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코프의 자서전(으로 불리는) <말하라, 기억이여>가 다시 나왔다. 초판과 달라진 건 16장이 추가된 점인데, 나보코프가 영어판 초판(<결정적 증거>)의 서평을 직접 쓰고 추가한 장이다. ‘나보코프의 자서전‘이면서 ‘나보코프 씨의 자서전‘인 셈. 이 차이와 유희가 나보코프 문학의 특징이자 비밀이라고도 생각된다...

나보코프 씨의 책은 자서전이라고 보기에는 특이하고 기이한 존재다. 이 책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보다 무엇이 아닌지를 설명하는 편이더 쉬울 것이다. 이를테면, 이 책은 다른 예술 분야의 전문가들이나 고위 공직자들이 흔히 내놓는 수다스럽고 형식 없이 늘어지기만 하는 일기장 메모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종류의 회고록이 아니다("수요일밤 열한시 사십분경 아무개 장군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또 문학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을 섞어 미지근하게 끓인 국물에 특이한 재료 몇 조각을 띄운 전업 작가의 요리도 아니다. 더욱이 통속적이고 번지르르한 추억담, 작가가 스스로를 삼류 소설의 경지에 올려놓으며 밑도 끝도 없는 (엄마와 이웃, 엄마와 아이들, 빌과 아빠, 빌과 피카소의) 대화들을 뻔뻔스러울 정도로 장황하게 늘어놓는 그런 종류도 아니다. 어떤 인간의 뇌로도 그와 같이 특정한 형식으로 기억을 보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서평자가 보기에 <결정적 증거>의 영구적 의의는, 개인적이지 않은 예술 형식과 극히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 - P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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