의 슈퍼 자본주의는 소비자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부여했으며 투자자에게는 더 나은 수익을 가져다 주었다. 여기서 대다수 서민들까지 투자자·투기꾼으로 나선 슈퍼 자본주의의 위선과 딜레마가 발생한다. 예컨대 월마트가 싸게 팔려면 물품 공급자에게 가격인하를 압박하고 직원들 임금을 깎아야 한다. 이는 저임금과 해고를 일상화하고 자원남획에 따른 환경파괴를 부른다. 대량소비에 길든 소비자는 환경파괴를 걱정하면서도 스포츠실용차(SUV) 구입을 주저하지 않는다. 저물가 혜택을 누리는 소비자는 이렇게 해서 장기적으로 자신의 존립근거인 사회 전체의 자산을 파괴한다.

주가에 울고 웃는 투자자도 마찬가지다. 대량해고를 주저하지 않았던 제너럴일렉트릭의 잭 웰치의 예에서 보듯 주가를 올리지 못하는 기업이나 최고경영자들은 설 자리가 없다. 주식을 사서 차액을 남기려는 투자자는 결과적으로 대량해고의 가해자가 되고 다수 서민들의 희생으로 고수익을 누리면서 사회적 비용을 키운다. 게다가 문제는 그 소비자와 투자자가 바로 ‘나’요 ‘당신’이라는 점이다.

모두가 이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회에서 ‘공익’은 어디로 가나? 라이시는 슈퍼 자본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게임의 규칙을 바꿔 강자들을 규제하고, 규칙에 따른 손해는 각자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안의 ‘소비자’나 ‘투자자’가 아니라 ‘시민’에게 더 큰 발언권을 주자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기업들한테 수익 추구의 자유를 보장하되 “그들이 룰을 정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한승동 선임기자)

한겨레(08. 05. 08) '정부의 손’ 벗어난 시장 양극화 질주

“1970년대의 마르크스경제학 르네상스에서 영국을 대표하는 이론가 중 한 사람”이라는 앤드루 글린(1943~2007)의 <고삐풀린 자본주의-1980년 이후(Capitalism Unleashed: Finance, Globalization and Welfare)>(필맥 펴냄)는 최근 30여년간 전지구적 현실이 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어떻게 탄생하고 발전했으며 어떤 문제에 봉착하고 있는지를 살핀다. 글린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쓴 <1945년 이후의 자본주의>의 후속작이다.

1980년 이후를 고삐 풀린 자본주의라 하면, 전작이 담고 있는 45년부터 80년까지의 자본주의는 고삐에 매인 자본주의라 할 수 있을까. 고삐란 이윤을 좇는 자본과 기업에 대한 사회공동체, 노동자, 국가, 국제사회의 규제와 통제다. 고삐에 매여 있던 시기의 자본주의는 고성장과 저실업, 고용안정, 번영의 황금시대를 구가했다. 하지만 고삐풀린 뒤의 자본주의 성적은 좋지 못했다. 고삐가 풀리기만 하면 더욱 높은 경제효율성과 생산성을 달성하고 더 나은 삶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던 신자유주의자들의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다. 90년 이후 1인당 생산성 증가율은 1973~79년보다 더 낮아졌다. 자본과 기업의 힘이 커지고 노동자의 힘이 졸아든 양극화시대에 대다수 사람들의 삶은 오히려 나빠져 불만이 커지고 있다. 대안이 있을까? 저자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복지제도가 생산성을 위축시킨 증거가 없고 영미권에 비해 평등하며, 전반적으로 평등주의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강하다는 점에 주목한다.(한승동기자)

08. 05. 11.

P.S. 라이시와 글린의 구분을 따르자면 현단계 자본주의는 '슈퍼자본주의'이고 '고삐 풀린 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 원론이나 '고삐에 매인 자본주의'론만 가지고 이해하기에는 양상이 좀 다르다는 얘기겠다.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공역자 중 한 사람은 김수행 교수인데, 이미 글린이 필립 암스트롱 등과 함께 쓴 <1945년 이후의 자본주의>(동아출판사, 1993)을 우리말로 옮긴 적이 있다. 현재는 절판됐고 알라딘에서는 '앤드류 그린'으로도 '김수행'으로도 검색이 되지 않는 책이다(저자 '필립 암스트롱'만 표기돼 있어서). 나는 IMF 때인가 '자본주의를 알아야겠다' 싶어서 사두고는 몇 페이지 안 읽은 기억이 있다(그래서 여전히 '적응'을 못하고 있는지도).

로버트 라이시의 책으론 <미래를 위한 약속>(김영사, 2003), <부유한 노예>(김영사, 2001) 등이 '최근'에 소개된 것들이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각인시켜준 책은 <1945년 이후의 자본주의>와 비슷한 시기에 나온 <국가의 일>(까치글방, 1994). 비록 <미국경제의 제3의 선택>(한국노동연구원, 1993)이란 책도 나왔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됐지만 나는 못 본 책이다. 어쨌든 두 저자의 책 두 권을 겹쳐 읽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그 사이에 15년이 흘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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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5-11 12:30   좋아요 0 | URL
게시글과는 관계업이 궁금한게 있어서 댓글 남겨요.
이번에 헤겔의 '법철학'도 나왔던데. 오래전 출간됐던 '논리학'과 '역사철학강의'는 혹 복간 일정이 잡혀 있을까요?
혹 아는 바 있으면 귀뜸 부탁드릴게요 : )

로쟈 2008-05-11 22:18   좋아요 0 | URL
저한테 무슨 '줄'이 있는 건 아니고요, 직접 출판사에 문의하시는 게 빠를 듯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5-11 22:54   좋아요 0 | URL
지식인이 대기업의 머슴이 되는 게 고삐풀린 자본주의의 특징이죠.그러면서도 부끄러운줄도 모르고...군대에 전경련에서 만든 경제교과서를 무료 배포하기 시작했더라구요.필맥이 색깔있는 책을 많이 내더군요.
소비자나 투자자 이전에 시민이 되어야죠.건전한 민주정신을 가진...

로쟈 2008-05-11 22:55   좋아요 0 | URL
한줄로 잘 요약해주셨습니다.^^

섬나무 2008-05-12 10:26   좋아요 0 | URL
그런데 건전한 민주정신을 갖는 시민을 키우는 일을 책이 할 수 있을까요? 라고 묻고 싶어집니다. 내 생각은 부정적입니다. 그냥 방법이 없다는 거지요. 왜냐면 훌륭한 시민보다 인간의 본능에 충실하기가 훨씬 간단하니까요. 아마 로쟈님이 그 책들을 다 읽었어도 적응이 힘들것처럼 말입니다. 하여간 요즘은 부쩍 절망적입니다.

로쟈 2008-05-12 11:20   좋아요 0 | URL
방법이 없다면 쉬이 냉소주의로 빠지지 않을까요? 책이 모든 걸 할 수는 없지만 교육은 많은 걸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아직 '계몽주의'의 편을 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