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이면 토요일자 신문들의 북리뷰가 온라인에 올라오기 때문에 이곳저곳 기웃거리게 되는데, 다행히(?) 이번주에는 이미 소개한 책들 외에 눈길이 가는 책이 따로 없다. 헤겔의 <자연철학>, <법철학>, 그리고 셸링의 <초월적 관념론 체계> 등은 당장에 읽을 일이 없을 듯하여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뤄볼 예정이다. 지금 당장은 구입한 책과 대출한 책 들이나 얼른 '처리'를 해야할 형편이다(요즘은 도서관에서 대출해놓은 책들만 해도 50권이 된다). 밀린 일 몇 가지만 해치우고서. 그 중 하나는 데이비드 스토브의 <다윈의 동화>(영림카디널, 2008)에 대한 리뷰를 옮겨놓는 것이다. 책이 나온 건 두 주쯤 됐고 내가 책을 눈에 띄자 마자 '비종교인의 진화론 비판'이란 특이성 때문에 구입해놓은 지도 그 정도 됐지만 그간에 마땅한 리뷰를 읽어보지 못했다. 아래 리뷰는 우연찮게도 며칠전 도서관에서 원서를 대출해온 날 읽은 것이다. 옮겨놓고 몇 마디 보탠다.

한겨레21(08. 04. 24) 진화론, 인간에 대한 명예훼손

“유기체의 모든 개체군에서는 언제나 변이가 존재했다. 이들 중 몇몇은 유전되고 그것의 소유자에게 유익하다. 그리고 먹이 공급에 대한 압력이 존재한다. 이것이 생존을 위한 동종 간의 지속적인 경쟁을 낳는다. 이 경쟁에서 경쟁자에 비해 유전적인 장점을 지니고 있는 유기체들이 자연적으로 선택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선호되는 변이가 새로운 종이 되어 나타날 것이다.”

아시다시피다.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설파한 ‘진화론’의 정수다. 신심 깊은 독자들에겐 죄송한 얘기지만, 바야흐로 21세기다. 종교인들 중에도 성서 창세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 드물지 않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철학자 데이비드 스토브가 쓴 <다윈의 동화>(신재일 옮김·영림카디널 펴냄)에 눈길이 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27년생인 저자가 1994년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야 탈고했다는 이 책은 ‘과학’이란 외피를 두른 진화론, 그 ‘당연함’에 대한 비판적 에세이 11편을 묶은 사색의 기록이다. 스토브는 책 첫 문장부터 의도적인 ‘도발’을 감행한다. “이 책은 진화론을 반박하는 책이다. 내 목표는 다윈주의가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다. 적어도 ‘우리 인간’에게는 진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뒤늦게 ‘계몽의 시대’를 살아내느라 허덕이고 있다. ‘털 없는 유인원’이란 조소와 ‘이기적 유전자’라는 비난에도 아랑곳없이 ‘다윈주의자’를 자처한다. <다윈의 동화>는 이런 ‘지적 무기력’을 겨냥한 ‘우상 파괴’ 시도다. 창조론자의 억지가 아니냐고? ‘신앙고백’이라도 하듯 그는 서둘러 이렇게 썼다.

“나는 창조론자가 아니며, 기독교도는 더더욱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언급해야겠다. 사실 내게는 종교가 없다. 내가 속한 종이 육지 포유동물에 속한다는 것은 진화론자들과 마찬가지로 내게도 아주 명백해 보인다. 그리고 우리 종이 다른 동물로부터 진화해왔다는 사실 역시 진화론자들과 마찬가지로 내게도 아주 그럴듯해 보인다.”

스토브는 자연선택이 ‘과거의 종에서 새로운 종이 생겨나게 하는 주된 원인’이라는 다윈의 주장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자연선택이 ‘현재’ 인간에게서 ‘진행 중’임을 부인한다. 그리고 자연선택이 과거의 인간에게서 일어났었다는 것도 부인한다. 그가 내세운 ‘비판의 무기’는 딱히 특별할 게 없다. 진화론이 옳다면 모든 종이 생존을 위해 무자비한 경쟁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데, 이타적인 행동을 곧잘 하는 인간의 삶은 그렇지 않다는 게 “너무나도 명백하다”는 게다. 무엇보다 스토브는 인간을 “토끼나 파리, 대구나 소나무”처럼 취급하는 것에 분노한다. “유전자라고 알려진 이기적인 분자를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로봇 운반수단”이라는 식의 주장은 그에게 ‘인간에 대한 우스꽝스런 명예훼손’일 뿐이다.

“18세기 후반 프랑스 계몽주의의 독창적이고 전형적인 생각”이었던 초기 진화론은 자연스레 왕정 폐지와 공화주의란 ‘혁명적’인 사상과 맞물렸다. 이 때문에 다윈은 “진화론이 지니고 있는 ‘무신앙’과 ‘혁명’이라는 원초적인 모체에서 진화론을 떼어놓기 위해” 고민했다고 스토브는 지적한다. 어떻게? “<종의 기원>에서 가장 흥미로운 종인 인간의 기원에 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아주 철저하고도 묘한 방법을 통해서”였다.

그럼에도 진화론은 “본질적으로 계몽주의의 지적 무기고에 들어 있는 요소”였다. ‘진화의 실마리’를 푼 논리를 제공해준 게 반계몽주의의 화신이었던 토머스 맬서스였다는 점은 그래서 지독한 역설이다. 스토브는 “인구는 주로 식량 획득의 어려움 때문에 제한된다는 맬서스(그리고 다윈)의 생각이 옮은 것이라면 영국은 아주 오래전에 귀족들의 국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지적한 ‘최초의 아나키스트’ 윌리엄 고드윈의 말에 손뼉 친다.

‘적자생존’을 지나치게 강조한 진화론자들이 자연스레 우생학으로 흘러간 역사에 대한 ‘경계’도 빼놓을 수 없다. “피임은 불가피하고 필연적인 생존경쟁을 억누르는 위협 중 하나”로 인식했던 다윈이 남긴 유산일 게다. 생의 황혼길에 ‘인간’이라는 ‘종’에 천착한 철학자의 치열함이 흐뭇하다. 그러니 이 책은 ‘한 인본주의자의 인간예찬론’으로 읽으면 족하겠다. ‘우리 시대의 에라스무스’라고나 할까.(정인환기자)

08. 04. 25.

P.S. 저자의 특이한 포지션은 종교인이나 지적 설계론자가 아니면서 다윈주의 진화론을 반박한다는 것인데, 어지간한 저자라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데이비드 흄 전문가라는 저자의 철학자로서의 이력이 만만찮다. 게다가 마틴 가드너나 하비 맨스필드 같은 저명인사들이 추천사를 쓰고 있기에(서문은 로저 킴볼이 썼다) '이게 뭔가' 싶어서라도 책은 들춰보게 된다. 그리고 저자 서문 정도는 읽어봐야겠지.

그럴 계산으로 도서관에서 대출한 원서는 1995년판이다. 저자가 원고를 마무리하고 세상을 떠난 그 이듬해에 나온 것인데, 따져보면 저자 스토브 교수는 책의 출간을 못 본 게 아닌가 싶다. 이 95년판에는 저자 서문만이 붙어 있고 Avebury출판사의 철학 시리즈 중 한권으로 나온 것이어서 표지도 밋밋하다. 국역본은 95년판이 아닌 2006년판을 옮긴 것이고 킴볼의 서문은 이 책에만 붙어 있다. 여기서는 스토브의 서문만 읽어본다.

"이 책은 진화론을 반박하는 책이다. 다윈의 진화론과 다윈의 19세기 제자들은 물론이고 윌리엄스나 해밀턴과 같은 20세기의 영향력 있는 다윈주의자와 그 제자들 모두를 비판하는 책이다."

여기서 '윌리엄스'는 <적응과 자연선택>(1966)의 저자 '조지 윌리엄스'를 말하고, '해밀턴'은  '붉은 여왕' 이론의 대표적인 이론가 '윌리엄 해밀턴'을 가리킨다. 둘다 도킨스의 책에서 자주 거명되는 20세기 최고의 진화생물학자들이다. 스토브는 이 책에서 이들을 상대해주겠다는 것. 참고로 '붉은 여왕 이론'에 대한 설명을 과학평론가 이인식씨의 칼럼에서 옮겨놓는다. 

붉은 여왕 이론은 루이스 캐롤의 ‘거울 속의 세계’(1871)에 나오는 여왕의 이름에서 따온 명칭이다. 붉은 여왕은 앨리스 소녀의 손을 끌어당기며 빠른 속도로 내달린다. 그러나 그들이 제아무리 빨리 달릴지라도 항상 같은 장소에 머물게 된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앨리스에게 붉은 여왕은 “네가 같은 곳에 머물려면 지금처럼 전력을 다해서 달려야 한다. 그러나 만일 다른 곳으로 가기를 원한다면, 너는 적어도 지금보다 두배는 더 빨리 달리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말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생물이 기생생물과 싸울 때 무성생식으로 태어난 개체는 모두 동일하므로 만일 한 개체를 파괴할 수 있는 기생생물이 출현한다면 순식간에 다른 개체를 모두 정복할 수 있을 테지만, 유성생식으로 태어난 개체는 모두 다르기 때문에 한개의 열쇠로 모든 자물쇠를 열 수 없는 것처럼 기생생물이 다양한 개체를 효율적으로 공략할 수 없다. 요컨대 성은 모든 세대에 걸쳐 개체가 질병을 일으키는 기생생물의 공격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개발한 전략무기이다. 대표적인 이론가는 영국의 윌리엄 해밀턴이다.(이인식, '성은 왜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조지 윌리엄스와 윌리엄 해밀턴, 그리고 이들의 제자인 리처드 도킨스 같은 대표적인 진화생물학자들을 비판하고자 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내 목표는 다윈주의가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다. 적어도 '우리 인간'에게는 진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다윈주의가 해면동물이나 뱀, 파리, 또는 다른 종의 경우엔 진리라고 할지라도, 또는 아주 진리에 가깝다고 할지라도 나는 개의치 않는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다윈주의가 인간에게 마치 진리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관심을 갖는다'고 옮긴 동사는 'mind'이다. '내가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은'이라고 옮길 수 있겠다. 그러니까 스토브의 주장은 진화론이 다른 종의 생물들에겐 진리일지 모르지만 인간에겐 아니라는 것. 왜? 인간은 '동물'이 아니니까?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늘 말해왔듯이 나는 '창조론자'가 아니며 기독교도는 더더욱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언급해야겠다. 사실 내게는 종교가 없다. 내가 속한 종이 육지 포유동물에 속한다는 것은 진화론자들과 마찬가지로 내게도 아주 명백해 보인다. 그리고 우리 종이 다른 동물로부터 진화해 왔다는 사실 역시 진화론자들과 마찬가지로 내게도 아주 그럴듯해 보인다. 나는 자연선택이 과거의 종에서 새로운 종이 생겨나게 하는 주된 원인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자연선택이 '현재' 인간에게서 '진행중'임을 부인한다."

사실 진화는 장구한 '진화론적 시간'에 걸쳐서 일어나는 것인지라 '현재 진행중'이라는 사실이 감지될 수 없고 따라서 스토브의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의 입장은 자신이 확증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신뢰할 수 없다는 것처럼 보인다. 거기에 "하지만 나는 어떻게 인간이 현재의 인간으로 나타나게 되었는지, 또는 어떤 조상으로부터 진화해 왔는지에 대해서는 이 책에서 다루지 않을 것이다."라고 그는 못박고 있다. 그가 진화론 대신에 다른 어떤 이론을 제안하려는 게 결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단지 그는 진화론이 '현재에 우리 종에 대해 잘못 그려준 초상화에 바보처럼 속지 않'겠다는 결심을 다질 따름이다(그러니까 대안을 내세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가 그의 포지션이다). 그리고 유의할 대목.

"내가 진화론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은 여기서 밝혀야겠다. 나는 생물학자가 아니라 철학자이다. 다만 우연히 40여 년 동안 진화론 문헌들을 접하며 인간에 대한 우스꽝스런 명예훼손에 강한 반감을 지녀왔다. 물론 이것이 인간에 대한 진화론적 견해를 비판할 수 있는 이상적인 자격증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진화론은 현재 명확한 과학의 한 분야이다. 그래서 이방인이 그것을 비판하면 자격이 없다는 소리를 듣게 마련이다." 

진화론을 비판하려는 자신의 '자격' 문제를 거론하고 있는 대목인데, 유의해야 한다고 한 건 강조한 문장들의 국역본 번역이 거꾸로 돼 있기 때문이다. 스트보가 말하고 있는 건 국역본대로라면 (1)나는 진화론 전문가가 아니다. 생물학자가 아니라 철학자니까. (2)다만 오랜동안 진화론 문헌들을 읽으며 반감을 가져왔다. (3)진화론은 명확한 과학의 한 분야다. (4)따라서 이방인(문외한)의 비판은 자격에 대한 시비를 듣게 된다, 가 될 터인데, 이건 '자멸적인' 논리 아닌가? "나는 진화론을 비판하지만 생물학의 문외한이다. 통상 문외한은 비판의 자격이 없다."라는 얘기니까.

그럴 리는 없는 노릇이고 원문은 이렇다: "But on the other hand, Darwinism is not yet so arcane  a branch of science that criticism of it by an outsider can be automatically assumed to be incompetent." 다시 옮기면,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다윈주의는 문외한의 비판이 곧장 자격미달로 간주될 만큼 비밀스런 과학의 한 갈래가 아직 아니다." 그의 주장은 진화론(다윈주의)이 아직 전문화되고 성역화된 과학으로서의 권위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문외한이더라도 시비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모두 11편의 '에세이'를 담고 있는 이 책 <다윈의 동화>의 기본 전제이자 출발점이다. 

일견 별로 가망이 없어 보이는 '시도'이긴 한데, 한편으론 그가 어디까지 가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게다가 명예훼손이란 '사실 혹은 허위사실로 당사자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에 모두 적용된다고 하니까, 설사 진화론이 진리라 하더라도 명예훼손죄는 피하지 못하겠다. 해서 "진화론은 유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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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08-04-26 02:34   좋아요 0 | URL

매우 유익하고 알찬 핵심 논평, 정말 잘 읽었습니다. 과학적 논점이나 철학적 쟁점에 대해 “문외한(outsider)”이더라도, 얼마든지 시비를 제기할 수 있다는 얘기가 새삼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군요.

만약 이런 이방인 비판이 가능하지 않거나, 외부 비판을 금기시하는 풍토라면, 진화론에서 말하는 근친혼이나 근친교배 · 근친상간의 폐해를 가져올 위험이 매우 높으리라 생각합니다. 문외한적 비판에 관한 자격 문제를 언급하는 데이비드 스토브(David Stove) 역시 분명 이런 맥락의 함축을 고려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데이비드 스토브가 『다윈의 동화 Darwinian Fairytales』에서 깔고 있는 “문외한적인 다윈주의 비판”의 기본전제이자 출발점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진화론의 과학적 논리를 옹호하는 것으로 낙착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 인간에 대한 다윈주의적 견해를 비판하고자 했던 데이비드 스토브의 비판 논리는 역으로 다윈주의의 유효성을 더 강화하는 것이 아닐까요? 진화론 비판이든 옹호든 결국은 모두 진화론의 과학적 타당성을 강화하고 입증하는 데 어떻게든 기여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말도 가능할 듯합니다.

“진화론은 인간에 대한 증언이다.”




로쟈 2008-04-26 09:02   좋아요 0 | URL
"결국, 인간에 대한 다윈주의적 견해를 비판하고자 했던 데이비드 스토브의 비판 논리는 역으로 다윈주의의 유효성을 더 강화하는 것이 아닐까요?" 결국 그런 것인지는 마저 읽어봐야 알겠습니다.^^

kimdan 2008-04-26 01:51   좋아요 0 | URL
"Darwinism is not yet so arcane a branch of science that criticism of it by an outsider can be automatically assumed to be incompetent." 이 문장 굉장히 (생물학도로서) 불편하네요. ㅠㅠㅠ 그렇다고 로쟈님의 서재에서 진화론은 이러이러하다라고 일방적인 강의(!)를 할 수는 없으니 그냥 이 정도에서 마치겠습니다. 하하.

로쟈 2008-04-26 09:01   좋아요 0 | URL
스토브의 입장은 진화론이 아직 엄밀한 과학은 아니라는 것 같은데,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장입니다(생물학자들은 코웃음칠 만한). 대신에 제가 동의할 수 있는 건 진화론이 '명예훼손'이라는 주장입니다. kimdan님도 '불편한' 책을 한번 읽어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공부에는 적들이 친구들보다 유익하니까요.^^

노이에자이트 2008-04-27 01:46   좋아요 0 | URL
보수적인 창조론 찬성자들이 적자생존론을 사회이론으로는 맞다고 여기고 기묘하게 동맹한 사실이 있는 걸 볼 때 인간의 조상론만 빼놓으면 근본주의자들도 다윈을 표절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요.그것도 아전인수격으로...

로쟈 2008-04-27 18:45   좋아요 0 | URL
스토브는 창조론자는 아닙니다. 그 점이 다른 보수주의자들과의 차별점이라고 헐까요...

노이에자이트 2008-04-28 00:40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맘에 들어요.

로쟈 2008-04-28 09:49   좋아요 0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