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말할 것도 없이 <논어>는 가장 중요한 동양고전의 하나다. 그 영향력에 있어서 흔히 기독교의 <성경>에 비견될 정도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성경>과 다른 건 소위 '정본'이 없다는 점이다. 국내에 나와 있는 <논어> 번역과 주해만 하더라도 수백 종에 달한다고 하니 좀 역설적이기도 하다(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것만 해도 수십 종이다). 여타 고전들과 다르게 <논어>의 경우에는 너무 많이 번역되어 있는 게 문제라고 할까. 거기에 번역본마다 해석이 불일치한 대목들도 적지 않기에 어느 번역본을 읽어야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는지조차 불분명하다(나부터도 댓 종의 번역본을 갖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지나간 기사이긴 하지만 논어 번역본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교수신문에 연재되었던 '고전번역비평'에서 <논어>에 관한 것이다(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7703). 연재의 첫번째 꼭지이기도 했다.

교수신문(05. 05. 31) 고전번역비평_최고 번역본을 찾아서 (1)공자의 論語

믿고 읽을 만한 번역본을 선별해주는 것이 전문가들에게주어진 과제 중의 과제이다. 특히 공자의 논어(論語)는 1백종이 넘는 번역본이 있어 일반인이 고르기가 쉽지 않다. 논어는 번역의 역사가 깊고 그 수준도 다른 고전들에 비해 높은 편이다. 이강재 서울대 교수는 “이제 논어번역은 원문의 충실성은 기본이고, 얼마나 자기 것으로 소화해서 전달하느냐에 달려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대학생 수준에서 읽기 좋은 논어 번역본을 추천해달라”며 관련 전공 교수 30명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논어 번역은 연구사를 얼마나 섭렵했느냐, 주희의 역주가 있느냐 없느냐, 창조적 번역의 정도에 있어서 지나치는 면은 없는지, 본문을 잘 이해할 수 있는 해제가 있는지 등을 골고루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다. 설문 응답자들은 각각의 책들이 이 중 한두가지를 만족할 뿐, 완벽한 번역본은 아직 없다는 의견을 보였다. 이번 설문에서는 동양연구회(*동양고전연구회)가 번역한 ‘논어’와 유교문화연구소가 번역한 ‘논어’가 각각 6명의 추천을 받아 가장 신뢰할만한 번역본으로 드러났다. 

 

 

 

 

둘다 올해 출간된 것으로 여러 연구자들이 장기간에 걸쳐 공동번역한 것이며, 현대어로 재번역하는 데 중점을 뒀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동양고전연구회가 옮긴 것은 유건종 교수를 중심으로 고려대 출신 학자들의 작업으로 “고어적 표현이나 어색한 표현을 많이 완화시켰다”, “교양적 수준에서 쉽게 읽힌다”, “기존 번역본들이 지닌 장점을 두루 참조해 오역이 최소화했다”, “현대 사상가들의 주석을 참조해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등의 의견이 있었다. 이 번역본은 9명의 연구자들이 격주 토요일마다 모여 강독하고 옮긴 지 9년여 만에 내놓은 결과물로 전문성에 있어서도 그 수준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추천자들은 말한다.

9년의 되씹음 거쳐 성과 얻었다
유교문화연구소가 옮긴 책은 논어의 ‘언해본’을 바탕으로 작업했는데 가장 정통적인 번역으로 꼽힌다. 이 책은 “기본으로 돌아가자”라는 모토를 내걸었는데, 공동번역자들은  일제 때 단절된 조선시대 경전읽기로 다시 돌아가는 마음으로 원전의 고전적 맛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추천 교수들은 “현대적인 표현으로 고쳤으면서도 한문도 적절히 써 고전의 장중한 맛이 살아있다”, “읽기 쉽다” 등을 추천의 이유로 꼽았다. 특히 동양고전을 한 단계 더 들어가서 보고 싶다는 학생들에게 적극 추천된다.

 

 

 



그 다음 총 5명이 추천한 김학주 서울대 명예교수의 번역은 老 대가다운 면모를 여실히 발휘하고 있다. 김학주 교수는 1970년대부터 동양고전을 선두에서 번역하면서 고전부흥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활약했다. 김 교수는 현직에서 퇴직한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예전의 번역본들을 꼼꼼히 재검토한 전면 개정판을 계속 내놓고 있어 주목을 끈 바 있다. “쉽게 풀어 썼으면서도 전문가들끼리의 논쟁거리를 충분히 던져준다”, “이만큼 탁월한 해제를 보기 어렵다”라는 게 교수들의 평이다. “번역에 있어서 학자적 양심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책”이란 말이 따라다니는데, 이미 관용어처럼 굳어져서 형식적으로 해석하고 넘어갈 수 있는 어구들도 더욱더 정확히 풀이해놓았기 때문. 

이기동 성균관대 교수의 번역작업도 많은 추천을 받았다. 이 교수는 ‘논어강설’ 외에도 ‘대학·중용 강설’, ‘노자’, ‘장자’, ‘맹자강설’ 등 수권의 동양고전을 섭렵해 역해서를 내놓고 있어 일가를 이루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의 역본이 네 명으로부터 추천을 받았는데, 이유는 무엇보다 “역자해설에서 본문의 내용을 주변의 현상과 견주면서 풀이하고 있어 이해를 쉽게 돕는다”라는 것인데, 이는 전문성이 탁월하기에 가능했다는 평들이다. 현대어로 번역된 건 물론이다.

참신함과 날카로움-배병삼·황희경
김학주·이기동 교수의 번역은 주희의 주석을 중심으로 해석을 했기 때문에 “공자보다는 주희의 시각을 보여준다”는 의견도 많았는데, 이는 한편으로는 정통적인 흐름 속에서의 논어를 익힐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지만, 늘 듣던 얘기인지라 깊이 음미하지 않으면 자칫 고루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도련 교수가 번역한 ‘논어-주주금석’은 주자의 영향에서 탈피해서 논어를 보려는 가장 선구적인 시도이다. “문맥을 정확히 살피는 데 중점을 두고 자구 하나하나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경박하게 주희를 다 쳐내지 않으면서, 정약용의 조선적 글읽기를 참조해 잘 번역했다”는 추천을 받았다.

 

 

 



황희경 교수의 번역은 3명에게 추천받았는데, 그의 번역은 “새로운 시각, 날카로운 해석, 장중한 사상적 깊이”로 특징지을 수 있다. 노신, 김근목, 이택후 등 중국 현대사상가들의 논어 주석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참신하다는 것. 그리고 앞의 문맥들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면서 중간중간 “번역자의 사상이 번득인다”라는 게 추천자들의 공통적 의견이다. 

배병삼 교수의 번역은 ‘튀는 번역’이라고 해 정통유학파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이지만, 오역 없이 원전과 주석을 널리 활용해서 잘 번역했다는 추천을 3명에게 받았다. 무엇보다 한글세대를 위해 완전히 한글로 번역했다는 점, 또한 사회과학자로서의 안목을 곁들였다는 평이다. “오늘날의 문제의식과 잘 연결되도록 논어를 해석했다”라고 전문가들은 견해를 밝힌다. 김형찬 교수의 번역 또한 3표를 얻었다. 그는 기자 출신이면서 동양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의외로 많은 교수들이 추천하고 싶은 번역본이라고 밝혔다. “문장이 고답적이지 않고 일상적인 친근감이 있다”, “젊은 감각에 맞는 언어를 선택했다”라는 게 추천의 변이다.



성백효 번역본-극과 극의 평가
사실 전문가들에게 가장 많이 읽히는 건 성백효 역이다. 주희의 주를 가장 먼저 한글로 번역했고, 문법에 따라서 교과서처럼 정확하게 옮겼기 때문이다. 이번 선정작업에서도 7명 정도가 다른 책을 추천하면서도, 말꼬리에서 성백효 번역이 “가장 정확하고 해제, 주석, 원문, 번역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고어투가 너무나 많다”라는 우려를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 번역본을 갖고 학부생에게 강의해본 여러 교수들은 이번 추천의 변에서 “성백효 역을 대부분 학생들이 어려워 한다”라고 말했는데, 만약 논어도 읽고 한문도 정식으로 배우기 위한 것이라면 이 책이 괜찮다는 의견도 3건이나 있었다.

그 외에 박기봉 교수 번역도 2명에게 추천됐는데 “완역이 아니고, 직역도 아니지만 책이 작고 맹자도 함께 언급하고 있어서 학생들이 가지고 다니며 편하게 읽기에 좋다”라는 게 추천의 이유다. 그 외에 단수 추천된 책으로는 이을호 역, 황갑연 역, 윤재근 역, 김종무 역, 남희근 역, 이우재 역(이상 교수) 등이 있었다. 추천자들은 학자들이 자신의 인생을 배경으로 해서 논어를 읽은 에세이 류를 추천하기도 했는데, 삶 속에 반추된 논어야 말로 ‘진짜배기’ 아니겠냐는 것이다. 이 쪽으로는 남희근·이우재·안병욱 교수 등의 책이 읽어볼 만하다고 추천되었다.

이번 취재결과 또한 “번역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된 역본들도 있었다. 공자의 논어 자체를 현대적으로 번역시도한 경우 자의적인 해석이 많아도 이에 대해서 쉽게 비판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원본과 대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서집주를 번역한 경우는 원본과 곧바로 대조되기에 명백하게 오류들이 드러난다. 김동길·허호구 교수 역은 “다산의 논어고금주를 번역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오역들이 너무 눈에 많이 띈다”라는 지적을 받았다. 정후수 교수가 옮긴 ‘주희가 집주한 논어’(장락 刊, 2000) 역시 “명백한 오역들이 많다”라는 비판을 받았다.  류종목 교수가 옮긴 ‘논어의 문법적 이해’(문학과지성사 刊, 2000)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지만, 여러모로 자의적이고 무리한 해석이 많다”라는 평을 얻었다.(이은혜 기자)

교수신문(05. 05. 31) 번역의 역사_ 공자의 논어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내용으로 가득차 있는 ‘논어’이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논어를 번역하는 일이 오히려 난해한 문헌을 번역하는 것보다 어렵다. 논어에 관한한 최고의 주석가라고 할 만한 주희의 경우도 자신의 ‘논어집주’에서 “어떤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未知孰是)”라는 문구를 여러 차례 삽입해 스스로 텍스트의 내용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하물며 주석과는 달리 완전한 번역어를 제시해야 하는 번역의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다.

현재 논어의 우리말 번역서는 시판되고 있는 것만 1백60여종에 이르고 있으며 절판된 책까지 모두 합치면 3백종이 넘는다. 어떤 동양고전보다 많은 양이다. 하지만 수많은 동양고전 가운데서 논어가 가진 특별한 지위를 감안한다면 그리 많은 양이라 할 수 없다.

우리 나라에서 논어 번역의 역사는 16세기의 ‘논어언해’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근대적인 의미에서 최초의 번역은 1909년 최남선이 간행한 종합잡지 ‘소년’ 9호~12호까지 실렸던 ‘소년논어’라 할 수 있다. ‘소년논어’는 비록 완역은 아니지만 원문의 내용을 우리말로 옮기는 수준에 그친 것이 아니라, 원문의 신성성을 떨쳐버리고 주체적인 의미의 번역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소년논어’는 단순히 한문 문자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선에 그치지 않고 삶의 문맥을 활용해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대중어를 이용해 번역했다는 점에서 깜짝 놀랄 만큼 생동감이 뛰어나다. 완역이 되지 못하고 팔일편 첫부분에서 중단되고 만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최남선 이후 지금까지의 논어 번역사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으로는 1974년 박영사에서 문고판으로 간행한 이을호가 옮긴 ‘한글 논어’를 들 수 있다. 이을호 역은 원문에 얽매이지 않고 과감하게 우리의 일상언어로 바꾸어 번역했는데, 자연스러운 대화체를 사용함으로써 마치 공자의 육성을 직접 듣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간결 명료한 번역으로 원문과의 대칭적 구조까지 살렸다는 점에서 절묘한 번역이라 할 만하다. 또 이을호 역은 삶의 문법이 분명히 보이는 번역으로 당시 65세, 막 정년을 앞둔 노학자의 치열한 학문역정을 엿볼 수 있을뿐더러 번역을 통해 권위를 굴레를 벗고 일상 속으로 다가오는 공자의 모습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앞으로 논어를 번역할 이들이 반드시 참고해야 할 탁월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간행된 1백여종에 가까운 논어번역서 가운데에도 훌륭한 것이 많다. 이 시기의 논어 번역서는 주희나 정약용 등 전통 주석가들의 견해를 번역의 근거로 제시하는 한편 현대 학자들의 견해까지 반영하여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논어 원문에 없는 부분까지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부기하고 있는 점, 기존의 번역서에서 해결하지 못한 난해처를 많은 부분 해결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기존의 논어 번역보다 한결 심층적인 번역물이 간행되었다. 예컨대 1998년 동녘에서 간행한 한필훈 번역의 ‘한글로 읽는 논어-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하나의 사례로 들 수 있다. 이 책은 논어 본문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나올 경우에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본문 앞부분에 당시 공자가 그런 말을 하게 된 배경을 간단하게 기술하면서 본문으로 이어지게 편집해서 쉽게 읽히는 논어로 청소년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또 1999년 홍익출판사에서 간행한 김형찬역 ‘논어’는 표현하기 까다로운 특수 용어를 우리말로 적절하게 번역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자로편 21장의 ‘狂者’를 ‘꿈이 큰 사람’으로 번역함으로써 기존의 번역서가 모호하게 처리하고 넘어간 난해처를 분명하고 적절하게 해결하고 있다. 아울러 2000년 시공사에서 간행한 황희경 번역의 ‘논어-삶에 집착하는 사람과 함께하는’의 경우는 학이편 4장을 학이편 1장의 내용으로 해설한 내용, 팔일편 24장에 나오는 의봉인과 공자의 만남을 몽타주 기법으로 해설한 내용 등에서 기존의 논어 번역을 넘어서는 참신함이 엿보인다.

우리는 공자가 논어를 읽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자주 망각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공자가 아니라 논어텍스트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성인으로서의 공자를 가정하고 일상 속의 인간들에게 당신들의 삶은 잘못됐으니 이처럼 비범한 말을 가르침으로 받아들이라는 일방적 훈계로 일관된 번역과 해설을 붙여왔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고전 읽기는 우리의 일상을 얕보는 천박한 사고를 부추겨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현실의 모순을 은폐하고 안락한 도피처를 찾아 떠나게 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고전을 해체하고 우리의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는 길만이 참된 의미에서 우리의 고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삶의 문법으로 번역한 논어를 기다리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전호근 경기대 교수)

교수신문(05. 07. 13) 반론:고전번역 비평 기사에 대한 문제 제기

최근 교수신문에서 기획하여 고전 번역에 대한 비평을 연재하고 있다. 그간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고전 번역에 대한 비평이 없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며, 또한 비평의 목적이 궁극적으로 일반인에게 최고의 번역본을 소개해 준다는 측면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고 보여진다. 다만 기획의 의도와는 달리 번역 비평이 이루어지거나 비평 기사가 작성되는 과정에 대하여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이번 기획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실명 비평이다. 즉 번역서의 저자 실명을 거론하면서 추천된 번역본과 비판된 변역본을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서로의 잘못을 덮어주기에 급급한 우리의 학계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면서 번역의 엄밀성에 대한 강조라는 측면에서 신선한 충격을 주는 부분이다. 그러나 실명 비평의 전제는 비평의 대상에 대한 실명만이 아니라 비평 당사자 역시 실명이어야 하며 비평의 이유에 대한 명확한 내용도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다수의 이름 속에서 혹은 익명성 속에서 명확한 비평의 근거도 없이 실명 비평이 이루어진다면, 이는 비판의 대상이 된 실명 변역자에 대해서 변론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채 이루어지는 일종의 마녀사냥으로 변질되기 쉽다. 이를 좀더 거칠게 표현하자면 사이버상에 난무하는 익명성에 근거한 댓글의 일종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실명 비평의 기획 의도를 잘 살리고자 한다면 실명 비평의 방식에 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할 것이다.

이번 기획 기사에서 두 번째로 문제가 되는 것은 추천의 방식이다. 필자 역시 논어에 대한 30명의 추천 교수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필자에게 요구된 추천 방식은 학생들에게 권할만한 논어 번역서가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1-2분 정도 한 차례의 전화 통화뿐이다. 어느 전공 교수라 해도 160여종이 판매되고 있다는 논어의 번역서를 제대로 다 파악할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처음 몇몇 전공 교수를 통해 제한된 우수 번역서를 먼저 선정하고 그에 대한 엄밀한 분석 혹은 추천 교수의 토론을 거친 이후에 추천 번역서 혹은 비판 번역서를 선정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 생각한다. 기사에 제시된 추천 교수가 어떻게 해서 선정된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일방적으로 전화 한 통에 의해 실명 비평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신문에 기사화된다는 것은 상당히 무책임한 대목이다. 많은 교수들은 전화 한 통에 의지해서 무책임하게 작성된 일반 신문의 기사에 의해 속상해하거나 피해를 본 경험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교수를 독자로 삼는 교수신문조차도 이러한 취재 방식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 우리를 매우 슬프게 한다.

또한 추천 교수 명단에 포함된 교수진은 직간접적으로 해당 번역서와 관련된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에 대한 고려이다. 논어에 대한 추천 교수 명단을 살펴볼 때, 가장 추천이 많이 된 것으로 기사화된 유교문화연구소 간행본과 직접적으로 관여된 교수만 해도 네 명이며 간접적으로 관련까지 고려한다면 훨씬 더 많은 수의 교수가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2005년 3월 20일 발행되어 두 달 정도밖에 지나지 않아 아직 시중에 충분히 배포되지도 않은 도서가 제일 많은 교수의 추천을 받는 일이 가능한 것은 아닐까 의구심을 갖는다. 또한 동양고전연구회 번역서의 집필에 직접 참여한 교수 중 세 사람이 이번 추천교수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다른 추천교수 명단을 보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30인의 추천교수 중 논어 번역서를 낸 바 있는 분이 예닐곱 분이 넘으며 해당 번역서를 낸 교수와 동일한 대학, 동일한 학과에 근무하는 교수나 그 제자가 다수 포함된 것을 볼 때 추천의 객관성에 대해 의구심을 보내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덧붙이고 싶은 것은 논어 번역서와 관련된 기사의 내용 중 상당 부분이 무성의함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번역서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해당 책의 출판연도는 평가의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기사에서는 논어 번역서에 대한 출판연도를 자세히 조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가령 동양고전연구회의 번역서는 2005년이 아닌 2002년에 초판이 나온 것이며, 김학주 교수의 번역서는 2003년이 아닌 1985년에 초판이 나왔다. 뿐만 아니라 기사에서 주희의 주를 가장 먼저 한글로 번역했다고 되어 있는 성백효 선생 번역본의 경우 1990년 5월 초판이 나왔는데, 이는 같은 해 간행된 김도련 교수의 번역본보다도 약간 늦게 출판된 것이며, 1982년 간행되었던 한상갑 교수의 번역에 비하면 훨씬 뒤늦은 것이다. 이러한 오류는 기사가 완성되기 전에 충분한 사전 조사를 하지 않은 채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며, 이것이 의욕적으로 시작한 고전번역 비평에 대한 기획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할 수 있다.(이강재 서울대 중문학과 교수)

[참고] 이는 문제제기와 관련된 참고자료입니다.

추천인 중 논어 역주서 집필자

[개인 집필자]
이동희 (1997, 계명대 출판부, 논어)
이애희 (1992, 민음사, 공자 사상의 발견) - 직접 역주서가 아닐 수 있음.
임종욱 (2002, 나무아래사람, 논어)
장숙필, 정상봉 (2002, 지식산업사, 논어)
황희경 (2000, 시공사, 논어)
배병삼 (2002, 문학동네, 논어)

동양고전연구회 논어 집필진
고재욱 (강원대 철학과)
김백현 (강릉대 철학과)
* 김병채 (한양대 철학과) -- 추천 교수에 포함
유권종 (중앙대 철학과)
이강수 (연세대 철학과)
이명한 (중앙대 철학과)
* 장숙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 추천 교수에 포함
* 정상봉 (고려대 철학과) -- 추천 교수에 포함

논어 추천 교수 중 유교문화연구소 논어 관련 교수 (직접 관련만)
안재순 (강원대) - 교열위원
이천승 (성균관대) - 집필 위원
최영진 (성균관대) - 기획 당시 유교문화연구소 소장
김영호 (영산대) - 초기 기획 참여

추천 교수 중 영산대 교수(추천된 번역서 역자 배병삼 교수 소속 대학)
배병삼 교수, 김영호 교수, 이상익 교수, 조광호 교수, 황희경 교수

<해명>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논어’가 시리즈의 첫회라 미흡한 점이 많았습니다. 이 점에 대해 앞으로 계속 보완해나겠습니다. 번역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는 취재원의 전문성, 구성에서의 공정성을 더욱 철저히 고려하겠습니다. 다만 5회를 진행하면서 1백20명 교수들 중 몇분 안에 취재가 끝난 경우는 적었습니다. 대부분은 장시간 의견을 밝혔고, 원고지 20~30매로 의견을 밝혀주신 경우도 있었습니다. 번역자를 취재원에 포함시킨 건 기존 번역서에 대해 잘 알기 때문이고, 자기 책은 추천하지 못하게 돼 있었음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이은혜 기자)

08. 01. 22.

Конфуций Суждения и беседыКонфуций Конфуций - Суждения и беседы

P.S. 러시아어 문고본의 <논어>이다. 문고본답게 가격은 저렴해서 3,000원 정도. 제목은 <견해와 대화>로 돼 있다. 오른쪽은 고가 한정본인데 가격은 14만원이 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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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01-24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 종류의 '번역본'ㅡ이렇듯 <논어>를 '타자화'시키기란 어떤 의미에서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ㅡ을 갖고 있지만, 정말 많은 번역본들이 있군요. 소개글에 감사드립니다. 몇 권은 구해서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로쟈님 말씀처럼 어떤 의미에서 <논어>의 '정본'이 확정되는 일은 참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성경>에 대한 연구가 '해석학(Hermeneutik)'의 탄생을 촉발했던 것과도 같은 에너지를 <논어>에서도 또한 기대하게 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논어>는 예나 지금이나 '문제적'이고 '징후적'인 텍스트로군요.^^

로쟈 2008-01-24 23:31   좋아요 0 | URL
이번에 새삼 알게 된 것이지만 서로 모순적인 번역/해석까지도 '공식적'으로 허용하더군요. 우리가 '상상하는' 공자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