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에서 연재되고 있는 정재승의 '사랑학 실험실'에서 지난주 분을 옮겨놓는다(http://h21.hani.co.kr/section-021160000/2007/12/021160000200712060688018.html). 한 포털사이트에 게시되기도 했던 것인데 혼외정사의 생리학을 다루고 있다. 푸슈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에 대한 강의를 하다가 '연애의 기술'이란 말이 나와서 참고삼아 인용하기도 했다(그래서 자료로 스크랩해놓는다). 칼럼의 요점은 '일부일처 본능'과 '불륜 본능'이 따로 있는 것인가인데, 적어도 들쥐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그렇다고 한다(호르몬이 결정한단다). 그럼 인간은? 적당히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이겠지... 

한겨레21(07. 12. 06) 일부일처 본능, 불륜 본능

만프레트 타이젠의 저서 <러브 사이언스>에 따르면, 포유류의 97%는 정조관념이라는 것이 없다고 한다. 5천 종이 넘는 포유류 가운데 평생 같은 짝과 함께 지내는 동물은 비버와 수달 등 약 3%에 불과하다. 이미지와는 달리 늑대와 여우도 일부일처를 하는 동물에 속한다. 하지만 포유류의 대부분은 섹스를 위해서, 혹은 자식 양육을 위해서 한동안 함께 지내긴 하지만, 어느 정도 목적이 달성된 뒤에는 각자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 떠난다.



인간은 ‘사회적 일부일처제’

게다가 짝에게 정절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는 동물들도 사실은 몰래 바람을 피우거나 상대를 떠나기도 한다. 사람처럼 이혼을 한다고나 할까? 진화생태학적 가설이 맞다면, 동물 세계에서 대부분의 수컷들은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것이 목표이고 암컷은 건강한 새끼를 낳기 위해 최상의 상대를 고르는 데 전념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일부일처제는 한 상대에게 생식에 관해 전폭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사실 부담이 따르는 제도다.

진화생태학자들은 동물 세계의 ‘일부일처 습관’을 일정 시간대에 한 짝과만 짝짓기하는 ‘성적’ 일부일처제와 암수가 짝짓기를 한 뒤 새끼를 함께 키우지만 바람도 피우는 ‘사회적’ 일부일처제, 그리고 한 암컷이 평생 한 수컷의 알만 낳는 ‘유전적’ 일부일처제로 분류한다. 예를 들어 새들의 90%는 암수가 새끼를 함께 키우지만 다른 상대와도 성적 관계를 갖는 사회적 일부일처제를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1세기 많은 국가에서 인간은 일부일처제를 유지하지만, 혼외정사 빈도와 혼전 성관계를 고려하면 사회적 일부일처제를 유지한다고 볼 수 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의 60% 이상이 결혼 뒤에 이따금 파트너가 아닌 다른 사람과 (성행위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랑하는 사람들만의 애정 행각’을 나눈다. 이른바 ‘감정적 부정’이란 걸 한다. 또 남녀의 35%가 결혼 뒤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진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킨제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남편의 50%, 미국 아내의 26%가 혼외정사를 경험한 적이 있다.

킨제이 보고서 이후 조사된 몇몇 연구들에서는 그 수치가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전체적인 경향은 별반 차이가 없다. 8천명의 기혼 남녀를 조사한 한 연구는 남편의 40%와 아내의 36%가 적어도 한 번 이상 혼외정사를 했다고 보고했으며, 어떤 보고서는 최대 70%에 이른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심지어 5%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외도 상대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한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최근 결과일수록 남녀 간의 혼외정사 수치 차이가 조금씩 줄어들긴 하지만, 모든 연구에서 일관적으로 혼외정사의 발생률과 빈도에서 남성이 여성을 앞서고 있음이 나타난다. 다시 말해 아내보다 남편이 더 자주 더 많은 상대와 혼외정사를 한다. 킨제이는 자신의 보고서에 이런 코멘트를 남겼다. “사회적 규제만 없다면, 남성들은 평생 아무 여자나 섹스 상대로 삼으며 문란한 성생활을 즐길 것이라는 명제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반면 여성들은 다양한 상대를 접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인간이 일부일처제라는 결혼제도를 발전시키게 된 것은 다양한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자식을 양육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길면서 안정적인 가정이 필요했고, 사유재산을 내 유전자를 가진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 노력하면서 일부일처제는 제 꼴을 갖추게 됐다. 하지만 최근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일부일처제라는 특징이 우리의 두뇌 작용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순애보와 불륜은 호르몬 차이?
북아메리카 중서부 대초원에서 서식하는 들쥐 ‘불스’와 산에서 서식하는 들쥐는 생김새는 거의 비슷하지만, 애정생활에 관한 한 완전히 상반된 특징을 보인다. 대초원에서 서식하는 들쥐는 냄새를 통해 적합한 파트너를 찾으며 끔찍이 서로를 아끼는 낭만주의자들이다. 그들은 평생 한 파트너하고만 짝짓기를 하며, 나중에 직접 만든 둥지에서 새끼를 함께 돌본다. 반면 산에 사는 그들의 동족은 정반대의 애정생활을 보인다. 수컷은 새끼를 낳아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며, 곧장 다른 암컷의 치마 속을 호시탐탐 노린다.

유전자 측면에서만 보면, 두 들쥐는 거의 동일하다. 그러니 산에서 서식하는 들쥐를 그토록 불성실한 수컷으로 만드는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는 얘기다. 지난 15년간 들쥐들을 연구해온 미국 에모리대학 래리 영 박사팀은 대초원에서 서식하는 성실한 수컷 들쥐에게 ‘바소프레신’이란 호르몬을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하고, 암컷에게는 옥시토신을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했다. 바소프레신과 옥시토신은 자식과 배우자에 대한 애착을 유발하는 호르몬인데, 이들을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하자, 순식간에 그들의 태도는 돌변했다. 평소에 그렇게 자상하던 수컷이 교미가 끝나기가 무섭게 자취를 감췄고, 암컷 또한 파트너에 대한 흥미를 곧바로 잃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다음 연구 결과였다. 이번에는 산에 서식하는 들쥐를 유전적으로 변형해 바소프레신 수용체와 옥시토신 수용체의 양을 늘렸더니, 바람둥이 수컷 들쥐들이 갑자기 ‘자상한 아버지’로 돌변했다. 예전의 불성실함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대초원에 서식하는 들쥐처럼 그들도 이제 한 파트너에게 전념하고 새끼를 키우는 데 전념하더라는 것이다.

비록 들쥐를 통한 연구 결과이긴 하지만, 이 연구 결과는 우리에게 왜 사람들이 결혼생활이 깨질 수 있음에도 혼외정사를 꿈꾸는지 실마리를 제공한다.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순애보적인 사랑’이나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불륜적인 사랑’ 안에는 생물학적인 요소도 어느 정도 포함돼 있음을 시사한다. 뇌 속에 어떤 호르몬이 좀더 지배적인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사랑관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모든 성전략이 그렇듯, ‘원나이트 스탠드’도 그에 다른 손실이 있기 마련이다. 도덕적인 죄책감에 시달릴 수 있고, 남성들은 성매매를 통해 매독이나 에이즈 같은 성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사회적으로는 ‘바람둥이’라는 나쁜 평판을 얻을 수도 있으며, 여성들은 더욱 가혹한 사회적 지탄을 받는다. 또 혼외정사나 하룻밤의 정사를 추구하는 미혼 여성은 때론 자신과 자식에게 장기적으로 투자해줄 남성이 없는 상태에서 임신해 자식을 키워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안정된 결혼생활이 한순간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고, 질투심으로 가득 찬 ‘여성의 남편’으로부터 폭행을 당할 수도 있다. 여러 문화권에 걸쳐 살인 사건의 상당수가 (특히나 배우자 살인의 대부분이) 아내가 부정을 저질렀다고 의심한, 그래서 질투심에 휩싸인 남편이 저지른 사건이었다.



‘원나이트 스탠드’에 따르는 손실
그럼에도 원나이트 스탠드가 오래도록 유지되는 데에는 생물학적인 설명만으로는 부족한 요소들이 많이 관여된다. 예를 들어 일시적인 성관계가 주는 손실의 상당 부분이 오늘날 과학기술의 발전이나 달라진 생활환경 덕분에 겪지 않아도 된다. 효과적인 피임법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원치 않는 임신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도 원나이트 스탠드나 결혼과 상관없는 섹스를 늘리는 원인이 될 수 있으며, 도시생활의 상대적인 익명성은 찰나적인 성관계로 인한 평판의 하락을 어느 정도 줄여준다. 여성의 경제적 독립은 남성에게서 장기적 투자를 기대하지 않고 섹스를 할 수 있도록 해주며, 부모로부터 독립,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공간의 증대 역시 혼외정사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이다. 이처럼 찰나적인 성관계로 인한 손실이 줄어들면서 우리의 복잡한 성생활은 이전보다 훨씬 더 복잡한 형태로 현대생활 속에 자리하게 되었다.(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07. 12. 13.

P.S. 결틀여, '유혹의 기술' 혹은 '작업의 정석'에 대해서는 '작업의 정석과 자기계발'(http://blog.aladin.co.kr/mramor/998402)이란 페이퍼를 참조. 닐 스트라우스의 <더 게임>(디엔씨미디어, 2006)에 대한 소개이다. 하긴 그냥 노골적으로 <유혹의 기술>(이마고)이란 책도 있긴 하다. 다이제스트판까지 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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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07-12-13 20:10   좋아요 0 | URL
저 같은 외로운 솔로부대원에게는 일부일처니 일부다처니 다 배부른 소리입져...그저 다정하고 예쁜 여친 한 분만 굽신굽신...

로쟈 2007-12-13 20:41   좋아요 0 | URL
곁들여 적어놓은 책들을 한번 통독해보셔야겠네요. 물론 실습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