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로는 어제 오후 몽트뢰에 도착해서 문학기행 4일차 일정에 들어갔다. 몽트뢰는 루가노호를 끼고 있던 루가노와 마찬가지로 레반호를 끼고 있는 호반도시(내가 도시 비교의 척도로 쓰는 인구를 검색해보니 루가노가 6만2천, 몽트뢰가 2만6천이다). 레만호는 꽤 큰 호수여서 스위스의 여러 도시를 거느리고 있는데 제네바와 로잔도 몽트뢰와 마찬가지로 레만호의 도시다.
몽트뢰를 다른 두 도시와 차별화시겨주는 게 있다면 시옹성(바이런의 서사시 ‘시옹성의 죄수‘ 덕에 유명해졌다는데 스위스에서는 해마다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는 관광 명소다). 우리의 첫 일정도 시옹성 투어였다(불어 발음에 따라 쉬용성으로도 표기). 레만호변의 이탈리아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숙소에 들러 짐을 내려놓은 뒤 다시 버스로 이동하여 시옹성에 닿았다. 레만호 가장자리 암반 위에 세워진 중세성으로 사진으로 많이 봐서 친숙한 외관이었다. 성 내부의 여러 방을 둘러보고 기념품을 구입하고 기념사진들을 찍었다.
그러고는 나보코프 투어로. 미국을 떠나 스위스로 이주한 나보코프가 여생을 보낸 팰리스 호텔이 몽트뢰에 위치하고 있다. 호숫가의 산책로 따라가다가 도로쪽으로 올라가니 사진으로 눈에 익은 외관의 팰리스 호텔이 보였다. 그리고 호텔 앞쪽 잔디 정원에 나보코프의 시그니처 동상이 자리하고 있었다(사진으로는 프랑스 카부르의 그랜드호텔 같은 경관인 줄 알았다. 실제는 호텔과 동상 사이를 이차선 도로가 가로지르고 있다).
나보코프는 처음 1년간은 3층에서, 그 뒤로는 꼭대기층의 가장 전망 좋은 방에 종신 투숙했다(그 정도면 동상을 세워줄 만한가?). 그 기간에 <창백한 불꽃>을 포함한 많은 작품을 집필했다. 나보코프의 장소로는 페테르부르크의 나보코프박물관이 가장 가볼만한 곳이지만(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식되기 전까지는 러시아문학기행을 기획할 수 없다) 이곳 팰리스 호텔도 의미 있는 장소가 되는 이유.
동상 앞에서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은 뒤에 다행히 아직 해가 남아있어서 우리는 공원묘지로 걸음을 옮겼다. 팰리스호텔에서는 도보로 15분거리. 거리는 가까웠지만 오르막길이었다. 묘지의 규모가 작은 건 아니었지만 안내지도에 묘역이 표시돼 있어서 나보코프 가족(아내와 아들이 같이 묻혔다)의 무덤을 어렵잖게 찾을 수 있었다. 러시아 최대 망명작가가 이곳에 안식하고 있구나라는 감회를 잠시 느꼈다. 나보코프 데이의 마지막 일정이 종료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