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그렇지만 지난해의 마지막 강의에서 읽은 츠바이크의 <우체국 아가씨>의 한 대목이다. 츠바이크의 유작 <우체국 아가씨>는 그의 ‘유이한‘ 장편소설이다(<초조한 마음>이 다른 하나다). 중편(노벨레)이 주종목인 작가에게 장편소설이란 무엇일까가 내가 던진 질문이었고, <우체국 아가씨>는 그게 ‘오스트리아 문제‘일 수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초조한 마음>도 마찬가지다).
밑줄 그은 대목은 2부에 등장하여 여주인공 크리스티네의 파트너가 되는(연인이자 공범) 페르디난트가 전우였던(그리고 크리스티네의 형부) 프란츠에게 털어놓는 울분이다. 그는 1차세계대전에서의 참담한 경험으로 인생이 망가졌다고 생각한다. 어찌 페르디난트뿐이랴. 그의 세대 전체가 그랬다는 것은 크리스티네의 이야기에서도 확인된다. 나치가 집권하고 또다른 세계대전을 앞둔 1934년 조국을 떠나 망명길에 오른 츠바이크의 심경도 겹쳐 읽힌다.

나는 내전이 어떤 것인지,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보았어. 내 눈이 먼다 해도 그 장면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거야. 당시에 적군과 백군이 세 번씩이나 번갈아 가며 그 마을을 장악했는데, 소비에트 군대가 마을을 탈환했을 때 우리를 소집해서 시체를 파묻으라고 하더군. 온몸이 갈기갈기 찢기고, 까맣게 숯덩이가 되어버린 아이들과 여자들, 말들의 시체를 내 손으로 묻었어. 뒤죽박죽 섞여 있는 시체들은 한마디로 지옥 같은 공포그 자체였어. 진동하던 악취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지. 그 후로 나는 소위 내전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어. 내전을 치러야만 영원한 정의를 얻는다면, 그리고 그 정의의 대가로 살아 있는 인간을 죽여야 한다면, 나는 절대로 그런 정의를 위해 싸우지는 않을 거야. 나는 이제 어떤 일에도 신경 쓰지 않아. 관심도 없어, 나는 볼셰비키에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아. 나는 공산주의자도 아니고 자본주의자도 아냐. 나는 아무래도 좋아, 나 자신의 일에만 관심이 있어. 내가 봉사하고 싶은 단 하나의 정부는 바로 나 자신이야. 다음 세대가 행복해지든지 말든지, 공산주의 국가가 되든지 파시스트 국가가 되든지 아무 관심 없어. 내 관심은 오로지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냐는 것뿐이야.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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