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새책'이란 카테고리는 재출간된 책들을 위한 것인데, 요즘 부쩍 이에 해당하는 책이 많아졌다. 묻혀 있던 양서들이 다시 빛을 보거나 부실한 모양새로 출간되었던 책이 새롭게 개정되어 나오는 건 언제라도 환영이다. 다만 재출간이 무슨 '원죄'라도 되는 듯이 '몰래' 출간된다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독자에게 당연히 제시되어야 할 '정보'가 누락되는 것이기에 그렇다(보통 제목은 바뀐다. 그리고 별로 오래전 책이 아니어도 값은 뛴다). 그걸 꼬집는 기사를 옮겨놓는다(물론 기사에서 언급되고 있는 책들은 '재발견'의 긍정적인 사례들이다).

경향신문(08. 04. 12) [책동네 산책]재출간 떳떳이 밝히고 재평가 당당히 받아라

전화상의 그이는 자신있게 설명했다. 한 분야만을 파고든 저자의 열정을 얘기했고, 책이 다루는 주제의 참신함을 말했다.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용의 흥미로움도 강조했다. 그런데 분위기 파악 못하는 기자, 퉁명스럽게 물었다. “이 책 예전에 나왔던 거 아닌가요?” “아, 예, 사실은….”

언제부터인가 눈에 띄는 신간이 오면 책의 맨 앞장이나 뒷장, 심지어 책날개까지 유심히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출판사에서 보내온 보도자료를 훑거나 인터넷으로 검색하기도 한다. ‘재출간’되는 책들이 많아졌지만 그같은 사실을 알아채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출판사의 의도’가 느껴질 만큼 ‘교묘한 곳’에 슬며시 밝히거나 아예 밝히지 않는 경우도 많다.



재출간은 출판계의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일반적인 풍토로 자리잡은 느낌이다. “옛날 책을 잘 찾아라”는 말은 출판계에서 오래전부터 회자돼온 기획 원칙이다. 지난 달 경향신문을 통해서도 소개된 ‘승자독식사회’(웅진지식하우스)도 1997년 ‘이기는 자가 전부 가지는 사회’라는 이름으로 나왔던 책이다. 저자 가운데 한 사람인 로버트 프랭크가 ‘이코노믹 씽킹’ 등을 통해 유명세를 탄 데다, 책의 내용이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에 더 맞는다는 생각에 재출간했다는 게 출판사 측의 설명이다. 이 책은 출간 한 달 만에 1만부 가까이 팔리면서 경제·경영 분야 베스트셀러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절판된 책도 잘만 고르면 웬만한 신간보다 나은 경우가 심심찮다. 해서 소규모 출판사들이 ‘틈새 전략’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구간은 저작권료가 싸다. 눈만 밝으면 좋은 책을 싼 값에 낼 수 있다는 소리다. 지난해 황소자리에서 출간한 ‘욕망하는 식물’은 2002년 ‘욕망의 식물학’으로 소개됐던 것을 새롭게 번역한 책이다. 이 출판사의 첫 책인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도 다시 낸 책이다.

재출간은 여러 이유로 아깝게 묻혔던 책을 ‘재발견’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래서 ‘리메이크’니 ‘리바이벌’이니 하면서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겉만 화려하게 바꿔 내놓고 그같은 말을 쓰는 건 쑥스러운 일이다. “재출간이 콘텐츠에 공을 들이는 대신 이미 검증된 책을 시기에 맞게 적당히 포장하는 식으로만 가고 있다”는 한 출판인의 말은 새겨들을 만하다.

책만 좋으면 됐지 그게 대수냐고 할지 모르겠다. 앞서 말한 기자의 ‘버릇’으로 돌아가보자. 그것이 ‘재출간된 책은 소개하지 않는다’라는 대단한 원칙 때문에 생긴 건 아니다. 출판사에 ‘낚였다’는 느낌도 부차적인 문제다. 적어도 책에 대한 기본 정보는 독자들에게 정확히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단 한 명의 독자라도 이중으로 책을 살 수도 있으니까.

아니, 그런 노파심까지 필요없다. 출판사가 재출간 사실을 밝히는 건 독자에 대한 ‘신의성실의 원칙’을 지키는 일이다. 출판사가 어떤 부분에 공을 들여 ‘재출간’했는지를 당당히 밝히고 ‘품질’로 승부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만 재출간된 책도 제대로 평가받는 풍토가 정착될 것이기에.(김진우기자)

08. 04. 12.

P.S. 독자가 '이중'으로 책을 살 우려는 '중복출판'의 경우에도 해당한다. 루소의 <에밀> 같은 고전이야 같은 출판사에서 <에밀>(한길사, 2003), <에밀 또는 교육론>(한길사, 2007)이라고 중복 출판되어도 역자가 다르고 또 '고전'이기 때문에 독자가 취향에 따라 읽을 수도 읽고 아예 비교해가면서 두 권을 같이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주식투자의 심리학> 같은 책도 그러할까? "20세기 초엽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활약한 전설적인 투자분석가이자 저술가"인 조지 셀든의 이 책은 나름 '고전'이라고 하지만 '투자'를 위해서 두 번역본을 비교해가면 읽을 독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역본은 <주식투자의 심리학>(휴먼&북스, 2006), <주식시장의 심리학>(서울출판미디어, 2007)이라고 각기 다른 제목으로 출간된 데다가, (인터넷서점들에서) 저자가 '조지 C 셀든'과 'G. C. 셀든'이라고 돼 있어서(두 명의 저자로 처리된다!) 주의하지 않으면 두 명의 저자가 쓴 두 권의 책으로 착각하기 쉽다. 출판사들에서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전략을 쓰더라도 서점에서는 해당 도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독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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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04-14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류비셰프>는 참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었는데 재출간인지는 잘 몰랐네요. 당연한 말이지만, 기자의 마지막 결론에 동감을 표합니다. 그나저나 제 주요 관심 분야는 아니지만, <주식투자의 심리학> 번역과 <주식시장의 심리학> 번역이 서로 어떻게 다른지 '여러 가지 이유에서' 궁금해지는군요.

로쟈 2008-04-14 23:55   좋아요 0 | URL
저도 비교/검토해볼까란 생각을 잠시 가졌었지만, '2차'를 당할까봐(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그만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