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의 <오후의 예항>을 강의에서 읽었다. 주로 주인공 노보루(패거리에서 ‘3호‘로 불리는 13세 소년)와 류지(이등항해사였다가 그만두고 노보루의 새 아버지가 되는 30대 초반 남성)의 관계, 그리고 노보루 패거리의 의미에 대해서 다뤘는데 패거리의 두목(노보루와 같은 또래)에 대해서는 덜 말했다는 느낌이 들어서 마저 적는다.

류지는 1만톤급 화물선의 선원으로 노보루의 선망(욕망)의 대상이었지만 노보루의 어머니 후사코(남편과 사별한 지 5년이 된 33세 여성)와 사랑에 빠지면서 선원(바다의 남자)을 그만두고 육지의 남자로 변신하려고 해서 노보루를 실망시킨다. 노보루 패거리의 두목은 그런 류지에 대한 처벌(살인)을 기획하고 노보루를 포함한 패거리와 함께 실행에 옮긴다. 그렇게 보면 <금색>이나 <금각사>와는 다른 인물 구도를 보여준다. 여성(후사코)의 존재감이 약화되는 대신에 두목이라는 제3자의 존재감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다른 소설에서와 마찬가지로 미시마의 남성 인물들은 미시마의 분신 역을 맡는다. 한편에 노보루-미시마가 있다면, 다른 편에는 류지-미시마가 있다. 둘의 관계가 새로운 부자관계로 갈등과 갈등의 봉합(화해)로 진행되면 전형적인 성장소설이 된다. 문제는 미시마(혹은 미시마의 인물들)가 이를 거부한다는 데 있다. 여기서 두목의 존재기 특이한데 그 역시 13세 소년이지만 아버지의-이름(부권)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두목-미시마도 있는 셈). 아버지를 부정하는 아버지의 형상이란 면에서 여느 아버지와 다르다(안티-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을까).

소설은 노보루가 류지처럼 되고 싶어하다가 그에게 실망하면서 두목처럼 되는 쪽으로 결말지어진다. 그 과정에서 류지(아버지)는 제거되어야 한다. 그것을 이들은 타락한 류지를 다시 영웅의 자리에 되돌려놓는 일로 간주한다. 이전 소설들에서와 달리 두목과 그 패거리가 등장하여 류지를 처벌하려고 한다는 점은 징후적이며 미시마 문학이 본격적으로 파시즘 미학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보게 한다(<오후의 예항>은 매우 위험한 소설이다). 미시마가 이미 단편 <우국>(1961)을 쓰고 영화(1966)로 만들던 무렵이니 이상한 건 아니다. 그는 수년 뒤 위험한 작가의 실례(할복 자살)를 선언적으로 보여주게 될 것이다...

(...)
늘 말하는 것처럼 세계는 단순한 기호와 결정으로 구성되어 있어, 류지 본인은 몰랐을 수도 있지만, 그 기호 중 하나였던 거야. 적어도, 3호의 증언에 따르면 그 기호 중 하나였던 것같아.
우리의 의무는 알고 있겠지? 굴러떨어져 나온 톱니바퀴는 다시 원래의 장소에, 억지로라도 끼워 맞추지 않으면 안 돼. 그러치 않으면 세계의 질서가 유지되지 않아. 우리는 세계가 텅비어 있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중요한 것은 그 텅 빈 질서를어떻게든 유지해가는 수밖에 없어. 우리는 그를 위한 파수꾼이고 그를 위한 집행인이니까."
그는 다시 단호하게 말했다.
"어쩔 수가 없네. 처형하자. 그것이 결국 그놈을 위한 일이기도 해.......3호. 기억하고 있니? 내가 야마시타 부두에서, 그놈을 다시 영웅으로 만들어줄 방법이 한 가지 남았다. 곧 그것을 말할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라고 했던 거."
"기억해."
노보루는 조금씩 떨리기 시작하는 허벅지를 누르며 대답했다.
"지금이 바로 그 시기야."
대장을 뺀 다섯 명은 얼굴을 마주 보며 침묵했다. 모두 대장이 말하려고 하는 일의 중대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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