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백가흠의 두번째 소설집이 출간됐다. 데뷔작 <귀뚜라미가 온다>보다는 덩치가 좀 커졌는데, 그가 이번에 내놓은 건 <조대리의 트렁크>(창비, 2007)이다. 표제작 등을 읽어본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친근함마저 느껴진다. 비록 작년 여름에 읽은 작품들의 기억이 아득하지만. "광적이고 파렴치한 폭력의 세계를 날것으로 묘사해 독자에게 불편한 충격"을 주는 소설로 소개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불편한 충격'까지는 경험해보지 못했고 다만 흥미는 느꼈다('소설적인 폭력'이 오히려 현실에 미달하는 게 요즘 추세 아닌가?). '문단의 정석'대로라면 이제 장편소설이 나와야 할 터인데 기사를 읽어보니 '히피'에 대한 것이라고. 단편에서의 장기들이 그대로 살아있는 멋진 장편이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 

한국일보(07. 08. 18) 두번째 소설집 '조대리의 트렁크' 낸 백가흠

“저도 독실한 기독교 집안 출신이지만, 우리 사회는 종교적 억압이 심하죠. 도덕적, 윤리적 외양을 내세우면서 치부를 감추는데 급급합니다. 우리 사회의 번드르르한 겉모습 뒤에서 무수히 벌어지는 반이성적 작태 중 폭력의 문제를 천착하는 것이 제 소설입니다.” 광적이고 파렴치한 폭력의 세계를 날것으로 묘사해 독자에게 불편한 충격을 주고 있는 소설가 백가흠(33)씨. 그가 두번째 소설집 <조대리의 트렁크>(창비 발행)를 냈다. 첫 소설집 <귀뚜라미가 온다> 이후 2년 만으로, 그동안 써온 단편 9편을 묶었다.

폭력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번 작품집에도 선연하다. 기형아를 유기하는 젊은 부부(‘웰컴, 베이비!’), 거둬준 노인을 상대로 위장 강도짓을 벌이는 부랑아들(‘매일 기다려’), 떠나려는 애인을 둘씩이나 감금하고 성폭행 동영상으로 협박하는 남자(‘굿바이 투 로맨스’) 등 교정불가의 ‘나쁜 놈’들이 득시글거린다.

변화도 감지된다. 작가가 그동안 잠재적 폭력성이나 뒤틀린 성의식을 가진 남성이 표출하는 폭력을 주로 다뤘다면, 이번 창작집에서는 노인, 아동 등 사회적 약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주목했다.
폭력의 근원에 대한 탐구가 개인적 성향에서 사회적 맥락으로 확장됐음을 의미한다.
이런 변화는 작가의 문학적 전략이기도 하다. 백씨는 “예전엔 서정적 문체를 동원해 폭력의 양상을 세밀하게 표현했는데, 인물 설정을 바꿈으로써 묘사에 기대지 않고도 극악함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말한다.

피해자에게도 온정적 태도를 취하지 않는, 중립적이고 냉정한 작가적 시선은 여전하다. ‘매일 기다려’의 노인이 아이들의 기식과 패악을 견뎌내는 힘은 가족을 꾸리고 싶은 욕망이다. 평생을 홀로 살아오다 정 붙일 상대를 만난 노인은 자기 재산을 강탈한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떠나는 모습에 “서운하고 아쉬워서 주책없이 흐르려는 눈물을 참고 또 참는다.”(127쪽) 백씨는 “노인은 모든 것을 다 뺏기는 듯 보이지만 오히려 아이들보다 더 큰 것을 얻은 것일지도 모른다”며 “동정의 시선은 필요치 않다”고 단언한다.

그러므로 화해는 없다. 표제작을 비롯한 몇몇 작품은 이전에 비해 어느 정도 가능성을 열어둔 결론을 맺었지만, 독자가 출구없는 폭력의 세계를 목격하며 느끼는 답답함이 크게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작가 역시 “작품을 쓰며 늘 화해를 바라지만 결국 작중 인물들은 소통하지 못한 채 불화하고 파국을 맞는다”며 “가끔 내가 (정신적) 미숙아 같기도 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온존하는 폭력을, 그저 자신의 평온을 확인하는 가십이나 위로로 삼는 우리가 어찌 백가흠 소설을 불편하고 답답할 뿐이라고 치부할 수 있겠는가. 원주 토지문학관에 기거하고 있는 백씨는 다음 작품으로 히피를 소재로 한 장편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이훈성 기자)

세계일보(07. 08. 18) 백가흠 두번째 소설 출간…"폭력 난무하는 세상, 희망 찾고 싶어"

소설가 백가흠(33)씨가 2년 만에 두 번째 소설집 ‘조대리의 트렁크’(창비)를 펴냈다. 전작 ‘귀뚜라미가 온다’는 어머니에게 주먹질하는 패륜아, 유부녀 성폭행범, 파렴치한 목사 등이 활개치는 ‘배덕자의 천국’이었다. 두 번째 소설집에서도 무법자들의 구타와 악다구니는 여전하다. 하지만, 예전처럼 ‘희생자 전원 몰살’ 식의 파국으로 치닫지 않는다. 이제 작가는 가느다랗고 희미한 구원의 빛을 던진다.

표제작 ‘조대리의 트렁크’에선 작풍의 변화가 명확히 보인다. 충청도 토박이 조대리는 대리운전 기사다. 기저귀를 차고 병석에 누운 노모와 더불어 산다. 비가 쏟아지던 밤, 조대리는 말끔한 신사 장영수의 세단을 대신 몬다. 사업 실패에 자포자기한 영수는 자살하기 전, 살아있는 노모를 저수지에 수장하려 한다. “다, 죽여버리고 싶다. 정말. 가족이고 뭐고.”(153쪽)

영수는 대리기사 조대리를 멸시하면서도 저수지까지 동행할 것을 재촉한다. 저수지에서 돌아온 그는 이튿날 여관에서 변사체로 발견된다. 세단 트렁크엔 뇌출혈에 걸린 영수의 노모가 웅크리고 있다. 조대리는 트렁크 속 노인을 거둔다. “조대리는 노인을 업고 집으로 뛰기 시작한다. 뛰면서 자기 엄마보다도 더 가벼운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진다.”(162쪽)

초기작들의 암담한 결말과 다르다. 몰살과 자학 대신 꺼져가는 불꽃을 되살리려는 안간힘이 있다. 백씨는 “등단 무렵엔 철저히 객관화된 소설을 써야 된다는 강박에 일부러 탈출구를 막았다”며 “현재는 화해와 희망에도 눈 돌리고 있다”고 변화된 작품관을 설명했다.

‘루시의 연인’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준호는 군복무 시절 불구가 됐다. 태권도 승단시험 연습 중 무지막지한 고참들이 가랑이를 무리하게 찢어 신경을 심하게 다쳤다. 은둔 생활을 하는 준호는 책을 빌리러 가는 일 외엔 외출하지 않는다. 그는 책 대여점 여주인 정원에게 끌리지만, 속내를 털어놓지 못한다. 좌절된 사랑을 그는 ‘루시’에게서 찾는다. 루시는 남성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실리콘 인형이다.

준호의 어머니는 아들을 장애인 미순과 결혼시키려고 하지만, 준호는 다리를 못 쓰는 미순을 거부한다. 어느 날, 준호가 연모하던 정원이 꽃뱀으로 밝혀지고, 그녀는 잠적한다. 갈 곳이 없어진 준호는 “거실로 나가 반갑게 미순을 맞는다.”

미순을 맞아들이는 것 역시 초기작에 없던 화해의 제스처다. 근작일수록 변화의 흔적이 또렷하다. 올해 상반기에 발표한 ‘사랑의 후방 낙법’에선 노골적인 폭력이 스포츠 선수의 땀방울로 대체된다. 그 밖에 가난한 노인이 10대 불량아에게 학대·갈취당하면서도 가족의 정을 구하는 ‘매일 기다려’, 영아 매매와 영아 유기 사건을 교차시켜 비극성을 증폭시키는 ‘웰컴, 마미!’ 등 9편의 단편이 실렸다.

백씨는 자신의 단편을 “독자와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말한다. 적나라한 폭력과 인간의 추악성을 부각하는 건 ‘낭만’으로 왜곡된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장치다. 그는 “내가 쓴 소설을 스스로 들여다보면, 사물이 철저하게 객관화된다”고 말한다. 소설 속 가해자를 증오하지 않고, 피해자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는다. “독자들은 불편한 소설을 쓰는 이유를 묻습니다. 저도 답을 알지 못합니다. 아직까진 악행으로 가득한 세계를 일말의 희망을 암시하면서 숨김 없이 보여주는 일밖에 할 수 없어요. 그게 소설가의 일이잖아요.”(글·사진 심재천 기자)

07. 08. 18-19.

P.S. 참고로 '작가와 문학사이'란의 소개는 http://blog.aladin.co.kr/mramor/131969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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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le 2007-08-18 0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저도 한때 조 대리였어요. 어느 날 아침 회사에 출근했다가 기어이 쌓인 울화통이 폭발하여서 책상 정리하고 가방 들고 신발 꿰어 신고 있는데 상사가 그러더라구요.

"야, 조 대리, 어디 가?"

"저, 이제부터 조 대리 아니거든요. 안녕히 계세요."

로쟈 2007-08-18 09:14   좋아요 0 | URL
소설에서 '조대리'의 '대리'는 '대리운전자'를 가리키지만, 인연이 없지는 않은 책이군요.^^

닉네임을뭐라하지 2007-08-18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작가, 하기에 백민석인 줄 알고 깜짝 놀라서 와봤는데 아니군요 ㅎㅎ
역시, 절필선언을 되돌릴 생각은 없나보네요 흠

로쟈 2007-08-19 19:12   좋아요 0 | URL
깜짝 놀라셨다기에 페이퍼 제목을 바꿨습니다.^^