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릴리오 읽기 리스트를 만든 김에 리뷰기사도 하나 옮겨놓는다. 개인적으론 '최근에 나온 책들' 연재에서 다룬 적이 있는데(http://blog.aladin.co.kr/mramor/882648) 책을 완독하진 않았다(책이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러시아로 떠났었다). 최근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들 중의 하나와 연관되기에 영어본을 찾는 대로 조만간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기본적으론 '전쟁학'에 대한 관심이다. '제자백가'의 사상을 낳은 '조건'으로서의 전쟁).

한겨레(04. 03. 12) '속도’는 어떻게 희망서 악몽으로 바뀌었나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폴 비릴리오(72)는 살아서 재발견된 학자다. 1975년 전쟁 건축물을 철학적으로 살핀 첫 저서 〈벙커의 고고학〉을 내놓으며 자기만의 정치적 사유를 시작한 그는 자신의 주요한 저서들이 나오고도 한참 뒤인 1990년대에 들어서야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군사학적 상상력으로 정치의 흐름을 살펴온 그의 이론은 유고슬라비아내전, 9·11 뉴욕 테러와 같이 서구 내부에서 벌어진 파괴적 사건을 거치면서 진지한 연구와 참조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국내에서 그는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의 사상과 연관돼 이제 막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구사한 개념의 상당수가 비릴리오에게 연원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사상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이다. 실제로, ‘노마디즘’이나 ‘탈영토화’와 같은 들뢰즈·가타리의 핵심 개념은 비릴리오가 1976년에 펴낸 〈영토의 불안정성〉에서 처음 선을 보인 개념이다.

〈속도와 정치〉는 그의 저작 가운데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책이다. 1977년에 나온 이 책은 정치를 속도의 개념으로 사유함으로써 전통적인 정치학의 사고방법을 새로운 상상력으로 내파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제껏 주로 ‘공간’을 중심으로 하여 논의되던 정치 영역을 ‘시간’을 중심으로 한 정치학으로 뒤집어놓고 있는 것이다.

비릴리오가 이 책에서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로 내놓은 것이 ‘질주학’ 혹은 ‘질주의 이론’이다. 그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현상인 ‘가속화’가 역사적으로 볼 때 정치의 본질적 현상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가 말하는 정치는 일상적인 의미의 정치라기보다는 전쟁·혁명과 같은 폭력적 상황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정치 현상이다. 무엇보다 그는 군사적인 차원에서 정치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그런 분석을 통해 지은이는 정치 자체뿐만 아니라 경제·사회 등 인간의 삶 일반의 변화를 통찰한다.

이 통찰의 바탕에 놓인 아이디어가 ‘군사학적 속도 개념’이다. 가령, 봉건제 시대의 유럽에 존재했던 요새화한 도시는 도시 대중의 순환과 운동량을 규제하고자 등장한 부동의 전쟁기계였다고 지은이는 이해한다. 이 ‘난공불락의 전쟁기계’는 거주의 관성이 지배했던 정치적 공간이자 정치의 특정한 배치였으며 봉건제 시대의 물질적 토대였다. 18세기 말 프랑스대혁명은 이런 ‘정지된 속도’의 상황이 일변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프랑스대혁명은 “봉건적 농노제로 상징되던 부동성의 억압에 맞서는 반란”이었고, “임의적인 유폐나 한 곳에 거주해야 한다는 의무에 맞서는 반란”이었다.

그러나 ‘이동의 자유’를 주장했던 이 반란의 요구는 부르주아지가 정치적 주도권을 틀어쥐면서 ‘운동의 독재’로 변질했다. 그리하여 부르주아지는 산업혁명을 통해 기계적 운송장치를 획득하고, 달리기와 같은 생체의 속도, 말·코끼리 등의 동물적 속도를 능가하는 ‘기계적 속도’를 얻었다. 질주가 시작된 것이다. 지은이는 서구인들이 인구가 적은데도 동양인들을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은 이처럼 서구인들이 기계적 속도를 선점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속도는 서구인의 희망’이 된 것이다.

하지만 한번 탄력을 얻은 속도는 그 가속화를 멈추지 못한다. 비릴리오는 ‘핵 억지력’, 곧 핵무기의 등장으로 전쟁은 ‘순수 전쟁’의 상태에 들어섰다고 말한다. 이 순수 전쟁의 상태에서 속도는 ‘절대 속도’가 된다. ‘단 1초 만에’ 모든 것을 파괴해버릴 수 있는 핵무기는 ‘속도의 희망’이 ‘속도의 악몽’으로 뒤바뀌었음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비릴리오가 이 ‘저주의 예언’으로 이야기를 끝내는 것은 아니다. 그는 권력의 ‘절대 속도’가 지배하는 이런 상황에서 저항의 가능성을 ‘상상력’을 동원해 찾아내려 한다. 그 저항의 형태는 속도의 폭주를 중단시키고 방해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테면 총파업은 ‘시간 속에 쌓아놓은 바리케이드’이다.(고명섭 기자)

08. 0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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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01-28 22:33   좋아요 0 | URL
Virilio는 후일의 독서를 기약하며 '꿍쳐둔' 사상가였는데, 이 소개글과 아래의 리스트가 왠지 '불씨'를 당기는 느낌입니다. 아시다시피, 이는 제게 건조한 계절에 특히 조심해야 할 불씨로 보입니다.^^;

로쟈 2008-01-29 00:33   좋아요 0 | URL
네, 조심해야죠. 꺼진 불도 다시 봐야 될 판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