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작가 카잔차키스의 전집이 출간됐다. 이미 지난주부터 소식은 접하고 있었는데, 리뷰기사들은 이번주에 올라오고 있다. 예전에 고려원에서 한번 선집이 출간된 바 있지만(나도 두세 권 갖고 있다) 30권 규모로까지 새로 나올 줄은 몰랐다. 여하튼 그의 독자들에겐 반갑고 즐거운 일이겠다. 한 소개기사에 인용된 영국 소설가 콜린 윌슨에 따르면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이라는 것은 비극"이다. "그의 이름이 카잔초프스키이고 러시아어로 작품을 썼더라면,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당장은 그의 <러시아기행>부터 읽고 싶어진다!). 한겨레의 기사가 가장 자세하기에 옮겨놓는다.

한겨레(08. 04. 12)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나는 평생 위대한 영웅적 인물들의 영향을 받았다. 어쩌다가 영웅성과 성스러움을 겸비한 인물이 나타난다면, 그는 인간의 본보기였다. 영웅이나 성자가 될 능력이 없었던 나는 글을 씀으로써 내 무능함에 대한 위안을 조금이나마 얻으려고 시도했다.”

이 고백 그대로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는 영웅이 되기에는 너무 문학적이었고, 성자가 되기에는 너무 세속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글을 씀으로써 성자의 형상을 창조했고, 우리 시대의 영웅을 그려냈다. 그의 글쓰기는 말하자면, 우리를 성스러움 가까운 곳으로 이끌려는 영웅적인 투쟁이었고, 영웅을 살아 있는 존재로 빚어내려는 성스러운 분투였다.

<그리스인 조르바> <영혼의 자서전>의 작가 카잔차키스의 전집이 열린책들에서 나왔다. 대학생 시절에 쓴 소설에서부터 최후에 쓴 작품까지 소설ㆍ희곡ㆍ서사시ㆍ여행기ㆍ편지가 모두 30권으로 묶였다. 전집 가운데 상당수는 과거에 낱권으로 번역된 바 있지만, 그의 모든 작품을 번역해 모은 전집 출간은 이번이 처음이다. 20세기 세계 문학사의 거인이자 현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작가의 문학적 성취를 통째로 살필 수 있는 기회가 온 셈이다.

1883년 그리스 남부 크레타섬에서 태어난 카잔차키스는 자신이 아랍계 아버지의 ‘불’과 그리스계 어머니의 ‘흙’을 동시에 이어받았다고 만년의 자서전에 썼다. 해적의 후예였던 아버지는 남성성ㆍ투쟁성ㆍ에너지의 화신이었고, 농부의 딸이었던 어머니는 온화함ㆍ선량함ㆍ내향성을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아버지의 불과 어머니의 흙은 그의 피 속에 섞여 평생을 두고 불화하고 적대했다. “나는 타협이 불가능한 요소를 타협시키는 것이 하나뿐인 내 의무라고 느꼈다. (…) 그것은 벅차고 끝없는 의무다.”

터키의 지배 아래 있던 크레타의 정치적 상황은 카잔차키스의 삶에 또 하나의 의무, 정치적 자유를 향한 투쟁의 의무를 얹어주었다. “내 영혼을 처음으로 뒤흔든 것은 자유에 대한 열망이었다.” 크레타인들의 해방 투쟁의 기억은 뒷날 소설 <미할리스 대장>으로 열매를 맺었다. 벌써 어린 나이에 자유의 소중함을 느꼈던 카잔차키스는 청소년기에 좀더 넓은 세상과 만나게 되면서 크레타의 경계를 넘어선다. “자유에 대한 갈망은 크레타만의 특징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영원한 특징이었다.”

카잔차키스의 자유의지가 지닌 유별난 성격은 정치적 자유와 내면적 자유가 언제나 이원적으로 공존하고 길항한다는 데 있다. ‘영혼의 작가’라는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게 카잔차키스는 정치적 행동주의자로서 공산주의 운동에 가담했으며, 러시아 혁명 지도자 레닌을 찬양하는 글을 썼고, 후년에는 그리스 사회당의 지도자로 활동하다 정치 상황이 불리해지자 국외로 망명하기도 했다. 자유를 향한 그의 목마름은 끝없는 여행으로도 나타났는데, 지중해에서부터 극동의 일본까지 세계 거의 모든 곳을 돌아다녔다. 그 결과가 <스페인 기행> <러시아 기행> <영국 기행> <일본ㆍ중국 기행> 같은 여러 권의 여행기로 남았다.

동시에 그는 일찍부터 성자의 삶에 이끌려 성지를 순례하고 금욕적 고행에 몸을 내맡기기도 했다. 성자는 그에게 곧 정신의 영웅이었는데, 붓다와 예수, 그리고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성인이 그런 존재였다. 희곡 <붓다>와 소설 <성자 프란체스코>는 성자의 삶과 하나가 되려는 내면의 열망이 낳은 작품이다. 뒷날 그는 예수를 살과 피를 지닌 존재로 형상화한 <최후의 유혹>을 썼는데, 두 아내를 거느린, 번뇌하고 갈등하는 인간으로 그렸다는 점 때문에 교회의 격렬한 비난을 샀고 바티칸의 금서 목록에 올랐다.


요컨대, 카잔차키스는 끝없는 모험 속에 자신을 풀어놓은 사람이었다. 자유의 땅을 향한 위태로운 항해가 그의 삶이었다. 그 삶을 신화에 빗댄다면 오디세우스의 방랑이 될 터인데, 그런 삶의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서사시 <오디세이아>다. <오디세이아>는 “모두 3만3333행으로 이루어진 웅대한 대서사시이자 카잔차키스 일생에 걸친 가장 장엄한 문학적 업적”이라 할 작품이다.

그리고 이 자유의 투사가 가장 생생하고도 도전적인 문체로 그려낸 <그리스인 조르바>는 카잔차키스의 모순적 열정이 만개한 작품이다. 1917년 만나 한동안 같이 생활했던 실존 인물 조르바에 대해 카잔차키스는 이렇게 썼다. “내 영혼에 가장 깊은 자취를 남긴 사람들의 이름을 대라면 나는 아마 호메로스와 붓다와 니체와 베르그송과 조르바를 꼽으리라. 조르바는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삶의 길잡이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주어졌다면, 나는 틀림없이 조르바를 택했으리라. 그 까닭은 글쓰는 사람이 구원을 얻기 위해 필요로 하는 바로 그것을 그가 갖추었으니, 화살처럼 허공에서 힘을 포착하는 원시적인 관찰력과, 아침마다 다시 새로워지는 창조적 단순성과, 영혼보다 우월한 힘을 내면에 지닌 듯 자신의 영혼을 멋대로 조종하는 대담성과, 결정적 순간마다 인간의 배 속보다도 더 깊고 깊은 샘에서 쏟아져 나오는 야수적인 웃음을 그가 지녔기 때문이었다.”

조르바에 대한 서술에는 젊은 시절 그가 광포하게 빠져들었던 니체의 이미지가 어른거린다. 그는 니체를 처음 읽던 순간을 이렇게 묘사한다. “처음에 그는 나를 완전히 공포로 몰아넣었다. 나는 그의 격렬함과 자부심에 비틀거렸고, 위기에 도취했으며, 마치 굶주린 맹수와 어지러운 난초들이 가득 찬 시끄러운 밀림으로 들어가듯, 두려움과 열망을 느끼며 그의 작품에 탐닉했다.”


그는 삶의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보았고, 그 심연과 싸웠다. 그 싸움을 영혼과 육체의 싸움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그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썼다. “나의 내면에는 인간 존재 이전의 ‘악한 자’가 지닌 어두운 태곳적 힘이 존재했고, 또한 인간 존재 이전의 신이 지닌 밝은 힘도 존재했는데, 내 영혼은 이 두 군대가 만나 싸우는 격전장이었다. 고뇌는 격렬했다. 나는 내 육체를 사랑해서 그것이 사멸하지 않기를 바랐고, 영혼을 사랑해서 그것이 썩지 않기를 바랐다.” 그 힘겨운 싸움이 삶을, 문학을 살찌웠을 것이다. 그는 말한다. “영혼과 육체가 강할수록 투쟁은 그만큼 수확이 많고, 최후의 조화는 더욱 풍요롭다. 신은 나약한 영혼이나 흐물흐물한 육체를 사랑하지 않는다. 정신은 힘차고 저항력이 넘치는 육체와 씨름하기를 바란다.”

1957년 사회주의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카잔차키스는 쇠약해진 몸에 독감의 습격을 받고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생전에 써 놓은 그의 묘비명은 이랬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고명섭기자)

08. 04. 11.

P.S.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1964)에 나오는 유명한 댄스 장면은 http://www.youtube.com/watch?v=ndPJRh_K2yc 에서 볼 수 있다. 아래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러시아어판이다.

Никос Казандзакис Грек Зорба Zorba the Gr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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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2 0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4-12 11:15   좋아요 0 | URL
대우가 썩 좋지는 않다고 들었는데요.^^;

stella.K 2008-04-12 11:01   좋아요 0 | URL
이 사람은 우리나라에선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의 이름에 가리워져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물이군요.
희랍인 조르바는 영화로 봤는데 지금 생각해도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안소니 홉킨스(맞나? 갑자기 자신없어짐>.<;;)연기는 참 훌륭했죠.
하드카바 같은데 낱권이 비교적 저렴하게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로쟈 2008-04-12 11:16   좋아요 0 | URL
안소니 퀸이죠.^^

stella.K 2008-04-12 12:35   좋아요 0 | URL
앗, 맞다! 순간 헷갈렸다는...>.<;;

로쟈 2008-04-12 23:07   좋아요 0 | URL
안소니 퀸은 자서전도 번역돼 있습니다. <원 맨 탱고>라고...

노이에자이트 2008-04-12 22:41   좋아요 0 | URL
저는 조르바는 그다지 감명 깊지 않았고...'전쟁과 신부'가 좋더라구요.2차대전 후 좌우익이 나뉘어 내전이 치열했던 당시의 그리스. 형은 신부,동생은 좌익 빨치산으로...어쩐지 우리나라와 비슷하여 이름이나 지명만 우리나라 것으로 바꿔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약간 세련된 반공드라마 같은 느낌도...되게 재밌었어요.미니 시리즈로 번안해도 될 듯...

로쟈 2008-04-12 22:55   좋아요 0 | URL
강추하시는군요. 참고하겠습니다.^^

털세곰 2008-04-12 22:48   좋아요 0 | URL
<그리스인 조르바>... 고등학교때 겉멋에 쩔어 읽고 유난히 폼 쟀던 기억이^^
고등학교적 감수성을 마구 때렸던 것으로, "희고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가 일품인" 등으로 여인을 묘사하며 종종 "러시아 여인"으로 비유하곤 했는데 그것이 '러시아 기행' 덕분인지...?^^ 카잔차키스에 대한 기억의 되살림으로 러시아 기행은 읽어보고 싶네요. 지옥같은 다음 월요일의 마감만 지나가면...

로쟈 2008-04-12 22:55   좋아요 0 | URL
음, 월요일...

노이에자이트 2008-04-13 00:22   좋아요 0 | URL
실제로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읽은 사람보다는 카잔차키스의 작품을 읽은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요.앞의 두 작가는 이름만 유명하지 작품은 많이 안 읽히는 것 같아요.전에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우리나라에 조르바를 읽은 이들의 동호회가 꽤 크다고 하던데요.

로쟈 2008-04-13 00:32   좋아요 0 | URL
설마요.^^ 대표작이라곤 할 수 없지만 <톨스토이 단편선>까지 고려하면 가장 많이 읽히는 작가들에 속할 텐데요? 한 10년쯤 전인가, 한국이 가장 많이 읽은 외국소설이 <죄와 벌>과 <부활>이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4-13 22:38   좋아요 0 | URL
그건 방송용?이고 사실은 시드니 셸던 작품이 제일 많이 읽힌다던데요.도스토에프스키나 톨스토이의 작품 특히 장편을 읽었다면 뭔가 있어보이니까 <죄와 벌>,<부활>을 거론하지 않았나 추측해 봅니다.우리나라 사람들이 대중소설 순수소설 그런 거 되게 따지잖아요.시드니 셸던 좋아하면 뭔가 지적이지 못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분위기...근데 30여년 전 독서신문 조사에서도 도스토예프스키가 한국인이 애독하는 작가 1위던데 요즘도 그러나 봐요.여하튼 저는 톨스토이면 몰라도 도스토예프스키 작품보단 카잔차키스의 <전쟁과 신부>가 더 문학성도 뛰어나고 재미도 있더라구요.

로쟈 2008-04-13 22:47   좋아요 0 | URL
셀던이나 베르베르가 베스트셀러 1위였던 적이 있지만 장기적인 것은 아니었고요, 출간 종수로 보더라도 단연 톨스토이가 많이 읽힌 걸로 돼 있습니다(실상 일제때부터인지라). 도스토예프스키도 스테디셀러는 되는 거지요. 카잔차키스에 대한 선호는 대단하시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04-13 23:33   좋아요 0 | URL
작가의 지명도와는 무관하게 제가 좋아하는 작품이 좋아서요.하하하...작가의 성향 따라 반혁명주의자나 반동주의자면 뭐 어쩔 수 없다고 해도...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은 뭔가 칙칙하고 병적인 느낌이 들어서요.저는 반혁명주의자 중에는 아르쯔이바셰프가 좋더군요.<싸닌>...뭔가 상쾌해요.근데 카잔차키스 것 중에서 <조르바>는 별로고 그냥 <전쟁과 신부>가 좋습니다.

로쟈 2008-04-14 23:56   좋아요 0 | URL
작가에 대한 선호라기보다는 작품에 대한 선호라고 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