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주목받지 않은 지난주의 신간 가운데 하나는 영국의 좌파 문화이론가 스튜어트 홀의 <대처리즘의 문화정치>(한나래, 2008)이다. <스튜어트 홀의 문화이론>(한나래, 1999)이라는 논문모음집과 몇 권의 교재용 공저가 출간된 적은 있지만 그의 단행본 저작이 소개되는 건 이번에 처음인 듯하다(두 책은 역자가 같다). 두툼한 고가의 책이지만, 그리고 20년전 저작이지만, 손에 들어볼 마음이 생기게 하는 건(사정상 도서관에 들어오길 기다려봐야겠지만) 역시나 이명박 정부의 출범이라는 한국적 정세와 관련이 있다. 관련기사의 초점도 거기에 맞춰지고 있다.
한국일보(08. 02. 05) 노동자·농민·88만원 세대는 왜 좌파를 등졌을까
중소자영업자, 노동자와 농민, 88만원 세대들…. 좌파진영에 표를 던져야 할 이들은 왜 보수정권의 등장을 염원했을까? 이명박 후보의 압승으로 귀결된 지난 대선은 좌파진영에 심각한 과제를 던져주었다. 성별, 지역, 세대를 가리지 않고 계급적 정체성을 배반하는 투표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등장한 이명박 정권은 1970년대 노동당 정권의 경제실정을 비판하며 장기집권(1979~1990)에 성공한 마거릿 대처의 출현을 연상하게 한다. 대처의 성공은 오로지 신자유주의 경제드라이브의 성공 때문이었을까?
최근 발간된 영국의 좌파 문화 이론가인 스튜어트 홀의 대처리즘 분석서 <대처리즘의 문화정치>(한나래 발행)는 문화정치의 관점에서 대처리즘의 성공요인을 들여다본다. 경제정책의 성공 뿐 아니라 대중의 도덕적 복고주의를 자극함으로써 정치적 성공을 거뒀다는 것이다. 전통적 계급장벽을 뛰어넘은 이 같은 성공을 저자는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예컨대 대처는 탈학교화, 관용적 교육 등이 떠받들여지던 학교현장에 높은 교육수준의 회복과 권위의 수호 같은 이데올로기를 전파했고, 권위와 사회적 가치의 위기를 강조함으로써 필요하다면 도덕적, 법적 무력을 정상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부과해도 좋다는 가치관을 대중들에게 전파시켰다.
좌파의 복지정책에 대해서는 “씀씀이가 헤픈 국가가 벌지도 못하는 부를 함부로 써버리고 일반인들의 자립을 해친다”는 담론으로 대항했다. 또한 복지정책의 수혜자를 사회가 주는 혜택으로 살아가며 제 몫의 일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들로 규정하고, 이들을 자신들과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다른 문화권 출신의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치환해 인종주의를 자극하기까지 했다.
결국 이런 도덕적 리더십을 포기한 좌파정당은 정책의 유효성과는 별개로 대중들로부터 외면 받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더 타임스> <선> <이코노미스트> 같은 대중매체들의 도덕주의 전파도 대처리즘의 성공에 한몫을 했다. 그렇다면 좌파들이 대처리즘의 성공에서 배워야 할 점은 분명하다. 전통적인 계급정치에서 탈피해 문화적 주제에 주목해 대중을 블록화하는 방식으로 지지를 결집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역자인 임영호 부산대 교수는 “홀은 1980년대의 영국사회라는 특수한 사례를 다루고 있지만, 그의 분석은 시공간차이를 넘어서 문화의 정치성을 주목하게 한다”며 “진보 역시 전통적 지지자를 결집하기 보다는 이른바 전통적인 진보세력 속에 내재한 보수적 요소(인종주의, 가부장주의, 배타적 민족주의)를 성찰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진보의 정체성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왕구기자)
08. 02. 07.
P.S. 대처리즘 이후를 장식한 건 18년만에 정권을 탈환한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정부이다. 알다시피 그가 기치로 내건 건 '제3의 길'(기든스)이다. 홉스봄과 스튜어트 홀의 제3의 길'에 대한 비판은 <제3의 길은 없다>(당대, 1999)에서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블레어 정권의 1년 6개월간의 공고에 대한 세밀한 분석으로, 그가 드러내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에 대해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있으며 비판과 지지라는 서로 다른 목소리를 대비시키고 있다. 특히 영국의 대표적 사학자 홉스봄과 문화이론가 홀은 서로 다른 시각에서 제3의 길이 허구임을 비판한다." 지난 30년간의 영국 정치사가 우리의 반면교사가 되어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