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근비리'는 한국 정계와 재계의 유구한 내력이다. 문제는 언제나 측근들만 족치는 데서 일이 마무리된다는 것인데, 최근 불거지고 있는 삼성 비자금 파문이나 BBK 스캔들의 경우엔 어떻게 마무리될지 두고볼 일이다. 언젠가 김영삼 정부때 한 시사적인 '측근비리' 사건에 힌트를 얻어서 썼던 시 한편을 옮겨놓는다(옮기면서 약간 수정했다). 이제나저제나 사정은 별로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흰빨래들만 모아 푹푹 삶는다
흰빨래들만 모아 푹푹 삶는다 그래야 뒤탈이 없다
어지간한 측근들일수록 저렇듯 삶고 방망이로 두들겨야
뒷말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말하자면 빨래의 알리바이다, 속옷들의 알리바이다
우리는 이 점을 놓치면 안된다
흰빨래들을 믿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부글부글
구워삶아진 빨래들의 정직성을 믿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정말, 두 눈 똑바로 뜨고 살아야 한다
왜 하필 속옷들을 그렇게 삶아대는가
왜 속마음은 그만큼 삶고 두들겨 패지 못하는가
왜 만만한 측근들만이 십자가에 못박히는가
왜 그게 정말 속이 다 시원한 일인가
(고작 빨래를 삶았을 뿐인데!)
이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나는
빨래를 삶을 적마다 바로 이 문제에 골몰해 왔다
물론 빨래를 삶을 적에는, 불의 온도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빨래 삶는 일의 정치성이요 이데올로기다
모든 사건의 배면이다 그걸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빨래를 태우면 안된다 구멍을 내도 안된다
이건 현실이니까 이건 곧 현실이자 사랑이니까
결코 빨래를 태워서는 안되는 것이다 빨래만이
측근이라고 믿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얼마나 끓었는지 얼른 확인해야지
빨래나 빨리 갖다 널라고?
97. 1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