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제일의 갑부가 프리미어리그 첼시의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라는 것 정도는 퀴즈문제에 나올 만한 상식이다. 하지만 두번째는? 여기부터는 '상식밖'일 텐데, 나도 아래의 기사를 읽으며 이름을 기억하게 됐다. 올렉 데리파스카(1968- )이고 세계 최대 알루미늄 생산기업이라는 루살의 '오너'이다. 얼마전 GM 지분을 5% 인수한 것과도 관련해서 뉴스에 오르내린 적이 있는데, 이 '잘 나가는' 올리가르흐에 대한 자세한 기사가 눈에 띄기에 스크랩해놓는다(러시아의 올리가르히에 대해서는 http://blog.aladin.co.kr/mramor/1091634 참조).

 

조선일보(07. 09. 01) '포스트 푸틴’ 대비책? 영국行 엑소더스 논란 

크렘린의 지지를 업고 혜성처럼 떠오른 ‘러시아의 철강왕’ 올레그 데리파스카(Oleg Deripaska·39)가 이번에는 영국으로의 ‘엑소더스’(exodus·대탈출) 논란에 휩싸였다. 혹시 모를 권력의 변덕과 포스트 푸틴 체제에 대한 방어책으로 자산 전체를 영국으로 옮기려 한다는 것이다.

데리파스카는 세계 최대 알루미늄 생산기업 루살(RUSAL)의 오너(owner)로, 영국 프리미어리그 첼시의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에 이은 러시아 2위 갑부다.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 외손녀의 남편으로, 푸틴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인물로 유명하다. 소치 공항을 통째로 인수해 대대적인 재건축에 나서며 러시아의 동계올림픽 유치에도 큰 역할을 했다.



그런 데리파스카가 때아닌 논란에 휩싸인 것은 런던 고급 주택가 벨그라비아(Belgravia)에 일찌감치 사놓은 저택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개인적으로’ 인수해온 유럽 기업들 지분에, 올해 말로 점쳐지는 루살의 런던증권거래소 상장이 가장 유력한 증거로 제시된다. 루살은 기업공개(IPO)에 성공할 경우 90억 달러의 자금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까지는 데리파스카가 굳이 러시아를 탈출하는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는 여전히 푸틴이 가장 신임하는 올리가르히(Oligarchy·러시아 신흥재벌)다. 또 그는 전직 오너가 탈세 혐의로 재판 중인 석유기업 루스네프트(Russneft)의 유력한 인수자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크렘린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운 영국인 거부가 될 수 있다는 건 달콤한 유혹임에 틀림없다. 그 역시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블라디미르 구신스키 등 걸출한 올리가르히들의 몰락을 눈앞에서 지켜봐 왔다(*아래는 철창의 호도르코프스키. 유코스그룹의 회장이었던 그는 러시아 최대의 갑부였다).

성공적으로 서방 미디어의 보호막 안에 들어선 아브라모비치의 선례도 있다. 포스트 푸틴 체제는 언젠가 다가올 현실이고, 푸틴 아래서 누렸던 특혜는 다음 정권에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데리파스카는 자신의 엑소더스에 대한 세간의 의혹을 일축한다. 그는 루살의 기업공개를 주장하는 것은 자신이 아닌 다른 주주들이라며 “나는 부끄러운 것도 없고 숨길 것도 없다. 역사가 나를 심판할 것이다”라고 공언하고 있다.

데리파스카는 1990년대 러시아 알루미늄 산업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알루미늄 전쟁’의 최후 생존자라 할 수 있다. 권력과 마피아가 동원된 이 혈투에서 알루미늄 업자들은 기습과 암살을 주고받았고, 살해된 사람은 수십 명에 이른다.



모스크바대에서 양자물리학을 전공하던 데리파스카는 1992년 국유 재산 민영화의 격동기에 시장 경제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알루미늄 매매 시장이었다. 그리고 그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당시 알루미늄 산업을 장악하고 있던 유대계 금속기업 트랜스월드그룹(TWG)의 러시아 대리인 미하일 체르노이와의 만남이었다.

체르노이는, 이재에 밝고 수완을 갖춘 푸른 눈의 이 청년을 알아봤고, 시베리아 남동부 사얀스크(Sayansk)의 알루미늄 공장 사장 자리에 앉혔다. 그러나 데리파스카는 훨씬 큰 야망을 갖고 있었다. 데리파스카는 1998년 트랜스월드그룹의 뒤를 봐주던 정치인의 실각과 체르노이 형제 간 불화로 회사가 혼란스러운 틈을 타 비밀스러운 증자를 추진했고, 결국 사얀스크 공장의 경영권을 빼앗았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트랜스월드그룹의 오랜 독점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던 알루미늄 업자들을 회유하기 시작했다. 애국심을 이용한 선전도 곁들였다. 기자회견을 열어 “러시아에 대한 강탈은 이미 충분하다”며 세금 감면 혜택을 받고 있던 트랜스월드그룹을 공격한 것이다. 자신은 3년 내에 주식을 공개하고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선언했다.

1999년 크렘린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트랜스월드그룹이 세금 감면을 받기 위해 고위관료들에게 뇌물을 제공했다고 발표하며 그간의 특혜를 빼앗아 버린 것이다. 데리파스카는 타격을 입은 트랜스월드그룹이 주춤하는 사이 공장들을 인수하며 세력을 넓혀 나갔고, 결국 알루미늄 기업 연합인 루살 회장에 오를 수 있었다.

흑해 연안 크라스노다르(Krasnodar) 지방의 전통 마을에서 태어난 데리파스카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조부와 친척들 집을 전전했다고 한다. 그는 “삶의 어려움은 재앙이 아니다. 홍수가 있으면 뛰쳐 나가서 맞서면 된다”는 말로 당시 생활을 표현했다. 후에 데리파스카는 정략결혼에 예기치 않은 행운을 더해 수직 신분상승을 이루게 된다.



2001년 2월 데리파스카는 옐친 전 대통령의 측근인 발렌틴 유마셰프의 딸과 결혼했다. 그런데 8개월 뒤 장인 유마셰프가 옐친 전 대통령의 딸인 여장부 타티야나와 재혼했다. 데리파스카는 하루 아침에 옐친 가문의 일원이 된 것이다. 데리파스카는 푸틴에 대해 “러시아의 대통령은 나라 전체를 이끄는 최고 관리자이다. 그는 똑똑하고, 적절하고, 그의 권위는 한계를 벗어난 적이 없다”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푸틴은 그런 그에게 “국가에 이바지한 경제인”이라고 화답한다. 언제까지 이런 관계가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데리파스카는 몰락한 올리가르히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성적인 행동보다 룰렛 게임에 돈을 걸던 무능력한 무리는 제거됐다. 죽거나 아니면 노동 캠프에 가거나.” 데리파스카의 엑소더스를 둘러싼 논란은 서방 언론들의 푸틴 공격과 맞물려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선정민 기자) 

07. 09.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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