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의 기일이라 한다. 1980년 4월 15일 몰. 언젠가 적어놓은 적이 있는데, 어린시절 내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죽음은 한 권력자와 한 철학자의 죽음이었다. 권력자는 1979년 10월 26일에 암살당했고 철학자는 그 이듬해 봄에 죽었다(곧이어 벌어진 5월의 학살은 언론 통제 탓에 당시로선 실상을 알 수 없었다). 기억에 모두 신문의 한면을 크게 장식한 죽음이었다. 아래 기사를 접하니 문득 그때 생각이 잠시 난다. 사진과 함께 부고 기사를 싣고 있던 신문지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는 연초에 새 번역본이 나왔다. 책에 대해서는 여러 장소에서 '강의'를 했던 기억도 떠오른다(지난주에도 강의에서 언급할 기회가 있었다!). 다시 읽어볼까 하는 생각도 드는군. 봄밤인 탓이겠다...
한국일보(08. 04. 15) [오늘의 책<4월 15일>]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1980년 4월 15일 사르트르가 75세로 사망했다. 문학비평가 김윤식 명지대 석좌교수가 곧잘 인용하는 사르트르의 비유가 있다. “비평가는 묘지기”라는 것이다. “… 묘지가 평화로운지 어떤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서재보다 더 기분 좋은 곳은 없다. 서재 속에는 죽은 사람들이 있다. 그 죽은 사람들은 밤낮 쓰기만 했다…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납골당의 항아리 같이 벽을 따라 판자 위에 늘어놓은 조그만 관밖에는 없다.”(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비평가는 묘지(서재)에서 죽은 사람(저자)들의 관(책)을 더듬으며(독서), 거기에 숨결을 불어넣는(비평) 시체지기에 다름아니라는 비유다. 얼마 전 김 교수를 만났을 때는,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들었다. “‘20세기는 사르트르의 세기’가 아니라, ‘사르트르가 곧 20세기’였다는 거야.”
그 말대로 사르트르는 ‘그 자신 안에 20세기가 다 들어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는 묘지기이자, 거리에서 앙가주망을 실천한 행동가였으며, 보부아르와의 계약결혼으로 가장 떠들썩한 화제를 만든 지적인 스캔들 메이커였고, 노벨문학상을 부르주아의 상이라며 거절한 악동이기도 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지옥, 그것은 곧 타인”이라는 그의 명제들을 빼고 20세기 후반 인류의 정신사조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도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1950년대 이후 문학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고, 지식인의 사회참여를 논증한 그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은 1980년대까지 대학가의 필독서였다.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 10월 29일 사르트르가 파리에서 한 강연을 담은 책이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 그리고 강연문이라는 특성상 이 자그마한 책은 그의 여느 글보다 더 명료하게 실존주의를 집약하고 있다.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 실존주의자는 인간은 그 어떤 뒷받침도, 그 어떤 도움도 없이 매 순간 인간을 발명하도록 선고받았다고 생각한다…” 사르트르가 폭포수 같이 내뿜는 언어의 성찬이다.(하종오기자)
08. 04. 15.
P.S. 사르트르에 관해 예전에 쓴 페이퍼로는 '사르트르의 죽음과 철학'(http://blog.aladin.co.kr/mramor/776305)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