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바다‘의 둘째권 <달리는 말>을 강의에서 읽었다. <봄눈>의 기요아키가 죽은 지18년 지난 시점인 1932년, 유일한 친구였던 혼다 시게쿠니는 중년(38세)이 되었고 항소원(지금의 고법) 판사로 일하고 있다. 어느 날 검도 시합장에서 이누마 이사오라는 청년을 보게 되는데, 기요아키 집안의 서생이었던 이누마 시게유키의 외아들이자 <달리는 말>의 주인공이다. 이사오가 기요아키의 환생이라는 사실을 혼다가 알게 되면서 이야기는 연작의 궤도로 진입한다.

환생이라고는 하지만 이사오는 기요아키와 달랐다. ˝이누마 소년에게는 기요아키의 아름다움이 결여된 대신 기요아키에게 결여돼 있던 용맹이 있었다.˝ <봄눈>이 기요아키가, 황족과 결혼하게 된 사토코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라면, <달리는 말>은 사랑에 눈도 뜨기 이전의 이사오가 <신풍련사화>라는 책에 현혹돼(신풍련은 1876년 칼을 차고 다니는 것을 금지하는 페도령에 반발해 메이지 정부에 맞섰던 무사 무리다) 쇼와의 신풍련을 시도하는 이야기다. 아직 스무살도 되지 않은 이사오가 학생들로 구성된 조직을 만들어 백색테러(요인 암살)를 기획한다.

인용문은 이사오가 <신풍련사화>에 빠져 현실을 오판할까 염려한 혼다가 그에게 보낸 편지다. 흥미로운 건 작가 미시마가 혼다와 이사오 가운데 어느 편에 서고 있는지다. 검에 대한 믿음으로 새로운 봉기를 기획하는 이사오의 모습에 <우국>의 작가 미시마가 어른거리지만 동시에 이사오에게 ˝순수성과 역사의 혼동˝을 경계하라고 충고하는 혼다 역시 미시마의 분신적 인물이다(이 충고를 이사오는 냉소적으로 받아들인다). 미시마의 우익 성향을 표나게 보여주는 작품으로 지목되지만, <달리는 말>은 이렇듯 서로 충돌하는 입장도 대조해서 보여준다. 미시마-이사오와 미시마-혼다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서로 다른 관점의 말을 동시에 제시하기(비록 미시마의 최종 선택은 이누마 이사오적인 것이었지만). 이것은,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경우가 그렇듯, 작가의 미덕이 아니라 소설이란 장르의 미덕이다...

젊은이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순수성과 역사의 혼동입니다. <신풍련사화>에 경도된 당신에게서 제가 위험을 느낀 것도 그 점입니다. 어디까지나 역사는 전체이고 순수성은 초역사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쓸데없는 노파심일지 모르지만, 이것이 당신에 대한 저의 충고이자 훈계입니다. 어느새 나도 젊은이를 보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가르치려 드는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물론 이건 당신의 명민함을 믿기 때문이며, 아무런 기대도 없는 청년에게 이렇게 장황한 충고를 하진 않을 겁니다.
당신이 검도 시합에서 보여 준 숭고한 힘, 당신의 순수함과 정열에는 감탄을 금하지 못하였으나, 동시에 나는 당신의 지성과 탐구심을 한층 신의(信倚)하므로, 당신이 학생으로서 본분을 잊지 않고 연찬에 힘써 나라에 유용한 인재가 되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오사카에 오게 되면 꼭 찾아 주세요. 언제나 환영합니다.
또한 훌륭한 아버지가 계시니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만, 혹시 마음에 남는 문제가 있어 상담할 사람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 응할 테니 주저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이만 줄입니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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