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도 전에 읽은 것 같은 책들이 있는데 렉스 버틀러의 <슬라보예 지젝>이 그렇다(라이브 이론 시리즈의 여러 권이 그렇다). 원서는 2005년에 나왔고 나도 그 즈음에(아마도 도서관 책을 복사했을 것이다) 손을 댔던 책이니 얼만큼은 읽었을 것이다. 최근 몇년 팬데믹과 관련된 지젝의 책들만 읽다가 그의 철학서들을 올해 다시 읽으려는 참이라(오랜만에 들뢰즈와 지젝 읽기 모드다) 점검 차원에서 빼들었다. 다시 시작이다...

이런 모든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지젝이 말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우리는 서양 문명의 기원 이후 오직 드물게 찾아볼 수있었던 어떤 가능성으로 돌아가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그 누구보다도 고대 그리스의 영웅 안티고네를 떠올리게 하는데, 그녀는 아주 터무니없이 고집을 부리다가 결국 비극적 대의를 위해자신을 희생한다. 즉, 우리는 여기서 라캉의 용어로 하면 ‘두 죽음 사이‘에 있는 존재, 자신의 외면이 껍데기나 잔해로 축소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또한 안티고네처럼 대의가 결핍된 세상에서 어떤 비범한 대의에 사로잡힌 채, 모종의 멈출 수없는 힘으로 충만한 것 같은 사람이다. 지젝은 일종의 죽음충동, 자기소멸의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가드러내는 것은 삶 자체가, 즉 심오한 의미에서 삶은 이러한 죽음을 향한 전진 앞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 우리가 그와 같은 삶을 영위할 때 희생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직 저편 (저승)에서 볼 때만 가치를 지닌다는 점이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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