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2000년대 들어와서 인문학계 주요 화두의 하나로 떠오른 게 '파시즘'이 아닐까 싶다. 계간 당대비평에서 주도했던 '일상적 파시즘'(혹은 '부드러운 파시즘') 담론이 그 계기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임지현 교수 등이 엮은 <우리 안의 파시즘>(삼인, 2000)이 물꼬를 튼 책이다. '파시즘 결정판'이라 할 만한 로버트 팩스턴의 <파시즘>(교양인, 2005)이 두번째 기폭제쯤 되고 이후에는 파시즘 관련서들이 해마다 댓권씩은 출간되고 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어서 저명한 역사학자 조지 모스의 <대중의 국민화>(소나무, 2008)가 최근에 스타트를 끊었다(임지현 교수가 공역자의 한 사람이다). 모스는 <내셔널리즘과 섹슈얼리티>(소명출판, 2004), <남자의 이미지>(문예출판사, 2004) 등으로 이미 소개된 바 있는 저자. <대중의 국민화>는 이미 제목으로도 내용을 짐작하게 해주는데, 부제는 '독일 대중은 어떻게 히틀러의 국민이 되었는가?'이다. 더이상 부연설명이 필요없는 책이다.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8. 04. 05) 어떻게 독일 대중이 ‘히틀러 국민’이 돼갔나
“아돌프 히틀러 당신은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이시니, 당신의 이름은 적들을 떨게 하나이다. 당신의 왕국에 임하옵시고, 당신의 뜻만이 이 땅 위에서 법칙이 되게 하소서. 우리로 하여금 날마다 당신의 음성을 듣게 하옵시며, 또한 우리의 삶을 투신하여 복종하길 원하옵는 당신. 지도자의 지위를 통해 우리에게 명령하소서. 구세주 히틀러여, 이를 언약하나이다.”
‘주기도문’을 본뜬 이 ‘히틀러를 위한 기도문’을 나치 지배하의 독일 국민들이 지극정성으로 외웠다는 사실은 놀랍기 그지없다. 광기어린 파시즘의 표상이 눈앞에 선연하게 그려진다. 그렇다면 이를 히틀러나 파시즘 체제가 강제한 걸까. 오랫동안 수많은 역사가와 정치·사회학자들은 파시즘이 강제동원과 세뇌로 상징되는 전체주의적 강요로 유지돼 왔다고 믿었다. 독일 대중이 ‘일탈적인 히틀러의 국민’이 된 것도 야만적 소수 권력의 조종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했다.
이 같은 통념을 처음 깨뜨린 것은 나치 통치 아래서 인종 청소의 대상이었던 유대인이었다. 객관적인 제3자가 아닌 당사자, 그것도 최대의 피해자가 코페르니쿠스적 시각 교정에 앞장선 것은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태어난 뒤 나치 통치를 피해 모국을 떠나야 했던 역사학자 조지 L 모스가 바로 그다. 모스는 ‘대중의 국민화’에서 파시즘이 히틀러 같은 소수의 독재자가 민중의 역사를 강제로 탈취한 것이 아니라 ‘18세기에 떠오른 인민 주권 사상에 기반을 둔 새로운 정치의 절정’이라고 해석하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친다.
모스는 이 책에서 장 자크 루소의 ‘일반 의지’와 인민주권 사상이 파시즘을 낳는 세속적 정치 종교 형태로 진화하는 과정을 탐사한다. 히틀러가 독일 민족주의를 강압적으로 만들어나간 게 아니라 독일 대중이 어떻게 히틀러의 국민이 되어 가는지를 추적한 것이다. ‘일반 의지’는 루소의 국가론에 나타나는 중심 개념이다. 개인적인 이기심을 버리고 사회 계약의 당사자로서 공동선을 추구하려는 국민 의지가 그것이다. 개별 의지의 총합이 전체 의지라면, 일반 의지는 공동선을 위한 개별 의지의 총합인 셈이다.
루소는 과거 대사건들의 명칭을 새긴 기념비 주변에서 10년 주기로 애국 축제를 개최하라고 폴란드 정부에 권유한 적이 있다. 폴란드 국민이 조국과 자신들의 역량에 더욱 큰 확신을 갖게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선 대중적인 경기와 체전, 기념식을 기획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런 루소의 권유를 받아들인 것은 막상 폴란드가 아닌 통일 의지가 충만하던 독일이었다.
사실 ‘새로운 정치’는 이미 19세기 초부터 ‘일반 의지’의 구체적 표현인 의례(儀禮)와 축제, 신화와 상징을 통해 민족이라는 신비에 민중이 적극 참여하도록 이끌었다. 라이프치히 민족전투기념비가 제막된 1913년, 축제의 주제가 된 ‘독일의 통일과 권력을 위해 싸우고 피 흘려 죽자’는 라이프치히 전투를 기념하던 이전의 전통에서 비롯됐다.
히틀러는 1935년 뉘른베르크 전당대회에서 역사에서 진정으로 가치 있는 민족 가운데 자신만의 기념비를 세우지 않은 경우를 찾아볼 수 없다고 연설했다. 나치즘은 등장 이전 1세기에 걸쳐 민족 제의(祭儀)의 발전 위에 건설됐다. 그런 발전은 나치의 정치 양식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걸 빼고는 대중운동으로서의 나치즘을 제대로 분석할 수 없다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민족주의 제의는 히틀러라는 헌신적인 지지자를 찾아냈을 뿐이다. 히틀러는 이런 의례의 실용적인 면과 이데올로기적인 면을 모두 꿰뚫어 현실적인 정치적 고려와 자신의 본능적 믿음을 성공적으로 결합했다.
게르만 민족주의 상징체계는 기념비와 공공 축제의 신성한 불꽃이었고, 민족 축제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중심에 섰다. 여기에 합창단, 사격동호회, 체조동호회 같은 조직은 ‘새로운 정치’의 비중 있는 요소로 작용했다. 이 책은 합창단과 동호회의 변화, 건축 양식, 음악, 대중 예술, 미장센, 조명 등 미시사의 분석을 통해 공통점이 없던 대중이 강력한 정체성을 지닌 독일 국민으로 변해간 과정을 살갑게 보여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2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파시즘은 끝났다고 여기지만 현실에서 그것은 여전히 ‘현재의 역사’라고 결론지은 대목은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이 많다. 번역자 가운데 한 사람인 임지현 한양대 교수가 덧붙인 해설에서도 몇 가지 사례를 보여준다. 불과 1년여 전에 새로 개정된 ‘국기에 대한 맹세’가 우리 국민 대다수의 희망에 따른 ‘자발적 복종’이었다는 사실이 그 하나다. 북한의 개인숭배와 가족 국가적 이상주의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탈민족주의 논객인 임 교수는 정치 종교의 관점에서 보면 독재와 민주주의의 거리는 생각만큼 멀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는 형용모순적인 개념의 ‘대중 독재’라는 편저에서 파시즘을 모스와 흡사한 시각에서 살핀 적이 있다. ‘권력을 독점한 사악한 소수가 폭력과 강제를 행사해 다수의 무고한 민중을 억압하고 지배했다는 흑백 논리나, 폭력과 억압을 통한 강압적 지배라는 단색의 이미지로 포착하기엔 근대 독재의 현실은 몹시 중층적이고 복합적이다’라고.(김학순 선임기자)
P.S. 아직 번역되지 않은 조지 모스의 책들에 <최종 해결책을 향하여>, <파시스트 혁명>, <독일 이데올로기의 위기> 등이 있다. 거기에 보태서 알라딘에서 검색되는 책은 <대중과 인간>, <타락한 병사들>, <나치 문화> 등이 더 있고, 회고록 <역사와의 대면>도 눈에 띈다. 모두 관심이 가는 타이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