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욤 드 마쇼와 유대인'은 르네 지라르의 책 <희생양>(민음사)의 1장 제목이다. 작년 가을에 나온 신장판과 영역본을 도서관에서 오래 전에 대출했는데(내가 갖고 있는 구판은 박스에나 들어가 있는 모양이다) 고작 1장 정도 읽어보고 반납하게 생겼다(무얼 집중해서 읽을 만한 여유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반납하기 전에 단순오역 두 가지를 교정해둔다. 새로운 장정으로 책을 내기 전에 번역이라도 한번 더 살폈으면 좋았을 뻔했다.

 

 

 

 

약간 어이없기도 한데 첫 '오역'은 맨 첫문장에 나온다. "기욤 드 마쇼(Guillaume de Machaut)라는 16세기 중반에 활동한 프랑스 시인이 있는데, 그의 <로이 드 나바르의 판단(Jugement du Roy de Navarre)>은 널리 알려진 작품은 아니지만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7쪽)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면 중세의 중요한 시인이자 작곡가이기도 했다는 기욤 드 마쇼의 생몰연대는 1300-1377년이라고 나온다. 16세기 시인이 아니라 14세기 시인인 것이다. 역자가 부주의했다고 할 수밖에 없는데, 아마도 불어본에는 로마숫자로 세기가 표기됐던 게 아닌가도 싶다(간혹 그런 경우에는 혼동이 가능하니까. 영역본에는 'mid-fourteenth century'로 돼 있다). 그렇더라도 본문을 주의깊게 읽었다면 그의 '궁정식 문체의 장시(長詩)'가 다루고 있는 사건이 "1349년부터 1350년 사이에 프랑스 북부 지방을 휩쓸었던 그 유명한 페스트"(8쪽)라거나 "14세기에는 에피디미라는 이 유식한 말에서 항상 '과학성'의 향내가 풍겨나고있었는데"(12쪽)라는 문구들에서 착오를 눈치챌 수도 있었겠다.

그리고 지라르가 분석하고 있는 그의 작품 <로이 드 나바르의 판단>은 영어로 'Jugement of the King of Navarre'라고 옮겨진다. '로이'가 고유명사가 아닌 이상 '로이 드 나바르'는 '나바르의 왕'이라고 옮겨져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내용상 '판단'보다는 '심판'이 더 적절한 번역어로 보인다.

이 장시의 서두에서 기욤은 전혀 믿기지 않는 이야기와 제법 그럴 법한 이야기들을 뒤섞어 놓는데, 간추리면 이렇다: "돌들이 쏟아져 내려와 생물체들을 죽여버리고, 마을은 벼락을 맞아 모두 파괴된다.(...) 기욤이 살고 있던 마을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 사악한 유대인들과 기독교도이면서 그들과 공범인 사람들에 의해 사람들이 살해된다.(...) 그것은 그들의 강과 식수원을 오염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행을 저지른 자들을 하늘이 폭로함으로써 하늘의 정의가 이들을 일소한다."(7-8쪽)

대략 역사가들은 이 작품에 페스트의 재앙과 유대인 대학살이 묘사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어 보이는 기욤의 텍스트가 말해주는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지라르는 마치 '(추적) 사건과 진실'의 나레이터처럼 하나하나 따져들어간다. 그걸 다 따라가볼 만한 처지는 아니어서 한 가지 오역만 더 지적한다.

"어쨌든 여기서 사건이 일어난 정황은 그다지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 그것을 모른다 하더라도 현대의 독자들은 결국 우리가 제시하는 해석에 이르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독자들은 정당하게 살해된 희생양일 거라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이 희생양은 무고한 것이므로 이 텍스트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희생양이 실재하였기 때문에 이 텍스트는 동시에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15쪽)

세번째 문장 이하는 영역본에서 이렇게 옮겨졌다. "He would conclude that there were probably victims who were unjustly massacred. He would therefore think the text is false, since it claims that the victims were guilty, but true insofar as there really were victims."(5쪽) 

"독자들은 정당하게 살해된 희생양일 거라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는 것이다"는 주술관계가 모호한데, "독자들은 필시 부당하게 학살당한 희생자들이 있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정도로 옮겨질 수 있겠다. '정당하게'가 오역인 것은 바로 다음에 "이 희생양은 무고한 것이므로"라고 나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사소한 부주의가 낳은 오역들이지만 덕분에 희생양이 되는 것은 독자들이다...

08. 0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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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01-09 14:39   좋아요 0 | URL
'roy'는 'roi'의 고어 표기인데ㅡ예를 들어 Montaigne의 Essais만 보더라도 'moi' 또한 'moy'로 표기되고 있음을 알 수 있죠ㅡ, 그것을 '로이'라는 표기로 옮겼다는 사실에서 역자가 아마도 'roy'를 보고 엉뚱하게도 영어 이름 'Roy'를 생각했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군요(최소한 '루아'라고만 표기했어도 이런 의심은 없었을 텐데요).
희생양으로서의 독자가 되는 경우는 거의 '일상다반사' 수준이라 이제는 좀 '무감각'해질 법도 하련만, 이런 쪽으로 촉수를 뻗은 예민함 때문에 '꿋꿋한' 독서가 방해 받곤 하는 경험은 언제나 다시금 독한 편두통을 불러일으킵니다...

로쟈 2008-01-09 14:42   좋아요 0 | URL
그렇죠. 마음놓고 읽을 수 있는 번역서들이 정말 드뭅니다.--;

람혼 2008-01-09 15:19   좋아요 0 | URL
여담이지만, 저는 이렇게 신속한 댓글이 달리는 로쟈님 서재 방문자 여러분들의 민첩한 기동성이 언제나 부럽습니다.^^; 그나저나 'roi'의 한글 표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말씀드리자면, 일전에 'Guattari'의 표기에 대해서 로쟈님이 언급하셨던 부분을 가끔 떠올려보게 되는데요, 예를 들어 'roi'나 'bourgeois' 등 [-wa-] 발음이 들어가는 단어의 한글 표기에 있어서 현재는 '-우아-'가 일반적인 표기법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됩니다('루아', '부르주아'). 로쟈님께서 보셨던 책이 구체적으로 어떤 책인지는 모르겠지만ㅡ알려주세요~^^;ㅡ'Guattari'를 '구아타리'로 표기했던 이는 아마도 저러한 발음과 표기법의 원칙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현재의 원칙 상으로는 분명 '구아타리'라고 표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이렇게 되면 이게 또 당장은 여간 어색한 것이 아니고, 또 예를 들어 '손탁'이냐 '손택'이냐, 혹은 '벤야민'이냐 '베냐민'이냐 등과 관련하여 여러 번 로쟈님께서 쓰셨던 것처럼, 이러한 인명 표기에 있어서 원칙을 적용하느냐 아니면 '관습'과의 타협을 적용하느냐의 문제는ㅡ물론 이것이 이렇게 단순히 양자 사이의 결정의 문제도 아니겠지만ㅡ참 사소한 듯 하면서도 난해한 문제라고 느껴진다는 인상 한 자락 첨부해봅니다.^^ 고견들을 듣고 싶습니다.

로쟈 2008-01-09 16:17   좋아요 0 | URL
구아타리는 <시각문화의 매트릭스>에 나옵니다. 저도 '과타리'까지는 봐주겠는데, '구아타리'는 오버라는 새각을 합니다. '망구엘'의 경우도 '망겔'이란 표기를 찾아줄 수는 있지만, 국내에 그렇게 번역/소개된 이상 '망구엘'을 존중해줄 수 있지 않나 싶어요. 그러니까 제 주요한 기준은 '통용'입니다. '베르그손'보다 '베르그송'을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사실 지금 든 사례들은 발음상 대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다고 '통용'만을 고집할 수는 없는데, 벤야민의 연인 '아샤 라시스'는 최근에 나온 선집에서 '아샤 라치스'로 바로 잡혔더군요(역자조차도 예전에는 '라시스'로 표기했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교정된 표기를 선호하는 것이죠...

2008-01-09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1-09 16:21   좋아요 0 | URL
그냥 웃고 즐기는 건 괜찮은데, '유료'라서요. 그것도 비싼!^^;

소경 2008-01-09 21:28   좋아요 0 | URL
저도 1장만 대강 읽고 남겨 두었는데. "독자들은 정당하게 살해된 희생양일 거라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에 구절에 대해서 전 옯다고 생각 했습니다. 평소 물론 희생양을 두고 '정당하게' 말할 수 있다는 말은 현용하기 어렵지만 지라르는 유태인을 희생양을 둠에 정당하다고 말하는 당시대의 풍토에 대해서 역설하는 것이니. 누구에게로 책임을 둠으로써, 즉 희생양으로 남김으로 흡족할 수 있는 풍토를. 물론 당시 유태인의 박해에 맞물려, 고개를 끄덕이는 독자를 향한 것이라 '정당하게'가 성립되야 하는 것이......

(얼핏 읽고 적으니; 자신이 없네요.)

로쟈 2008-01-09 22:08   좋아요 0 | URL
희생자들이 정당하게 살해됐다는 건 텍스트 서술자의 관점입니다. 오늘날의 독자가 읽기에는 희생자들이 무고하게 살해됐다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텍스트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이고요, 그럼에도 희생자들이 존재했다는 건 말해주니까 그 점에서는 진실을 말했다는 의미입니다...

소경 2008-01-10 06:41   좋아요 0 | URL
현대의 독자들을 향한 글에 다른 내용을 은근히 집어 넣었군요. 맥락을 잘못 집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