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역설>(인간사랑, 2006)을 읽으며 샹탈 무페에 관한 자료들을 찾다가 읽게 된 건 작년 여름 <동향과 전망>에 실린 한 논문에 대한 소개기사이다. 소개에 따르면, 노무현 리더십의 한계를 잘 짚어주면서 라클라우/무페의 급진적 민주주의의 입장이 무엇인가도 잘 가늠할 수 있도록 해주는 논문이 아닌가 싶다. 내공이 있는 필자다, 싶어서 찾아보니 안교수는 "한나 아렌트, 에릭 홈스봄 등 세계적 지성이 주도했던 미국의 New School for Social Rearch에서 미국 대통령제를 전공"했고, <노무현과 클린튼의 탄행 정치학>(푸른길, 2004)란 저작과 <제국의 슬픔>(삼우반, 2004) 같은 번역서를 갖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가 '탈정치 리더십'에 기인한다는 그의 진단에 공감한다(경제 최우선주의를 내세우는 이명박의 경우도 사정이 나을 성싶지 않다).

 

 

 

 

한겨레(06. 06. 03) 노대통령 ‘탈정치 리더십’이 실패 불렀다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을 ‘탈정치 리더십’이라고 비판한 글이 〈동향과 전망〉 여름호에 실렸다. 갈등의 정치에 힘입어 대통령에 올랐지만, 정작 이를 본격적으로 작동시키지 못해 실패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안병진 창원대 교수는 이 잡지 최근호 특집에 실린 ‘탈정치론의 시대’라는 논문에서 “갈등을 완전히 제거하고 열정을 기피하는 정치는 오히려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기피를 불러온다”며 “이는 보다 강렬한 향락을 제공하는 파시즘적 정치에 필연적으로 정치의 주도권을 빼앗기게 된다”고 지적했다. 5·31 지방선거 결과를 예측이나 한 듯한 글이다.

‘승부수를 던져 싸움을 즐기는 정치인’이라는 게 노 대통령에 대한 세간의 이미지였다. 그러나 안 교수는 “국정을 운영하는 노 대통령의 문제의식이 매우 탈정치적”이라고 평가했다. 새로운 접근법이다. 노 대통령의 리더십을 탈정치적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정치’의 핵심적 요소인 “집단적 갈등, 각 세력 간의 헤게모니 경쟁, 대중적 욕망과 정서 등”을 의도적으로 멀리하기 때문이다. 탈정치 리더십은 정치가 시민들의 욕망과 적대적 열정을 표출하는 장이라는 사실에 눈감는다. 적대적 갈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거나 억누른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힘의 차이나 헤게모니 경쟁 등을 무시한 채, 합리적인 대화와 타협만을 신격화한다.

정치사상가인 샹탈 무페의 문제의식을 빌려온 안 교수가 보기에 대연정, 선진한국 건설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조기 체결 등 노 대통령이 제시한 핵심의제들은 합리주의의 모양을 띤 탈정치 담론들이다. “정치의 정수를 배제한 채, 대화만을 극단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분단과 재벌 체제 등 적대적 차원의 정치의제가 그 어느 나라보다 강렬한데도, “노 대통령이 현재 전개하는 담론들은 매우 탈정치적인 합리주의 관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좌파 신자유주의’는 좌우 구분 자체를 혐오하는 노 대통령의 이런 생각이 잘 드러난 표현이다.

 

 

 

 

 

 

 

 

 

 

 

이는 참여정부 탄생 과정을 배반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참여정부의 탄생은 기득권 질서에 대한 적대적 열망과 이와 구분되는 새로운 정치적 정체성의 추구가 역동적으로 분출”된 결과였다는 게 안 교수의 판단이다. 당시 대선 후보로서의 노무현은 “정서적 분노와 집단적 열정을 선거에서 표출해 논쟁적 민주주의로 전환시키는 매개”였다. “갈등적 합의를 통해 활력있는 정치를 한국사회에서 최초로 구축하려 한 의의”를 가진 참여정부는 이후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정치 내부로 시민들의 힘을 투입시키는 정치의 핵심 운영 원리를 배제하고, 행정·입법·사법부 엘리트 간의 갈등과 협력으로 정치 영역을 제한했다.” 그러나 대화와 타협은 어디서도 실현되지 않았다. 오히려 시민적 참여 원리가 배제된 정치권에선 “서로를 정치의 장에서 완전히 배제하려는 정치”가 횡행했다.

안 교수는 그 결과에 주목한다. 사람들은 “단조롭고 무기력한 합의주의적 자유주의 정치가 결코 제공할 수 없는 ‘향락’의 정치에 빠져든다”고 경고했다. ‘우익 포퓰리즘’이 대표적이다. 지방선거 전에 이 글을 쓴 안 교수는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이 서울시장 후보 공약으로 내건 ‘아파트 반값 분양’을 그 사례로 꼽았다. 실현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들의 어떤 ‘열망’에 호소하는 힘이 크다는 것이다. 안 교수의 분석법을 원용하면, 이명박 서울시장의 청계천 효과 등의 실체도 이해할 수 있다.

안 교수는 “정치의 틀 자체를 붕괴시키지 않으면서도, 적대적 힘들 간의 헤게모니 투쟁을 활력있는 논쟁적 민주주의로 전환시키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이를 ‘공화주의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으로 정리했다. “사회의 적대적 갈등을 회피하고 보편적 외관을 가장한 특수한 내용의 합의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기제를 통해 표출시키고, 이를 통해 부단히 다수의 합의를 창출해내는 정치”가 핵심이다.(안수찬 기자)

07. 12. 10.

 

 

 

 

P.S. 안교수가 '공화주의적 민주주의'라고 제시하는 대안을 샹탈 무페는 그냥 '자유민주주의'라고 부른다. '민주주의의 역설'이란 곧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내적인 긴장 관계, 역설관계를 가리키며(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자처하는 세력들이 흔히 이 '역설'을 이해하지도 견뎌내지도 못한다는 게 한국식 자유민주주의의 역설이다), "적대적 힘들 간의 헤게모니 투쟁"이 바로 정치이다. '탈정치 비판'에 대해서는 무페의 책들 외에도 지젝의 <혁명이 다가온다>를 참조할 수 있다. 책의 한 장이 '탈정치에 반대하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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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12-11 09:50   좋아요 0 | URL
^^ ^^마지막 세권의 책..다 보관함에 있는데 언제 볼지 모르겠어요.
내년에는 지젝을 좀 보려구요

로쟈 2007-12-11 12:28   좋아요 0 | URL
<역설>과 <혁명>의 경우에 강추할 만한 번역서들은 아닙니다. 미리 단서를 붙여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