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만원전철에서 읽은 기사를 옮겨놓는다. 며칠전 구내서점에서 눈여겨 본 시집이기도 한데, 시단의 '완전소중' 황병승의 두번째 시집 <트랙과 들판의 별>(문학과지성사, 2007) 출간 관련 인터뷰기사이다. 경향신문의 내일자 기사까지 같이 옮겨놓는다. 한국시의 최신 '트랜드'가 궁금하신 분들은 한권씩 사서 꽂아두시길. 단, 주변에 권하지는 마시길. 혼자 즐기시길(알라딘의 이미지는 왜 이리 커졌나?).

한국일보(07. 09. 12) 우리의 詩를 버리면 그의 詩가 읽힌다"

'한국 시단의 첨단' 황병승(37) 시인이 두번째 시집 <트랙과 들판의 별>(문학과지성사 발행)을 냈다. 2년 전 모호한 성(性)의 퀴어적 주체들을 둘러싼 낯설고도 잔혹한 세계를 감각적으로 그린 첫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를 내놓은 그에겐 "시 아닌 것을 긁어 모아 시를 만들어 내는 연금술사"(평론가 신형철), "우리 시단에 새로운 시의 지도를 그리는 자"(시인 김혜순), "한국 현대시의 지루한 표준성을 날려버릴 강력한 뇌관"(평론가 이광호) 등의 절찬이 쏟아졌다. 잠잠하던 시단에 '미래파 논쟁'이란 첨예한 전선이 그어진 것도 이 '괴물 시인'의 돌출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이번 시집은 여러 혼종 주체를 내세워 분열적인 목소리를 낸다는 면에서 전작과 유사하고, 퀴어적 요소를 줄이고 이야기를 살렸다는 점에서 차별된다. 황씨는 "이미지나 언술을 비틀어 표현하는 재미에 충실했던 첫 시집에 비한다면 서사적인 면이 강화된 이번 시집은 독자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사에 충실하다보니 책에 실린 시 40편의 분량이 180쪽에 이를 만큼 긴 시가 많다. 황씨는 시구를 반복하거나, 시 속에 짧은 시를 이탤릭체로 삽입하는 등의 방식으로 긴 시에 음악성을 부여했다. "시와 소설의 모호한 경계에서의 밀고 당기는 재미"가 그가 밝히는 장시 쓰기의 묘미다.

이번 시집에서 그는 확실히 친절해졌다. '음악이 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아름다운 센텐스'를 찾아 방랑하는 마약 중독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시 '눈보라 속을 날아서'의 경우 심플한 구도로 처연한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작품이다. 불륜과 폭력, 연민으로 얽힌 9명을 한꺼번에 살인사건에 연루시키는 고난도 퍼즐을 짰던 이전 시집의 '혼다의 오ㆍ세계 살인사건'과 대별된다.

하지만 상당수의 작품은 여전히 읽어내기 녹록치 않다. "이야기를 단순하고 직접적으로 하는 대신, 부조리한 상황, 분열된 인물 등을 통해 비틀어 낯설게 표현하는 것이 내 시적 지향"이라고 말하는 황씨는 독자와의 손쉬운 소통을 위해 작품 속 복잡한 알레고리를 설계하는 즐거움을 포기할 마음이 전혀 없다. 그러니 우리가 다가서는 수밖에. 고무적인 것은 우리가 시에 대해 품고 있던 정형화된 관념을 버릴수록 그의 시가 조금씩 '느껴진다'는 것. 이해를 독촉하는 이성 대신 모호한 혼종의 세계에 몸을 맡기면, 쓰지 않고 버려뒀던 감각들이 저릿저릿해온다는 것.

'목구멍에 고무호스를 달고 사는 큰오빠/ 나의 메리 고 라운드/ 현기증이 일거든, 눈을 감고 암흑 속에 펼쳐지는 빛들의 춤을 봐/ 아주 짧은 시간의, 황홀한 축제/ 눈을 뜨려고 애써봐야 그 시간은 어차피 현기증의 것'('썸 비치들의 노래'에서). 황씨는 "세상에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난해한 시는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황씨는 이제 '시코쿠'들의 세계가 재미없어졌단다. 그는 "이번 시집을 <여장남자 시코쿠>의 속편이자 완결편으로 삼으려 한다"며 "세 번째 시집에선 완전히 새로운 것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충만하다"고 말했다. '시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놀이'라는 그에게 갱신의 고통 없이 익숙해진 놀이는 더 이상 놀이가 아닐 것이다.(이훈성기자)

경향신문(07. 09. 13) 황병승 두번째 시집 ‘트랙과 들판의 별-러브 앤 개년’ 출간

‘나의 연인은 말한다 우리가 아침에도 만났고 낮에도 만난다면 우리가 누구인지 내가 누구인지 너는 조금씩 모르게 될 거야 어째서 사랑은 그런 것일까 나의 연인은 말한다 우리가 늦은 밤에도 만나고 새벽에도 만나고 공원에서 들판에서도 만난다면 우리가 누구인지 내가 누구인지 결국 영원히 모르게 될 것이고 밤과 낮 공원과 들판에 대해서도 까맣게 잊어버리겠지 어째서 어째서 사랑은 그런 것일까 나의 연인은 소리친다 입 닥쳐 개년아 어째서라니 네가 그 사실을 자주 잊어버릴수록 너는 더 미친 듯이 사랑에 목말라해야 하고 이곳에 없는 나를 찾아 밤새도록 공원을 숲 속을 개처럼 헤매게 될 거다….’(시 ‘트랙과 들판의 별-러브 앤 개년’ 일부)

장정일이 1990년대 문학판을 휘저어놓은 것처럼 2000년대 문학의 이단아로 등극한 시인 황병승. 그의 두번째 시집 ‘트랙과 들판의 별’(문학과지성사)이 나왔다. 2005년 나온 첫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는 시집으로는 드물게 5쇄를 찍었다. 그의 시는 외부 사물을 시인의 자아로 끌어들이는 서정시의 전통을 거부하고, 자유연상과 시어의 물질성에 집착하는 ‘미래파’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평론가들의 칭찬도 자자하다. “기표의 놀이를 통해 우리가 잃어버렸던 세계의 원형을 복원하려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을 해내고 있다”(권혁웅), “한국 현대시의 진정성에 대한 이념과 그 지루한 표준성을 날려버릴 강력한 뇌관”(이광호) 등이다.

시가 어렵다는 생각을 버리고, 무장해제한 채 황병승의 시를 읽으면 체제와 기성세대를 거부하는 반항아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중얼거림, 랩의 리듬이다. 시에서 소재 찾고 주제 찾고 비유 찾는 식의 독법을 버리자고 하는데 황병승의 시는 한 방에 그런 문제를 해결해준다.

이번 시집은 40편의 시를 200여쪽의 분량에 담았다. 시 1편당 평균 5쪽, 가장 긴 시는 9쪽에 이른다. “시도 되고 소설도 되는, 시도 안되고 소설도 안되는, 시와 소설의 모호한 경계에서의 밀고 당기는 재미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길이보다 놀라운 건 금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하위문화, 분열된 주체, 퀴어, 잔혹극, 무국적성, 텍스트의 콜라주가 특징이다.

‘냐라키는 처음 만난 아랍 남자들과 소파 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파티 내내 오스본이 곁에서 지켜보는 줄도 모르고/…/부끄럽지도 않니, 뒤죽박죽이 끝난 뒤 오스본이 힐책하듯 묻자, 냐라키는 고개를 떨군 채 오스본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웅얼거리듯 말했다/“…고멘나사이(미안해)…시카시(하지만), 시카시…”.’(시 ‘눈보라 속을 날아서’ 일부) 눈보라는 코카인에 취한 황홀한 상태를 의미한다.

블로그와 블로그를 옮겨다니며 젊은 독자들에게 인기를 모으는 황병승에게 “시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의 답변은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최고의 놀이 중 하나”라는 것이다.(한윤정기자)

07. 09. 12.

P.S. 관련 페이퍼로는 '황병승, 혹은 똑똑한 오리들이 쓰는 시'(http://blog.aladin.co.kr/mramor/105103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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